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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 춘추원에 세워진 박제상의 추모비. 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 사람으로, 왕이 사랑하는 아우 복호와 미사흔이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왕은 두 아우를 데려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쉽지 않았다. 이에 박제상은 고구려에 가서 고구려왕을 설득해서 복호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왜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미사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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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산(梁山). 자는 여빈(汝彬), 호는 송담(松潭). 원래 부여(扶餘)백씨이다. 백수회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19세였으며, 재실에서 독서를 하다가 왜인에게 붙잡혀 일본에 가서 9년 만에 돌아왔다. 일본에서의 포로 시절 충절과 기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며 이때 지은 가사나 한시들이 지금도 전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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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조선 말기에 조성된 송담 백수회의 비. 양산의 이름난 유학자 송담 백수회 비각이다. 1879년(고종 16)에 건립되었다. 석비로 비신의 크기는 높이 109㎝, 폭 59㎝, 두께 30㎝이다. 비의 앞면에는 ‘송담백공선생휘수회정려(松潭白公先生諱受繪旌閭)’라는 글자가 예서체로 쓰여 있다. 뒷면에는 ‘숭정기원후오년기묘오월입(崇禎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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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인 백수회의 문집. 필사본이며 1권으로 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로 28.8㎝, 세로 20.7㎝이다. 권두(卷頭)에 1782년(정조 6) 이사렴(李師濂)이 쓴 서문이 있다. 목록에는 세계(世系)가 있으나 실제로는 연보(年譜)만 있다. 본문은 유사(遺事)와 부록(附錄)으로 나누어지는데 유사(遺事)에는 시 7수, 서 1편, 가사(歌辭)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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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동에 있는 조선시대 및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불망비. 1731(영조 7)과 1732년에 대가뭄으로 양산 지방에 흉년이 들자 조정의 예산 부족으로 백성들을 진휼하지 못하자 서울에 사는 양유하(梁有夏)가 자신의 재산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였고, 승려를 모아 굶어 죽은 시신을 묻어주고 혼백을 불러 제사를 지내주었다 한다.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비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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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박제상을 추모하는 재사당. 양산 지역의 천성산 아래에 있는 효충리는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나고 자란 곳이다. 박제상은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갔던 눌지왕의 두 아우, 복호와 미사흔을 구한 후 왜국에서 어떠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켜 순국한 충신이다. 이런 박제상을 추모하기 위해서 효충사를 지어 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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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석우의 초상화. 신석우(申錫愚)의 본관은 평산이고, 자는 성여(聖如)이며, 호는 해장(海藏),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828년(순조 28)에 진사가 되었고, 1834년(순조 3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조참의, 형조참판, 홍문관직제학, 이조참판을 지냈고, 경상도관찰사로 나갔을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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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에 있는 조선 전기 국립 중등 교육 기관. 1397년(태조 6) 창건하였고, 임진왜란을 당하여 불탔으나 위패는 당시 교임이었던 정호인이 솔밭 속에 숨겨 화를 면했다. 이후 여러 군수와 전교가 향교에 대한 책임을 맡으면서 중창 및 중건, 수리 보수를 지속적으로 하였다. 1985년에 군수 이두연이 대성전, 신문, 명륜당, 풍영루 등을 중건하였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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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 양산향교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지내는 제례. 석전대제(釋奠大祭)란 공자를 모신 사당(祠堂)인 문묘(文廟)에서 지내는 큰 제사(祭祀)를 말한다. ‘석전’이란 “채(菜)를 놓고[釋] 폐(幣)를 올린다[奠]”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원래는 산천(山川)·묘사(廟祀)·선성(先聖: 공자, 739년에 문선왕으로 추존됨) 등 여러 제향에서 석전이라는 말이 사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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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늑동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연필대를 묘사한 이재현의 글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돌 모양은 벼루와 같고 봉우리 모양은 붓과 같으니 오직 너를 좋아하는 것이 너의 붓과 벼루로다. 너를 사랑하고 이름하기를 연필이라 한 것은 붓으로써 쟁기를 삼고 벼루로써 밭을 삼아 갈고 또 다스리면 나의 단전(丹田)을 개벽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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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에 있는 김해김씨 삼현파(三賢派)의 재실. 