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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여 년의 역사가 깃든 부곡리 대동산신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985
영어음역 Sambaegyeo Nyeonui Yeoksaga Gitdeun Bugok-ri Daedong Sansinje
영어의미역 Bugokri Communal Village Ritual with Three Hundred Years of History
이칭/별칭 부곡대동산제사(芙谷大同山祭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순석

[개설]

산신제는 지역에 따라 산제, 산제사, 산고사, 산지사, 산치성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마다 수호신으로 믿는 산신에게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봄·가을과 정초에 제사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하나, 요즘은 음력 10월 초순경이나 정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은 산신당을 지어 신체를 모셔 놓고 치성을 드린다.

[상·하부곡 산신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의 자연마을인 상부곡(초부1리)과 하부곡(초부3리)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초에 산신제를 지내는데, 특이한 것은 두 마을이 한 해씩 교대로 산신제를 주관하여 지낸다. 산신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상·하부곡 산신제가 이렇듯 수백여 년간 옛 모습 그대로 전해 오는 것은 마을에서 보관하고 있는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芙谷里大洞山神祭節目)」덕분이다. 상·하부곡 산신제의 제반 사항이 기록되어 있는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은 가로 13.5㎝, 세로 28㎝ 크기의 첩(帖)으로, 용인 지역의 마을 신앙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문헌 자료로 평가받는다.

[상·하부곡 산신제의 고향 부계울]

초부리처인구 모현읍에 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다섯 개의 마을을 합치면서 그중 초하리(草下里)와 부곡(芙谷)의 이름을 따서 초부리라 하였다. 초부1리는 상부곡, 초부3리는 하부곡인데, 예전에는 두 마을이 하나의 마을로서 부계울이라고 불렸다. 그러니까 상·하부곡 산신제는 원래 부계울에서 대대로 지내던 마을 제사였으나,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마을이 나누어지자 두 마을에서 한 해씩 교대로 산신제를 주관하여 지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초부리 마을 사람들은 상·하부곡 산신제를 부계울 산지사라고도 부른다. 초부2리는 핑구재(빙고재)라고도 하는데, 마을에 얼음창고가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초부4리는 새래(상초하), 초부5리는 윗새래(하초하)라고 한다.

부곡과 관련하여 『모현면 연혁대장』에는 “2백여 년 전 휴암(休巖)이라는 분이 은거하면서 부용화(芙蓉花)를 많이 심어 부곡(芙谷)이라 하였는데, 그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하부곡이라 하였다. 하부곡에는 매미골과 윗골, 산조안, 고래안, 사당골, 뱅이터, 기와집터, 마룻들, 한뱀이 등의 속지명이 있다. 상부곡(上芙谷)은 하부곡 마을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의 동쪽으로 시냇물이 흐르는데, 시냇물 옆에 한 평 가량 되는 바위가 있어 두 사람 정도가 앉아 장기를 둘 만하다. 그 바위 측면에 휴암이라 음각한 글씨가 있어 이를 휴암바위라 한다.

초현(草峴)은 초하리에서 넘어오는 고개라 하여 이름 붙였으나, 본래는 핑구재라고 하였다. 핑구재는 빙고현(氷庫峴)의 변음이다. 이곳에 얼음을 저장하던 빙고(氷庫)가 있었다. 지금도 얼음 저장 공간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는데, 움푹 꺼져 있다. 상초하(上草下)는 본래 새래라고 하였다. 억새풀을 뜻하는 새래를 한자 표기로 초(草)라 하고는, 윗새래는 상초하, 아랫새래는 하초하(下草下)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초부리에 처음 들어와서 정착한 이들은 연안이씨(延安李氏) 사은공파(史隱公派) 후손들과 영일정씨(迎日鄭氏)의 후손들이다. 하부곡(下芙谷)에는 지금도 연안이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고, 초하리에는 영일정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으나 최근 들어 타성(他姓)이 유입되며 집성촌의 명맥이 퇴색해 가고 있다.

