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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고려 전기의 무신. 강민첨(姜民瞻)[963~1021]은 문신으로 관직에 나아갔으나, 고려 현종 때 동여진과 거란의 침입을 막으면서 무신으로서 이름을 크게 떨쳤다. 강민첨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들은 강단(姜旦)이다. 강민첨은 963년(광종 14) 강주[현 경상남도 진주시] 개경향에서 태어났다. 목종 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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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서예·전각가. 고봉주(高奉柱)[1906~1993]의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자는 자위(子緯), 호는 석봉(石峰)이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독자적인 인풍을 형성하여 큰 영향을 끼친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다. 고봉주는 1906년 예산군 예산읍 마상골에서 태어났다. 1920년 예산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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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대중가요 가수. 고운봉(高雲峰)[1920~2001]은 한국 가요 발전에 기여한 예산 출신 대중 가수이다. 본명은 고명득(高明得)이다. 고운봉은 1920년 예산에서 태어났다. 1937년 예산공립농업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조선악극단에서 활동하였고, 태평레코드사의 테스트를 거쳐 전속 가수로 채용되었다. 1939년 유도순 작사·전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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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에 있었던 조선 후기 건립된 국사당보와 김만진의 부인 광주노씨의 사당. 국사당보와 노씨 사당은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던 국사당보(國師堂洑)와 국사당보를 조성한 김만진의 부인 광주노씨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예산 지역에 조성된 조선시대 보로는 국사당보, 좌이천보, 돌천보 등이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국사당보는 국사봉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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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일으킨 백제의 무신이자 왕족. 귀실복신(鬼室福信)[?~663]은 백제 말의 무장이자 왕족으로, 660년(의자왕 20) 나당(羅唐)연합군이 공격해 오자 임존성(任存城)에서 항전하였다. 백제가 멸망하자 승려 도침(道琛)과 함께 주류성(周留城)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왕자 부여풍을 옹립해 당군에 막대한 손해를 주었으나 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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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신. 김노경(金魯敬)[1766~183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할아버지인 월성위 김한신이 예산군 신암면 일대에 입향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노경은 신암면 용궁리에서 추사 김정희를 낳았으며, 1809년(순조 9) 동지부사의 직책으로 연경에 갔을 때, 아들 김정희가 수행하도록 하여 옹방강, 완원과 같은 거유와 접촉하고 금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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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서양화가이자 교사. 김두환(金斗煥)[1913~1994]은 예산의 향토적 서정을 깊이 있는 색조로 표현한 서양화가로, 호는 설봉(雪峰)·향천(香泉)·청계(淸溪)·월성(月城)·금오산인(金烏山人)·금선동천(金仙洞天)·일봉(一峰) 등이다. 한국 서양화가 1세대로 분류된다. 김두환은 1913년 예산읍 예산리 505-3번지에서 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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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연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김려(金鑢)[1766~1821]는 노론계의 비중 있는 명문 출신이었지만 당쟁의 화를 입어 생애를 대부분 유배지에서 보냈고 유배지에서 농어민과 친밀하게 지내며 많은 시문과 저서를 남겼다. 김려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藫庭)이다. 할아버지는 김희(金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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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 거주하며 무한천에 수로를 만든 문신. 김만진(金萬珍)은 노씨 부인과 함께 조선 후기 예산 국사봉 아래의 무한천변에 수로 개설을 주도하여 오가평야에 새 농토를 개척하였다. 김만진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자암(自庵) 김구(金絿)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우영(金宇英)[1610~1673]이다. 김만진은 예산군 오가면 노계리[현 오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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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활동한 경제인이자 교육자. 김용우(金溶禹)[1865~?]는 민족 자본을 바탕으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은행인 호서은행설립 발기인 중 한 명이며, 은행장을 역임하였다. 교육 사업에도 힘써 충남공립농업학교와 예산공립농업학교의 설립을 돕고, 조선육영회(朝鮮育英會)를 설립하여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김용우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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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법조인. 김윤행(金允行)[1920~1990]은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제2회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재직하였다. 1973~1980년까지 대법관을 지냈다. 김윤행은 1920년 11월 16일 예산군 광시면 노전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망하여 큰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 광시공립보통학교, 공주공립중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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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죽천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이교(金履喬)[1764~1832]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89년(정조 13)부터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10년(순조 10)부터 일본통사로 활동하였으며, 1811년부터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로 대마도에 가서 임금의 국서를 전달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이후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1836년(헌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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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서화가·문신·문인·금석학자.