김해김씨 삼현파의 중시조인 정성헌 문정공 김관(金管)의 15세손인 가선대부 김경구(金景九)의 위패를 모시는 재실이다. 영모재(永慕齋)라고 한 것은 조상의 은덕을 영원히 사모하겠다는 뜻이다. 조상 중에 둔재 김재복(金載馥)과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후손들이 영모재를 건립한 듯하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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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 있는 밀양박씨 재실. 밀양 박씨 양산 입향조인 부위공(副尉公) 박이한(朴栭漢)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전면 4칸, 측면 2칸의 시멘트 단층 팔작기와 건물로, 넓이 규모는 84㎠이다. 매년 음력 10월 13일에 30명 정도가 참여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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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장수황씨의 재실. 재실 이름을 오린재라고 한 이유는 후손들의 기록에 잘 드러난다. “장수황씨의 조상 중에 고려 후기, 조선 전기에 황희(黃喜)가 있었으니 곧 방촌 선생이다. 선생은 문장이 세상에 으뜸이요 정략의 도와 청렴 결백한 자질은 여항의 필부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흔의 노령에 이르도록 세종대왕을 보필하여 그 치적의 많음은 지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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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정자 터.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정자로, 바위 위에 ‘오수정(午睡亭)’이라고 새겨져 있다. 양산시 동면 내송리 마을 동쪽 1㎞ 지점 동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넓은 반석 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위쪽 200m 지점에는 폭포가 흐르는데, 여기에 오수정 터가 있다. 현재 정자는 없고 바위에 ‘오수정’이라고 새긴 흔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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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 탑골 191번지에 에 있던 울산박씨의 사당. 용강사는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공이 많았던 울산박씨 장무공(裝武公) 박윤웅(朴允雄)과 지한주사 박추(朴諏)의 영령을 모시고 향사를 올리는 사당으로 1851년(철종 2)에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향되었다가 이후 사지에 단을 설치하고 향사하기 위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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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 법기천에 있는 대(臺). 양산 사람인 박경홍이 용천대를 소요 자적하며 지은 시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땅과 하늘이 숨겨서 이름은 드러나지 않아도/ 돌로 된 대와 은빛 폭포를 자연으로 이루었도다./웅덩이가 검푸르니 일찍이 고기 새우 집이 되었고/ 골짜기가 깊으니 초목이 늦도록 싱그럽도다./고사(高士)가 서로 만나면 사마공처럼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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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 있는 밀양박씨 재실. 밀양박씨 문중에서는 입향조인 밀양부사 박수성(朴秀成)을 위하여 재사 3칸을 지어 매년 서리 내리는 절기에 맞추어 실묘(失墓)한 여러 조상을 우모재에 합재하여 제사를 올렸다. 비록 여러 조상을 합재하는 것이 예에 어긋나지만 조상을 모시려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이름을 우모재(寓慕齋)라 한 것이다. 1972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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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었던 조선시대 우촌 정수가 지은 정사(精舍)의 터. 현재 우촌정사는 터만 남아있고, 오시유가 지은 노래만이 전한다. “앞 언덕에서 소 먹이며 백석의 무구를 노래하노라/ 세상일은 내 알바 아니니 은약을 즐기노라/ 소가 주리고 배부름은 제 힘에 맡기노라/ 세월이 끝나도록 고생하여도 축적한 것 없노라/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거워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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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신전리에 있는 수원김씨 재실. 운곡재는 수원김씨가 1600년대 밀양으로부터 이사를 와 양산 입향조가 된 운곡 김중채를 위시한 51위를 봉안한 곳이다. 김중채는 1675년(숙종 1)에 태어났고, 이조참판을 지냈다. 1963년 건립했고, 지금 건물은 1995년에 다시 지었지만 나무를 잘못 사용해서 벌레가 파먹어 썩고 있다. 보수가 필요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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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동에 있는 조선시대 효자 김희조를 추모하는 정자. 조선시대 양산 주진 마을의 효자 김희조는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 한결같이 순종했으며, 학질로 고생하는 부모에게 살을 베어 먹이고, 등창을 앓을 때는 입으로 빨아서 낳게 했으며, 상을 당한 후 3년간 술과 고기를 금하고 매달 두 번씩 성묘하는 일을 늙어서도 폐하지 않았다. 이에 나라에서는 김희조에게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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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있는 의춘방씨 재실. 의춘방씨의 시조 방태경은 1452년(문종 2)에 과거 시험에 합격하였고, 문하찬성사상호군을 제수받았다. 1470년(문종 20) 2월에 서쪽 변경을 안정시킨 공로로 문종이 보국공신으로 의춘군(宜春君)에 봉하고 식읍을 내렸다. 67세의 나이로 타계한 뒤 조선 태종 때 이조참판에 증직되었고 충렬사에 제향하였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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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공자를 시조로 발전해 온 전통시대의 대표적인 사상. 수천 년 동안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양사상을 지배하여 온 유교는 인(仁)으로써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이다. 