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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와 귀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2836
한자 南怡-鬼神
영어음역 Nam Iwa Gwisin
영어의미역 Nam I and a Ghost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집필자 정혜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인물담
주요 등장인물 남이|권람|점쟁이
모티프 유형 귀신을 알아보는 남이|권람의 딸과 혼인하는 남이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에서 남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용인현읍지』나 『경기지』에는 남이 장군이 용인 사람으로 되어 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의 『국조기사(國朝記事)』를 보면 남이권람의 넷째 딸과 혼인하게 되는데, 「남이와 귀신」은 이에 얽힌 이야기이다.

[채록/수집상황]

1980년에 채록되어 『내 고장 옛 이야기』에 수록되었다.

[내용]

남이 장군이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한양의 외갓집에 갔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제기를 차고 있는데, 젊은 처자 하나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빨간 보자기로 무엇인가를 싸가지고 머리에 이고 가고 있었다. 남이가 보니, 분바른 귀신 하나가 보따리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남이는 여자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얘들아, 저 여자 보따리 위에 분바른 귀신이 앉아 있는데, 안 보이니?” 하고 소리쳤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게 안 보여? 잘 봐, 얼굴에 하얗게 분바른 귀신이 않아 있잖아?”라고 소리쳤지만 아이들은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남이는 혼자서 여자의 뒤를 쫓았다. 여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남의 집 안까지 들어갈 수 없었던 남이는 문 밖에 서서, 반드시 변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잠시 후 집 안에서 갑자기 애고지고하면서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남이는 분명 그 귀신의 짓이라고 생각하고는 의젓하게 대문 앞으로 나가서,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하고 소리쳤다. 곧 늙수그레한 하인이 나와서, “뉘 댁 도령인데 이 경황 중에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남이는 대뜸 “이 댁에 무슨 변고가 일어났소? 그게 궁금하니 말 좀 해보시오!” 하였다. 하인은, “어린 도령이 별일을 다 참견하시오. 이 댁 막내따님께서 갑자기 숨을 거두었소. 원 세상에 이렇게 기막힐 때가 또 있겠소? 그리도 곱고 착하던 따님이 말 한 마디 못하고 죽었으니, 사람의 목숨이란 게 그리도 부질없다는 말이오.” 하면서 허탈해하였다.

남이는 혼잣말로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더니, “할아범, 속히 나를 따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시오!”라고 말했다. 하인은 “아니, 이 경황 중에 도련님 같은 분이 거기를 무슨 일로 가신다 하오?” 하고 선뜻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남이는, “일에는 완급이 있다지 않소? 빨리 안내하시오.” 하고는 더 기다릴 것 없이 뛰어 들어갔다. 남이가 안채에 들어가 방 안을 들여다보니 길에서 보았던 그 분바른 귀신이 규수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를 본 남이는, “이 요망한 귀신아! 그 손을 썩 놓지 못할까?” 하고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귀신은 놀라 달아났다.

그러자 죽었던 규수가 살아나면서 “휴, 답답해. 물 좀 주세요!” 하였다. 울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란을 떨자, 더 있기가 멋쩍었던 남이는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또 죽었다면서 한 번만 더 살려달라고 붙잡았다. 남이가 복숭아가지를 꺾어 들고 방으로 가서 보니 이번에도 그 귀신이 규수의 가슴을 타고 앉아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남이가 복숭아가지를 세차게 내리치면서, “요망스러운 귀신 같으니, 감히 뉘 앞에서 사라지지 않느냐?”고 소리치자 귀신이 두려워하며 사라졌다. 그러자 규수는 별일 없다는 듯 살아났다.

남이가 그 집을 나오려고 하자, 규수의 어머니가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여보게 어디를 가려는가? 잠시 지체하였다가 대감이 퇴궐하시거든 가게나!” 하고 만류하였다. 하지만 남이가 집에서 나온 지 오래 되었다며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하자, “그렇다면 뉘 댁 도련님인지 함자라도 일러주게!” 하였다. 남이가 “의령위 휘(暉)의 아들이며 남이라고 합니다.” 하자, 규수의 어머니는 하인에게 집까지 바래다 주라고 시켰다. 남이가 살려 준 규수는 당시 좌상으로 있던 세도가 권람의 막내딸이었다.

그날 저녁 퇴궐하여 집으로 돌아온 권람은 그간의 전말을 듣고 남이가 범상치 않은 인물인 것을 알고 막내딸과 혼인을 시키려고 마음먹었다. 권람은 다음날 점쟁이를 불러 남이와 딸의 사주를 짚어 보라고 하였다. 명을 받은 점쟁이는 “대감, 아무래도 제 명대로는 살기 어렵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허허, 그렇다면 내 딸아이는 어떤가?” 하고 묻자, “황공하오나 따님의 명운 역시 매우 짧은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식도 보지 못할 것이나, 그 복만 누리실 뿐 화는 보지 않을 테니 사위로 맞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남이는 당시의 세도가였던 좌상 권람의 사위가 되었고, 11세 되던 해 무과에 장원하여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건위주의 야인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28세 되던 해에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소인배의 참소를 받아 옥사하였다. 귀신을 쫓아 준 인연으로 권람의 사위가 되었던 남이는 점쟁이의 말처럼 명대로 살지 못했으며, 그의 부인 또한 옥사가 있기 훨씬 전에 먼저 죽었다. 권람은 복만 누리고 화는 보지 않았음으로 무사하였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남이와 귀신」은 인물 전설로서, 남이권람의 딸의 혼인이 주요 모티프이다. 일반인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귀신의 존재를 파악하여 그 대상을 축출하는 행위는 남이 장군의 비범성과 무장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남이는 귀신을 쫓을 때 복숭아가지를 사용하는데, 이는 민간신앙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 복숭아가지를 두려워하는 귀신의 속성을 말해 준다.

「남이와 귀신」에는 역사적 리얼리티가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남이(南怡)[1441~1468]는 좌의정 권람(權擥)의 사위로 1457년(세조 3)인 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을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러 이름을 날렸다. 26세의 나이로 병조판서가 되었지만, 예종이 즉위한 후인 1468년 유자광의 무고로 역모를 도모했다는 죄명을 쓰고 능지처참형을 당하였다. 비록 4백여 년이 지난 후인 1818년(순조 18) 우의정 남공철(南公轍)의 주청으로 관작이 복귀되었지만, 전설 속의 점쟁이 말처럼 남이 장군은 제 명을 누리지 못하고 짧은 생애를 살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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