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금석학·도서·시문·지리학·음운학 등 여러 방면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금석학 연구에 몰두하여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를 발견하고 역사적 저술을 남기는 등 조선 후기에 큰 업적을 남겼다. 또한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개발하여 후대의 서예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정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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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의 덕잠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이자 종친. 김조순(金祖淳)[1765~1832]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순조의 장인이다. 덕잠서원(德岑書院)의 원장을 역임하며 예산과 관계를 맺었다. 김조순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초명은 김낙순(金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이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이며,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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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지역에 유배되었던 문신. 김진규(金鎭圭)[1658~1716]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직언을 잘하였으며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정치적으로는 대표적인 노론 정객 중 한 사람이다. 예산군 덕산면에 귀양 와서 살았다. 김진규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이다. 시호는 문청공(文淸公)이다. 형조참판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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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부마이자 문신. 김한신(金漢藎)[1720~1758]은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혼인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를 별사전(別賜田)으로 하사받아 집[지금의 김정희 선생 고택]과 아버지의 묘소를 짓고, 경주김씨 원찰인 화암사를 중건하였다. 김한신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유보(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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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김흥경(金興慶)[1677~175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70세가 넘어 기로소에 들었던 인물이다. 김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유(子有)·숙기(叔起), 호는 급류정(急流亭), 시호는 정헌(靖獻)이다.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의 증손자이다.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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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가 있는 고려 말의 충신. 도응(都膺)[?~?]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죽마고우였다고 한다. 도응의 본관은 성주(星州), 초명은 도유(都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 청송당(靑松堂)이다. 예산 지역 성주도씨(星州都氏) 입향조이다. 도응은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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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지석리에 있는 고려 충신 도응의 묘. 도응 선생 묘 일원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친구이자 불사이군의 충신 도응(都膺)[?~?]과 부인 단양우씨(丹陽禹氏)의 묘가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 주변에 비석, 문인석, 망주석, 석등, 신도비 등이 세워져 있다. 도응은 본관이 성주(星州), 초명은 도유(都兪), 자는 자예(子藝),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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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한 승려. 도침(道琛)[?~?]은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부흥운동에 가담한 승려이다. 예산 봉수산 기슭에 있는 대련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도침이 어디에서 출생하였는지 밝혀진바 없으나 도침은 그 당시 상당히 높은 신분계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임존성과 주류성 부근의 사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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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 마기상(馬驥賞)[1897~1953]은 예산 지역에서 천도교 포교에 힘써 예산에 천도교가 전파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마기상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학순, 호는 용암(龍菴)이다. 아버지는 내포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마준성이다. 마기상은 18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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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병석(文秉錫)[1892~1970]은 예산 지역의 3.1운동과 6.10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또한 신간회 예산지회를 창립하여 진보적 민족운동에 앞장섰다. 문병석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며, 호는 성암(成菴)이다. 아버지는 동학 수접주 낙암(樂菴) 문장로(文章魯)이고, 형은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하여 관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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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을 대표하는 저명한 문인·학자로서 업적과 기록, 유적 등을 남긴 인물. 예산군은 많은 문인과 학자를 배출하였는데, 자암(自庵) 김구(金絿)[1488~1534]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는 대표적인 학자이자 서예가이고,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로 유명한 현상벽(玄尙璧)·한홍조(韓弘祚)[1681~1712]·윤봉구(尹鳳九)[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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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의병·독립운동가·종교인. 문장로(文章魯)[1846~1919]는 북접 내포 지역 동학농민운동의 횃불을 밝혔던 방갈리 기포의 주역이었으며, 예산에 동학을 뿌리내리고 독립운동 사상을 고취하였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아들로 문구석(文龜錫)과 문병석(文秉錫)이 있다. 