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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19세기 중엽부터 조선 사회는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 지배 체제에 반대하는 민중 세력의 힘이 성숙됨과 동시에 일본과 서구 열강 세력의 침투 및 일제 강점기에 직면하였다. 진안 지역은 이 시기 동학 농민 운동 준비 단계에서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의병의 중심지였다. 1895년(고종 32) 5월에 반포된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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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진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낙서(洛瑞), 호는 청사(晴沙). 문정공(文靖公) 일계(逸溪) 김자지(金自知)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김사성(金思聲)이고 할아버지는 김석기(金奭基)이고 아버지는 김종협(金鐘協)이다. 외할아버지는 천안(天安) 전명석(全明錫)이다. 김귀영(金龜永)[1884~1931]은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태어났다.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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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김사범(金士範)[?~?]은 이석용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5년 11월 체결된 을사늑약은 우리 민족에게 국망의 위기를 절감하게 하였다.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군대가 강제 해산되고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 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 전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 호남 지역에서의 의병 전쟁은 1907년 9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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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김성학(金成學)[?~?]은 1907년 9월 12일 결성된 호남 의진의 중군장이 되어 활동하였는데 후에 송판구(宋判九) 선봉장이 병으로 활동하기 어렵게 되자 선봉장을 대행하였다. 1908년 3월 5일 진안 시동(矢洞)에 일본군 토벌대가 들어갔다는 정보를 들은 이석용 의병장이 김성학에게 진격을 명령하였다. 그는 곧 습격하여 왜병 하나를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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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김옥현(金玉現)[1878~1907]은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어 대한제국은 사실상 국권을 잃은 것과 같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이와 같이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서자 김옥현은 일제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진안에서 창의하여 동지 7명을 이끌고 진안군, 용담면, 장수군 등 산간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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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김운서(金雲瑞)[1879~1929]는 1907년 10월 10일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이 진안 마이산에 제단을 세우고 고천제향(告天祭享)한 후 기의하자 이에 합세하여 중군장(中軍將)이 되었고, 의병과 군기를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8년 9월 25일 이석용을 도와 전라북도 임실군·장수군·남원시·함평군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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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김치삼(金致三)[1872~1909]은 진안군 주천면에 태어났다. 1907년 9월에 거병한 유지명(柳志明)이 이끄는 삼남 의병대에 가담하여 약 2년 동안 용담·금산·은진 등지를 잠행하면서 유격 활동을 벌였다. 1907년 10월 3일 밤, 의진 30여 명이 심상의·노원섭의 의병대와 합세하여 총검을 휴대하고 금산읍을 습격하였을 때 동지 정성일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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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명경안(明敬安)[1852년~?]은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문태수 의진에 가담하여 용담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문태수는 1906년 지리산으로 들어가 거의한 후 전라북도 동부 산악 지대를 무대로 활동한 의병장이다. 명경안은 문태수 의진에서 활동하면서 특히 이용이(李用伊) 등과 함께 1909년 2월 5일 용담에서 문태수 의진의 의병장 김상진(金尙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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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에서 활동한 의병장. 1907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지리산에 들어가 거의한 후 진안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경기도 양주에서 각도의 의병진이 모일 때 호남군 100여 명을 이끌고 합세하여 호남 창의대장에 추대되었으나 진격계획이 좌절된 후 다시 본래의 근거지로 돌아와 활약하였다. 본관은 남평(南平). 본명은 태현(泰鉉), 별명은 태서(泰瑞). 태수는 의병장 시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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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진안 출신의 의병. 박보국(朴甫局)은 1907년 이석용 의진에 참가하여 보급책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 후에도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활동을 계속하였다. 박보국(朴甫局)[1876~1951]은 진안군 성수면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 12일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에 가맹하여 한규정·박금동과 함께 보급책임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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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박순용(朴順用)[?~?]은 진안군 주천면에서 태어났다. 재판 기록에 의하면 박순용은 1907년 7월 14일부터 문태수 의진에 가담하여 여러 곳에서 유격 활동을 벌였으며 8월에는 금산읍을 습격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가입과 활동한 날짜로 미루어 보아 유지명 의병대에 들어가서 의병 활동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1909년 7월 1일 전주 재판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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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3월 25일~4월 중순까지 진안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진안 지역의 만세 운동은 3월 25일의 진안읍 장날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주천면·마령면·성수면 등으로 이어졌다. 