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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771
한자 梁瑗
영어음역 Yang Won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남원
대표관직 양지현감

[정의]

조선 전기 양지현감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증조부는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 양석륭(梁碩隆)이고, 할아버지는 예빈시윤(禮賓寺尹) 양구주(梁九疇)이며, 아버지는 남원군(南原君)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문양공(文襄公) 양성지(梁誠之)이다.

[활동사항]

1466년(세조 12) 양원은 진위현령(振威縣令)이었는데 외람되게 도둑을 잡은 공에 공신의 아들이란 점이 작용되어 상직(賞職)을 받았기 때문에 자급(資級)을 회수하였다. 1468년(세조 14)부터 1473년(성종 4)까지 양지현감(陽智縣監)을 지냈는데, 이는 아버지 양성지가 조정에 청했기 때문이다. 양원(梁瑗)은 관직의 대부분을 양지현감으로 있으면서 할아버지 양구주의 묘소를 돌보았다.

일찍이 아버지 양성지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겼는데, 출세한 뒤에 조정에 청해서 맏아들 양원은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양지현(陽智縣)의 현감이 되게 하고, 둘째 아들인 양수(梁琇)는 어머니의 묘소가 있는 횡성현의 현감이 되게 하였다.

1470년(성종 1) 양원은 조정에 양지현이 매우 협소하다고 보고하여 죽주의 고안부곡(高安部曲)[현재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 대곡부곡(大谷部曲)[현재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 목악부곡(木岳部曲)[현재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 제촌부곡(蹄村部曲)[현재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등 4부곡을 양지현에 편입시킴과 동시에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시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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