문장로는 1893년 2월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방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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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종교인. 문장준(文章俊)[1861~1945]은 관군과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예산으로 이거하여 활동하였던 동학농민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문장준의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아버지는 남성길(南成吉)이고, 방갈리 접주를 지낸 문장로와는 8촌간이다. 조명승(曺明承)이 사위이다. 문장준은 18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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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의사이자 정치인. 박병선(朴炳善)[1925~1995]은 예산군민의 보건 향상에 기여한 의사이며, 제7대와 제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박병선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추연(秋淵)이다. 박병선은 1925년 12월 25일 예산에서 태어났다. 예산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중동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야마구치대학[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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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예산에 은거한 고려의 충신. 박인우(朴麟祐)[1338~1410]는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개국하자 불사이군의 절개로 관직을 버리고 예산 지역에 은거한 충신이다. 박인우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초암(草庵)·지정(芝亭)이다. 아버지는 판사를 역임한 박천응(朴天應)이며,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이다. 예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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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예산 출신의 의병. 박창로(朴昌魯)[1846~1918]는 예산 출신으로, 1896년과 1906년 두 차례에 걸쳐 홍주의병에 참여하였다. 박창로의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자는 덕순(德順), 호는 이은(二隱)이다. 아버지는 박영(朴楧)이다. 박창로는 1847년 5월 12일 예산군 광시면 은사리 오류동에서 태어났다. 1895년 12월 2일 박창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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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연극인·문인·정치인. 박창식(朴昌植)[1918~2003]의 본관은 밀성(密城)이다. 극단을 조직하여 창작극을 공연한 연극인이자 시인이며, 도의원을 지낸 정치인이기도 하다. 박창식은 1918년 예산군 응봉면 송석리 37번지에서 태어났다. 오가보통학교를 거쳐 공주영명학교 졸업 후 예산제일교회에서 연극 문화 활동을 주도하였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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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문인이자 영화제작자. 방인근(方仁根)[1899~1975]은 신문학기에 활동한 유일한 예산 출신 문인으로, 애욕의 문제를 다룬 통속적인 대중소설을 주로 썼다. 초기에는 시를 썼으나 소설로 전향하였고 평론과 희곡 작품도 썼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호는 벽파(碧波)·춘해(春海)이다. 방인근은 1899년 12월 29일 예산군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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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서병덕(徐秉德)[1712~180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811년(순조 11) 궤장을 하사받고 기사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후손들이 서병덕의 영정, 요대, 옥배 등을 보관하고 있어서 조선 후기의 사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서병덕의 본관은 연산(連山)이며 자는 유호(攸好), 호는 주은(酒隱), 시호는 정익(靖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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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인. 성만용(成萬鏞)[1907~1983]은 예산군 봉산면에서 활동한 정치인으로, 1956년 초대 민선 면장을 지냈다. 성만용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호는 금암(錦岩)이다. 아버지는 성기호이고,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성만용은 1907년 2월 29일 충청남도 당진군 동면 하공리에서 태어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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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예산에 잠시 기거한 학자. 성혼(成渾)[1535~1598]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호원(浩原), 호는 묵암(默庵)·우계(牛溪),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령 성충달(成忠達)이고,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성세순(成世純)이다. 아버지는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인 현감 성수침(成守琛)이다. 성혼은 서울 순화방(順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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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성흔의 묘. 1613년(광해군 5) 일어난 계축옥사로 인해 정국이 혼란스럽자 성흔(成炘)[1555~1626]은 벼슬을 버리고 양주로 낙향하였다. 이후 증조할아버지 성희옹의 처가인 대흥군 원동면 가좌울[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로 낙향하였다. 귀곡리에 정착한 성흔은 ‘모든 재앙을 추방하고 덕을 심는다.’라는 뜻으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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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성희옹(成希雍)[1464~1523]은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형 성희안(成希顔)과 더불어 정국공신에 봉해졌다. 성희옹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당옹(戇翁), 호는 의재(義齋)이다. 할아버지는 사온서직장 성효연(成孝淵)이고, 아버지는 동녕부참판 성찬(成瓚)이며, 어머니는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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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중종반정에 참여한 성희옹의 사당. 성희옹사(成希雍祠)는 조선시대 문신 성희옹(成希雍)[1464~1526]을 모신 사당이다. 성희옹은 중종반정에 참여해 정국공신 3등에 봉해졌다. 원래 김포 고촌면 개화산에 부조묘와 묘소가 있었지만 성희옹의 처가가 귀곡리인 인연으로 1943년 후손들에 의해 귀곡리로 옮겨졌으며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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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문신. 신계영(辛啓榮)[1577~166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문인으로서 예산의 정경과 생활을 노래한 가사 「월선헌 십육경가」를 지었다. 