[3백여 년의 역사가 깃든 부계울 산제당]

상·하부곡 산신제를 지내는 산제당이 위치한 곳은 마을 남쪽에 있는 안산이다. 산제당은 제단을 상중하 3단으로 구분하여 평토(平土)한 것이 전부여서 마을 사람들의 안내가 없으면 현장을 찾기 어렵다. 마을에서 대략 1㎞ 정도 떨어져 있어,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산제당의 왼쪽에는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가 있다. 본래는 짚으로 엮은 김치광 모양의 주저리였으나, 제기를 자주 도난당해 2004년 철재 콘테이너로 대체하였다.

제단으로 올라가는 길목 아래쪽에는 우물이 있어 제관들이 목욕을 하고 제수를 씻는 물로 사용한다. 산제단을 3단으로 조성한 것은 맨 윗단에 소머리를 놓고, 다음 단에는 기타 제수를 진설하며, 하단에서는 제관들이 절을 하기 위한 배위(拜位)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의 관행으로, 마을에서 전해 오는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에도, “제단은 3층으로 쌓고, 제관은 맨 아래쪽에 선다(築壇作三層 祭官立最下位)”고 기록되어 있다.

[상·하부곡 산신제 절차]

부계울의 상·하부곡 산신제는 원래 음력 10월 초에 한 날을 정하여 올리기로 되어 있다. 날짜를 택일하는 절차 역시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에는 산신 하강일이 “갑자(甲子), 을축(乙丑), 갑술(甲戌), 을해(乙亥), 경인(庚寅), 경오(庚午), 경신(庚申), 신해(辛亥), 신묘(辛卯), 임자(壬子), 임신(壬申), 계축(癸丑), 계유(癸酉), 갑오(甲午), 갑인(甲寅), 기사(己巳), 기묘(己卯), 기유(己酉), 계축(癸丑), 병술(丙戌)”로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 열거된 날짜 중 가장 빠른 날을 택일하게 되는데, 대략 음력 10월 1일에서 5일 사이에 정해진다. 만약 산신 하강일을 전후로 마을에 초상이 나면 산신제를 뒤로 물린다. 흔하지는 않지만 보통 달을 바꾸어서 정하는 것으로 관례화되었다.

예전에는 택일과 함께 헌관과 축관 등 제관을 선정하였으나, 근래에는 한 해의 산신제가 끝난 후 음복을 할 때 유사(有司)를 지명하여 뽑는다. 일 년 전에 유사를 뽑는 것이다. 유사의 집안은 도가(都家)라고 하는데, 도가는 처녀나 젊은 여자가 있지 않은 집으로 택한다. 이런 조건 때문에 연령이 60~70세 정도로 부부만 거주하는 집에서 도가를 맡게 된다. 근래 상·하부곡 산신제에서 유사를 전담하다시피 하는 사람은 이용희이다. 제관은 유사가 택일을 하면서 뽑는다. 상을 당하거나 소나 개가 새끼를 낳은 집, 부정한 집은 제외한다. 원래 제관은 세 명으로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이라 부른다. 상·하부곡의 이장 두 명이 별다른 사고가 없는 한 당연직으로 맡는다. 축관은 별도로 두지 않고, 헌관이 대신하여 축문을 읽는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들은 생선, 새우젓, 개고기 등 비린내 나는 음식을 금한다. 유사는 산신제가 정해진 날부터 일체 외부 출입을 금한다. 다른 제관들은 외부 출입을 할 수는 있으나, 부정한 것을 보면 안 된다. 금줄과 황토는 제일 삼 일 전에 도가에만 설치한다. 금줄은 제관들이 왼새끼로 꼰 다음 솔잎을 꽂는다. 황토는 도가 대문 앞에 세 덩이를 놓는다.