유교는 공자의 인(仁)과 맹자의 의(義)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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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유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유적과 유물. 유교 유물 유적은 크게 유적 자료와 유물 자료로 나눌 수 있다. 유적 자료로는 서원, 향교, 사우, 누정, 정려, 비석 등의 건축물 등을 들 수 있다. 또 유물 자료로는 서원·향교 등에서 제사 의식 때 사용하는 신주(神主)와 제기, 유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문집과 가문의 역사를 담은 기록인 족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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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활동하는 유교 관련 단체. 대한유도회가 처음 생긴 것은 1945년 10월 전국 유림 2,500여 명이 성균관 명륜당에서 첫 회합을 하고 창립총회를 열면서부터이다. 이때 위원장으로 심산 김창숙이 선임되었다. 대한유도회는 유교를 중심으로 도의정신을 천명하고 윤리부식을 실천하여 수제치평(修齊治平)의 대도를 선양하며 사회질서를 순화함을 목적으로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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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학문을 익히기 위해 지은 집. 율리정사는 『오륜행실도』, 『삼강행실도』, 『사기』,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1672년(현종 13) 안희청이 진사 안효필의 생가에 학문을 익히기 위해 지은 정사로, 처음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집이었다. 그러다 율리정사에 살았던 안종석이 1970년에 틀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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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함포리에 있는 경주최씨 재실. 양산시 원동면 함포리는 은수(殷岫) 최봉한이 충주에서 이주해 살던 곳이다. 최봉한은 어려서부터 자질이 순수하여 지극하게 부모를 섬겼으며, 기개가 굳어 충직하게 의리를 지켰다. 병자호란 때 국권이 위태롭자 스스로 청나라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절의를 본받고자 깎아지른 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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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최익현을 추모하는 단소. 상북면에 살던 면암의 문인 권순도가 의충단을 축조하고 나서 “춘추대의 일월고충(春秋大義 日月高忠)”이라 했다. 권순도가 남긴 한시가 전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생의 대의는 우리나라에 천양되었으니/ 군자와 소인의 길이 같지 않았네/ 우뚝 선 순국으로 절개 지킨 혼백이요/ 기미를 막고 조짐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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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밀양손씨 재실. 밀양손씨 입향조인 손신(孫信)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 손신은 밀양손씨 7세손인 광리군 손극훈의 19세손이 되는 첨정공파 손수산의 7세손이다. 손신은 창녕에서 출생하였으나 양산의 수성나씨 집안과 결혼하였고, 그 뒤 처가인 양산시 북정동에 정착하였다. 이로써 밀양손씨 양산 입향조가 되었다. 2002년에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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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창원황씨 재실. 창원황씨 양산 입향조인 통정대부호조참의를 지낸 황시중과 아들 황두석을 모시는 재실이다. 20년 전부터 집안에서 제사를 모시다가, 2005년에 한옥을 개조한 형태로 장재재라는 재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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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의 충신을 기리는 단소(壇所). 신라시대의 충신은 박제상이다. 박제상은 신라 17대 내물왕 때 양산의 태수였다. 실성왕 때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눌지왕의 두 아우, 복호와 미사흔을 구한 후, 왜국에서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켜 순국한 충신이다. 고려시대의 충신은 김원현이다. 김원현은 고려 문종 때 왜적이 전선 19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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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충주지씨 재실. 충주지씨 시조와 입향조인 가선대부 지귀명 등 29위를 봉안하고 있다. 후손들이 조상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사랑을 다한다는 뜻에서 저존재(著存齋)라 했다. 「저존재기」에는 “절제공 지봉원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참혹한 화를 당하자 지봉원의 아우인 참판공 지만원이 마침내 이곳에 숨어 살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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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살았던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하기 위해 세운 비. 엄자산의 처 숙부인 경주이씨 비가 양산시 북정동 이원수공원 안에 있다. 석비로 비신의 크기는 높이 90㎝, 폭 36㎝, 두께 18㎝이다. 1885년(고종 22)에 건립되었다. 다른 비는 엄규석의 처 정부인 밀양박씨를 높이기 위해 그의 아들이 세운 것이다. 높이 89㎝, 폭 37㎝, 두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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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좌삼리에 있는 달성서씨 재실. 