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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일리 요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261
한자 學日里窯址
영어음역 Hagil-ri Yoji
영어의미역 Kiln Site in Hagil-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 산37-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재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가마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 산37-1 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마 터.

[위치]

학일리 요지1은 고초골저수지를 통과하여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150여m 진입한 구릉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학일리 산55임, 68전 일원이다. 학일리 요지2는 쌍용저수지 제방 동쪽 가장자리에서 냇가를 따라 임야쪽으로 250여m 올라간 구릉에 위치하며 아래쪽은 급경사를 이루는 비탈진 사면을 거쳐 냇물로 이어진다. 학일리 532전 일원이다.

학일리 요지3의 분청사기 가마 터는 쌍용저수지의 남쪽 끝에서 서쪽 임야를 향해 150여m 떨어진 임야 중간을 가로지르는 비포장의 소로 주변에 위치하며 산37-1임 일원이다. 학일리 요지4는 쌍용저수지 남쪽 끝에서 좌측 대각선으로 400여m 떨어진 임야 지역에 위치하며, 학일리 요지3과 동일 주소로 50m 정도 떨어져 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네 곳 모두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일리 요지1 백자 가마 터는 택지와 밭으로 개간되어 크게 훼손된 상태로, 19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편과 요도구들이 지표에 흩어져 있다.

학일리 요지2의 백자 가마 터는 매우 큰 규모의 퇴적층이 존재하며 특히 당시에 사용된 가마 구조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놀라운데, 가마는 폭이 1.7~3.0m, 길이는 15m이다.

학일리 요지2에서는 다량의 대접과 접시 및 소량의 제기 등의 백자편과 요도구 등이 발견된다. 그릇들은 두께가 두껍고 질이 좋은 백토를 사용하였고, 유색은 연한 회백색이 주류를 이룬다.

굽은 안바닥을 깊게 깎아내고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어서 환원번조하였다. 모두 19세기의 지방 백자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대체로 질이 좋다. 제기는 접시 아래에 높은 굽다리나 모깎이를 한 굽을 단 종류들이다. 이 중 잘못된 제기나 잔 등을 그릇받침으로 사용한 예도 많다.

학일리 요지3의 분청사기 가마 터는 소규모로 다량의 상감 및 인화 분청사기와 암록색의 청자 파편 및 원반형 도침(개떡) 같은 요도구들이 발견된다. 학일리 요지4의 분청사기 가마 터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분청사기와 청자·요도구·가마벽편들이 발견된다.

분청사기는 대접이나 접시의 내외면에 상감기법으로 줄무늬를 베풀거나 승렴문·연판문·연꽃·국화·집단연권문 등의 인화문을 장식한 예가 많다. 유색은 암록색이나 갈록색이 주류를 이루며, 바닥에 모래를 받쳐 구웠다.

특히 주목되는 사실은 구울 때 포개구이를 하지 않고 한 점씩 정성스럽게 구운 편이 많아, 특수층을 겨냥하여 질 좋은 분청사기를 생산한 우수한 가마 터로 추정된다. 이외에 아무 장식이 없는 암록색의 청자편이 소량 보이며, 아령형의 도침과 원반형의 도침(개떡)이 발견된다.

[의의와 평가]

분청사기 가마 터들은 15세기 전반경에 운영된 것인데,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양지현 남쪽 함항(檻項)의 하품 자기소”로 추정될 정도로 질이 좋고 규모가 크다. 백자 가마 터도 조선 후기에 운영된 대규모의 것으로 19세기 용인의 활발한 요업 상황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가마 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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