신계영의 본관은 영산(靈山)이며 자는 영길(英吉), 호는 선석(仙石),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지낸 신종원(辛宗遠)이며, 어머니는 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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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현상(申鉉商)[1905~1950]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호는 일연(一鳶)이다. 호적상의 이름은 신현정(申鉉鼎)이다. 1905년 지금의 예산군 예산읍 신례원리에서 태어났으며, 호서은행에서 자금을 탈취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하였다. 신현상은 1926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노동대학(勞動大學)에서 수학하면서 무정부주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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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흥현감을 지낸 문신. 안민학(安敏學)[1542~1601]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필법이 뛰어났으며 문장에도 능하여 사림의 존경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모사(召募使)가 되어 군량의 수송을 맡았다. 안민학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습지(習之)·이습(而習), 호는 풍애(楓厓),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아버지는 찰방 안담(安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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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잠을 시조로 하고 조충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따르면 양주조씨(楊州趙氏) 시조는 조잠(趙岑)[?~?]으로, 고려 때 양주의 호장이었으며 판중추원사에 증직된 인물이다. 양주조씨는 조선 초 조잠의 증손자 대부터 평공파(靖平公派)·문강공파(文剛公派)·제학공파(提學公派)·강화공파(江華公派)로 분파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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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과 관련된 유적.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윤봉길(尹奉吉)[1908~1932]의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忠義祠)와 윤봉길이 출생 이후 4세 때까지 살던 생가 광현당(光顯堂),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23세 때까지 살며 성장한 저한당(狙韓堂) 등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예산 윤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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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의사. 오도영(吳道泳)[1899~1990]은 예산에서 안과를 개원해 의사로 활동하였다. 오도영은 1899년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에서 태어났다. 1916년 아산 신창학교를 졸업하였고, 1922년 서울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 경성의전[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같은 해 5월 예산군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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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월면(月面)[1871~1946]의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법호는 만공(滿空)이다. 수덕사의 승려로 일제강점기에 한국 선불교를 일으켰다. 1871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월면은 1883년 김제 금산사에서 불상을 처음 보고 크게 감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공주 동학사(東鶴寺)로 출가하여 진암(眞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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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유정호(柳鼎浩)[1895~1965]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춘강(春岡)이다. 예산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이며,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선의원에 당선되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유정호는 1927년 신간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당시 회장이던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를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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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정치인. 윤병구(尹炳求)[1911~1985]는 예산 출신의 정치인으로, 제헌국회의원을 지내고 제4대 국회의원에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까지 지역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윤병구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취봉(翠峰)이다. 아버지 윤정식(尹貞植)과 어머니 한산이씨(韓山李氏) 사이의 2남 중 맏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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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봉길(尹奉吉)[1908~1932]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이른바 천장절(天長節) 겸 전승축하기념식이 열린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지금의 루쉰공원]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사령관 등을 즉사시키는 거사를 치르고 체포되어 일본의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윤봉길의 본관은 파평(坡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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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인 윤봉길이 사용하였던 유품 일괄. 보물 제568-1호, 제568-2호, 제568-3호로 지정된 윤봉길(尹奉吉)[1908~1932] 의사 유품으로서 보물 제568-2호와 보물 제568-3호는 일부는 예산군 덕산면 충의사기념관(忠義祠紀念館)에 보관 중이고, 보물 제568-1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윤봉길은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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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의병장이자 종교인. 윤자형(尹滋亨)[1868~1939]은 한말 의병 투쟁에 참여한 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 암살을 추진하였으며, 원각교(圓覺敎)와 삼황교(三皇敎)를 창시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윤자형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내경(來卿)이다. 