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선보(善甫). 아버지는 소문난 효자인 어진혁이다.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소학(小學)』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고 학업에 열중하였는데, 아버지가 병으로 6년 동안 고생하자 간병하는 일에 전심하여 과거도 보지 않았다. 마음은 물론 행동도 조심하면서 병구완에 힘썼지만, 마침내 상을 당하자 3년동안 시묘하면서 죽으로만 연명하는 등...
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조선 후기 용인의 문인.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조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敬寧君)의 11대 손으로, 남편은 목천현감인 유한규(柳漢奎)이고, 아들 유희(柳僖)는 『언문지(諺文志)』를 저술한 한글학자이다. 충청도 청주(淸州) 서면(西面) 지동(池洞)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녀자의 솜씨를 익히고 옛 열녀를 마음으로 사모하여 이에 『소학(小學)』, 『가례(家禮)』, 『여사서...
조선 후기에 이재가 충렬서원 유생들이 원내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정리한 고문서. 『충렬서원학규』에 기록 된 절목(節目)은 서원 이외에 용인 지역에 있던 각급 향숙(鄕塾)에서도 본받아 유생의 교육 규범으로 활용되었다. 이재(李縡)[1737~1748]가 성책하면서 『소학』 등의 교재를 읽기 전에 먼저 정몽주의 글을 읽을 것을 권면하는 글을 서문에 남긴 것이 다른 학규에서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