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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 박세채 영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205
한자 南溪朴世采影幀
영어음역 Namgye Park Sechae Yeongjeong
영어의미역 Portrait of Park Sechae
이칭/별칭 박세채 초상화,박세채 초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상갈로 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초상화
제작시기/일시 조선 후기
소장처 경기도박물관
소장처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85[상갈로 6]지도보기
소유자 경기도박물관
문화재 지정번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3호
문화재 지정일 1996년 12월 24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박세채의 초상화.

[형태 및 구성]

관복본은 녹색 단령(團領)을 입은 전신 교의 좌상의 정면상이고, 편복본은 동파관에 도포를 입은 전신 정면 입상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얼굴 모습은 거의 흡사하여 편복본은 관복본의 얼굴을 보고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두 점 모두 표제나 명문은 보이지 않아 제작 경위나 작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관복본은 얼굴과 몸체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으나 시선은 오른쪽 하단을 응시하고 있다. 높은 사모를 썼으며, 녹색 단령을 입었고, 호피를 깐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다. 호피의 얼굴 부분을 족좌대 위에 묘사한 18세기와는 달리 족좌대 아래에 묘사되어 있다.

두 손은 공수를 하여 허리 아래에 편안히 내린 상태이며, 가슴에는 단학 흉배를 달고, 서대를 둘렀다. 채전(彩牋)은 없으며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편복본은 높은 동파관을 쓰고 커다란 대수포의 도포를 입고 두 손을 공수한 채 정면을 향해 서 있는 형태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현전하는 초상화 중 유일한 예이다. 허리에는 긴 세조대를 매어 그 잔여 끈이 도포 아랫자락까지 11자형으로 내려오고 있다. 배경 없이 형태만 그렸으며, 당대 최고의 유학자다운 풍모를 잘 포착하고 있다.

[특징]

정면 입상의 경우 편복상이 있고, 채전 없이 17세기에 호피가 깔린 의자에 앉아 있어 중국 제작설, 혹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1689년(숙종 15) 기사 환국 이후 윤증 등의 학자들과 서신 내왕이 많았으며, 양명학에도 도통하였던 박세채(朴世采)의 행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관복본과 편복본 둘 다 당당한 신체 표현과 풍성한 소매 표현 등 세부 표현이 정교하고, 흑백을 대비시킨 풍성한 수염이 인상적이다. 이목구비와 얼굴은 세선으로 윤곽을 잡고, 음영이 진 부분은 옅게 선염 처리하였다.

녹색포의 옷주름은 짙은 먹선으로 선 처리만 하였고, 선염은 넣지 않았다. 옷감의 운보문(雲寶文)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세로 연속 사방문으로 처리하는 데 반해 남계 박세채 영정은 가로 연속 사방문으로 묘사한 점이 특이하다.

편복본은 수염이나 골상의 묘사가 보다 정교하다. 넓은 어깨와 풍성한 대수포 등이 유난히 강조되어 다소 어색하기는 하나 옷주름의 선 처리를 간략화하여 대범하게 처리한 점이 두드러진다.

[의의와 평가]

두 작품 모두 박세채가 60살을 전후한 시점에 그려진 것으로 보여 17세기 말의 영정 경향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정면상의 관복본과 편복본이 함께 전해진 예는 매우 희귀하다. 둘 다 모두 작품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제기되고 있는 중국과의 연계성 차원에서 연구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