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항기 함안 출신 학자 이수형이 흥선 대원군이하응과 이재면에게서 받은 편지 묶음집. 이수형(李壽瀅)의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자는 사징(士澄), 호는 효산(曉山)이다. 1837년(헌종 3) 6월 6일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태어났다. 1864년(고종 1)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871년(고종 8) 서원 철폐령이 내려졌는데, 당시 함안 군수가 자신의 사욕을 위...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조임도의 시문집.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어릴 적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합천, 청송, 영주, 봉화, 의성, 인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봉화에서 반천(槃泉)김중청(金中淸)에게 수학했으며, 의성에서는 두곡(杜谷)고응척(高應陟)에게 배웠다. 또한 인동으로 옮겨가서는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주도복의 시문집. 주도복(周道復)[1709~1784]의 자는 여강(汝剛), 호는 감은재(感恩齋)이며,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부인은 좌랑 강재후(姜載後)의 딸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며, 아들은 주봉조(周鳳朝)·주봉익(周鳳翊)·주봉양(周鳳陽) 등이다. 주도복은 1709년 10월 18일에 함안 칠원의 무기리(舞沂里)에 출생했다. 천성과 도량이...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이길의 시문집. 이길(李佶)[1538~?]의 자는 여한(汝閒)이며, 본관은 광평(廣平)이다. 처음의 호는 검계(儉溪)이며, 이후에는 독촌(獨村)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낸 정무공(靖武公)이호성(李好誠)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충무위 부사직(忠武尉副司直) 이사후(李士詡)이며, 어머니는 석천(石泉)임득번(林得蕃)의 딸인 은진...
-
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주재성의 문집. 주재성(周宰成)[1681~1743]의 본관은 상주(尙州)로 시조는 주유(周瑜)이고, 주세붕(周世鵬)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주각(周珏)으로, 호는 경재(敬齋)이다. 어머니는 노한석(盧漢錫)의 딸 광주 노씨(光州盧氏)이다.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고, 그후 고향에서 강학에 전념하였다. 1745년 좌승지 겸 경...
-
경상남도 함안에서 말년을 보낸 조선 중기 문신 이맹현의 문집. 이맹현(李孟賢)[1436~1487]은 본관이 재령(載寧), 자는 사성(師聲), 호는 근재(覲齋)이다. 할아버지는 이오(李午), 아버지는 호조 참판을 지낸 이개지(李介智)이다. 어머니는 목사를 지낸 하경리(河敬履)의 딸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1460년(세조 6)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으며, 홍문...
-
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조경식의 문집. 조경식(趙景栻)[1659~1723]의 본관은 함안, 자는 경숙(敬叔), 호는 근촌(芹村)이다.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지호(趙之瑚), 아버지는 조곤(趙滾)이다. 어머니는 이배운(李排雲)의 딸 성산 이씨(星山李氏)이다. 『근촌집(芹村集)』은 이귀환(李龜煥)의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던 조...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조우식의 문집. 조우식(趙祐植)[1833~1867]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경능(敬能), 호는 금계(琴溪)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조경림(趙景霖), 증조할아버지는 조백휘(趙伯輝), 할아버지는 조증린(趙增麟), 아버지는 조진탁(趙鎭卓)이다. 어머니는 박세기(朴世杞)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
-
189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박도원의 문집. 박도원(朴道元)[1593~1648]의 자는 일지(一之), 호는 쌍악(雙岳) 또는 농은(農隱)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할아버지는 황암(篁嵒)박제인(朴齊仁)이다. 지리산대갈동(大葛洞)에서 태어났다.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에게 수학하였으며, 동문인 조은(釣隱)한몽삼(韓夢參),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와 교유하...
-
1769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종도의 문집. 조종도(趙宗道)[1537~1597]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院北里)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다. 노진(盧禛), 임훈(林薰), 임운(林芸), 김성일(金誠一), 유성룡(柳成龍) 등과 교유하였다....
-
1904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정의 문집. 안정(安侹)[1574~1636]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자장(子長), 호는 도곡(道谷)이다. 1574년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도음(道音) 마을에서 태어났다. 1602년 도곡 정사(道谷精舍)를 짓고 도곡처사(道谷處士)라 자호하였다. 한강(寒岡)정구(鄭逑)에게 수학하였다. 장현광(張顯光), 곽재우(郭再祐...
-
1910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징천의 문집. 조징천(趙徵天)[1609~1660]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낙보(樂甫), 호는 도봉(道峰)이다. 1609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방어산(防禦山) 아래 임동(林洞)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대소헌(大笑軒)조종도(趙宗道)이다. 외숙 조은(釣隱)한몽삼(韓夢參)과 간송(澗松)조임도(趙任道)에게 수학하였다. 중형과...
-
184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방의 문집. 조방(趙垹)[1577~1638]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 또는 반구정(伴鷗亭)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서 태어났다. 생육신 조려(趙旅)의 현손이다. 인근에 거주했던 이칭(李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박제인(朴齊仁)·이길(李佶)과 교유하였다. 조방의 10세...
-
조선 후기 함안 출신 유학자 안성흥의 문집. 안성흥(安聖興)[1683~1746]의 본관은 순흥이며, 자는 사희(士希), 호는 둔와(遯窩)이다. 조선 후기 함안군 여항면 두릉동에서 태어났다. 함안 지역의 사림이었던 안희(安憙)의 현손이다. 1728년 무신란 때 가산을 내어 반란군을 토벌하는 데 기여하여, 이후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건립되었다. 안성흥의 주손(胄孫...
-
1924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명호의 시문집. 이명호(李明怘)[1565~1624]의 본관은 광평(廣平)이며, 자는 양초(養初),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함안 검암리(儉巖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황곡(篁谷)이칭(李偁)이고, 어머니는 박윤수(朴允秀)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한강(寒岡)정구(鄭逑)에게 배웠다. 1605년(선조 38) 진사가 되었다....
-
1924년 간행된 함안 출신의 학자 진건의 시문집. 진건(陳健)[1598~1678]의 본관은 여양(驪陽)이며, 자는 대중(大中), 호는 명와(明窩)이다. 함안 우곡리(愚谷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한국(陳翰國)이고, 어머니는 이택동(李宅東)의 딸인 철성 이씨(鐵城李氏)이다. 1850년(철종 원년) 정규원(鄭奎元)이 쓴 행장(行狀)이 완성되고, 1884년(고종 21)...
-
고려 후기 함안에 은거한 이오의 실기. 이오(李午)의 본관은 재령(載寧), 호는 모은(茅隱)이다. 일찍이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두 선생의 문하에 종유하면서 의리의 학문에 독실하여 사림에게 추앙을 받았다. 공양왕 때 성균관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하지 않았으며, 고려가 망하자 함안군(咸安郡) 모곡리(茅谷里)에 은거하였다. 후에 조선태종 때에 여러 번 나라에서 불렀...
-
조선 중기 함안 출신의 학자 이정의 시문집. 이정(李瀞)[1541~1613]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자는 여함(汝涵), 호는 모촌(芧村)이다. 함안 모곡리(芧谷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경성(李景成)이고, 어머니는 이학(李鶴)의 딸인 여주 이씨(驪州李氏)이다. 남명(南冥)조식(曺植)에게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안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청주 목사, 창원 부사...
-
1933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윤방직의 시문집. 윤방직(尹邦直)[1755~1826]의 본관은 칠원(漆原)이며, 자는 내승(乃承), 호는 몽엄(夢广)이다. 아버지는 윤찬연(尹燦然)이고, 어머니는 변서흥(卞瑞興)의 딸인 초계 변씨(草溪卞氏)이다. 함안 칠원의 죽청리(竹淸里)에서 지역 학자들과 교유하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몽광 유고(夢广遺稿)』는 현손(玄...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주세붕의 문집.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상주 주씨 시조인 주유(周瑜)이고, 아버지는 주문보(周文俌), 어머니는 부호군을 지낸 황근중(黃謹中)의 딸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주세붕은 합천 천곡리(泉谷里)...
-
1934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문신 조수천의 문집. 조수천(趙壽千)[1482~1553]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중수(仲叟), 호는 북계(北溪)이다. 함안군 군북면 원북동에서 태어났다. 어계(漁溪)조려(趙旅)의 손자로 아버지는 좌윤(左尹) 조금호(趙金虎)이고, 어머니는 유숙(柳塾)의 딸인 진주 유씨(晉州柳氏)이다. 초취 부인은 이세분(李世芬)의 딸인 전의 이씨(...
-
194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배양옥의 문집. 배양옥(裵良玉)[1622-1694]의 본관은 분성(盆城)이며, 자는 기지(器之), 호는 사오당(四吾堂)이다. 고조할아버지 배세적(裵世績) 때부터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漆原面) 장암리(藏巖里)에 살았다. 증조할아버지는 배인좌(裵麟佐)이고, 할아버지는 배담(裵湛)이다. 아버지는 유곡(柳谷)배응철(裵應哲), 어머니는 윤...
-
16세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박제현의 시문집. 박제현(朴齊賢)[1521~1575]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맹사(孟思), 호는 송암(松嵒)이다. 함안군 평광리(平廣里)에서 출생하였다. 남명(南冥)조식(曺植)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유일(遺逸)로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평천 서원(坪川書院)에 배향되었다. 후손 박영일(朴永一)이 흩어진 원고를 모아 간행하였으나 정...
-
1907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주맹헌의 문집. 주맹헌(周孟獻)[1617~1703]의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자는 여택(汝宅), 호는 수구재(守口齋)이다. 1617년 함안군 칠원면 무릉리(武陵里)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곽연(郭硏)에게 배웠고 만년에는 허목(許穆)과 조임도(趙任道)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신재(愼齋)주세붕(周世鵬)이다. 『수...
-
1933년에 간행된 함안에서 김해로 입향한 문인 안혁중의 시문집. 안혁중(安赫重)[1774~1855]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자는 유첨(幼瞻), 호는 쌍괴당(雙槐堂)이다. 1774년 안경진(安景珍)과 인동 장씨(仁同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자질이 남달랐으며 성장하면서 학문을 부지런히 익혀 경사(經史)에 밝았다. 효성이 뛰어나 부모를 잘 섬겼으며 친족 간에도...
-
1926년에 간행된 재령 이씨 입향조 이중광의 후손인 이현재, 이세태, 이세후의 시문집. 이현재(李玄栽)[1620∼1674]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자는 배원(培元), 호는 죽촌(竹村)이다. 진주(晋州) 지수면(智水面) 청원리(淸源里)에서 태어났다. 고려 충절신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예로 아버지는 행정(杏亭)이중광(李重光)이며, 어머니는 신갑의 딸인 영산 신씨(...
