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조영복 영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222
한자 趙榮福影幀
영어음역 Jo Yeongbok Yeongjeong
영어의미역 Portrait of Jo Yeongbok
이칭/별칭 조영복 초상,조영복 초상화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상갈로 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초상화
제작시기/일시 조선 후기
작가 조영석|진재해
소장처 경기도박물관
소장처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상갈로 6]지도보기
소유자 경기도박물관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1298호
문화재 지정일 1999년 12월 15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복의 초상화.

[개설]

「조영복 영정」은 총 두 점으로 1994년 함안조씨 참판공파에서 경기도에 기증하여 현재 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두 점이 일괄로 보물 제12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중 한 점은 조영복의 동생이자 사대부 화가인 조영석(趙榮祏)이 1725년(영조 1)에 그린 것이고, 다른 한 점은 조영석이 당대 유명한 도화서 화원인 진재해(秦再奚)에게 그리게 한 작품이다.

[형태 및 구성]

조영석이 그린 「조영복 영정」은 편복본의 전신좌상(全身坐像)으로 얼굴은 좌안 7분면이며 몸체는 9분면에 가깝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발문을 종서(縱書)하였는데, 표제(表題)는 “이지당조공화상(二知堂趙公畵像)”이라고 썼다.

형이 54살 때 유배지였던 영춘(永春)에 있을 때 초본을 그린 사연을 밝히고, 나중에 진재해로 하여금 편복본을 보고 공복본을 다시 그리게 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발문의 마지막에 “숭정기원후재임자칠월정미제영석근서(崇禎紀元後再壬子七月丁未弟榮祏謹書)”라고 적어 초본은 1725년경에 그렸지만 발문은 1732년에 작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영복 영정은 평상복 차림에 배경을 생략한 대담한 구성을 나타내고 있다. 높은 사방건을 쓰고 곧은 깃과 넓은 소매의 포를 입었으며, 양손을 드러낸 채 다리 위에 살포시 얹었다. 허리에는 적색의 세조대를 묶었으며, 중간에 부채를 매달았다. 이러한 구성은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인 것으로 매우 드문 예이다.

진재해가 그린 조영복 영정은 공복본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얼굴은 좌안 7분면, 몸체는 9분면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발문이 있는데, “개성부유수이지당조공오십사세화상 진재해사(開城府留守二知堂趙公五十四歲畵像 秦再奚寫)”라고 하여 진재해가 1725년에 그렸음을 밝히고 있다.

호피를 깐 의자에 앉았고, 두 손은 공수하였으며, 흉배가 없는 관복인 시복(時服)을 입고, 삽금대(鈒金帶)를 둘렀으며 오사모를 썼다. 바닥에는 돗자리가 없고, 족좌대가 높고 넓은 점, 높은 오사모의 형태 등은 18세기 전반의 초상화 양식을 보이고 있다.

[특징]

인물화를 잘 그리기로 유명했던 조영석이 그린 조영복 영정은 유배를 당하여 언짢아 있는 조영복의 표정을 잘 포착하였다. 안면의 윤곽은 선으로 잡고, 주름지고 오목한 부분은 붓 자국이 보이지 않게 선염(渲染)하였다.

눈매와 힘주어 다문 입술이 생생하여 화가의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다. 대수포의 넉넉한 형태를 원형의 구도에 안정적으로 담아냈는데, 의습선의 선묘가 절묘하여 선염의 효과 없이도 옷주름의 실체감이 잘 살아 있다. 전체적으로 옅은 미색의 차분한 톤에 적색의 세조대에 포인트를 두었다.

진재해가 그린 조영복 영정의 경우에는 표정은 편복복과 같으나 전형적인 관복본이다. 안면은 편복본을 보고 그렸기 때문에 눈매나 입매, 표정 등이 거의 유사하다. 관복은 윤곽과 큰 옷주름을 우선 선으로 그리고, 그 주위를 넓게 선염하여 음영을 넣었다.

관복은 밝은 담홍색으로 화사하며, 하단 양 트임 사이의 안감은 청색을 사용하여 안정감을 주었다. 세밀한 필선과 색감의 조화, 안정적인 공간 처리는 ‘숙종 어진’을 그린 당대 최고의 초상 화사로서의 기량을 잘 보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두 초상화는 동일한 인물을 문인화가 조영석과 유명 화사인 진재해가 같은 해에 그려 현재까지 전해진 유일한 예의 초상화이다. 발문이 남아 있어 연대가 확실하고, 제작 배경, 관복본의 연혁, 작가 등의 기록이 모두 남아 있어 회화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