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1887
한자 圃隱先生影堂
영어음역 Poeun Seonsaeng Yeongdang
영어의미역 Poeun Shrine Hal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118-1[충렬로 9-1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윤식이원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묘
양식 익공식 전퇴 겹처마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679년연표보기|1991년[중수]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118-1[충렬로 9-19]지도보기
소유자 영일정씨 포은공파 종중

[정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정몽주 종택의 사당.

[개설]

포은선생영당(圃隱先生影堂)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종택에 있는 사당으로, 조선 후기인 1679년(숙종 5)에 처음 지어졌다. 영당이란 원래 이름난 이의 화상이나 조각상을 모시어 둔 사당을 말한다. 포은선생영당에서는 음력 4월 4일에 포은 선생의 제사를 모시고, 음력 12월 12일에는 부인 경주이씨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위치]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118-1[충렬로 9-19]의 영일정씨 포은 종택 남측에 토석담장으로 별도 구획을 이룬 곳에 있다. 포은선생영당과 종택은 숫돌봉의 동쪽 자락에 남향으로 들어서서, 능원천을 사이에 두고 앞쪽으로 포은 선생의 묘소가 있는 문수산을 바라보고 있고, 서쪽으로는 가까운 곳에 충렬서원이 있다.

[변천]

1679년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이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을 통해 많은 선비들이 참배하는 데 장소가 구애됨을 고하여, 숙종이 건축에 필요한 물전을 하사하여 사당을 건축하도록 하였다. 그후 포은선생영당은 몇 차례 중수를 거듭하다 기존의 건물을 모두 헐고 1991년에 종택과 함께 새로 고쳐 지었다. 현재의 배치는 영당이 종택의 가묘와 같이 되어 있으나, 원래는 지금의 종택 위치에 서원이 있고, 종택은 동남쪽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므로, 당시에는 서원의 사당이었던 것이 종택의 가묘 형식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퇴를 두어 마루를 깔았다. 장대석 외벌대로 기단을 마련하고 전면 3개소에 계단석을 놓았다. 둥근 초석 위에 원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에는 초익공을 두고 소로수장으로 격식을 갖추었다. 지붕은 부연을 둔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처마끝에는 암수막새를 장식하고 측면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영당 안에는 감실을 설치하여 영정을 모셨다. 서실에는 정몽주의 위패와 함께 임고서원본인 철향된 구본 초상이 궤(櫃)에 모셔져 있다.

[현황]

포은선생영당은 종택의 경내에 위치하여 종택 남측으로 마련된 소슬문을 통해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영당의 전퇴칸 내부에는 중앙칸에 우암 송시열이 쓴 “포은선생영당(圃隱先生影堂)”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이곳에는 포은 선생과 관련한 유물로 선생의 친필 고간(古簡) 한 점과 숙종어제어필 포은 시첩 한 점, 1641년 여름에 썼다는 기록이 있는 우암 송시열 선생 친필 편액 한 점, 포은 선생 문집에서 유상(遺像)을 보고 느낀 점이 있어 숙종이 지었다고 전하는 시를 1727년 정호(鄭澔)가 판각한 액자 한 점, 해창도위(海昌都尉) 오태주가 발문을 실은 숙종어제판액 한 점, 숙종어제 「단심가」 판액 한 점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포은선생영당은 종택에 마련된 가묘의 형식으로, 격식을 잘 갖춘 건물로, 정몽주의 묘와 충렬서원 등이 잘 어울려 있다. 특히 포은선생영당에 있는 초상화는 고려 후기의 화양(畵樣)과 화격(畵格)을 따른 그림으로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5.10 행정지명 현행화 모현면에서 모현읍으로 변경 사실 반영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