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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423
한자 閔泳煥先生墓
영어음역 Min Yeonghwan Myo
영어의미역 Tomb of Min Yeonghwa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544-7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3년 7월 10일연표보기 - 민영환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제1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민영환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분묘
양식 원형봉토분
건립시기/일시 1905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이승만
높이 2m
지름 6.5m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544-7
소유자 여흥민씨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기념물

[정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민영환의 묘.

[개설]

민영환(閔泳煥)[1861~1905]은 당대 최고의 권문세가 집안 출신으로 예조판서, 병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낸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순국지사이다. 민영환은 빈번한 해외여행으로 새 문물에 일찍 눈을 떠 국가의 제반 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고, 친일적인 각료들과 대립하여 일본의 내정간섭을 비판하였다.

그러던 중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병세와 더불어 백관을 거느리고 궁궐에 나아가 한일협약을 적극 반대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1905년 11월, 종로 이완식(李完植)의 집에서 유서 3통을 남기고 자결하였다.

[변천]

민영환은 순국 후 선향인 용인에서 장례를 지낸 뒤, 일제강점기 내내 용인군 수지면 풍덕천리 토월마을에 봉분 없이 평장되어 있었다. 해방이 된 후 이승만 대통령의 명으로 길가에 방치되었던 민영환의 묘는 지금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그때가 1959년이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민영환 선생의 묘역은 200여 평에 이르고, 묘 입구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원형으로 된 봉분은 높이가 2m, 지름이 6.5m이다. 봉분 앞에는 상석을 비롯하여 문관석 2기, 망주석 2기, 장명등 1좌가 있다. 봉분 뒤쪽으로 60m 정도의 곡담이 둘러처져 있고, 묘소 아래쪽에는 계단석이 설치되어 있다.

[금석문]

묘비에는 “계정 민충정공 영환지묘(桂庭閔忠正公泳煥之墓)”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글씨는 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신도비의 전액은 서예가 김기승(金基昇)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로 있을 때 쓴 것으로 “대한민국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의정대신 충정공민영환 신도비명(大韓民國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議政大臣 忠正公閔泳煥 神道碑銘)”이라고 제액(題額)되어 있다.

비문은 신석호(申奭鎬) 당시 국사편찬위원이 짓고, 글씨는 경기도에서 촉탁한 남봉우(南鳳祐)가 썼다. 신도비 상단에는 민영환 선생의 육필 유서가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2.26 소재지 수정 <변경 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산36 <변경 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544-7
이용자 의견
s********** 현재 충정공 민영환의 묘는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산36번지가 아닌 544-7번지에 위치해 있음
확인 후 수정바람
  • 답변
  • 디지털용인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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