-
190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려의 문집. 조려(趙旅)[1420~1489]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이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 김시습(金時習)과 교유하였다. 조려의 손자 조순(趙舜)[1467~1529] 형제가 1516년 강혼(姜渾)의 서문을 붙여 조부 조려의 유집을 판각하였고, 이를 관아재(觀我齋)조영석(趙...
-
1962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만성의 문집. 이만성(李晩成)[1571~1630]의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대기(大器), 호는 연암(淵菴)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廣井里)에서 태어나 15세 때 삼종형 이휴복(李休復)을 따라 황암(篁嵒)박제인(朴齊仁)에게 수학하였고, 17세 때 한강(寒岡)정구(鄭逑)를 배알하였다. 임진왜란 때 창의한 공...
-
1908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중현의 시문집. 이중현(李仲賢)[1449~1508]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자는 준성(遵聖), 호는 율간(栗澗)이다. 아버지는 이개지(李介智)이고, 어머니는 하경리(河敬履)의 딸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함안군 모곡리(茅谷里)에서 태어났으며, 1476년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은 부제학(副提學)에까지 올랐다. 『율...
-
1964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간의 시문집. 조간(趙柬)[1698~1760]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성신(聖信), 호는 일락헌(一樂軒)이다. 할아버지는 조함리(趙咸履), 아버지는 조시필(趙時珌)이며, 어머니는 류형근(柳亨根)의 딸인 문화 류씨(文化柳氏)이다. 세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엄윤하(嚴潤夏)의 딸 영월 엄씨(寧越嚴氏), 박한규(朴漢珪)의 딸...
-
1890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희의 문집. 안희(安憙)[1551~1613]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언우(彦優), 호는 죽계(竹溪)이다. 함안군 동쪽 모곡리[현재의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태어났다. 안향(安珦)의 후손이다. 문과에 급제하며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임진왜란 때 의병에 동참하였다. 1744년 이윤망(李贇望)이 지은 『죽계집(竹溪集)』 부록...
-
17세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영휘의 시문집. 조영휘(趙永輝)[1706~1781]의 본관은 함안(咸安)이며, 자는 완보(完甫), 호는 청희당(淸羲堂)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 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 초기 조려(趙旅)의 후손으로 함안에 세거한 집안의 일원이다. 조영휘가 생전에 남긴 글이 적지 않았지만, 조영휘의 글을 보관하고 있던 후손가...
-
1897년에 간행된 함안에 은거한 학자 안관의 실기. 안관(安灌)[1491~1533]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관지(灌之), 호는 취우정(聚友亭)이다. 안축(安軸)의 7세손이다. 아버지는 안존도(安尊道)이고, 외할아버지는 성산 이씨(星山李氏)이윤창(李胤昌)이다. 부인은 권순(權舜)의 딸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오운(吳澐)의 외할아버지이다. 조광조(趙光祖) 문...
-
1974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안철순의 문집. 안철순(安哲淳)[1789~1857]의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자는 경문(景文), 호는 토와(土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응찬(安應瓚), 할아버지는 안택수(安宅修), 아버지는 안홍기(安弘器)이고, 어머니는 성계관(成啓灌)의 딸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부인은 성치중(成致中)의 딸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외손...
-
1923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칭의 문집. 이칭(李偁)[1535~1600]의 본관은 광평(廣平)이며, 자는 여선(汝宣), 호는 황곡(篁谷)·관화간죽옹(灌花看竹翁)이다. 부인은 박윤수(朴允秀)의 딸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동지산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숙부 임훈(林薰)과 임운(林芸)에게 배웠고, 뒤에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에...
-
1891년에 간행된 함안 출신의 유학자 박제인의 문집. 박제인(朴齊仁)[1536~1618]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중사(仲思), 호는 황암(篁嵒)이다. 현재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남명(南冥)조식(曺植)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최영경(崔永慶)·조종도(趙宗道)·하항(河沆)·김면(金沔) 등과 교유하였다. 묘소는 칠원현(漆源縣) 구산면(龜山面) 동...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가마터란 각종 토기(土器)와 도기(陶器), 자기(瓷器) 등을 넣고 고온에서 소성하였던 구조물인 가마가 있었던 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가마는 한뎃가마[노천요(露天窯)]와 굴가마[등요(登窯)]로 구분된다. 한뎃가마는 야외에서 연료와 토기 등을 함께 야적해 놓고 불을 지피는 원시적인 형태의 가마이며, 점토를...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가연리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초식 공룡 발자국 화석.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는 약 1억 년을 전후하여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 퇴적층인 경상누층군 함안층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및 새 발자국 화석이 확인된다. 이는 백악기 당시 한반도 남부에 대규모 호수가 조성되었던 지형적 조건과 초식 공룡의 먹이 식물이 풍부하게 자랐던 환경적 조건이...
-
삼국 시대 아라가야[안라국]에 주재했던 왜의 사신. 임나 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최근에는 고대의 일본이 일정 기간 동안 한반도 남부 지역, 즉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 지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가야에 머물렀던 왜인을 '왜의 사신', 혹은 '왜신'으로서 교역을 목적으로 가야에 주재했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리고 왜신이 머물렀던 곳이 아라가야...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제품,...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 소(所)와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중기까지 지속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부곡은 총 431곳, 경상도 지역은 240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3곳의 부곡이 있었고, 칠원현에는 1곳의 부곡이 있었다. 감물곡(甘勿谷) 부곡은 함안군의...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는 약 1억 년을 전후하여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 퇴적층인 경상누층군 함안층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및 새 발자국 화석이 확인된다. 이는 백악기 당시 한반도 남부에 대규모 호수가 조성되었던 지형적 조건과 초식 공룡의 먹이 식물이 풍부하게 자랐던 환경적 조건이 만나...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검단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검단산성(檢丹山城)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나 성격은 알 수 없고, 문헌 기록 역시 소략한 편이다. 다만 『칠원 읍지(漆原邑誌)』 서문에 "…즉무릉산성(則武陵山城) 달전산성(達田山城) 고장산성(固藏山城) 삼국시방어유지야(三國時防禦遺址也)"라 기록되어 있다. 서문에서 확인되...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생활 유적과 삼국 시대 덧널무덤이 혼재한 유적군. 검암리 유적군(儉岩里遺蹟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 726-1번지와 검암리 656-3번지, 검암리 24번지, 검암리 681번지, 검암리 706번지에 위치한다. 동지산(冬只山)[216.7m]의 서북쪽 구릉 말단부에 해당한다. 현재 유적의 대부분은 밭으로...
-
400년 광개토 대왕 때 고구려의 5만 군대가 김해 지역까지 진출한 사건. 400년에 일어난 고구려 남정(南征)을 흔히들 고구려의 신라 구원 전쟁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전쟁은 신라 구원 전쟁에 그친 것이라기보다는 가야 사회 변화에 커다란 획을 그은 대사건이었다. 고구려가 4세기 초 낙랑군(樂浪郡)과 대방군(帶方郡)을 축출한 이후 두 군이 가지고 있던 상업적 이익을 누가...
-
삼한 시기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역사와 문화.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위치하였던 정치 집단인 아라가야(阿羅伽耶)는 고대 함안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핵심이다. 아라가야는 전기에는 변진 안야국(弁辰安邪國)으로서 중국에 알려질 정도로 유력한 정치 집단이었던 것으로 『삼국지(三國志)』에 기록되어 있고, 광개토 대왕(廣開土大王) 비문에도 '안라'라는 이름으로...
-
고려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시대 함안 지역에는 함안군(咸安郡)과 칠원현(漆原縣) 두 행정 구역이 자리하였다. 함안군은 신라경덕왕(景德王) 대 군현 개편에서 현무현(玄武縣)과 의령현(宜寧縣) 두 고을을 거느린 주읍(主邑)이었고, 칠원현은 칠제현(漆隄縣)으로 불리면서 오늘날 창원시 지역인 의안군(義安郡)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려 건국 후 성종(成宗) 14년(...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는 삼국 시대의 무덤. 고분(古墳)이란 지하 또는 지상에 매장 시설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흙이나 돌 등을 높이 쌓아 올려서 만든 무덤을 말한다. 옛 무덤을 뜻하기도 하지만 고고학에서는 개념적으로 엄격히 한정하여 특정 시기, 즉 고대 국가 형성기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보통 삼국 시대의 무덤을 지칭한다. 죽은 자의 시신을...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기원전 10세기 무렵 멀리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북방의 청동기 문화가 몽골과 만주 지방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게 되면서, 한반도의 북부 지역에서부터 신석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서서히 청동기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바닷가나 강가에 살면서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위주로 하는 채집 경제 단계에 머물러 있던 신석기 단계와는 달리,...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고종산성(鼓鍾山城)은 문헌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무명 성이며,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가 발행한 『조선 고적 조사 보고』에 대산리 산성(代山里山城)으로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문헌 기록으로는 고종산성에 대한 축조 시기를 파악할 수 없으나 산성의 규모나 형태로 보아 삼국 시대 아라가야에 의해 축성되었을 가...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구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묘비. 곽연(郭硏)에 대한 기록은 『칠원 읍지(漆原邑誌)』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인조 때에 문과 급제하여 벼슬이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에 이르고 문장(文章)이 뛰어나서 세상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 호는 구사당(久俟堂)”이라고 하였다. 수구재(守口齋)주맹헌(周孟獻)도 일찍이 곽연에게 수학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괴산리 고인돌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새터 마을 북쪽 농경지에 있으며, 함안 대로에 접해 있다. 함안군 지역의 고인돌은 남강과 낙동강에 유입되는 함안면의 함안천, 칠원읍의 광려천, 군북면의 석교천을 따라 대부분 분포한다. 괴산리 고인돌은 함안천 주변에 있으며, 함안천을 따라서는 괴산리 고인돌...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나 도구를 사용한 시기부터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 인류가 지구상에 살기 시작한 때는 약 700만 년 전부터이다. 50억 년이나 되는 지구의 역사에 비하면 대단히 짧은 시간이다. 인류가 돌을 깨뜨려 사용하기 시작한 25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를 구석기 시대라고 한다. 인류...
-
고대 삼국 시대 아라가야를 대표하여 사비 회의에 참석한 아라가야의 지배 세력. 구취유리(久取柔利)는 아라가야(阿羅伽耶) 사람으로 그가 차한기(次旱岐) 또는 하한기(下旱岐)였다는 것으로 보아 높은 신분의 지배층이라고 추정된다. 아라가야의 지배 세력에 대한 호칭은 왕, 국주(國主), 대인(大人), 차한기, 하한기 등이었다. 구취유리는 안라국(安羅國)[아라가야]의...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구포리 평계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경상남도 함안군 지역은 남고 북저의 분지상 지형으로 남강과 낙동강이 북서쪽에서 자연적 경계를 이루며, 남동쪽으로는 해발 600m 전후의 산지에 의해 외부로부터 보호된다. 또한 곡저 평지를 이용한 식량 자원의 생산은 안전한 문화적 생활 영역을 마련할 수 있는 기초를 이루었다. 남쪽으로는 진동만...