윤자신(尹滋新) 또는 윤태신(尹泰伸)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윤의진(尹義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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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실학자이자 문신.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성호 이익의 종손자로 덕산현 장천리 일대[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 세거한 여주이씨 가문의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1801년 조카 이승훈 등과 함께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이가환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이다. 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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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문집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경전(李慶全)[1567~164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숭록대부에 올랐다. 문집인 『석루유고(石樓遺稿)』 목판본이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아버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사당에 소장되어 있다. 이경전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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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관료·사업가. 이기세(李埼世)[1903~1990]는 예산 출신의 관료이자 사업가로,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 이기세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호는 우와(又窩)이다. 충남방적 회장과 한국국민당 부총재를 지낸 이종성(李鍾聲)이 아들이다. 이기세는 1903년 5월 28일 예산군 덕산면 복당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독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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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길유(李吉儒)[1714~1783]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방어사·수군절도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이길유의 본관은 신평(新平)이며, 자는 사적(士迪)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이국형(李國馨)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이길유는 1714년(숙종 40) 지금의 예산군 봉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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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예산군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애국지사. 이남규(李南奎)[1855~1907]는 한말의 문신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신채호(申采浩)의 스승이기도 하다. 관직에 있으며 일제에 강하게 대응할 것을 수차례 상소하였다. 낙향하여 의병 활동을 돕다가 일본군에 의해 순절하였다. 이남규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원팔(元八), 호는 수당(修堂)·산좌(汕佐)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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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이담(李湛)[1510~1575]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의약·천문·산수·궁술에도 능했고 문장과 서화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이담의 본관은 용인(龍仁)이며 자는 중구(仲久), 호는 정존재(靜存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이행검(李行儉)이며, 할아버지는 도승지로 추증된 이적(李績)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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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덕성(李德成)[1655~1704]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언·지평·관찰사·동지부사·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거쳐 충청도관찰사로 재직 중 부임지에서 사망하였다. 이덕성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득보(得甫), 호는 반곡(盤谷)·지비자(知非子)이다. 정종(定宗)의 아들인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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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덕산현감을 지낸 문신. 이명준(李命俊)[1572~1630]은 조선 후기 덕산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펼쳤다. 계축옥사로 유배당했다가 인조반정과 함께 복직하여 병조참판에 올랐다. 1631년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신평리에 묻혔다. 이명준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자는 창기(昌期), 호는 잠와(潛窩) 또는 진사재(進思齋)이다. 아버지는 선조 때 청백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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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이사관(李思觀)[1705~177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정조의 대리청정 기간 때 우의정으로서 정조를 보필하였다. 이사관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숙빈(叔賓), 호는 장음(長陰), 시호는 효정(孝情)이다. 아버지는 종성부사를 지낸 이기성(李基聖)이며, 어머니는 김유(金洧)의 딸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이기한(李基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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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묘소와 사당이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문장가.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선조 때 두 번이나 영의정에 올라 북인을 이끌었다. 문장팔가(文章八家)의 한 사람에 꼽힐 정도로 문장과 서화에 두루 능하여 당대의 문인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이산해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여수(汝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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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서 활동한 서예 이론가이자 학자. 이서(李漵)[1662~1723]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징지(徵之), 호는 옥동(玉洞) 또는 옥금산인(玉琴散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이상의(李尙毅), 할아버지는 사헌부지평을 지낸 이지안(李志安)이다.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이하진(李夏鎭)이며, 어머니는 이후산(李後山) 딸 용인이씨(龍仁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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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예산에 유배된 문인·학자. 