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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나한전 나한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769
한자 白蓮寺羅漢殿羅漢像
영어음역 Baengnyeonsa Nahanjeon Nahansang
영어의미역 Arhant Image of Arhant's Hall in Baengnyeonsa Temple
이칭/별칭 백련사 나한상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산4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임석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석조 나한상
제작시기/일시 조선시대
재질 화강암
높이 25~35㎝
소장처 백련사 나한전
소장처 주소 경기도 용인시 포곡읍 가실리 산43 지도보기
소유자 백련사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백련사 나한전에 있는 조선시대 나한상.

[개설]

우리나라에서 나한 신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고려시대부터 널리 신앙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광통보제사의 정전을 나한 보전이라 하고, 석가모니와 문수, 보현보살의 삼존과 함께 500나한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나한전이 사찰의 금당으로 자리 잡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전의 나한상은 실제 남아 있는 예가 매우 드물고 현재 전하는 상은 대체로 조선 중·후기 작품들이다.

[형태]

백련사에 현재 전하는 나한상은 총 16구인데, 이중 4구는 새로 조성한 것이고 옛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12구이다. 모두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제작되었고 전신에 호분칠을 하였다. 안면에는 채색을 하여 눈과 눈썹, 입 등을 표현하였다.

나한상의 크기는 30~35㎝ 정도이며 대부분이 좌상이다. 두발의 형태는 승려형이 많고, 두건을 쓴 예도 있다. 얼굴 형태가 다양하지는 않으나, 사유상이나 고개를 젖히고 위를 바라보는 상, 두건을 깊게 눌러 쓰고 있는 상, 팔베개를 하고 편안히 누워 사색하는 상 등 나한 특유의 자유롭고 해학적인 자세를 취한 상들도 있다.

[의의와 평가]

『백련암약사(白蓮庵略史)』에는 “조선 태종 4년에 무학왕사가 18나한상을 조성하면서 이 절을 중수하였다”라는 언급이 있어 1404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록에 전하는 나한상이 바로 이 나한상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최근 강원도 영월군 창원리에서 출토된 나한상들은 대개 16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백련사의 상들은 이보다 양식적으로 후대의 상이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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