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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428
한자 李從茂將軍墓
영어음역 Lee Jongmu Janggun Myo
영어의미역 Tomb of General Lee Jongm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분묘
양식 방형봉토분
건립시기/일시 1425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79 지도보기
소유자 장수이씨 종중
문화재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25호
문화재 지정일 1975년 9월 5일연표보기

[정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이종무의 묘.

[개설]

이종무(李從茂)[1360~1425]는 14세 때 을진(乙珍) 장군이던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고, 1397년(태조 6)에 옹진만호(甕津萬戶)가 되어 서해안에서 왜구를 물리친 후 상장군에 올랐다. 1400년(정종 2년)에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 통원군(通院君)이 되었고, 1406년에는 의주병마절제사를 거쳐 장천군(長川君)으로 책봉되었으며, 우군총제를 겸했다.

1418년에 대마도주 정종무가 죽고 아들 정종성이 뒤를 잇게 되면서 왜구의 창궐이 극심해졌다. 세종은 1419년 6월에 이종무에게 삼도도통사 유정현과 함께 대마도를 정벌하게 하였다. 이종무는 1419년 6월 16일, 경남 통영군 한산도 옆 추암도에서 삼남의 병선 227척, 군사 1만 7000명으로 발진하여 대마도를 정벌하고 개선하였다.

[위치]

이종무 장군의 묘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광교산(光敎山) 기슭 끝에 있다.

[변천]

이종무 장군은 1425년(세종 7) 9월 9일 과천에서 향수 66세로 병사한 후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속칭 능말이라고 부르는 곳에 안장되었다. 묘는 실전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72년 5월, 그의 후손 이길현이 장수이씨 문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양후공산도(襄厚公山圖)」를 근거로 향토사가와 함께 현지를 조사하면서 찾아내었다. 장수이씨 문중에서는 “큰아들 승평(昇平)이 세웠다”라는 묘표의 비문을 판독해 냄으로써 장군의 분묘임을 밝혀냈다.

[형태]

이종무 장군의 묘소는 하단에 사방 13척 정도의 장방형 호석(護石)이 둘러처져 있고 그 위에 봉분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예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묘역은 100여 평에 이르고 2단의 계절(階節)이 있는데 이는 나중에 후손들이 보수한 것이다.

묘전에는 단구의 문인석이 한 쌍 있다. 묘표의 크기는 폭 40㎝, 높이 100㎝, 두께 17㎝이다. 상석 전면에는 제를 지낼 때 차일을 치기 위한 말석이 있다. 묘의 우측에 새로 세운 묘비에는 평양조씨와의 합장묘임이 기록되어 있다.

[현황]

상석은 근래에 마련된 것이며, 묘표는 본래의 것으로 보이는데, 거의 마모되어 비문을 판독하기 어렵다. 단지 비문 가운데 “장자승평입(長子昇平立)”이라는 글씨만 판독이 가능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