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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624
한자 壬辰山城
영어음역 Imjinsanseong
영어의미역 Imjinsanseong Fortress
이칭/별칭 풍덕천리성(豊德川里城),예진산성(芮陳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백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산성
건립시기/연도 조선 중기
둘레 약 90m
소재지 주소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 지도보기

[정의]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토성.

[개설]

임진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용인 광교산 전투에서 조선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총통을 비롯한 무기류, 청동기시대의 무문 토기류, 백제시대의 타날문 토기류, 조선시대의 중국제 명문 도자기와 기와류 등이 출토된 복합 유적이다.

한편 유적과 인접한 광교산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 수복을 목표로 상경하던 하삼도 근왕병(下三道勤王兵) 6만 명이 왜군 1,600명에게 참패를 당한 용인 광교산 전투의 현장으로 추정되고 있어 임진산성 역시 광교산 전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적 현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립경위]

임진산성은 옛 기록에 나타나지 않다가 일제강점기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구상(丘上)의 땅을 고른 것으로 주위(周圍) 약 50간 풍덕천진지(豊德川陣址)라 칭한다. 임진역(壬辰役) 일본군이 쌓은 것이라 한다”고 처음 기록되었다. 이후에 발간된 『전국유적목록(全國遺蹟目錄)』과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攬)』에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축성한 것이라 적혀 있다.

[위치]

임진산성이 위치한 임진산은 서쪽의 광교산(光敎山)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 부분에 해당하며, 서남쪽으로는 소실봉 등 해발 100m 내외의 산지가 이어지고 있다.

[형태]

임진산성은 발굴 조사 이전에 이미 상당 부분 훼손된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나 구조를 밝힐 수 있는 유구들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특히 대부분 기반암층인 풍화 암반층까지 교란된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 그동안 형성된 문화층(文化層)은 대부분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임진산성과 관련된 유구를 살펴보면 토성 벽은 남에서 북쪽으로 경사진 지형에 3.5m 정도만 잔존하고 있는데, 생토층에 점질토를 성토해 가며 축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상의 중앙부에 위치하는 저장공은 바닥이 좁고 입구가 넓은 ‘U’자형으로, 풍화암반층을 굴토하여 조성하였고, 이곳에서 출토된 철정의 머리 부분에 목질흔(木質痕)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목제 시설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임진산성은 1997년 임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조경 사업을 하기 위해 이목 작업을 하던 중 조선시대의 총통(銃筒) 2점이 수습, 신고되어 경기도박물관에 의해 긴급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이미 개발로 인해 유적의 대부분이 훼손된 상태였다. 이후 계속된 주변 지역 개발에 따라 현재는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조사 당시에 출토된 유물과 사진 자료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임진산성 전시관’이 건립되었다.

[의의와 평가]

임진산성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무기 체제를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일괄 출토되어 조선시대 무기 발달사와 전투 방식을 연구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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