산신제 전날 저녁 제관들은 각자 자신의 집에서 목욕재계하고, 제일 아침에 도가로 모여 하루 종일 같이 행동을 한다. 식사도 도가에서 함께 한다.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에는 재실에 들기 이틀 전부터 금해야 하는 음식과 행동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재에 들기 이틀 전에 비린내 나는 것을 먹지 말고, 술과 담배를 들지 말 것이며, 함부로 말하거나 실없이 웃지 말고, 일심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며, 난잡하고 혼란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前期二日入齋 不喫腥掌酒草 不忘語笑 一心恭敬 勿雜思亂念).”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관들의 금기 사항 중 특이한 것은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담배는 산신제가 끝난 뒤에야 피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상·하부곡 산신제의 제수 품목에는 은단(銀丹)이 들어 있다.

제일 당일, 유사와 제관들은 아침 일찍 제당으로 오른다. 이때 제수로 올릴 소머리를 가지고 올라간다. 제기고를 이엉으로 덮었을 당시에는 이엉을 새로 만들어 얹었다. 지금은 콘테이너로 교체하였기 때문에 그런 절차가 필요없다. 제관들은 오후 3시경 제당에 올라가서 일부는 제당 주변을 정결하게 정돈하고 일부는 우물을 청소한다. 그런 다음 우물의 물을 떠다가 제기고에서 꺼낸 제기를 깨끗이 씻어 엎어둔다.

제수 구입은 유사가 산신제 당일 새벽에 재래시장에서 구입한다. 대추·밤·감 등의 삼색 실과와 누룩·양초·향·소지종이 등과 누룩을 짤 때 사용하는 베보자기 등이다. 소머리는 단골로 거래하는 정육점에 미리 연락해서 맞춰 놓은 다음 산신제 당일 구입해 온다. 예전에는 통돼지를 구입하여 제물로 사용한 다음 가구별로 나누어서 분배하였다. 통돼지 대신 소머리를 쓰게 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인데, 돼지를 도살하는 일이나 분육하는 일이 여러 가지로 번잡했기 때문이다. 구입하는 제수 값은 절대 흥정하지 않는다. 보통 제수 비용은 20만 원에서 30만 원 선이다.

도가에서는 새벽에 조라술과 산신제에 올릴 메를 준비한다. 조라술은 쌀 서되 서홉과 누룩 등을 넣어 만드는 술이다. 조라술은 제당에서 밤 11시에 베보자기로 걸러서 사용한다. 이때 사용하는 베보자기는 매번 시장에서 유사가 구입하여 사용한다. 도가에서 장만한 메는 제당에 오르기 직전 그릇에 퍼놓는다.

제수 준비가 끝나면 밤 11시 20분경 제수를 지게에 지고 제당에 오른다. 제당에 오르는 사람은 유사와 제관들이다. 부녀자들은 참가하지 않고, 마을회관에서 제가 파하기를 기다린다. 제당으로 오르는 도중에 우물에 들러 산신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손과 얼굴을 씻는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목욕재계를 했다고 한다. 근래에는 집에서 목욕재계하고 약식으로 손과 얼굴만 씻는다.

밤 11시 40분경 제당에 도착하면 낮에 준비해 둔 장작에 불을 지핀다. 그런 뒤에 산신제 터를 고른다. 이어 신에게 고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이때 삼 헌관을 호명하는데, 호명을 받은 초헌관부터 무릎을 꿇어앉는다. 호명이 끝나면 헌관은 함께 사배를 하고 물러난다. 신에게 고하는 절차가 끝나면 제단에 제수를 진설하는데, 제일 위층에는 짚을 깔고 소머리를 진설한다. 다음 층에도 짚을 깔고 그 위에 메와 삼색 실과, 촛불 두 개를 진설한다. 사발을 뒤짚어 촛대로 사용한다. 맨 아래층에는 배석(拜席)을 깔고 향을 놓으며, 왼쪽부터 독축관, 종헌관, 아헌관, 초헌관의 순서로 선다. 이들은 각각 술을 따르고 네 번 절한다. 지금은 독축관을 별도로 선정하지 않고 헌관이 대신한다. 제수의 진설 역시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에 의거하여 진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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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리 대동산신제 진설도

