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덕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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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인류가 연모를 사용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이며, 이 시기부터 빙하가 물러간 약 1만년 까지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전기 구석기는 인류가 연모를 처음 사용한 시기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다. 중기 구석기는 약 12만 년 전부터 3만 5천 년 전까지이다. 이때 사람들이 만든 연모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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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성씨의 세거지와 집성촌. 성(姓)은 혈연적인 것을 말하고 씨(氏)는 지역을 뜻한다. 그러므로 김해김씨하면 김은 성이고 씨는 김해가 된다. 삼국시대의 시조들이 모두 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 성을 사용한 것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통일신라까지도 성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일신라 이전에 일반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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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속하는 행정동. 동의 이름은 행정구역 개편 때 신리와 서봉동을 합쳐 신리에서 ‘신’자와 봉리에서 ‘봉’자를 따서 부르게 되었다. 본래 용인군 수진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리와 서봉동을 합쳐 신봉리라 하고 수지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도농복합으로 용인군이 용인시로 승격되면서 수지면이 수지읍으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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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마평동에 있는 용인시 체육회 산하 축구 단체.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도입된 축구는 일제강점기에 용인에서도 근기대회라는 이름의 축구대회가 열려 평택, 수원, 이천, 광주, 용인, 여주 지역과 경기를 하였다. 광복과 더불어 중·고등학교에 축구부가 생겨났다. 태성고등학교와 용인고등학교가 정기적으로 축구 경기를 하였다. 1960년대 현재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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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성씨. 성(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내기 위하여 붙이는 일종의 칭호로서, 아버지와 자식 간에 대대로 계승되며 절대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고려 중기부터라고 하는데, 시대에 따라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성에는 본관(本貫)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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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석현마을과 수지구 동천동을 잇는 도로. 시점인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석현마을에서 국도 42호선과, 종점인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서 시도 14호선과 각각 이어진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덕곡마을을 지나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상여천으로 나갔다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 국도 43호선과 교차하여 풍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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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의 상징이요, 성리학의 조종으로 추앙되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동우항리이다. 포은 선생의 어머니는 영천이씨인데, 임신 중에 난초 화분을 안고 있다가 땅에 떨어뜨려 깜짝 놀란 꿈을 꾸고 나서 낳은 아이라고 하여 처음에는 이름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 포은 선생이 아홉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영천이씨가 낮잠을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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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1동 안산 남단 해발 100m 고지에서 발원하여 성복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광교산[582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풍덕천동 중앙을 가로질러 동류하는 주요 하천인 정평천이 있다. 정평천은 풍덕천 동단에서 성복천에 유입된다. 풍덕천은 이 성복천의 작은 지천으로 해발 100m의 평지에서 발원, 동류하여 아파트단지 사이를 흐르다 성복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