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56 |
---|---|
한자 | 李伯持 |
영어음역 | Lee Baekj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은숙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판서를 지낸 이광시(李光時)이고, 할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을 지낸 이중인(李中仁)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사위(李士渭)이고, 어머니는 지군사(知郡事) 임세정(任世正)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윤보(尹寶)의 딸이었고, 사별한 뒤 판관(判官) 권경(權敬)의 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다. 아들은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이수령(李守領)이다.
이백지(李伯持)는 고려 말 1385년(우왕 11)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왔으며, 조선 태종대에 주로 활동하였다. 1409년(태종 9)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있을 때 백성을 동원하여 관둔전(官屯田)을 경작하도록 하였다가 경차관(敬差官)에게 적발되어 중도부처(中途付處)되었다.
1416년(태종 16)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임금이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삼공신(三功臣)·삼군도총제(三軍都摠制)·예문관(藝文館)·대간(臺諫)에 명하여 각각 한재(旱災)를 가라앉힐 방책을 진술하게 했을 때 이백지는 24개조의 시무책을 올렸다.
또한 임금이 육조(六曹)·대간(臺諫)에게 올해 민간의 곡식 수확 상황을 물었을 때, 익지 않은 곡식을 백성에게 독촉하여 수확한 수령이 있다고 아뢰었다. 그러나 그 수령이 누군지 몰라서 대답을 못하여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이백지는 이듬해에 강원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1419년(세종 1) 전라도관찰사로 나아갔다가 병으로 사임하였고, 그해 12월에 사망하였다. 세종은 종이 70권을 부의(賻儀)로 하사하면서 애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호암미술관 뒤편에 있다. 1975년에 신도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