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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737
한자 徐命均
영어음역 Seo Myeonggyun
이칭/별칭 평보,소고,재간,보졸재,송현,문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필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80년연표보기
몰년 1745년연표보기
본관 달성
대표관직 판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평보(平甫), 호는 소고(嘯皐)·재간(在澗)·보졸재(保拙齋)·송현(松峴), 시호는 문익(文翼). 증조부는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 조부는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 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다. 어머니는 이헌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아들 서지수(徐志修)까지 3대가 대신을 지냈으며, 부인 또한 3대가 대신을 지낸 김구(金構)의 딸이다.

[활동사항]

1705년(숙종 31)에 진사가 되어 1710년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관(史官)으로 뽑혔다. 1715(숙종 41) 11월부터 1717년 7월까지 용인현령으로 재임하였다.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을 거쳐 1721년(경종 1) 이조참의일 때 경종의 생모 희빈장씨(禧嬪張氏)를 공격한 윤지술(尹志述)을 구하려다가 김일경(金一鏡) 등 소론의 탄핵을 받고 안악군수로 좌천되었다.

1723년 진하사부사(進賀使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다음해 경기관찰사, 1725년(영조 1)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727년 호조참판·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이조참판 등을 거쳐, 다음해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1729년 호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형조판서·홍문관부제학이 되었고, 실록청도청당상(實錄廳都廳堂上)을 겸직하여 『경종실록(景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고 우참찬에 승진하였다.

1731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이듬해 우의정·좌의정을 지냈다. 1734년 진주사(陳奏使), 1736년 세자책봉주청사(世子冊封奏請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판중추부사를 지냈다.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용인현령으로 재직할 때의 공덕을 기린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저술 및 작품]

글씨로 경기도 고양에 있는 김주신묘표(金柱臣墓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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