-
가야 시대 안라 고당 회의에 참석한 아라가야의 지배 계층. 국내 대인(國內大人)은 아라가야의 사람으로 안라 고당 회의에 참여하였다. 안라 고당 회의를 개최한 이유는 외면상 신라가 복속한 남가라(南加羅)와 탁기탄(㖨己呑)을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라의 가야 지역 진출을 저지하고 백제의 하동 지역 진출에 따른 가야 지역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아라가야의 외교적...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와 동촌리에 걸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군북면 도시 계획 도로 개설 부지 내 유적(郡北面都市計劃道路開設敷地內遺蹟)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 142번지와 동촌리에 위치하고 있다. 동촌리 고인돌군과 매우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27호 고인돌과는 북쪽으로 약 6m 정도 떨어져 있다. 2007년에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서...
-
경상남도 함안군의 옛 이름. 함안군의 옛 지명으로는 금라(金羅) 이외에도 아라가야(阿羅伽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아라국(阿羅國), 안야국(安邪國), 안라(安羅), 전라(前羅), 아량촌(阿良村), 아라라성(阿羅羅城) 등이 있다. 현재의 함안군은 가야의 아시량국[아라가야·안라국]이었다가, 560년경 신라에 복속되어 아시량군이 되었다. 신라경덕왕 대인 757년...
-
경상남도 함안군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등의 기록물. 함안 지역 사람들이 남긴 기록 유산으로는 문집류, 책판류, 금석문 등이 있다. 문집이나 실기류는 대부분 개인이나 문중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로 그 가운데는 일부 책판이 전해 오는 것들도 있다. 그 외 금석문으로는 개인 묘소의 묘비(墓碑)와 신도비(神道碑) 등이 있으며, 공신 교서 1점이 있다....
-
삼국 시대 아라가야[안라국]에 주재했던 왜의 사신. 임나 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최근에는 고대의 일본이 일정 기간 동안 한반도 남부 지역, 즉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 지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가야에 머물렀던 왜인을 '왜의 사신', 혹은 '왜신'으로서 교역을 목적으로 가야에 주재했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리고 왜신이 머물렀던 곳이 아라가야...
-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경유하는 남강 주변에 세워진 누각과 정자, 그리고 그곳에서 이루어진 풍류. 남강은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계천에서 시작해 진주시를 거쳐 함안군과 의령군의 경계를 따라 흐르다가 낙동강에 합류한다. 남강은 삶의 기본 요소인 먹거리를 공급하는 것에서부터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는 여가의 장소로서 그 주변을 살아가는 사람...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관문 성. 내곡리 대현관문성(內谷里大峴關門城)은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없으나, 삼국 시대에 진동 방면에서 가야읍 쪽으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 한티 고개에서 동서로 뻗은 능선의 정...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내인리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위치한다.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 감골 마을에서 부봉리 어연 마을로 이어지는 지방도 제1021호선 서쪽의 고갯마루에 고인돌 2기가 있다. 함안천과 그 지류인 검암천이 합류되는 지점 부근의 구릉 말단부에 자리한다. 지형적으로는 자양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
-
고대 삼국 시대 아라가야를 대표하여 사비 회의에 참석한 아라가야의 지배 세력. 대불손(大不孫)은 아라가야(阿羅伽耶) 사람으로 안라차한기(次旱岐) 혹은 안라하한기(下旱岐)였다는 것으로 보아 높은 신분의 지배층이라고 추정된다. 아라가야의 지배 세력에 대한 호칭은 왕, 국주(國主), 대인(大人), 차한기, 하한기 등이었다. 대불손(大不孫)은 안라국(安羅國)[아라가야...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도기 가마터. 대사리 도기 가마터는 조선 시대에 운영되었던 가마터로,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366-1번지와 대사리 391-1번지에 위치한다. 유물이 채집된 지역에 따라 대사리 도기 가마터Ⅰ과 대사리 도기 가마터Ⅱ로 나눌 수 있다. 대사리 도기 가마터Ⅰ은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대사 마을 중 아랫마을 서편...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대사리 송라 고분군(大沙里松羅古墳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대사리 송라 마을 북쪽 능선에 형성된 대규모 고분군이다. 고분은 능선의 정선부와 그 양측 비탈면에 분포되어 있으며, 다소 경사가 급한 부분에도 유구가 조성되어 있다. 유적이 입지한 곳은 정상부에 테뫼식 석축 산성이 있는 고종산(鼓鍾山)[13...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덕대리 312-1번지와 덕대리 299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좌측으로는 명관천이 유적이 형성된 구릉의 방향과 같이 흘러가고 있고, 동쪽으로는 석교천(石橋川)이 동촌들을 관통하고 있다. 유적 주변에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및 고인돌들이 밀집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20...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덩이쇠. 도항리 10호분 출토 덩이쇠[철정(鐵鋌)]는 1992~1996년에 국립 창원 문화재 연구소[현,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가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한 함안 도항리 고분군(咸安道項里古墳群) 발굴 조사 중 도항리 10호 덧널무덤[목곽...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미늘쇠. 미늘쇠는 자루에 끼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판 모양의 철기로 유자 이기(有刺利器)라고도 불린다. 초기 국가에서 삼국 시대에 걸쳐 신라·가야의 고분에서 자주 출토되는 철기의 일종이다. 무기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으나 첫째, 날이 없고, 둘째, 무기와는 같은 위치에서 함께 출토되...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새 모양 장식 미늘쇠. 미늘쇠는 자루에 끼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판 모양의 철기로 유자 이기(有刺利器)라고도 불린다. 원삼국 시대 말기부터 삼국 시대에 걸쳐 신라·가야의 고분에서 자주 출토되고 있다. 무기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으나 첫째, 날이 없고, 둘째, 무기와는 같은 위치에서...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판갑옷. 1997~1998년에 경남 고고학 연구소에서 함안~여상 간 도로 확장·포장 공사 구간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함안 도항리·말산리 유적 가운데 13호 덧널무덤[목곽묘]에서 판갑옷이 출토되었다. 삼국 시대를 중심으로 판갑(板甲)은 영남남해안·동해안에서 확인되는 종장판갑(縱長板甲...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투구. 종장판(縱長板) 투구[주(冑)]는 긴 세장방형의 지판(地板)을 가로로 연접하여 주체부를 구성한 투구로, 삼국 시대에 주로 이용되며 그 계보는 북방 유목 민족에서 찾을 수 있다. 영남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며 4세기 전반부터 6세기 대까지 폭넓은 시간 동안 확인된다. 도항리 36호분 출토...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아라가야 시대의 토기. 함안 말이산 고분군(咸安末伊山古墳群)의 도항리 39호분에서 출토된 아라가야의 등잔형 토기 2본으로, 1993년 4월부터 그해 8월까지 국립 창원 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다. 등잔형 토기는 마형 토기, 압형 토기, 가형 토기 등과 더불어 영남 지역 삼국 시대의 고분에서...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와 개항기 비각 및 비석. 돈풍각(惇風閣) 및 비석군(碑石群)은 함안군 칠원읍 서남2길 4[용산리 119] 칠원장 입구, 서상 마을 사거리 북쪽 주택가 일대에 있다. 칠원 읍성 서문 외곽에 돈풍각과 칠원 현감들의 치적 비석군 19기가 모여 있다. 돈풍각 현판에 ‘효자 육품 진용 교위 행선전관 안동 권상찬...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동촌리 서촌 고인돌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서촌 마을 회관 앞의 주택 마당에 위치한다. 지형적으로는 석교천 상류의 곡간 평야에 해당한다. 함안군 군북면석교천을 따라 열상으로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는 함안 군북 지석묘군(咸安郡北支石墓群)[경상남도 기념물 제183호]에서 남쪽으로 약 400m 거리...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 동촌리 유적(東村里遺蹟)Ⅱ는 2009년 4월 22일부터 그해 5월 25일까지 동서 문물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한 유적이다. 이 일대는 경전선 복선 전철화 사업 구간 중 군북역 이전 부지 구간에 포함된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와 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 4동과 무덤 14...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유적. 동촌리 유적(東村里遺蹟)Ⅲ은 2010년 2월 22일부터 그해 4월 8일까지 동서 문물 연구원에서 창고 신축 공사와 관련하여 구제 발굴 조사한 유적으로,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동촌리 유적Ⅲ은 창고 신축 부지에 대하여 시굴 지역과 발굴 지역으로 구분하여 조사를 실시...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에 있는 가야 시대 말 갑옷이 출토된 고분. 마갑총(馬甲塚)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448번지, 현재 해동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자리에 입지한다. 1992년 6월 6일에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103-4번지[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일대에 신축 중인 해동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배수관 설치 작업 중 토기편과 철기편이 지상에 노...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마갑총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고리 손잡이 큰 칼. 칼은 근접전에서 적을 찌르거나 베기 위한 무기이다. 도(刀)는 한 면에 날이 있어 주로 내려치는 데 효력을 발휘하며, 검(劍)은 양날이 있어 베는 기능 외에도 찌르는 데 우수한 기능을 한다. 고리 손잡이 큰 칼은 삼국 시대의 수장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최상위 계층을 상징하는 유물로, 금...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소재 마갑총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말 갑옷. 마갑총(馬甲塚)은 1992년에 해동 아파트 신축 공사 중 단지 내 배수관 설치 작업 시 확인된 유적으로, 국립 창원 문화재 연구소[현,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에서 긴급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마갑총에서 한국에서는 최초로 말 갑옷[마갑(馬甲)]이 온전한 상태로 출토...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소재 마갑총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투구. 1992년 6월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갑옷 조각이 발견되어 그해 7월부터 국립 창원 문화재 연구소[현,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가 발굴 조사를 실시한 마갑총(馬甲塚)에서 출토되었다. 종장판(縱長板) 투구[주(冑)]는 긴 세장방형의 지판을 가로로 연결하여 머리를 둥글게 감싸도록 만든 투구로,...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말산리 소재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가야 시대의 토기. 일본 제국주의는 1916년에 조선 총독부 산하 고적 조사 위원회를 설립하여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유린에 착수하였다. 고적 조사 5개년기[1916~1920]의 제2차 연도인 1917년에는 가야 고분에 대한 대규모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과정에서 함안 말이산...