이약수(李若水)[1486~1531]는 조선 전기의 문인·학자로, 조광조의 유배를 반대하다 예산으로 유배되었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다. 이약수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지원(止源), 호는 우천(牛泉)이다. 아버지는 현감 이자(李滋)이며, 어머니는 사간 안팽명(安彭命)의 딸 광주안씨(廣州安氏)이다. 이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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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여발(李汝發)[1621~1683]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함경도·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고 어영대장을 지냈다. 이여발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군실(君實), 시호는 정익(貞翼)이다. 할아버지는 인조반정의 정사공신 한천부원군(韓川府院君) 이의배(李義培)이고, 아버지는 한원군(韓原君) 이목(李穆)이며, 어머니는 현령 김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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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예산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군이자 독립운동가. 이영규(李榮圭)[1863~1915]는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여 1905년경에는 동학 농민군을 쫓는 관군과 일본군을 피해 무한천변인 예산군 신암면 탄중리로 옮겨와 동학 포덕 사업과 갑진개화운동을 펼치다가 일본군의 탄압으로 사망하였다. 이영규는 족보상에는 이천범(李天凡)으로 기록되어 있고, 후에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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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화가 이응로가 거주하였던 수덕여관과 일대의 유적. 이응로 선생 사적지는 동양화의 독특한 화법으로 유명한 화가 고암(顧菴) 이응로(李應魯)[1904~1989]가 생전 작품 활동을 하였던 공간들을 말한다. 이응로는 1944년 수덕여관을 구입한 후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수덕여관과 수덕여관 일대를 작품 활동 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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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한국화가. 이응로(李應魯)[1904~1989]는 프랑스로 이주하여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친 한국화가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호는 죽사(竹史)·고암(顧菴)이다. 아버지는 이근상(李根商)이고,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이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자결한 의병장 이근주(李根周)의 조카이다. 이응로는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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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이의배(李義培)[1576~1637]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병자호란 때 전사하였다. 이의배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의백(宜伯),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俊)이고, 아버지는 장령을 지낸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이우직(李友直)의 딸 여흥이씨(驪興李氏)이다. 이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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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관료·기업인·정치인. 이종성(李鍾聲)[1924~1995]은 대한민국의 관료·기업인·정치인으로 충남방적 회장, 한국국민당 부총재 등을 지냈다. 이종성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호는 청운(靑雲)이다. 아버지는 충남도지사를 지낸 이기세(李琦世)이고 어머니는 김재윤이다. 이종성은 1924년 예산군 덕산면 복당리 과동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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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문신. 이춘원(李春元)[1571~1634]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13년(광해군 5)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에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예산군 고덕면 일대에는 함평이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데 이춘원의 할아버지인 이윤우(李允宇)가 거주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이윤우의 집에 거주하였던 이춘원은 관직에 나간 후에 예산에 거처를 마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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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화학자. 이태규(李泰圭)[1902~1992]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학박사로, 양자역학을 화학 반응 연구에 도입한 과학자로 유명하다. 노벨화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태규의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한학자 중능(中能) 이용균(李庸均)이며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李會昌)의 숙부이다. 이태규는 1902년 1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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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법조인. 이홍규(李弘圭)[1905~2002]는 예산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 및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활동하였다. 이홍규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아버지는 한학자 중능(中能) 이용균(李庸均)이며 형은 화학자 이태규(李泰圭)이다.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지낸 이회창(李會昌)이 아들이다. 이홍규는 19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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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시원(田始元)[1677~1733]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대숙(大叔)이다.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어머니는 남원윤씨(南原尹氏)이다. 부인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6세손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아들 네 명을 두었는데, 맏아들은 경상병사를 지낸 전운상(田雲祥), 둘째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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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무신. 