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행정 구역. 17세기 중엽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빼앗아 구성현으로 삼았다고 서술되어 있고, 19세기 중엽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본래 백제의 멸오였는데 후에 구성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조령과 죽령 지역까지 점령하게 됨에 따라 한강 유역과...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정립하던 시대의 용인 지역의 역사.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마한 군장사회들 중 하나였던 백제가 백제국가로 흥기하게 됨에 따라 그 중심지로부터 불과 30여㎞ 떨어져 있던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 세력권 안으로 흡수·통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용인 지방은 『대동...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경초. 단양군수를 지낸 신국량(申國樑)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 9)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후 45세에 벼슬길에 올라, 태학의 추천으로 참봉을 거쳐 1590년(선조 23)에 문경현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상주를 거쳐 문경을 침공하자 당시 문경현감이었던 그는 관병 수십 명을 이끌고...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용인시의 역사. 용인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이래의 변화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 등장했다. 오늘날 용인시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용인군과 양지군, 죽산군의 일부가 통합됨으로써 그 모태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지역 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속하는 법정리. 좌항리는 원삼면 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양지면과 맞닿아 있다. 좌항리는 황골[항곡]·좌찬[좌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1914년 좌찬의 ‘좌(佐)’자와 항곡리의 ‘항(恒)’자를 따서 좌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황골은 이곳 형상이 “마을을 품은 학 같다”고 해서 학곡(鶴谷)으로 불리다 황골이 됐다는 설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