-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는 이현...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명관리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명관들 일대에 자리한다. 평광 마을의 앞 농경지에 7기의 고인돌이 서쪽 편에 흐르는 소하천을 따라 줄지어 분포하고 있다.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에 의해 알려졌으나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토기 가마터. 묘사리 토기 가마터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1416번지 일대로 천제산에서 동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남쪽 비탈에 위치한다.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 보고서』-함안군의 선사, 고대 유적을 간행하기 위해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 유적에 대한 최초의...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출토되는 가야 시대의 토기. 4세기 후반 우거리 토기 가마터에서 발굴 조사되었는데, 토기 뚜껑에 여러 가지 장식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다. 무늬 장식 뚜껑의 중앙을 기준으로 동심원을 돌려 여러 개의 구획으로 나누고 그 안에 선을 긋거나 점을 찍는 형태이다. 국립 김해 박물관이 세 차례에 걸쳐 조사하였다. 2002년 11월 13일부터 그해 12월 12...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에 있는 신라 시대의 산성. 무릉산성(武陵山城)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조 시기와 성격은 알 수 없으나 문헌 기록은 함안 지역에 위치하는 다른 산성에 비하여 풍부한 편이다. 『칠원 읍지(漆原邑誌)』 칠원지(漆原誌) 서문(序文)에 "…즉무릉산성(則武陵山城) 달전산성(達田山城) 고장산성(固藏山城) 삼국시방어유...
-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구전이나 행위로 전승되어 온 문화재. 무형 유산이란 관습과 표상, 표현, 지식 및 기술은 물론 이와 관련된 전달 도구, 사물과 공예품 및 문화 공간 모두를 의미한다. 무형 유산은 ①구전 전통 및 표현, ②공연 예술, ③사회적 실행·의식 그리고 축제, ④자연과 우주에 대한 식 및 관습, ⑤전통적 공예 기술이라는 범주를 가지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자는 군수(君壽), 호는 이남(夷南), 본관은 경주(慶州). 17대조인 추호(秋湖)박앙(朴盎)이 집현전 학사를 지내다가 단종이 폐위되자 함안군 군북면백이산(伯夷山) 아래에 은둔하면서, 그 후손들이 함안에 세거하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는 정재(靜齋)박사검(朴思儉)이고, 할아버지는 수졸(守拙)박구화(朴求華)이다. 아버지 일헌(逸軒)박정식(朴精植)은 김해...
-
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일지(一之), 호는 쌍악(雙岳)·농은(農隱)·신독재(愼獨齋). 할아버지는 왕자사부(王子師傅)를 지낸 황암(篁嵒)박제인(朴齊仁)이다. 부인은 재령 이씨(載寧李氏)로, 슬하에 아들 넷을 두었다. 큰아들 박집(朴慹)은 아버지 박도원보다 먼저 죽었고, 둘째 아들 박임(朴恁)은 현령을 지냈으며, 셋째 아들은 박흠(朴𢡮),...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성보(成甫), 호는 자고당(紫臯堂). 광서(匡西)박진영(朴震英) 장군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완석당(浣石堂)박형용(朴亨龍)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박창조(朴昌兆)이다. 박상절(朴尙節)[1700~1774]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매우 두터웠다. 일찍이 과거에 응하지 않고 성호(星湖)이익(李瀷)의 문하...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증조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에 추증된 박종수(朴宗秀)이고, 할아버지는 형조 판서에 추증된 박오(朴旿)이다. 아버지는 선무원종 2등 공신인 박진영(朴震英)이다. 박임룡(朴任龍)은 박진영의 서자로 태어났다. 1639년(인조 17) 군기시 주부로 재직하며 군기(軍器)와 성곽의 보수에 공을 세웠으며 화약 제조법에도 재주를 보였다...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황암(篁巖).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화(朴精華)이고, 할아버지는 박유(朴㽔)이다. 아버지는 박희삼(朴希參)이며, 어머니는 강신범(姜信範)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침(李琛)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이일민(李逸民)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다. 아들은 박율(朴...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맹사(孟思), 호는 송암(松嵓). 단종(端宗) 때 홍문관 저작을 지낸 추호(秋湖)박앙(朴盎)이 수양 대군(首陽大君)의 왕위 찬탈 후 벼슬을 버리고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平廣) 마을에 은거한 후, 그 후손들이 세계를 잇고 있다. 고조할아버지는 박기명(朴基命)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박정화(朴精華)이며, 할아버지는...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실재(實哉), 호는 광서(匡西). 증조할아버지는 무안 현감(務安縣監)을 지낸 박유(朴榴)이고, 할아버지는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으로 추증된 박종수(朴宗秀)이다. 아버지는 형조 판서(刑曹判書)로 추증된 박오(朴旿)이며, 어머니는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된 이경성(李景成)의 딸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부인은 어응해(魚應...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있는 박진영 장군의 불천묘 및 유품. 박진영(朴震英)[1569~1641]은 조선 인조(仁祖) 때의 장군으로 자(字)는 실재(實哉), 호(號)는 광서(匡西)이다. 아버지는 박오(朴旿)이다. 어려서부터 재주와 식견이 남달랐고 기개 또한 대단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훈경(薰卿), 호는 만성(晩醒). 7대조는 병조 참판을 지낸 박진영(朴震英)[1569~1641]이다. 아버지는 박준번(朴俊蕃)이고, 어머니는 최규찬(崔奎燦)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와 곽심춘(郭心春)의 딸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이현빈(李賢賓)의 딸 고성 이씨(固城李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강창범(姜...
-
조선 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천지(天支), 호는 오졸재(迃拙齋). 고조할아버지는 행산(杏山)박세균(朴世均)이고, 아버지는 통사랑(通仕郞) 박돈인(朴敦仁)이다. 박한주(朴漢柱)[1459~1504]는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豊角面)차산(車山)에서 태어났다. 함안 사람인 안효문(安孝文)의 딸에게 장가들어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우곡...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방어산성(防禦山城)의 정확한 초축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우왕(禑王) 대 왜구와의 전투 기사로 보아 늦어도 고려 말 이전에 성곽이 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라가야에 의해 축성되어 여항산성(艅航山城)과 함께 함안 지역 서쪽 경계를 방어하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고려 시대에는 입보용 산성으로 기능...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 소(所)와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중기까지 지속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부곡은 총 431곳, 경상도 지역은 240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3곳의 부곡이 있었고, 칠원현에는 1곳의 부곡이 있었다. 본산 부곡(本山部曲)은 함안군의 3곳 가운데...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봉산산성(蓬山山城)은 함안 포덕산성(咸安飽德山城) 및 여항산성(艅航山城)과 연계하여 함안 지역을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세 봉우리를 독립적으로 두르는 내성은 아라가야에 의해 축조되었으나 외성의 축조 시기는 알 수 없다. 삼봉산의 북쪽 능선에 외성의 성벽을 쌓지 않았다는 점과 성벽의 축조 수법이 전혀 다...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봉성리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일대에 펼쳐진 넓은 충적 대지의 중심부에 남북으로 열을 지어 4기가 분포한다.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와, 1997년에 아라가야 향토사 연구회에서 실시한 함안 고인돌 지표 조사에서 4기가 확인되었다...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및 조선 시대 유적. 봉성리 유적(鳳城里遺蹟) 중 조선 시대의 열녀비는 1866년(고종 3)에 건립된 것이다. 당시 함안 봉성동에 살고 있던 한덕조의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행적[남편의 병 간호]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이다. 함안~가야 간 도로 확장·포장 공사로 인해 2003년 8월 11일부터...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군. 봉성리 청동기 시대 무덤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544-1답, 봉성리 290번지, 봉성리 310답~329답에 자리한다.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일대의 충적 대지에 대규모 군집을 이루며 열상으로 위치한다. 봉성리 청동기 시대 무덤군은 지표 조사와 시굴 조사를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정치, 군사적인 목적으로 운용되던 조선 시대의 통신 제도. 봉수(烽燧)란 횃불과 연기로서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를 중앙에 알리는 군사 통신 제도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의 군사 통신 수단을 대표하는 것으로 조선 왕조 500여 년간 국가적인 기간 통신망으로 운영되었다. 횃불과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약정된 신호 전달 체계에 따라 본읍(本邑)과...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오곡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 소(所)와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중기까지 지속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부곡은 총 431곳, 경상도 지역은 240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3곳의 부곡이 있었고, 칠원현에는 부곡 부곡(釜谷部曲) 1곳이 있었다. 『동전고(東典考)』에...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산인면 부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삼한 시대의 생활 유적과 삼국 시대의 고분 유적. 부봉리 유적군(釜峰里遺蹟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산서리 137번지와 산인면 부봉리 산119번지, 부봉리 산133번지, 부봉리 산141번지, 부봉리 산146번지에 위치한다. 함안천과 운곡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동쪽 능선에 해당하고, 함안군 산인면...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북촌리 고인돌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함읍 우체국 내에 위치한다. 지형적으로는 함안천을 따라 형성된 곡간 평야(谷間平野)에 입지한다. 함안천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 남강에 유입되는 하천으로, 함안천 주변에는 광정리 고인돌군과 괴산리 고인돌, 봉성리 고인돌군 등의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하천을 따라...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출토되는 아라가야를 대표하는 토기. 불꽃무늬 굽구멍 토기[화염문 투창 토기]란 5세기 대 함안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유행한 함안 양식 토기의 한 종류이며, 화염형 굽구멍 토기라고도 불린다. 가야 토기 중 가장 독특한 굽구멍 형태를 지니고 있는 불꽃무늬 토기는 주로 4세기 후반에 처음 출연하여 6세기 전반까지 아라가야와 그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제품,...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사내리 덕전 고분군(沙內里德田古墳群)은 백새 마을·덕전 마을 배후에 위치한 삼봉산[271m]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들 전역과 주변 농경지, 가야리 선왕동까지 분포한다. 일찍부터 많은 도굴로 인해 알려지기는 하였으나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에서 고분군...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의 유적.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사내리 895번지에 위치한다. 함안 사내 일반 산업 단지 조성 사업 부지 발굴 조사 결과 구석기 문화층과 청동기 시대의 환호(環濠) 및 돌널무덤[석관묘], 수혈, 조선 시대의 분묘 등이 확인되었다. 구석기 시대 문화층 조사에서 석영제 몸돌과 격지 석기,...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서촌리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417-2번지 일대 상동촌 마을 앞 논 경작지와 상동촌 마을과 아래 동촌 마을 사이의 과수원에 위치하고 있다. 함안천이 남강에 합류하는 부근의 구릉 사이 평야에 자리한 고인돌군으로 해발 약 15m 내외의 낮은 저지에 입지하고 있다. 1995년에 창원 대...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인류의 출현으로부터 문자에 의한 역사 기록이 남겨지기 이전까지의 시대. 인류 문명에 대한 가장 분명한 기준은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을 남겼느냐이다. 즉,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여 기록을 남기기 전까지의 시대를 선사라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선사는 지역이나 국가마다 그 시간의 폭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기원후인 삼한(三韓) 때 처음...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는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흙이나 돌로 축조된 관방 시설. 우리나라의 성곽(城郭)은 축성 재질의 차이로 토성과 석성 그리고 토석 혼축성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입지에 따라 평지성과 산성, 평지를 포함한 산지성으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에는 이른 시기부터 많은 성곽들이 축조되었다. 성곽은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하여 지리적 요충지에...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덕남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성지봉 산성(城址峯山城)은 아라가야 시기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낙동강과 창원 북면 일원에서 진입하는 적을 통제하기 위하여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덕남리 덕촌 마을 남서쪽에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게 뻗은 성지봉과 북서쪽 봉우리의 9부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
-
조선 후기 함안에서 활동한 유학자. 성호정(成好正)[1589~1639]은 함안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과거 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일평생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남명(南冥)조식(曺植)의 제자인 황암(篁巖)박제인(朴齊仁), 내암(來庵)정인홍(鄭仁弘), 한강(寒岡)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남명학을 계승하였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상부(尙夫),...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 소(所)와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중기까지 지속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부곡은 총 431곳, 경상도 지역은 240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3곳의 부곡이 있었고, 칠원현에는 1곳의 부곡이 있었다. 소삼 부곡(召參部曲)은 함안군의 3곳...