전운상(田雲祥)[1694~1760]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전라좌수사로 재임 시 해골선(海鶻船)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전운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사룡(士龍), 호는 자천(紫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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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전일상(田日祥)[1700~1753]은 무과에 급제한 뒤 나주영장, 삼척영장, 전라우수사, 죽산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전일상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희중(羲仲), 호는 석천(石泉)이다. 할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전만석(田萬石)이고, 아버지는 홍양영장을 지낸 전시원(田始元)이며, 어머니는 토정(土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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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가. 정긍모(鄭兢謨)[1914~1980]는 한국전쟁 때 진해 통제부사령관으로 활약하였으며, 제3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다. 정긍모의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호는 매당이다. 아버지는 정인우이다. 정긍모는 1914년 예산군 예산읍에서 태어났다. 1933년 진해 고등해원양성소를 졸업하고, 1934년 일본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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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예산에 거주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鄭靖和)[1900~1991]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한 뒤 10여 년간 중국과 국내를 오가면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자금 모집책 및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중국망명 27년 동안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이동녕(李東寧)과 김구(金九) 등 임정 요인 및 그 가족들을 돌보며 임시정부의 살림꾼으로서 임정 요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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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사헌부장령에 이르렀으며, 효행과 학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곤(趙鵾), 할아버지는 조흥무(趙興武)이다. 아버지는 조경진(趙景璡)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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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의 묘.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의 묘는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아버지는 조경진(趙景璡)이고, 박지계(朴知誡)·조익(趙翼)의 문인이다. 1623년(인조 1) 학행으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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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시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극선의 신도비. 조극선 신도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극선(趙克善)[1595~1658]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29년 건립되었다. 비문은 1680년(숙종 6) 윤증이 찬하였다. 조극선의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유제(有諸), 호는 야곡(冶谷)이다. 조극선은 조경진(趙景璡)의 아들이고, 박지계(朴知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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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에 있는 효자 조극선과 조정교의 정려. 조극선·조정교 정려는 조극선(趙克善)[1595~1658]과 조극선의 7세손 조정교(趙鼎敎)[1806~1874]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조극선은 1664년(현종 5) 명정을 받고, 조정교는 1875년(고종 12) 명정을 받았다. 조극선 정려는 원래 시동리와 이웃한 당곡리에 세워졌다. 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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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사석(趙師錫)[1632~1693]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으나 왕세자 책봉 하례에 참석하지 않은 죄로 고성(固城)에 유배되어 사망하였다. 조사석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공거(公擧), 호는 만회(晩悔) 또는 만휴(晩休)·향산(香山)·나계(蘿溪)이고,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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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의사. 조성행(趙聖行)[1902~1988]은 예산 지역에 최초로 근대 병원을 개원한 의사이다. 조성행의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호는 소천(小川)이다. 조성행은 1902년 예산군 삽교읍 가리에서 태어났다.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 졸업하였다. 1936년 예산읍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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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익(趙翼)[1579~1655]은 임진왜란 중 음보로 군량미를 운송한 공을 세우고 1602(선조 35)년 별시문과로 관직에 진출하여 한성부우윤, 개성부유수, 이조참판, 공조판서 등을 거쳐 좌의정과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1655년에 졸하였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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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조익을 모신 사당. 조익 사당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포저 조익(趙翼)[1579~1655]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조익선생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4호] 아래에 조익 사당이 조성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도산서원(道山書院)이라는 이름으로 성역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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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정(趙挺)[1551~1628]은 임진왜란 때 세자를 호종(扈從)한 공으로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나 인조반정 후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아버지인 조충수(趙忠秀)가 말년에 대흥 지역[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은거하면서 예산과 인연을 맺었다. 조정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여호(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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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조충수의 묘.