만세 운동이 끝난 후에도 그 영향을 받은 지역민들 다수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본은 1910년에 국권을 강탈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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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이산묘 영광사에 배향된 개항기 순국지사. 1905년 일제가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하자 송병선은 상경하여 고종을 알현하고 십조 봉사(十條封事)를 올리는 한편 을사늑약 반대 투쟁을 전개하려고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독약을 마시고 자결 순국하였다.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동방일사(東方一士). 시호는 문충(文忠). 송시열(宋時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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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개항기의 의병 운동은 크게 제1차 의병 전쟁[1895~1896년]과 제2차 의병 전쟁[1905~1910년]으로 나눌 수 있다. 진안 지역에서 제1차 의병의 활동 기록은 없고 제2차 의병에 이석용을 비롯하여 문태수·유지명 등이 활발히 활동하였다. 1905년에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고 정미조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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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에서 활동한 의병. 1907년 9월 진안 마이산에서 거의하여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을 결성하고 진안 지역을 무대로 항일 투쟁을 하였다. 1912년에는 비밀 결사를 결성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계획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갑술(甲戌), 자는 경항(敬恒), 호는 정재(靜齋). 할아버지는 승문 박사(承文博士) 이태환(李泰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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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시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후 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 정책을 융합한 식민 정책을 추진하였다. 진안 지역에서는 일제의 가혹한 통치와 수탈에 저항하여 3·1 운동에 동참하였고, 이후에도 다양한 농촌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다. 일제 강점기 진안 지역의 경제 상황을 알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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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결성된 비밀 결사. 1912년 진안 지역의 이석용(李錫庸)과 구례 지역의 정찬석을 비롯하여 하동·곡성·남원·전주·임실·진안 등의 인사 약 20명이 모여 결성한 비밀 결사이다. 이들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의 항일 운동가들과 연계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임자동 밀맹단은 이석용이 국권 회복을 위해 과거에 의병 활동을 함께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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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1906년 최익현의 창의에 가담하기 위해 『동맹록』에 서명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은둔 생활을 하다가 한일합방 후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금하던 중 체포되었다. 본관은 흥성(興城). 자는 화삼(華三), 호는 호암(壺岩). 장진욱(張鎭旭)[?~?]으로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06년 봄 면암 최익현이 호남으로 와 창의할 의논을 한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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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의병. 정성일(丁成一)[?~1909]은 진안군 주천면 신양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 초순경에 창의 기병한 유지명의 삼남 의병대에 가담하여 약 2년 동안 용담, 고산, 금산, 은진 등지를 무대로 의병 활동을 하였다. 특히 1907년 의진 30여 명이 심상의·노원섭의 의병대와 합세하여 총검을 휴대하고 금산읍을 습격하였을 때 선두에서 분전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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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있었던 근대 교육 기관. 1894년(고종 31)의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학교 설립 분위기가 확산되고 기존의 교육 기관이던 진안 향교가 교육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진안 지역에서는 새로운 학교의 설립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새로운 학문을 수용하려는 의식이 높아지면서 진안군청 주사 오정열이 주도하여 진안 향교의 명륜당을 교실로 사용하여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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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진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탐진(耽津). 습제(習齋) 최제학(崔濟學)의 형이다. 최제태(崔濟泰)[?~?]는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국운이 기울어가는 시기에 활동을 모색하던 중 최익현(崔益鉉)이 의병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돈헌(遯軒) 임병찬(林炳瓚)과 함께 대마도로 호송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문달환(文達煥) 등 7인의 의사와 돈헌의 아들 임웅철과 아우 임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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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마이산에서 결성된 의병 부대. 호남 의병 창의 동맹단(湖南 義兵 倡義 同盟團)은 1907년 9월 이석용(李錫庸)이 주도하여 진안 마이산에서 결성되었다. 이석용은 마이산에서 고천제를 거행한 후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어 본격적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군대 해산을 계기로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이석용도 의병을 모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