제수의 진설은 간단하기 때문에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진설이 끝나면 초헌관이 사배를 올린 뒤 잔을 왼편에 올린다. 초헌례를 마치면 축관이 나와 무릎을 꿇고 축문을 읽는다. 이때 헌관들은 모두 무릎을 꿇어앉는다. 이어 아헌관이 사배를 하고 잔을 가운데에 올려놓는다. 이어 종헌관이 사배를 하고 잔을 오른편에 놓는다. 삼헌례를 마치며 음복례를 행하는데, 음복례는 초헌관만 한다. 초헌관이 제당 앞에 무릎을 꿇어앉으면, 축관이 잔에 술을 따라 전하고, 소머리에서 귀 부분을 조금 베어내서 안주로 건넨다. 초헌관은 술과 안주를 입에만 대고 물린다.

음복례를 마치면 소지를 올린다. 축문소지는 축관이 올리고, 각 헌관들이 대동소지를 올린다. 유사는 소지 올릴 창호지 세 묶음을 가져다가 제관들에게 한 묶음씩 분배한다. 소지 묶음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소지를 올릴 때마다 헌관이 축원 내용을 입으로 읊조리는데, 축문소지의 내용은 “부계울에 풍년 이뤄지고 무사 무병하여 하는 일마다 잘되고 술술 풀리도록 산신령께서 굽어 보살펴 주소서.” 하는 것이 상례이다.

대동소지를 올릴 때는 초헌관이 소지를 올리고 다른 헌관이 옆에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 이름을 넣어서 축원한다. 대략 “부계울에 사는 아무개 성씨 아무개 소지입니다. (간지를 넣어서) 일 년 내내 가정에 무탈하고 하는 일마다 산신령께서 도움을 주시어 농사는 농사대로 직장은 직장대로 편안하게 근무하도록 해주십사.” 하는 투의 축원을 올린다. 대동소지는 개인별로 마을 사람 모두를 올리므로 시간이 걸려서 헌관이 둘로 편을 갈라서 함께 올리기도 한다.

대동소지까지 마치면 철상(撤床)에 들어간다. 제상을 물리면서 참사자들은 과일을 하나씩 먹는다. 제기는 다시 정결하게 손질해서 제기고에 넣으며, 일부는 장작불을 끈다. 산신제를 마치고 하산하는 시간은 12시 15분경으로, 도가로 함께 들어간다. 도가에서는 아침에 노인들에게 올릴 음복을 위해서 소머리를 삶기 시작한다. 얼마전까지도 음복 때 다음 해의 유사를 미리 정해 두었으나 최근에는 상·하부곡 이장과 노인회장이 당연직처럼 그 역할을 맡기 때문에 별도로 선정하는 절차는 없다.

[상·하부곡 산신제 결산]

산신제의 마무리는 결산과 함께 이루어진다. 산신제의 제비(祭費)는 매년 마을 사람들에게 추렴하는데, 유사가 예산을 세운 뒤 가구별로 일정한 액수를 정하여 추렴한다. 어떤 해에는 마을기금으로 제비를 충당했다가 결산할 때 추렴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제비는 보통 한 집당 5천 원 정도로, 총 50만 원 정도를 모은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내지 않는다. 최근에 마을 근처에 공장들이 들어섰는데, 공장 주인들은 일반 주민보다 많은 액수의 제비를 내기도 한다. 고향 마을의 산신제를 위해 일부러 송금하는 출향민들도 있다.

산신제가 끝나면 유사가 「산신제수용기(山神祭需用記)」를 작성한다. 몇 년째 산신제 유사를 맡은 이용희의 집에 수십 권의 수용기가 보존되어 있어서 그간의 산제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 1979년도의 「산신제수용기」를 보면, 표지에는 “을미십일월 초오일 유사이광순(乙未十一月 初五日 有司李光淳)”이라 기록되어 있다. 2~6쪽에는 제비를 낸 사람의 명단과 수납 금액이 적혀 있다.