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에 조충수와 부인 남원양씨의 묘 2기가 조성되어 있다. 조충수는 본관이 양주(楊州)이며 초명이 조윤충(趙尹忠)이다. 아버지 조방보(趙邦俌)는 사직서령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어머니 파평윤씨는 찰방 윤세걸(尹世傑)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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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조태구(趙泰耈)[1660~1723]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냈다. 글씨를 잘 썼고, 양전(量田) 등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한 산법(算法) 관련 책을 펴내기도 하였다. 조태구의 본관은 양주(楊州)이며 자는 덕수(德受), 호는 소헌(素軒)·하곡(霞谷),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할아버지는 병조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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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임존성에서 백제부흥운동을 벌인 백제 말기의 무신. 지수신(遲受信)[?~?]은 백제 말의 무신으로, 왕은 도망하고 왕자들도 항복하였으나 임존성을 차지하고 끝까지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항전하였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멸망한 후 유민들은 백제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고구려와 왜국의 후원을 받아 세력이 강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백제부흥군 지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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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보를 시조로 하고 성흔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시조는 고려 때 호장중윤을 역임했던 성인보(成仁輔)이다. 호장부정을 지낸 성숙창(成淑昌)의 아들이다. 당나라의 학사 성경(成鏡)이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정착하였는데, 성경의 후손이 번성하여 창녕을 관향으로 삼았다고 한다. 창녕성씨는 고려 때 성공필(成公弼)과 성한필(成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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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유를 시조로 하고 현석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의 세거 성씨. 창원현씨(昌原玄氏)는 연주현씨(延州玄氏)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이다. 시조 현덕유(玄德裕)는 연주현씨의 시조 현담윤(玄覃胤) 셋째 아들로 1186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한 후 이부(吏部)와 예부(禮部)의 시랑(侍郞)을 거쳐 서경유수(西京留守)로 나갔다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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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소설가·방송작가·언론인. 추식(秋湜)[1920~1987]은 예산을 무대로 하는 향토색 짙은 작품을 발표한 소설가이자, 방송작가, 언론인이다. 본명은 성춘(成春)이다. 추식은 1920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태어났다. 1940년 충청북도청에서 근무하였고, 1944년 극단을 조직하여 희곡을 쓰다가 만주로 건너갔다. 광복 후 귀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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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언론인자 정치가. 한건수(韓建洙)[1921~1994]는 예산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한건수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주암(周巖)·봉암(鳳巖)이다. 한건수는 1917년 예산군 봉산면 금치리에서 태어났다. 예산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1942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과를 졸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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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한문준(韓文俊)[?~1190]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 판이부사(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에 이르렀다. 한문준의 본관은 대흥(大興)이며, 시호는 정의(貞懿)이다. 할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아버지는 평장사를 지낸 한유충(韓惟忠)이다. 한유충은 대흥한씨의 시조로, 이후 후손들이 예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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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예산 출신의 문신. 한유충(韓惟忠)[1080~1146]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대흥한씨(大興韓氏) 시조이다. 한유충의 본관은 대흥(大興)이며 초명은 한주(韓柱), 자는 안석(安石), 시호는 경열공(敬烈公)이다. 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어머니는 시전중내급사(試殿中內給事) 이인효(李因孝)의 딸이다. 아들은 한문준(韓文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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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학자. 한홍조(韓弘祚)[1681~1712]는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명이며 고향인 예산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한홍조의 본관은 상당(上黨)이며 자는 영숙(永叔), 호는 암촌(岩村)·손재(損齋)이다. 아버지 한윤원(韓崙源)과 어머니 전의이씨(全義李氏)의 2남 1녀 중 장남이다. 한홍조는 1681년 예산현 봉암[현 예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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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학자. 현상벽(玄尙璧)[?~?]은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예론(禮論)에도 정통하였던 조선 후기의 유학자이다. 현상벽의 본관은 팔거(八莒)이며, 자는 언명(彦明), 호는 관봉(冠峰)이다. 현상벽은 예산에서 태어나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이자 기호학파의 계승자인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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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예산에 묘소와 열녀문이 세워진 옹주. 화순옹주(和順翁主)[1720~1758]는 영조의 서녀로, 경주김씨 가문의 김한신(金漢藎)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죽자 음식을 끊고 14일 만에 남편의 뒤를 따랐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로,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정절을 기리는 홍문과 능원이 조성되어 있다. 화순옹주는 영조(英祖)의 서녀로 어머니는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