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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북동 고분군(2)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396
한자 麻北洞古墳群-
영어음역 Mabuk-dong Gubungun(2)
영어의미역 Tumuli in Mabuk-dong(2)
이칭/별칭 용인 마북동 고려고분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산46-1 일원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성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건립시기/연도 고려시대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산46-1 일원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개설]

마북동 고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어, 마북동 산2-2 일대 고분을 마북동 고분군1, 마북동 산46-1 일대를 마북동 고분군2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마북동 고분군2에서는 고려 중기의 석곽묘 4기, 토광묘 4기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녹청자반구병 2, 청자접시 1, 청자대접 10, 토기매병 2, 토기반구병 2, 청자유병 2, 청자반구병 1, 청자매병 1, 청자주구병 1, 토기유병 1, 청동발 1, 청동 수저 3, 동경 4, 동전 3, 동곳 2, 가위 2, 구슬 일괄 등이 수습되었다.

[위치]

유적이 위치한 야산은 평면 형태가 말굽 모양으로 동서로 놓여 있다. 이런 입지는 고려 무덤의 전형적인 입지 조건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한편 무덤들은 서향을 하고 있는데, 야산 지역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지점에 입지해 있어, 이 역시 무덤 조성시 의도적으로 양지 바른 곳을 선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마북동 고분군2 유적은 지표 조사 과정에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완형(完形)의 녹청자반구병(綠靑磁盤口甁) 1점이 수습되면서 발굴되었다. 발굴조사는 경기도박물관에 의하여 1997년 11월 2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실시되었으며, 조사 결과 고려시대 석곽묘 4기와 토광묘 4기의 고분과 고려청자를 비롯해 동경(銅鏡) 등의 유물이 다수 확인되었다.

[형태]

마북동 고분군2의 고분 형식은 석곽묘와 토광묘로 대별된다. 우선, 석곽묘는 모두 4기가 확인되었는데, 축조 방식이나 크기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원상이 가장 잘 남아 있는 2호 석곽묘를 예로 들어 대체적인 성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크기는 274×155×68㎝이고, 묘광의 방향은 북쪽으로 32° 치우친 동서 방향이다. 조사 결과 봉토와 개석은 이미 유실된 상태였으나, 동단벽과 남·북단벽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분묘의 축조 방식은 동서로 길게 묘광을 파고 토광벽에 기대듯이 묘광 안쪽 면만 다듬은 할석을 5단으로 쌓아 석곽의 벽체를 만들었다. 단벽과 장벽은 접합부에 모로 할석(割石)을 얹혀 결합시켰다. 시상대(屍床臺)는 따로 만들지 않았고, 풍화 암반층인 묘광의 바닥면에 관못편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바닥면에 그대로 목관을 안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축조 방식상 특이한 것은 묘실 입구의 석곽 단벽(短壁)은 축조하지 않은 점이다.

토광묘도 모두 4기가 확인되었는데 축조 방식이나 크기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원상이 가장 잘 남아 있고 유물이 온전하게 출토된 3호 토광묘를 예로 들어 대체적인 성격을 소개하고자 한다.

크기는 226×84×55㎝이고, 묘광의 방향은 남쪽으로 3° 치우친 동서 방향이다. 묘광의 바닥은 별다른 시설 없이 풍화 암반층을 평평하게 다듬어 사용하였다.

두향(頭向)은 동곳(상투 튼 머리를 고정시키는 도구)의 출토지가 동쪽이고, 이 동곳의 뒤꽂이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슬류가 동곳과 함께 출토하는 것으로 보아 동침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

출토유물에서 우선 자기류는 모두 고려시대 청자가 전부이다. 기형은 대접·접시·유병(油甁)·반구병(盤口甁) 등으로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그런데 대접류는 대접 위에 접시를 뚜껑 대용으로 올려서 합의 형태가 되게 매장하여 주목된다. 즉 대접과 접시가 한 세트가 되어 하나의 합을 이루고 있다.

