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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전체 인구 중 늘어나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 7~14% 미만은 고령화 사회, 14~20% 미만은 고령 사회, 그리고 20% 이상인 경우를 초고령 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한국의 노인 인구는 2000년에 340만 명으로 전체 인구 4701만 명의 7.2%를 넘어서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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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등에서 농촌을 떠나 제2차·제3차 산업에 취업했던 사람이 농업에 환류하거나 환류시키는 행위. 귀농은 사전적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의미하나 오늘날에는 농촌으로 이주한 것 전반을 의미한다. 전라북도 진안군은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농업이 활력을 잃어가는 것에 대응하여 2006년부터 ‘귀농 귀촌 1번지’로 정하고, 적극적이고 다양한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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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지역에서 농민이 생활 조건이나 사회적 환경의 개선을 위해 전개한 사회 운동. 진안 지역 농민 운동의 효시는 일제 강점기의 소작 쟁의라고 할 수 있다. 광복 이후 자신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농민들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부터였다.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농민층을 전국적인 행정 체계에 흡수시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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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가족을 구성하여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가정. 다문화 가정이란 형식적으로 국제결혼을 통해서 한국인과 외국인 부부로 구성된 가족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간의 국제결혼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배경에는 세계화와 빈곤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빈곤한 국가의 여성들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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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댐은 1992년 건설 계획이 발표되고, 약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01년 준공되었다. 진안군 6개 읍면[진안읍, 용담면, 안천면, 상전면, 정천면, 주천면]의 70개 마을이 용담댐 건설로 인한 수몰 지역에 포함되었다. 1992년 진안군 전체 인구 4만 6115명 중 댐 유역 6개 읍면의 인구는 2만 6368명이고, 이중 직접 수몰되는 지역의 인구는 1만 2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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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전후에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사건. 6·25 전쟁 중 좌·우의 이념 대립이 원인이 되어 군경과 북한군에 의해 민간인이 입은 피해로, 전쟁 초기 북한군의 점령 및 1950년 9월 이후 진안 지역을 수복한 군경의 공비 토벌 작전으로 피해가 커졌다. 1950년 9월 28일 미 제24사단 38연대가 북한군을 퇴각시키고 진안 지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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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유지 및 증진하기 위해 행하는 제반 활동. 우리 사회에서 공중 보건에 관한 인식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미 군정기였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조선 오물 소제령」이 공포되었으나, 경찰의 관장 아래에서 조선 사회를 억압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8·15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4일 위생국이 생기고 이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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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사회 변화를 꾀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전개하는 사회적 행동. 지역 사회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지니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즉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니는 집단들 사이의 상호 교류와 상호 작용이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역동성이 사회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를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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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청에서 시행하는 주민의 생활 향상과 사회 보장을 위한 광범위한 사회 정책. 1960년대 이후 전라북도 진안군의 사회 복지는 국가 구호 사업의 실시에서 시작되어 점차 법률과 제도가 정비되면서 확대되었다. 1990년대 이후 농촌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되고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 복지와 아동 복지의 영역이 강화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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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소작 농민들이 소작 조건의 개선을 위해 전개한 농민 운동. 전라북도는 전통적으로 농업 중심지였고 일제 강점기 일제의 식량 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 중의 하나였으므로 소작 쟁의도 매우 빈번하고 격렬하게 일어났다. 50~60%에 달하는 소작료와 농사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했던 소작인들은 전체 수확의 70~80% 가량을 수탈당했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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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1959년 발행된 『진안지』의 군세, 면세에 나타난 시장 상황을 정리하면, 당시 진안면의 시장 4·9일장, 마령면은 평지리에서 3·8일장, 백운면 백암리 백운 시장의 5·10일장, 용담면 수천리 용담 시장의 3·8일장, 안천면 노성리 안천 시장의 4·9일장, 그리고 정천면 봉학리 조림 시장의 5·10일장 등 6개 정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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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초기에 진안 지역에서 이루어진 예비 검속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피해 사건. 