상부곡 30명과 하부곡 65명이 낸 총액은 95,000원이고, 이월금이 20,540원, 이자 5,300원이다. 그 해의 지출금은 72,150원이고 나머지는 이월금이다. 기록 맨 끝에는 채무자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고 ‘월이분(月二分)’이라는 이자세를 분명히 밝혀 놓았다. 산신제 제비에서 남은 금액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제비를 늘렸음을 가늠할 수 있다. 지출금은 다음 장에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 살펴보기]

상·하부곡 산신제의 제반 사항이 기록되어 있는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의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축문 서식에 “유세차을축십이월 모삭 초칠일(維歲此乙丑十二月 某朔 初七日)”이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을축년 무렵에 장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에 보면, 제관으로는 초헌과 아헌·종헌·대축(헌관 중에서 겸함)·전사(典祀: 계원 가운데서 조심성 있고 후덕한 사람을 선임)·찬알(贊謁) 2인을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 중에서 제수와 관련하여 기록된 사항을 그대로 옮겨 보면, “명자(明□: 메, 흰쌀밥)는 백미를 필히 정결하게 찧어 3되 3홉으로 하며, 생(牲: 제물에 쓰는 돼지나 양, 또는 소) 한 마리, 과일은 3종, 술은 백미 3되 누룩 1되 5홉으로 빚는다. 제기는 질그릇 물동이 1좌. 나무제기(도마처럼 생긴 것) 1좌, 폐광(폐백 그릇) 1개, 대접 6개, 잔 3개, 향로 1개, 향합 1, 술항아리 1개, 제주병 1개, 부들돗자리 1개, 베 1자, 세건 1척, 황촉 1쌍, 폐백지 1권, 자박이 2개”이다.

또한 택일(擇日)과 제단을 쌓는 법, 제관이 제단 앞에서 서는 위치와 제사 절차 등과 세 가지 예의 축문안(祝文案)이 수록되어 있어, 현재도 상·하부곡 산신제는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에 적혀 있는 방식대로 제사를 진행하고 있다. 「부곡리대동산신제절목」에 기록되어 있는 축문을 번역하여 옮기면 다음과 같다.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유학 ○○○ 감히 고하나이다. 오직 대해산신과 태악 신령께 고하오니, 한 고을을 진정시켜 주시며, 인물을 보호하시고, 병마와 역질을 꾸짖어 입을 다물게 하시고, 경건한 기도에 필히 응하사, 신께서 살펴 임하사 복내리는 것을 아끼지 마옵소서. 사람이 공경하여 믿으며 때에 따라 일어나는 역질을 필히 구제하여 주시기를 축수하오며, 생의 무리가 우러름을 그치지 아니하고, 한 마을이 편안히 살게 하여 주십시오. 많은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과 육축의 피해가 없게 하여 주시기를 이에 빌며, 이에 제를 드리오니 이 모든 것을 신뢰하여 주옵소서.

오늘에 이르러 이와 같이 양진길일에 정결한 제물과 깨끗한 메로서 공손히 공경하여 정결하게 제를 드리나니, 신께서 하고자 함으로 다스려 주시기를 어찌 기도하지 않으리까. 원하오니 질병과 염병을 물리쳐 주십시오. 인민의 노소가 모두 복을 얻도록 하여 주시고, 작고 큰 모든 가축도 갖추어 편안히 길러 주십시오. 하물며 이에 크신 □□□□ 더욱 가축을 중하게 하시기를 밝으신 신령께 엎드려 궁구하오니, 신의 가호가 한결같게 하소서. 이에 공경하여 성심을 모았으니 무릇 죄를 회개하여 면케 하시고, 이제 신께서 강림하셔서 세세년년 고침이 없기를 비오니 흠향하소서.”

[상·하부곡 산신제의 의의]

상·하부곡 산신제는 부계울의 오랜 전통을 간직해 온 마을 신앙이자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평안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산신제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라는 입장인데, 특히 3백 년을 넘게 이어 온 산신제이기 때문에 절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나이 드신 분들의 주장처럼,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상·하부곡 산신제가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09 행정지명 현행화 모현면에서 모현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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