청동 제품으로는 청동발·동전·동경·청동 수저·동곳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 수저는 3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것이 대표적이다. 기본적인 형태는 좁고 길죽한 편으로 입술면의 끝은 뾰족하고, 내면은 약간 오목하며, 손잡이 끝부분은 연미형을 띤다. 측면의 형태는 S자형으로 고려시대 청동 숫가락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청동합은 3호 토광묘 우측 허리 부분 청동 수저 아래에서 출토된 1점이 유일하다. 기벽이 매우 얇은 편이다. 동경은 3호 석곽묘, 4호 석곽묘, 3호 토광묘에서 각각 1점씩 3점이 출토되었다. 동경의 형태는 외곽을 8릉형으로 하고, 안쪽에 한 줄의 원을 시문하였다. 장식 문양이 없는 소문이다.

동곳은 3호 석곽묘와 3호 토광묘에서 출토되었다. 3호 석곽묘 출토품은 석곽이 심하게 파손되어 출토 위치가 제 위치인지 불분명하지만, 3호 토광묘 출토품은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 머리 장식으로 보이는 구슬류와 함께 나온 것으로 보아 제 위치로 추측된다.

동곳은 두 점 모두 같은 형태인데, ‘ㄷ’자형의 두 가닥 동곳이다. 가지의 단면은 원형이며 끝은 뾰족하게 처리되었다. 동전은 3호 토광묘 피장자의 얼굴 부분에서 출토되었다. ‘황송통보(皇宋通寶)’로 송나라 1039년(보원 2)에 유통된 것으로 글자는 예서(隸書)이다.

이 동전을 통하여 유적의 연대를 대략 12세기 전후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서 중국 동전을 사용하지 않았던 점과 고분 출토 동전 중에서 전세 기간이 긴 것들이 적지 않게 확인되므로 고분의 축조 연대를 정하는 절대적인 자료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철기류는 철제 가위 1점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관정이다. 가위는 3호 토광묘 피장자의 발 부분에서 유병 및 동경과 함께 출토되었다. 인부(刃部)는 도자형(刀子形)으로 끝은 각을 죽여 날카롭게 만들고, 날의 단면은 안쪽이 좁아지게 처리하였다.

전체적인 모양은 양쪽에 도자형 인부를 지닌 굵은 철사를 꼬아 돌려 인부가 서로 대칭되게 만든 횡 ‘8’자형이다. 관정은 대부분의 고분에서 확인되었는데, 이는 목관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슬류는 3호 토광묘의 피장자 머리 부분에서 출토되었다. 동곳과 함께 발견되었는데 머리 뒤꽂이 장식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재 마북동 고분군2는 아파트 건립으로 인하여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마북동 고분군은 도굴을 당하지 않은 처녀분으로 발굴되어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며 조사 성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우선, 석곽묘의 특징은 우선 뚜껑돌이 없고 무덤 출입구를 개방해둔 점을 들 수 있다. 이런 점은 지역적인 현상으로 인식되는데, 1994년에 명지대학교에서 발굴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 고려 고분군에서도 같은 구조의 석곽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는 삼국시대 수혈식 석곽묘의 축조와는 비교되는 점으로, 고려시대 매장 방식에서 어떤 변화가 있지 않았나 추측하게 한다.

둘째로, 마북동 고분군에서는 석곽묘와 토광묘의 두 종류 묘제만이 확인되는데 두 묘제 사이에 어떤 차별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석곽묘와 토광묘가 공간적으로 서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출토하는 유물 조합상에도 뚜렷한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거의 같은 유물 조합상이 두 묘제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두 묘제의 쓰임에서, 어떤 계급적 차이나 성적 차이를 적용하였던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셋째로, 묘제에서 확인되지 않는 남녀간의 구분은 유물 매납상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동경과 동곳, 유병 등이 확인된다. 그러나 남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이상과 같은 여성용 유물이 확인되지 않고, 반구병(盤口甁)이나 매병(梅甁) 등이 확인될 뿐이다. 이는 당시 부장품을 매납할 때 성적으로 구분하여 넣었던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된다.

넷째로, 이 유적의 발굴조사는 그간 많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고려시대 고분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마북동 고분군은 경기도 용인시를 중심으로 한 중부 지방 고려 고분의 지역적 특징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다섯째로, 무덤의 축조 연대는 유물의 조합상과 출토 동전의 연대로 비추어 볼 때 12세기를 중심 연대로 하는 고려 중기로 판단되며, 따라서 좌항리 고분군보다는 늦고, 마북동 하늘말 토광묘[마북동 고분군1]보다는 이른 시기의 고분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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