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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726
한자 朴誾
영어음역 Park Eun
이칭/별칭 중열,읍취헌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고령
성별
생년 1479년연표보기
몰년 1504년연표보기
본관 고령
대표관직 수찬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가계]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박담손(朴聃孫)이며, 어머니는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이이(李苡)의 따님이다. 부인은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딸이고, 맏아들은 박인량(朴寅亮)이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15세에 이르러서는 문장에 능통하였다. 당시 대제학(大提學)이었던 신용개(申用漑)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사위로 삼았다. 1495년(연산군 1) 17세로 진사(進士)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으며, 사가독서자(賜暇讀書者) 선발에 뽑혔다.

그 뒤 곧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를 받고 홍문관(弘文館)에 선택되어 정자(正字)가 되고, 수찬(修撰)에 있으면서 경연관(經筵官)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유자광(柳子光)의 간사함과 성준(成俊)유자광에게 아첨함을 탄하는 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그들의 모함을 받아 파직되었다.

1504년 다시 지제교(知製敎)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갈 뜻이 없었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동래(東萊)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의금부에 투옥되어 사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였다.

[학문과 사상]

조선 5백년 중 제일의 한시인(漢詩人)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박은은 해동강서파(海東江西派)의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시는 주로 파직된 1498년부터 1503년 아내가 죽기 전까지의 것이다. 내용은 현실세계의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나 정신적으로 평화로울 수 있는 현실 극복에의 노력과 주변 인물의 죽음을 통한 인생무상을 노래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절친한 친구인 이행(李荇)이 그의 시를 모아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를 냈다. 『천마잠두록(天磨蠶頭錄)』, 『천마록』, 『잠두전후록(前後錄)』이 있으며, 『명가필보』에 박은의 글씨가 전한다.

[묘소]

묘소와 비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 산 6-2번지 일명 심근솔 동쪽에 있다. 묘갈(墓碣)은 1798년(정조 22)에 11월에 8대손인 현감 박경진(朴敬鎭)이 세웠다. 비문은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이 지었으며, 이병모(李秉模)가 글을 썼다.

현재 묘소가 있는 양지면 식금리 마을 입구에는 전국 시가비 건립동호회에서 1984년 6월 10일, 박은이 화를 당한 지 8번째의 갑자년(甲子年)을 맞이하여 세운 ‘읍취헌시비(揖翠軒詩碑)’가 세워져 있다.

[상훈과 추모]

1506년(중종 1)에 신원(伸寃)되고 도승지(都承旨)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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