-
통일 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군사 조직. 소삼정(召彡停)은 통일 신라 시대 지방 군사 조직인 십정(十停)의 하나이다. 십정은 통일 이후 확대된 지방 체제의 변화에 따라 9주 5소경이라는 지방 제도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설치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40 잡지(雜志) 제9 직관하(職官下) 십정...
-
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라에 의해 아라가야가 멸망한 후 신라에 의해 소삼현(召彡縣)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4 지리1 강주(康州) 함안군 조에 "함안군은 법흥왕(法興王)이 많은 군사로 아시량국(阿尸良國)[아나가야(阿那伽耶)라고도 한다] 그 땅을 군(郡)으로 삼았다. 경덕왕이 이름...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송정리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 886-4번지에 위치한다. 산인천과 입곡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남쪽에 형성된 충적 대지 및 구릉 끝자락에 분포한다.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 일대의 고인돌은 1997년 아라가야 향토사 연구회의 지표 조사에 의해 8기가 확인되었으며, 북쪽으로 인접한...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수곡리·모로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수곡리 수곡 고분군(藪谷里藪谷古墳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수곡리 수곡 마을의 북동쪽 구릉에 분포하며, 수곡 안길의 동쪽에 위치한다. 지표 조사를 통해 알려진 가야 시대의 고분으로, 아직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분군의 분포 위치와 규모에 따라 수곡리 수곡 고분군Ⅰ과 수곡리 수곡 고분...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구석기 시대가 끝나는 시기부터 청동기 시대가 시작하는 기간까지 토기와 간 돌 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신석기 시대란 구석기 시대가 끝나는 약 1만 년 전부터 청동기 시대가 시작하는 기원전 1000년 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지금부터 1만 년 전쯤부터 지구의 기후는 따뜻해져 현재와 비슷하게 되었다. 이를 후빙기[Holocene]라고 한다. 수렵과 채집...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던 가야 시기 고대 국가. 삼국 시대 함안 지역에 위치한 고대 국가의 이름은 기록에 따라 서로 다르다. 이러한 현상은 함안 지역을 포함한 가야에 속한 나라들의 경우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가야 주체의 역사서를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함안 지역 가야의 경우 현재 함안 지역민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흔히 부르는 국명이 아라가야(...
-
한국 고대사에서 가야에 속했던 여러 나라 가운데 한 나라이자, 가야 제국 중에서도 강력했던 아라가야의 문화사적 발달 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아라가야(阿羅伽耶)는 발전 단계로 볼 때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는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에 안야국(安邪國)으로, 후기는 『일본서기』에 안라국(安羅國)으로 나타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아라...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 시대 옛 지명. 가야 시기 함안의 국명은 기록에 따라 다양한데, 『삼국유사(三國遺事)』 오가야 조에 나오는 아라가야(阿羅伽耶)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외 『삼국유사』에 아야가야(阿耶伽耶),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아시량국(阿尸良國)·아나가야(阿那加耶), 『삼국사기』 열전에 아라국(阿羅國), 『삼국지(三國志)』에 안야국(安邪國), 광개...
-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가야 시기의 고대 국가. 함안군의 옛 이름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아시량국(阿尸良國)·아나가야(阿那加耶)·아라국(阿羅國),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아라가야(阿羅伽耶)·아야가야(阿耶伽耶),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안야국(安邪國), 광개토대왕 비문과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안라(安羅) , 『양직 공도(梁職貢圖』의 전라(前...
-
삼국 시대 아라가야에서 활동한 가야의 외교 사신. 남가라[가락국]와 탁순국[현 경상남도 창원시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후기 가야 13국 중의 한 나라]이 신라에 멸망함에 따라 아라가야는 신라의 진출을 저지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현이나사(阿賢移那斯)는 가와치노아타히[하내직(河內直)] 및 좌로마도(佐魯麻都)와 함께 아라가야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 후기 간행한 『정충록』. 『정충록(精忠錄)』은 중국 남송(南宋) 초 금(金)나라와의 전쟁을 주장하다 30여 세 젊은 나이로 주화파(主和派)인 승상 진회(奏檜)에게 사사된 악비(岳飛)[1103~1141]의 사적과 저술 및 후인의 찬문(讚文)을 모아 1501년 명나라 진수 절강 태감(鎭守浙江...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안곡산성(安谷山城)은 칠원산성(漆原山城)과 연계하여 창원, 마산 방면에서 가야읍으로 진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아라가야에 의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성이지만 동 시기에 축조되었는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 산247번지에 위치한다....
-
조선 전기 함안 지역에서 은거한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관지(灌之), 호는 취우정(聚友亭). 안축(安軸)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안해(安該)이고, 외할아버지는 성산 이씨이윤창(李胤昌)이다. 아버지는 안존도(安尊道)이며, 부인은 권순(權舜)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아들은 안인로(安仁老)·안의로(安義老)·안덕로(安德老)이고, 사위는 오수정(吳守貞)·박윤수(朴允秀)...
-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아라가야가 신라와 백제의 가야 지역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개최한 국제회의. 고구려의 남진 정책과 백제와 신라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가야 제국은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광개토대왕 이래의 고구려 남진 정책은 장수왕에 이르러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한반도 남부의 백제와 신라, 가야는 고구려에 대비하기 위...
-
가야 시대 아라가야 지배자의 호칭. 안라 차한기(安羅次旱岐)는 안라 한기(安羅旱岐)와 비교될 수 있다. 한기는 군장(君長)의 의미이므로 차한기는 군장 아래의 지배층으로 볼 수 있으며, 차한기는 한기층의 분화로 이해될 수 있다. 한기는 왕 혹은 한기로 호칭되었으며, 그 아래에 차한기·하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라 왕의 존재가 확인되므로 안라 왕 아래에 차한기,...
-
가야 시대 아라가야 지배자의 호칭. 안라 하한기(安羅下旱岐)는 안라 한기(安羅旱岐)와 비교될 수 있다. 한기는 군장(君長)의 의미이므로 하한기는 군장 아래의 지배층으로 볼 수 있으며, 한기층의 분화로 이해될 수 있다. 한기는 왕 혹은 한기로 호칭되었으며, 그 아래에 차한기와 하한기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라 왕의 존재가 확인되므로 안라 왕 아래에 차한기, 하한기...
-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가야 시기 고대 국가. 안라국(安羅國)은 변진 안야국에서 발전한 가야 시기 함안 지역 고대 국가로 광개토대왕 비문과 『일본서기(日本書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유력 정치 집단이었다. 『일본서기』에 언급된 가야 시기 13개국 명칭 가운데 안라(安羅)가 나오고, 광개토대왕 비문에도 '안라'가...
-
400년 고구려 남정 과정에 참여한 안라국의 군대. 안라인수병(安羅人戍兵)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안라인수병을 고유 명사로 보거나, 독립된 구(句)로 '안(安)'을 술어로 해석하는 경우로 나뉜다. 전자는 왜의 별동대(別動隊) 설, 백제의 부용병(附庸兵) 설, 신라와 대립하고 있던 안라가 임나가라·왜와 함께 고구려·신라와 전쟁을 벌였다는 설, 고구려의 원군으로 보는 설 등이...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사심(士心), 호는 모헌(茅軒). 순흥 안씨 제1파 문성공(文成公)안향(安珦)의 후손으로, 직장공파 파조안수(安琇)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안창공(安昌恭)이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와 1521년(중종 16) 신사무옥(辛巳誣獄)으로 집안에 닥친 화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부인의 고향인 함안군 산인...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순흥(順興). 할아버지는 안공진(安公軫)이다. 아버지는 감찰관을 지낸 안민(安慜)이며, 어머니는 최운철(崔雲喆)의 딸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안신갑(安信甲)[1544~1597]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아버지 안민이 왜장 구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의 대병과 김해에서 전투를 치르다 전멸하자 부친...
-
변한 시기 안야국 지배층의 호칭. 안야 축지(安邪踧支)의 '안야'는 변진 안야국을 가리키며, '축지'는 지배층의 호칭을 뜻한다. 월지국(月支國)[목지국(目支國)]을 다스리는 진왕(辰王)을 우대하는 호칭 중에 안야 축지가 포함되어 있다. 안야 축지는 변진 안야국의 지배층 즉 거수(巨帥)로서, 축지는 신지(臣智)와 같은 의미를 지닌 지배층의 호칭이다. 진왕은 월지...
-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초기 국가 시대 변한의 소국. 삼한은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하기 이전 시기에 있던 마한·진한·변한을 합해 칭하는 것으로, 『삼국지(三國志)』에 의하면 경기도·충청도·전라남도 지역에는 마한, 낙동강을 경계로 동쪽에는 진한, 서남부에는 변한이 있었다. 이들 지역에는 각각 다양한 고대 국가들이 존재하였다. 삼한의 시작에 대해 일반적인 견해로는 기원전 1...
-
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여형(汝衡), 호는 도천(陶川)·삼수헌(三秀軒). 할아버지는 안정옥(安鼎鈺)이고, 아버지는 안효중(安孝中)이다. 첫 번째 부인은 강익흠(姜益欽)의 딸 진양 강씨(晉陽姜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조성섭(趙性燮)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이다. 3남 4녀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안철준(安哲濬), 둘째 아들은 안극준(安克濬)...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장(子長), 호는 도곡(道谷). 부인은 조역(趙墿)의 딸 함안 조씨(咸安趙氏)로,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안수해(安壽海), 둘째 아들은 안수업(安壽嶪), 막내아들은 안수석(安壽石)이며, 사위는 이경번(李景蕃), 조징헌(趙徵獻), 허영(許英)이다. 안정(安侹)[1574~1636]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언우(彦優), 호는 죽계(竹溪).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안향(安珦)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 안창공(安昌恭)이 서울에서 함안으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안공진(安公軫)이고, 어머니는 안택(安宅)의 딸 광주 안씨(廣州安氏)이다. 안희(安憙)[1551~1613]는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태어났...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어변갑(魚變甲)[1381~1435]은 함종 어씨(咸從魚氏) 중흥조로 일컬어진다.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자선(子先), 호는 면곡(綿谷). 시조는 어화인(魚化仁)으로, 고려명종 때 중국남송에서 동래(東來)하여 평안도 함종현(咸從縣)을 세거지를 삼았다. 그 후 고조할아버지 어준량(魚遵亮)이 진주로 이거하였다. 아버지 어연(魚淵)이...
