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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나이준(羅以俊)[1602~1676]은 문과 급제 후 공조좌랑, 병조좌랑, 고부군수, 홍문관수찬 등을 지냈으며, 수성나씨(壽城羅氏) 가문의 영주 입향조이다. 나이준의 본관은 수성(壽城), 자는 택우(宅于), 호는 매음(梅陰)이다. 고조할아버지는 나경문(羅景文), 증조할아버지는 영릉참봉을 지낸 나응두(羅應斗), 할아버지는 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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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서 금성대군과 이보흠이 주도한 단종 복위를 위한 운동. 단종복위운동(端宗復位運動)은 1457년(세조 3) 순흥도호부에 위리안치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순흥도호부사 이보흠(李甫欽)이 향민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한 사건이다. 단종복위운동으로 말미암아 금성대군, 이보흠, 단종이 죽음을 맞이하였다. 또한, 단종복위운동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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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 지역에 설립되었던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 서원(書院)은 16세기 이후 지방 사림들에 의해 건립된 교육 및 교화 공간이자, 대표적인 향촌 운영 기구 중 하나였다. 고려 말 조선 초 이래 선현에 대한 봉사 기능을 수행하던 사묘나 유생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던 사학은 별도로 존재하였지만, 그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서원이 처음 설립된 것은 16세기이다. 15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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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도 순흥도호부에서 단종복위운동을 전개한 금성대군과 참여한 선비들의 절의 정신.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순흥 지역에서는 안향(安珦)을 필두로 많은 학자와 관료들이 배출되어, 실로 인재의 도량으로 일컬을 만하였다. 하지만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조카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하고 세조(世祖)로 즉위하게 되면서, 순흥 지역은 단종복위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중심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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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 정착한 문신. 오여은(吳汝檼)[1561~1633]은 문과 급제 후 사간원헌납, 홍문관전한 등을 지냈다. 오여은의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융보(隆甫), 호는 낙애(洛厓)·벽계(碧溪)이다. 할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이며, 할머니는 안관(安灌)[1491~1593]의 딸이다. 아버지는 경주부윤을 역임한 죽유 오운(吳澐)[1540~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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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부임한 문신. 이보흠(李甫欽)[1398~1457]은 순흥도호부사로 있으면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충절을 인정받아 장릉(莊陵)의 배식단(配食壇)에 배향되었고, 영주 금성대군 신단에도 위(位)가 안치되어 있다. 이보흠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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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거주한 문신. 이해(李瀣)[1496~1550]는 이황(李滉)[1501~1570]의 형으로 문과 급제 후 이조정랑, 사헌부대사헌, 한성부우윤 등을 지냈다. 이해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선산부사 이정(李禎), 할아버지는 진성군 이계양(李繼陽), 아버지는 진사 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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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영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영주는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영천군(榮川郡)·풍기군(豊基郡) 3개 고을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록 작은 고을이었지만 영주는 조선시대 동안 우리나라 선비 문화의 중심지였다.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지금의 영주 소수서원]이 설립되었으며, 황준량(黃俊良)·박승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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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지역에 지방관으로 부임한 문신.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1541년(중종 36)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향교를 수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는 등 향촌 교화에 힘썼다. 주세붕의 자는 경유(景遊), 호는 신재(愼齋), 시호는 문민(文敏),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고조할아버지인 진사 주유(周瑜)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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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황사우(黃士祐)[1486~1536]는 문과 장원 급제 후 경상도도사·영천군수·예조판서·우찬성 등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황사우의 자는 국보(國輔), 호는 용헌(慵軒),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증조할아버지 황전(黃躔)[1391~1459]은 영일현감을 지냈으며, 할아버지 황귀경(黃貴卿)은 자헌대부 호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