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속하는 법정동. 동의 이름은 고분현과 손기동을 병합하여 고분현의 ‘고’자와 손기동의 ‘기’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용인군 수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분현과 손기동을 합쳐 고기리라 하여 수지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도농 복합으로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면서 수지면이 수지읍으로 승격되...
이자성을 시조로 하고 이결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 세거 성씨. 광주이씨(廣州李氏)의 시조는 신라 내물왕 때 내사령(內史令)을 지낸 이자성(李自成)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본래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에 세거해 온 호족의 후예로, 신라에서 벼슬을 세습해 오다가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나라를 바치자 이에 불복하고 절의를 지켰으므로 고려 태조가 회안...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가면 30년 가까이 이발관을 경영하고 있는 강기석, 김순여 부부를 만날 수 있다. 부부를 만나기 위하여 찾아가는 길을 물었더니, "기업은행 건물이 보이면 우회전을 해요. 거기 풍림상가 1층이에요"라고 했다. 판교에서 용인방면으로 동원교를 건너 대왕판교로를 따라가다 보니 기업은행 건물이 바로 보여 수월하게 이발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1919년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에서 일어난 3·1운동 시위. 1910년대 용인 지역 농민들은 일제의 강압적인 무단 통치와 열악한 사회 경제적 상황에 처해 있었다. 수지면 시위운동은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과 저항 의식이 독립 선언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3월 29일 고기리 구장 이덕균은 동리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시위에 나섰다. 시위가 전개되는 동안 동천리 주민 200여 명이...
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2003년 경기도 용인시와 성남시 간에 도로로 인해 발생한 분쟁. 2003년 3월에 용인시 수지구와 경기도 성남시 금곡 나들목 1.6㎞ 구간에 버스 전용 차로가 설치되었다. 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된 지 이틀이 지나면서 교통정체가 심화되었다. 그러자 경기도 성남시가 분당~수서 간 고속화도로에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일양약품 앞 국지도 23호선으로 통하는 일방통행로(일명 토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