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
조선 중기의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다. 증조부는 현령 류위(柳湋), 할아버지는 정랑 류성민(柳成民), 아버지는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었던 류흠(柳흠)이다. 어머니는 참찬 이지완(李志完)의 딸이다. 부인은 심수경(沈守慶)의 증손녀이며, 부사 심은(沈誾)의 딸이다. 외삼촌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정립하던 시대의 용인 지역의 역사.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마한 군장사회들 중 하나였던 백제가 백제국가로 흥기하게 됨에 따라 그 중심지로부터 불과 30여㎞ 떨어져 있던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 세력권 안으로 흡수·통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용인 지방은 『대동...
-
전통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용인은 조선시대의 용인현을 계승한 지명으로 고려시대에는 용구현과 처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중 용구현은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구성현 혹은 멸오(滅烏)라 불렸는데, 신라 경덕왕 때 거서(巨黍)로 고쳐졌다가 고려 초에 용인으로 바뀌었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구려가 구성현을 차지하...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기도 용인시의 역사. 용인이라는 지명은 삼국시대 이래의 변화를 거쳐 1413년(태종 13)에 등장했다. 오늘날 용인시의 영역이 형성된 것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용인군과 양지군, 죽산군의 일부가 통합됨으로써 그 모태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은 지역 내외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변화를 거듭해 오는 가운데 형성된...
-
임진왜란 당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조선군과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임진산성은 원래 임진산의 정상, 곧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번지와 기흥구 보정동 산 82-2번지 일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산성지·풍덕천동성지·예진산성지 등으로도 불리는 임진산성은 조선 중기와 후기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성이기도 한데...
-
처인성은 현 행정구역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2리 산 43번지에 있는 성곽이다. 면적은 약 1,764㎡(5,820평)이며, 둘레는 425m이다. 북측면 좌측에 문대(門臺)가 있고 남쪽 면의 서측에 후문이 있었던 흔적이 보였으나 1979년 복원공사 때 이 부분을 절단하여 연대 등을 조사한 후 복토하여 지금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붕괴가 심하여 정확한 축조공법은...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청덕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청덕동 유물산포지1부터 청덕동 유물산포지4까지 구분하여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청덕동 유물산포지3은 발굴조사 후 청덕동 유적2로 개칭되었고, 청덕동 유물산포지4는 유적의 일부가 중동에 포함되어 중동 유물산포지2로 개칭되었다. 여기서는 초기에 구분한...
-
1636년 1월 2일 경기도 용인에서 충청도 근왕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싼 청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벌인 전투. 1636년 12월 13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조선 조정은 강화도-한성-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거점 방어를 하여 청군을 격퇴할 것을 구상하고, 이 거점들의 방어 태세를 정비하는 한편, 각도 첨사·병사에게 근왕(勤王)을 명령하였다. 그런 다음 비빈(妃嬪)·왕자·종실 및 백관(百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