-
조선 전기 함안 지역에 연고를 둔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자익(子益), 호는 서천(西川). 증조할아버지 어연(魚淵)이 이운길(李云吉)의 딸 함안 이씨(咸安李氏)와 혼인하며 함안군 산인면 안인 마을로 옮겨 와서 살았다. 할아버지는 면곡(綿谷)어변갑(魚變甲)이다. 아버지는 문효공어효첨(魚孝瞻)이며, 어머니는 좌의정 박은(朴訔)의 딸이다. 어세겸(魚世謙)[...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서남부 지역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의 관아나 역(驛)의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의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만종(萬從), 호는 구천(龜川). 시조는 고려명종 때 호장 동정(戶長同正)을 지낸 어화인(魚化仁)이다. 할아버지는 함안 입향조 월정(月亭)어연(魚淵)이다. 아버지는 조선태종(太宗)·세종(世宗) 때의 명신이자 학자인 면곡(綿谷)어변갑(魚變甲)이고, 어머니는 고려공민왕 때 보문각 직제학을 지낸 성사제(成思齊)의 딸 창녕...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함안면 강명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여항산성(艅航山城)은 아라가야가 남해를 조망하기 위해서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성곽을 독립적으로 쌓았으나 배치 상태로 보아 동일 시기에 성곽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여항산 및 북쪽 봉우리 정상부와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700m 지점의 산 정선부를 두르는...
-
경상남도 함안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함안 지역은 경상남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면서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두 강의 유역에는 넓은 충적 평야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지리적 조건에서 함안 지역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하였다. 함안 지역에서 사람이 산 흔적은 구석기 시대부터 있다. 2003년 칠원 용산리와 가야 도항리 일대에서...
-
고려~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의 교통로상에 세워진 관영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고려 성종 대에 역참제가 구체화되어 전국 22도(道) 525개소에 역(驛)이 만들어졌다.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조선 후기에는 모든 역승(驛丞)이 찰방(察訪)으로 승격되었다. 역은 주로 중앙과 지방 사이의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물자를 운송하며,...
-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이령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에 보이는 주요 도로망은 관아에서 동쪽으로 운곡(雲谷)을 지나 창원 경계까지 10리[약 3.93㎞]이고, 서쪽으로 창인역(昌仁驛)을 지나 함안 경계까지가 10리이다. 남쪽으로 갈치(葛峙)을 지나 창원 경계까지가 7리[약 2.75㎞]이고, 북쪽으로 송치(松峙)를 지나...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예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예곡리 야촌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예곡리 야촌동구름보들 일대에 자리한다. 고인돌군은 광려천 변의 충적지에 위치하며, 광려천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여러 곳에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에 의해 알려졌으나 발굴 조사...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오곡리 부곡 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오곡리 가마실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오곡리 부곡 마을 앞 경작지에 위치한다. 함안 지역 청동기 고인돌군 중 광려천 주변에 분포하는 고인돌로, 동쪽에는 남에서 북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되는 광려천이 흐르고 있다. 주변에는 오곡리 여우실 고인돌군, 용정리 석전 고인돌군, 예곡리 야...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오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및 집자리. 오곡리 가마실 유적은 1997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청동기 시대의 무덤 및 집자리 유적으로, 원형의 집자리 및 돌덧널[석곽(石槨)] 형태의 고인돌 하부 구조가 발견되었다. 발굴 조사로 확인된 집자리는 소위 송국리형(松菊里型) 집자리로 규모는 5m 내외이며, 집자리 중앙에 작...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오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오곡리 여우실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오곡리의 구릉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남북으로 이어진 중부 내륙 고속 도로가 개통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광려천이 곡류하면서 흘러가고 있다. 함안 지역의 청동기 시대 고인돌은 함안군 군북면의 석교천, 함안면의 함안천, 칠원읍의 광려천을 중심으로 하천 주변에...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오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무덤 및 집자리와 삼국 시대의 고분 유적. 구마 고속 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1994년 5월 19일부터 같은 해 7월 31일까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고인돌 1기와 청동기 시대 집자리 4동, 그리고 삼국 시대의 덧널무덤[목곽묘] 15기가 확인되었다. 특히 집자리는...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태원(太源), 호는 죽유(竹牖)·죽계(竹溪). 할아버지는 전의 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彦毅)로 퇴계(退溪)이황(李滉)의 숙부 송재(松齋)이우(李堣)의 사위이다. 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이며, 어머니는 취우정(聚友亭)안관(安灌)의 딸이다. 부인은 이황의 처남 몽재(蒙齋)허사렴(許士廉)의 큰딸로, 이황에게는 처질서가 된...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옥렬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도기 가마터. 옥렬리 도기 가마터는 조선 시대에 운영되었던 도기 가마터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에는 많은 도기 가마터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중 분포가 많은 곳 가운데 하나가 옥렬리이다. 『함주지(咸州誌)』 총담조(叢談條)에 "본 군에는 본래 옹기 굽는 사람이 없었다. 직제학 어변갑(魚變甲)이 진주 목사와 친...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물 채집지. 용산리 구석기 채집지(龍山里舊石器採集地)는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 427번지에 위치한다. 용산 고분군이 있는 동쪽 비탈 하단부에 해당한다. 용산리 구석기 채집지는 운서천과 칠원천이 광려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으로 구석기에서 삼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에 걸친 유적이 분포하는 곳...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칠서면 무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 쇠많이 마을 일대와 칠서면 무릉리쇠많이들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운서천이 광려천과 합수하는 지점으로 그 배후로는 넓은 들이 형성되어 있다. 고인돌은 운서천의 남쪽 경작지 일대에 분포하는데, 용두산[109.5m] 아래의 쇠많이 마을이 중심지이다....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산성. 용성리 산성(龍城里山城)은 문헌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무명 성으로, 함안군·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함안군』[2006]을 작성하기 위한 조사 과정에서 새로이 확인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장군 망우당(忘憂堂)곽재우(郭再祐)[1552~1617]가...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용정리 석전 고인돌군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정리 석전 마을의 좁고 긴 곡간 평야(谷間平野)에 자리하는데, 곡간의 길이 방향을 따라 고인돌 10기가 분포하고 있다.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에 의해 알려졌으나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고인...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에 있는 구석기 시대 유적. 구석기 시대는 대체로 전기[400만 년 전~12만 5천 년 전]와 중기[12만 5천 년 전~4만 년 전 혹은 3만 5천 년 전], 후기[4만 년 전 혹은 3만 5천 년 전~1만 년 전]로 나눌 수 있다. 구석기인들은 뗀석기와 뼈, 나무, 연모 등을 만들어 사냥을 하거나 식량을 채집하면서 살림을 꾸렸고, 강가나 언덕...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토기 가마터.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 215번지 우거 마을 남동쪽 구부렁골에 위치하고 있다. 유적 주변에는 천제산에서 뻗어 내린 낮은 능선과 작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능선 사이에서는 질날늪, 대평늪과 같은 강가의 배후 습지가 확인된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국립 김해 박물관에서 세 차례에 걸쳐...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향(鄕)은 부곡(部曲, 소(所)와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지속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향은 총 153곳, 경상도 지역은 43곳이었다. 현재 함안 지역에는 칠원읍에 우질포향(亏叱浦鄕) 1곳이 있었다. 이들은 군현(郡縣)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조·포·역의 3세를...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칠서면 회산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유원리 유하 고분군(柳原里柳下古墳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장암천과 광려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양쪽 배후 구릉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에 의해 알려졌으나 발굴 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조개더미. 유원리 조개더미는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 보고서』-함안군의 선사, 고대 유적을 간행하기 위해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당시 묘역 조성 과정에서 노출된 조개더미를 확인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 산10...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에 있는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토기 가마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산168번지 일대의 세실 소류지 북동쪽 곡부 하단부에 위치하며, 산 정상부에서 소류지 수계가 인접한 계곡 하단부까지 확인되고 있다. 유현리 토기 가마터는 2000년에 아라가야 향토사 연구회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 삼국 시대 토기편들이 확인되어...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역사적·예술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 가운데 일정한 형태를 지닌 유형의 문화유산.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문화재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민족 문화유산'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말 속에는 학문, 예술, 사상, 종교 등 사람의 행위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문화(文化)'라는 말과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을 지칭하는 '재(財)'라...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판서를 역임한 윤수(尹秀)이고, 어머니는 밀직부사를 역임한 박부(朴琈)의 딸 무안 박씨(務安朴氏)이다. 형은 윤길손(尹吉孫)으로 충선왕(忠宣王) 때 상호군을 역임하였다. 아들은 윤환(尹桓), 윤자(尹樜), 윤장(尹樟), 윤화(尹樺), 윤공(尹椌)인데, 윤환은 공민왕(恭愍王) 때 문하시중을 역임하였다. 윤길보(尹...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가야읍 묘사리에 있는 초기 국가 시대~삼국 시대의 복합 유적군. 윤내리·묘사리 유적군(輪內里·苗沙里遺蹟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 윤내 마을과 가야읍 묘사리 묘동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낮은 구릉지 일대와 마을, 경작지 일대에 위치한다. 유적 분포지는 천제산에서 북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린 능선이 함안군 법수면 윤내리와 가야읍...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윤수(尹秀)는 벼슬이 군부판서(軍簿判書)·응양군 상호군(鷹揚軍上護軍)에 이르렀다. 고려 후기 응방을 통하여 진출한 대표적 인물이며 권세가이다.