고려조 봉익대부판도판서 달성군 서진의 8세손인 곡성현감 서의손과 병자호란 때 출정한 서중룡, 일제에 항거한 의병장 서병조 등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좌삼재를 지으면서 후손들은 다음과 같은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엎드려 원하건대, 상량의 후에 효도의 문이 열리고, 부귀가 끊어지지 아니하며, 건물을 새로 창건함에 높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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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주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서재. 1910년 경술국치 후 양산·울산·부산 등지에서 거주하는 경주이씨 용재파 후손들이 선조를 기리고 학문을 강론하는 정사를 창건하기로 하고, 사림들이 회의를 거쳐 1920년에 주강정사(周岡精舍)라 현액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에 벼슬을 한 익재 이제현과 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에서 급제한 용재 이종준을 추모하는 단소(壇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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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재실. 매곡동에 처음 뿌리를 내린 사람이 바로 임진왜란 때의 공신인 서몽호이다. 서몽호가 임진왜란 때 왜적을 토벌하고, 수많은 공을 세우자 권율 장군과 어사 한준겸이 임금에게 그 공을 알려 훈련원주부를 제수받았다. 서몽호가 죽은 뒤에는 충절을 기리고자 영남의 유림들이 건의하여 경상감영의 지원으로 1791년 매곡리에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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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터. 상북면 소토리의 소노서원에 있는 정호인의 한시에 청계당터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술이 좋고 관직 한가해서 보병과 비슷한데/작은 마루 적적하게 단지 네 칸이로다/구여릉의 백발은 무너지듯 취하였고/구루령의 단사는 도모할 필요가 없네/십리 바다 산이 일곱 점 떠오르고/한 당의 풍월은 둘이 맑아 풍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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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 있는 강릉유씨 재실. 양산의 입향조인 강릉유씨 19세 유세원(劉世源)을 추모하기 위하여 1999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재실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매년 음력 10월 보름에 30명 정도의 후손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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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김해김씨 재실. 김일손의 후손인 김치하는 무오사화 때 청도에서 양산 증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후손들이 청도의 ‘청’자와 증산의 ‘산’자를 따서 청산재라 이름을 붙였다. 1983년에 건립되었고, 2008년 현재 입향조 김치하를 1세로 168위를 모시고 있다. 재실은 11평의 정면 1칸, 측면 1칸의 건물이다. 매년 음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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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초산리에 있는 경주이씨 재실. 경주 사람 이한영이 증조부 사우당(四友堂) 이형규, 조부 초은(草隱) 이계일을 추모(追慕)하여 지은 재실이다. 재실 이름은 시골에서 숨어 지낸다는 의미인 초은재이다. 1899년에 건립했다가, 1958년 3월 6일에 재건했다. 목조 건물이고, 정면 4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홑처마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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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충과 효와 열을 행했던 사람들.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효충사의 효충계 서문에는 충효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릇 충효열(忠孝烈) 세 가지는 천성에서 나오는데, 사람의 도리 가운데 큰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성인을 내리시어 군주로 만들고 스승으로 삼아서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집집마다 깨우쳐서, 왕궁과 도성에서부터 시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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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동에 있는 효자 정려각. 현효 정려각은 조선 숙종 때 인물 김려택의 효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다. 김려택은 조선 숙종 때 훈련원 판관을 지낸 김석일의 아들로서 경상북도 고령에서 태어났다. 그 뒤 울주(지금의 양산시 웅상읍)로 이사하여 살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 이때 김려택의 효성이 각별하였는데 부친이 세상을 떠나 시묘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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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진주강씨(晉州姜氏) 재실. 1988년에 현재의 건물을 매입한 뒤 사당으로 중수 개조하여 1989년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 콘크리트 건물에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이다. 진주강씨 박사공파 13세손 강걸자로부터 23세손 강사진까지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11월 셋째 일요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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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경주김씨 재실. 경주 김씨 물금 제숙공파의 재실이다. 고려 공민왕 20년(1368)에 경주 김씨 51세손인 김옥근이 황산진에 정착, 양산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이곳에서 400여 년간 65세손까지 거주하였다. 1998년 옛 집을 헐고 신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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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초계정씨 재실. 초계정씨의 시조 정배걸(鄭倍傑)의 27세손 이희중, 이희안, 이희민 등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재실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매년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약 50명의 후손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