이승만 정부는 과거 좌익 활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쉽게 통제·관리하기 위해 1949년부터 국민 보도 연맹을 조직하여 이들을 모두 가입시켰다. 그런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은 북한군에 협조할 우려가 있는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되어, 전쟁 초기 군경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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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주민들이 용담댐의 건설에 반대해 벌인 투쟁. 용담댐은 한국 수자원 공사가 1990년에 착공하여 2001년에 완공한 다목적 댐이다. 총 저수량 8억 1500만 톤으로 국내 5번째 규모인 용담댐은 수몰 면적이 31.5㎢로 진안군의 용담면·안천면·상전면·정천면·주천면과 진안읍 등 6개 읍·면의 63개 마을이 수몰되었다. 용담댐은 전라북도와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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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주민들이 용담댐 주변 지역의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에 반대해 벌인 운동. 용담댐에 대한 진안 지역 주민의 불만은 용담댐 물 배분 문제를 둘러싼 지역 갈등으로 심화되었다. 진안군의 5개 읍·면에 걸쳐 건설된 용담댐은 주변 도시 지역 주민의 상수원이 되었는데, 충청남도 지역이 물 이용 부담금 납부 지역에서 제외되면서 용담댐 건설의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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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부터 1953년까지 북한의 남침으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한국 전쟁이 발발한 후 진안 지역에 북한군이 들어온 것은 7월 22일 무렵이었다. 이날 대전·영동·무주를 거쳐서 덕유산 일대에 집결한 북한군 2개 중대 병력이 진안군을 습격하자 경찰 병력은 장수로 철수하였다. 미군 제24사단 38연대가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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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거주하는 주민 또는 집단의 수. 인구는 한 사회의 특징을 보여 주는 가장 기본적인 지표이다. 즉 인구수와 인구 구성은 그 사회의 산업·생산·소비의 특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빠르게 이루어져 대부분의 농촌 지역에서 1966년을 정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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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민들의 정치적 권리 행사를 통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총체적 활동. 한국 사회에서 근대적인 정치 제도의 출발은 1948년 실시된 5·10 선거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제헌 국회가 출범하였으며 헌법이 공포되고 근대적인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 시민 의식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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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하리에 있는 고추 시장. 진안 고추 시장은 1999년 진안고원의 마이산 고추를 외지에 알리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개설하였다. 즉 진안 고추 시장은 진안 고추를 알리기 위한 홍보·마케팅 사업을 추진하고, 진안 고추 품질의 우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 및 제품 관리, 포장을 지원한다. 매년 고추 수확 철에 맞춰 직거래장터를 개설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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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때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수항리에서 우익 청년 40여 명이 조직한 결사대. 6·25 전쟁 때 인민군이 진안군 점령 직후 우익 청년들을 중심으로 지역을 사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50년 7월 27일 진안군의 우익 청년 40여 명이 진안군 부귀면 수항리 손시골에서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전라북도 지역에서 공비 토벌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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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 북한군이 진안군을 점령한 이후 좌익 세력이 세운 행정·통치 기구. 진안군 인민 위원회는 북한이 진안군의 행정 지배와 통치를 위해 설립하였다. 진안군 인민 위원회는 북한군이 진안을 점령한 7월 22일 이후에 조직되었다. 인민 위원장은 진안군 단양리 출신의 김병철이 맡았고 자위대장은 진안면 구룡리 출신의 전금생이 맡았다. 다른 위원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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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가축을 사육하고 생산물을 가공하는 산업. 해방과 전쟁 겪으면서 식량 부족에 시달리던 정부는 1960년대 중반부터 축산 장려 정책을 실시하였다. 전라북도에는 1968년부터 지리산 지구 한우 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진안군의 백운면, 마령면, 부귀면 등에 한우 입식 및 축사 조성이 진행되었다. 1969년 진안군에는 6,466두의 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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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의 행정 구역 및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방 자치 단체의 구성과 제반 활동.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안군과 용담군이 통합되어 진안군이 되었다. 행정 구역도 11개 면 77개 리로 통폐합되었다. 1979년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1개 읍, 10개 면, 77개 법정리[2013년 12월 현재 303개 행정리]로 조정되었으며, 이후 큰 변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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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진안군은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 지역에 있어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지주들의 수탈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비록 거대 지주들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중소 지주들이 진안군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1943년에 조선 총독부는 진안군에 4개의 저수지[반월제·포강제·월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