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무인 집권기 강도(江都)에서 처형된 윤양삼(尹養三)이다. 아들은 윤길손(尹吉孫)과 윤길보(尹吉甫)이다. 윤수는 칠원현[현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서 태어났다...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증조할아버지는 충렬왕(忠烈王) 때 응방(鷹坊)의 관계자로서 원나라에 자주 왕래했던 윤수(尹秀)로 전한다. 칠원 윤씨(漆原尹氏) 족보에는 윤수의 아들로 윤길손(尹吉孫), 윤길보(尹吉甫), 윤계유(尹繼葇) 등 셋을 등재하고 있는데, 윤수상은 윤계유의 손자로 올라 있다. 윤수상은 좨주(祭酒)를 역임하는 것으로 보아 과거를 통해 관료로...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윤외리 고분군(輪外里古墳群)Ⅰ은 함안 분지의 북편에 있는 해발 30m 정도의 낮은 구릉 위에 위치한다.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사행해 흘러드는 남강(南江)과는 불과 1.5㎞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으며, 법수 초등학교의 북서쪽에 있는 능선 위에 분포하고 있다. 법수 초등학교에서 직선거리로 150m 정도 떨어진...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주물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윤외리 고분군(輪外里古墳群)Ⅱ는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 윤외 마을, 윤산 마을, 새머골 마을 배후의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1991년 발굴 조사 당시 함안군 법수면 윤외리 윤외 마을, 윤산 마을 배후의 구릉지 일부에 걸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후 『문화 유적 분포 지도-함안군』...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무신. 윤자당(尹子當)[?~1422]은 고려 후기 벼슬길에 나아가 조선 건국 후 병조 전서(兵曹典書)를 역임하던 중 1400년(정종 2) 발생한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 4등에 봉해졌다. 태종 대에는 경상도 병마도절제사 등 외직을 역임하면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세종 초에는 하성절사(賀聖節使) 등을 역임하며 외교...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고위 관료이자 공신. 윤환(尹桓)[?∼1387]은 고려충숙왕 대부터 우왕 대에 이르기까지 다섯 왕을 섬겼고, 찬성사, 좌정승, 문하시중 등 고위직을 역임하는 한편 두 차례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고향 칠원에 큰 기근이 일어나자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빈민 구제에 힘썼다. 본관은 칠원(漆原). 할아버지는 고려충렬왕 때 군부판서(軍簿判書)를 역임한 윤수(...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이개지의 묘. 이개지 묘(李介智墓)를 비롯하여 모두 7기의 묘가 모여 있으며, 5기의 묘비가 있다. 묘역 가장 위쪽에 모촌(茅村)이정의 묘가 있다. 이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여함으로 조식(曺植)의 문하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함안 군수 유숭인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의병을 모집...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이경무의 문집. 이경무(李景茂)[1609~1679]의 본관은 여주이며, 자는 여실(汝實), 호는 만묵당(晩默堂)이다. 함안 두곡촌[지금의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두곡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경무의 고조할아버지가 함안으로 이주하였고, 아버지 이익형(李益亨)[1573~1633]은 두곡촌에 정착하였는데, 당시 북인 세력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성산·광평(星山·廣平). 자는 여윤(汝允), 호는 충순당(忠順堂). 고조할아버지는 함안 입향조 병조 판서 정무공(靖武公)이호성(李好誠)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봉사공(奉事公)이처인(李處仁)이다. 할아버지는 해남공이순조(李順祖)로 무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아버지 사직공이사후(李士詡)도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냈다....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사성(師聖), 호는 근재(覲齋). 할아버지는 재령 이씨(載寧李氏)함안 입향조 모은(茅隱)이오(李午)이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이개지(李介智)이며, 어머니는 목사(牧使) 하경리(河敬履)의 딸 진주 하씨(晋州河氏)이다. 이맹현(李孟賢)[1436~1487]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태어났다. 1456년(세조...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수평(受平), 호는 모계(茅溪). 고조할아버지는 승사랑(承仕郞)을 지낸 이이백(李而柏)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형(李炯)이며, 할아버지는 이몽종(李夢鍾)이다. 아버지는 이재종(李載宗)이며, 어머니는 성창우(成昌遇)의 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부인은 김탕(金宕)의 딸 상산 김씨(商山金氏)로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아...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양초(養初), 호는 매죽헌(梅竹軒). 고조할아버지는 훈련 봉사(訓鍊奉事)를 지낸 이처인(李處仁)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해남 현감(海南縣監)을 지낸 이순조(李順祖)이며, 할아버지는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인 이사후(李士詡)이다. 아버지는 조식(曺植)과 이황(李滉)에게 수학하고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낸 황곡(篁谷)이칭(...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이방실(李芳實)[? ~ 1362]은 고려공민왕 대 무신으로 대호군, 추밀원 부사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359년(공민왕 8) 홍건적의 제1차 침입에서 홍건적을 격퇴하여 공을 세웠고, 1361년의 2차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되었으나 총병관(摠兵官)인 정세운(鄭世雲)·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 등과 함께 20만 대병으로 적을 대파하고 개경을 수...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군겸(君兼), 호는 흘봉(屹峯). 재령 이씨(載寧李氏)함안 입향조 모은(茅隱)이오(李午)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후덕옹(厚德翁)이재기(李載祺)이며, 아버지는 상우재(尙友齋)이경배(李慶培)이다. 이빈망(李贇望)[1694~1773]은 어려서 재종숙 모계(茅溪)이명배(李命培)에게 수학하였으며, 23세 때 밀암(密庵)이...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공직(孔直), 호는 쌍봉(雙峯).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이허겸(李許謙)이다. 이허겸의 17세손인 경상 도사(慶尙都事) 이계운(李啓耘)이 함안 평광(平廣)[현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 평광 마을]에 터를 정해 입향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이관(李慣)이고, 할아버지는 이호맹(李虎孟)이다. 아버지는 자...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징(汝澄), 호는 갈촌(葛村). 재령 이씨(載寧李氏)함안 입향조 모은(茅隱)이오(李午)의 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제학을 지낸 율간(栗澗)이중현(李仲賢)이고, 아버지는 이경성(李景成)이다. 바로 위의 형이 모촌(茅村)이정(李瀞)이다. 이숙(李潚)[1550~1615]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서 태어났다...
-
조선 전기 함안 지역에 은거한 학자. 이오(李午)는 고려 왕조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고려의 신하로서 의리를 지킬 뜻을 드러낸 후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본관은 재령(載寧). 호는 모은(茅隱). 할아버지는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이소봉(李小鳳)이고, 아버지은 종부령(宗簿令)을 지낸 이일선(李日善)이다. 부인은 전적을 지낸 남의(南毅)...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강명리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문신. 이정(李瀞)[1541~1613]은 조선명종, 선조, 광해군 연간에 경상 우도 지역에서 활약한 학자이다. 남명(南冥)조식(曺植)에게 수학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조식의 선양 사업에 힘썼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여함(汝涵), 호는 모촌(芧村). 증조할아버지는 병조 참지(兵曹參知)를 지낸 이중현(李仲...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여선(汝宣), 호는 황곡(篁谷). 할아버지는 해남 현감을 지낸 이순조(李順祖)이다. 아버지는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지낸 이사후(李士詡)이고 어머니는 임득번(林得蕃)의 딸 은진 임씨(恩津林氏)이다. 부인은 박윤수(朴允秀)의 딸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이칭(李偁)[1535~1600]은 경상남도 함...
-
삼국 시대 아라가야[안라국]에 주재했던 왜의 사신. 임나 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최근에는 고대의 일본이 일정 기간 동안 한반도 남부 지역, 즉 가야를 지배했다는 임나 지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는 거의 없다. 가야에 머물렀던 왜인을 '왜의 사신', 혹은 '왜신'으로서 교역을 목적으로 가야에 주재했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리고 왜신이 머물렀던 곳이 아라가야...
-
고대 삼국 시대 아라가야를 대표하여 사비 회의에 참여한 아라가야의 지배 세력. 이탄해(夷呑奚)는 아라가야(阿羅伽耶) 사람으로 차한기(次旱岐)라는 것으로 보아 지배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라가야의 지배 세력에 대한 호칭은 왕, 국주(國主), 대인(大人), 차한기, 하한기(下旱岐) 등이 았었다. 이탄해는 안라국(安羅國)[아라가야]의 차한기로서 백제성왕(聖王)이...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
-
조선 전기 함안 지역으로 이거한 무신. 본관은 성산·광평(星山·廣平). 호는 동산(東山). 광평군(廣平君)이능(李能)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해(李晐)이고, 아버지는 이영선(李寧善)이다. 후손들이 주로 함안 지역에서 세거해 오고 있다. 현손인 황곡(篁谷)이칭(李偁)과 5세손 매죽헌(梅竹軒)이명호(李明怘)가 학문으로 명망이 높았다. 이호성(李好誠)[1397~1467]...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사장(士長), 호는 양졸정(養拙亭).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공도공(恭度公)이문화(李文和)의 8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소고(嘯皐)이원성(李元盛)이며, 아버지는 인산군(仁山君)이인(李寅)이다. 이휴복(李休復)[1568~1624]은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외삼촌인 황암(篁巖)박제인(朴齋仁)에게 『소학...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이휴복에게 내린 진무공신 3등 책훈 교서. 이휴복(李休復)[1568~1624]의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자는 사장(士長), 호는 양졸정(養拙亭)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망우당(忘憂堂)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순천 군수였던 이휴복이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논공행상(論功行賞)...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는 월촌...
-
일본 열도에서 찾은 고대 삼국 시대 아라가야 사람과 문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 교류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가야(伽耶) 시기에 이르러 그 관계는 더욱 확대되었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선진 문화뿐 아니라 가야의 문화가 일본 열도로 전파되었다. 그러한 흔적들은 현재 일본 열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야 중에서도 아라가야(阿羅伽耶)의 문화도 쉽게...
-
임진왜란 때 함안 지역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벌어진 전투. 임진왜란의 초기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전쟁 발발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윤 11월에 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중국 측의 사신이 파견되어 왔을 때 영의정 등이 왕에게 올린 보고문이 주목된다. 중국에 보내기 위하여 작성된 이 보고문은 당시 조선의 처지에서 전황에 대한 허위나 가감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소포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장지리 고분군(長池里古墳群)·소포리 고분군(小浦里古墳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머정골을 통하여 고개를 넘어 장지리 남산 마을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 분포한다. 1995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아라가야 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 조사에서 장지리 남산 고분군과 소포리 갓먼당 고분군,...
