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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880
한자 李淑琦
영어음역 Lee Sukgi
이칭/별칭 공근,정양,연안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성별
생년 1429년연표보기
몰년 1489년연표보기
본관 연안
대표관직 호조판서

[정의]

조선 전기의 무신.

[개설]

이숙기(李淑琦)[1429~1489]는 세조성종 대에 활동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기개가 넘쳐 무신의 자질이 뛰어났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에 봉해졌고,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는 등 국경을 수비하는 데 힘을 기울인 명장(名將)이다.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근(公瑾). 증조부는 판전의감(判典醫監) 이양(李亮)이고, 할아버지는 이백겸(李伯謙)이다. 아버지는 증연성부원군(贈延城府院君) 이말정(李末丁)이다. 슬하에 이세칙(李世則), 이수찬(李修撰), 이세범(李世範) 세 아들을 두었다.

[활동사항]

이숙기는 1453년(단종 1)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훈련원주부에 올랐다. 1455년 세조가 즉위하자 참군(參軍)으로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또한 세조의 가전훈도(駕前訓導)로 선발되어 매양 열진(閱陣)할 때에 전명(傳命)하였다. 1456년(세조 2) 무과 중시에 급제하여 사온서령(司醞署令)이 되었다.

1459년(세조 5)에 평양판관, 1461년에는 영변판관이 되었다. 1467년(세조 13) 함길도에서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자 진북장군 강순(康純) 휘하의 맹비장(猛裨將)으로서 토병(土兵)을 이끌고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특진되었다.

이시애의 난이 평정된 뒤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되어 전토와 노비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가정대부(嘉靖大夫)에 특진되었으며, 이조참판이 되었고, 연안군(延安君)에 봉하여졌다. 이해 겨울에 건주위 야인을 정벌하는 데 참여하여 또 공을 세워 3등에 책록되어 노비 6구(口)를 하사받았다.

1469년(예종 1)에 함길남도절도사로 있을 때 야인들이 변방을 넘보는 것에 대비하여 장수를 보냈다. 1470년(성종 1)에 북청부사를 겸임하였으며, 1471년에는 좌리공신(佐理功臣) 4등에 책록되었다. 1475년(성종 6)에 가정대부 연안군으로서 황해도관찰사를 겸하도록 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479년(성종 10)에 가정대부 형조참판에 임명되었다. 건주위 정벌에 참전하여 공을 세워 이듬해 자헌대부로 승진하였다. 그러나 이해 전라도절도사로 있으면서 제주 관리에게 부탁하여 말을 산 죄로 파직 당하였다. 그 뒤 복직되어 1483년(성종 14)에 영안도관찰사를 거쳐 경상좌도병마절도사·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1487년(성종 18)에 형조판서가 되었다.

1489년(성종 20) 특진관(特進官)에 임명되었으며, 영안도(永安道) 오진(五鎭)의 공납(貢納)은 초서피(貂鼠皮)인데, 지금 초서는 내지에도 있으니 오진의 부(賦)를 내지로 옮기면 국용이 넉넉해질 것이라는 건의를 하였으며, 이후 호조판서(戶曹判書)가 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양(靖襄)이며, 경상도 지례(知禮)의 도동사(道東祠)에 제향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0.22 활동사항 수정 2012년 증보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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