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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 농악의 근원 두레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C02000203
영어음역 Baegam Nongagui Geunwon Durepae
영어의미역 Communal Labor Team, the Origin of Baegam Farmer's Music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순석

대부분의 농업 지역에서 그랬듯이 백암에서도 논농사는 공동노동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농악’이란 말로 기억되고 있는 두레는 마을 일꾼들의 공동노동을 위한 조직이었다. 용인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백암면의 두레 활동은 타 지역에 비해 왕성했다. 이들 두레는 여름 논매기 시절뿐 아니라 모내기, 보리파종, 곡물 수확 때까지도 협업과 놀이를 하며 일의 능률과 서로간의 화합을 돈독히 다졌다. 두레는 일이 필요할 때만 만들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을 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오던 조직이었기 때문에 내부규율도 엄격했다. 일터에 항상 농기를 앞세우고 풍물을 치면서 갔다. 일을 하다 힘이 부치고 능률이 오르지 않을 때는 술을 한 잔씩 곁들이면서 풍물과 함께 기운을 북돋은 다음에 일을 마무리 지었다.

현재 백암에서도 두레패가 활동 중인 마을은 없으며, 1945년도 8·15 해방을 전후해서 쇠퇴하다가 6·25전쟁 직전 소멸되었다. 백암에서는 30년 전까지 품앗이가 두레의 역할을 대신하긴 했어도 일과 놀이의 집합체인 두레의 위상을 따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품앗이는 단순히 일을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는 교환 노동의 성격만을 갖고 있었다. 두레패는 또한 정월대보름이나 마을 행사 때 흥을 돋워주는 농악패의 역할도 했다. 최근에 다시 조직된 ‘흰바위(백암)농악단’은 이전의 두레패에서 풍물패로, 다시 농악단으로 시대에 따라 탈바꿈해서 계승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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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농악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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