-
삼국 시대 왜에서 아라가야에 파견했던 사신들. 재안라 제왜신(在安羅諸倭臣)은 왜가 아라가야(阿羅伽倻)에 파견했던 사신들로서 교역을 위해 아라가야에 주재하였다. 또한 아라가야의 독자성 유지를 위한 대외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재안라 제왜신'이라는 기록은 『일본서기(日本書紀)』흠명기 15년(554) 12월조에 나타난다. 이들은 안라[아라가야]에 있었던 왜의 사신으로서 일본부...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 있는 신석기 시대에서 삼국 시대까지의 조개더미 유적. 조개더미[패총(貝塚)]는 인류가 먹을 수 있는 재료와 생활 도구를 만들기 위해 바다와 강가, 삼림에서 원료를 확보하여 이용, 가공, 활용한 후 버려진 찌꺼기가 한 장소에 덩어리를 이루며 형성된 유적이다. 조개더미를 구성하는 찌꺼기는 조가비와 어류, 조류, 포유류 등이 많으며 이 가운데에는 생활에...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부인은 흥양 이씨(興陽李氏)이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큰아들 조동호(趙銅虎)는 군수를 지냈고, 둘째 아들 조금호(趙金虎)는 첨지(僉知)를 지냈으며, 막내아들은 조야호(趙野虎)이다. 조려(趙旅)[1420~1489]는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서 태어났다. 1453년(단종 1) 진사시에...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반구정(伴鷗亭). 고조할아버지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이다. 아버지는 형조 참판으로 추증된 조정언(趙庭彦)이고, 어머니는 만호(萬戶)이희조(李希祖)의 딸인 성산 이씨(星山李氏)이다. 조방(趙垹)[1557~1638]은 이칭(李偁)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조목(趙穆)·...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재안(在安), 호는 금계(錦溪).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조계호(趙啓浩)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조용표(趙龍標)이며, 할아버지는 조응규(趙應奎)이다. 아버지는 조용우(趙鏞祐)로,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어머니는 이승현(李承玹)의 딸 재령 이씨(載寧李氏)이다. 조석제(趙...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함안 지역 역사.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등을 보면 조선 시대 함안군은 김해진(金海鎭)의 관할이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경상도 외관직(外官職) 조에 보면 함안은 경상도 내에서 종 4품의 군수가 파견된 14곳 중의 하나였다. 『함주지』에는 당시 함안 지역 관할 하의 각 리와 그 소속 방...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화언(華彦), 호는 화강(華岡)·동애(東厓). 첫 번째 부인은 안효연(安孝淵)의 딸 광주 안씨(廣州安氏)로 자식이 없었다. 두 번째 부인은 전수록(全壽祿)의 딸 경산 전씨(慶山全氏)로 슬하에 아들 다섯 명을 두었다. 큰아들은 조성국(趙性國), 둘째 아들은 조성숙(趙性宿), 셋째 아들은 조성교(趙性敎), 넷째 아들은 조성집(趙...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낙언(洛彦), 호는 심재(心齋).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도암공파(韜巖公派)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덕암(德岩)조식(趙湜)이며, 아버지는 담와(澹窩)조맹식(趙孟植)이다. 조성렴(趙性濂)[1836~1886]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수동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계당(溪堂)유주목(...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유학자. 조성윤(趙性胤)[1845~1904]은 함안에서 태어나 함안에서 활동한 학자이다. 과거 시험에는 응시하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학문을 탐구하며 생활 속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한 학자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영순(永純), 호는 광천(廣川). 어계(漁溪)조려(趙旅), 무진정(無盡亭)조삼(趙參)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
고려 후기 위화도 회군에 반대한 후 함안 지역에 은거한 무신. 조순(趙純)은 1388년(우왕 14) 4월 장수로서 군사를 통솔하여 요동 정벌에 참여하였다. 정벌군이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우군 도통사 이성계(李成桂)가 회군(回軍)을 단행하자 이에 반대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함안으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 할아버지는 쌍성 총관부 출신으로 용성군(龍城君)...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조순 장군의 비. 조순(趙純)[?~1398]은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같이 위화도까지 출전하였다가 이성계가 회군(回軍)하자 "번국(藩國)으로서 상국(上國)을 범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하나 왕명(王命)을 받들지 않고 급히 회군함은 더욱 불가하다"라며 반대한 후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검...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조열(趙悅)은 고려공민왕(恭愍王)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면서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등과 교유하였고, 고려 말 벼슬을 버리고 함안으로 낙향하였다. 조선 건국 후 출사를 권유하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금은(琴隱). 증조할아버지는 삼사 우윤을 지낸 조희(趙禧)이고, 할아버지는 조지흥(趙之興)이다. 아버...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태순(太淳), 호는 삼백당(參百堂). 할아버지는 참봉 조언(趙堰)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조종도(趙宗道)이고, 어머니는 참찬(參贊)이준민(李俊民)의 딸인 이씨(李氏)이다. 조영혼(趙英混)[1571~1632]은 결성 현감을 지냈으며 1617년(광해군 9) 부령 부사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무신이라 해당 고...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안(咸安). 단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조곤(趙鵾)이다. 조응도(趙凝道)[1566~1597]는 무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이 발발할 당시 고성 현령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같은 해 10월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도왔다. 조응도는 고성의 임시 현령으로, 복병장(伏兵將) 정유경(鄭...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 조이(趙彛)는 일찍이 중이 되었으나 환속하여 문과에 급제하였다. 원나라에 가서 황제가 거처하는 곳을 출입하면서 일본을 회유하는 데에 고려를 앞세울 것을 종용하여 고려의 처지를 어렵게 하였다. 본관은 함안(咸安). 초명은 인여(藺如). 조이는 한때 승려로 활동하다 환속한 다음 과거 공부를 해서 진사에 급제하였다. 뒤에 나라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익도에게 내린 교지와 공신녹권. 조익도(趙益道)의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자는 여행(汝行), 호는 도곡(道谷)이다. 1614년(광해군 6), 1624년(인조 2) 두 차례 공신록에 녹훈되었으며, 1769년(영조 45)에는 정3품 병조 참의에 증직되었다. 「조익도 공신녹권 및 교지...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치원(致遠)·덕용(德勇), 호는 간송(澗松). 어계(漁溪)조려(趙旅)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도시 첨정(司䆃寺僉正)을 지낸 입암(立巖)조식(趙埴)이며, 어머니는 충의위(忠義衛) 유상린(柳祥麟)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대소헌(大笑軒)조종도(趙宗道)는 삼종형(三從兄)이다. 부인은 노파(蘆坡)이흘(李屹)의 딸 벽진 이씨...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임도의 『간송 문집』과 『금라전신록』 책판. 『간송 문집(澗松文集)』 책판 및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 책판은 조선 후기 유학자 조임도(趙任道)[1585~1664]의 저술인 『간송 문집』과 『금라전신록』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이다. 조임도는 조선 후기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로...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임도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조임도(趙任道)[1585∼1664]는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덕용(德勇), 호는 간송당(澗松堂)이다. 1604년(선조 37) 향시에 합격하였고, 1605년 21세에 『관규 쇄록(管窺鎖錄)』을 저술하였다. 1608년 「거상 대절(居喪大節)」 10조(十條)를 써서 자손들이 교훈으로...
-
조선 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아버지는 조언(趙堰)이다. 부인은 이준민(李俊民)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로 슬하에 3남 4녀를 두었다. 큰아들은 조영해(趙英海), 둘째 아들은 조영한(趙英漢), 막내아들은 조영곤(趙英混)이다. 사위는 권약(權瀹), 김몽지(金夢芝), 노굉(盧肱), 정개건(鄭盖乾)이다....
-
조선 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함안 조씨(咸安趙氏)는 함안을 본관으로 하여 함안에 세거하며 오랫동안 함안을 대표하는 제일의 성족이 되어 왔다. 조선 전기에 이르러 어계(漁溪)조려(趙旅)의 손자 내헌(耐軒)조연(趙淵)이 청송으로 장가를 들어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 청송에도 함안 조씨 일파가 세거하게 되었다. 조연은 1562년(명종 17) 함안으로 돌아왔지만,...
-
삼국 시대 아라가야에서 활동한 가야의 외교 사신. 남가라[가락국]와 탁순국[현 경상남도 창원시 일대에 자리 잡고 있던 후기 가야 13국 중의 한 나라]이 신라에 멸망함에 따라 아라가야는 신라의 진출을 저지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로마도(佐魯麻都)는 가와치노아타히[하내직(河內直)] 및 아현이나사(阿賢移那斯)와 더불어 아라가야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여택(汝宅), 호는 수구재(守口齋)인데 ‘수구여병(守口如甁)’의 의미로 자호하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이조 참판에 추증된 주문보(周文俌) 때부터 함안군 칠원읍으로 이주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신재(愼齋)주세붕(周世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구봉(龜峯)주박(周博)이며,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연헌(蓮軒)주낙창(周樂昌)이다. 아버...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주물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토기 가마터.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주물리 산33-2번지와 주물리 615-5번지에 위치한다. 함안군 법수면 주물리 사평 마을 남쪽에 형성된 사평 고분군의 남쪽 비탈과 그 아래 경작지에 해당하며, 사평 마을과 윤외리 삼태 마을 사이에 형성된 곡간(谷間)에 입지한다. 2006년에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
-
조선 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약지(約之), 호는 구봉(龜峰). 할아버지는 주문보(周文俌)이고, 친아버지는 주세곤(周世鵾)이다.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작은아버지 주세붕(周世鵬)에게 입양되었다. 주세붕의 선조는 본래 합천에 살았다. 그 할아버지 주장손(周長孫)이 칠원 출신인 목사 권우(權虞)의 사위가 되면서 그 아들 주문보가 칠원으로...
-
조선 전기 함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 고조할아버지 주유(周瑜)가 상주 주씨(尙州周氏)의 시조이다. 아버지는 주문보(周文俌)이고, 어머니는 부호군을 지낸 황근중(黃謹中)의 딸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부인은 하옥(河沃)의 딸 진주 하씨(晋州河氏)와 안여거(安汝居)의 딸 광주 안씨...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 무산사에 소장되어 있는 주세붕의 『무릉 잡고』와 아들 주박의 『귀봉집』, 손자 주맹헌의 『수구집』 책판. 『무릉 잡고(武陵雜稿)』와 『귀봉집(龜峯集)』, 『수구집(守口集)』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이다. 『무릉 잡고』 책판은 한국 서원의 창시자인 주세붕(周世鵬)[1495~1554]의 시문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목판이...
-
고려 후기 함안 출신의 문신이자 외교 사신. 주영찬(周英贊)[?∼1373]은 1373년(공민왕 22) 7월 판선공시사로서 천추절(千秋節)을 축하하기 위해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이때 제주(濟州)의 목호(牧胡) 초홀독불화(肖忽禿不花)가 바친 말 19필과 나귀 2필을 진상하게 하였다. 주영찬을 사신으로 파견한 것은 그의 딸이 원나라에 들어갔다가 명나라 병사들에게 사로잡힌 뒤...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성재(聖哉), 호는 국담(菊潭). 시조는 주유(周瑜)이고, 주세붕(周世鵬)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경재(敬齋)주각(周珏)이다. 어머니는 노한석(盧漢錫)의 딸 광주 노씨(光州盧氏)이다. 주재성(周宰成)[1681~1743]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서 태어났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개항기 주재성의 『국담 문집』 책판. 국담(菊潭) 주재성(周宰成)은 경상남도 함안 출신의 유학자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다. 1728년(영조 4)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의병을 일으켜 국가에 대한 충절을 드러냈다. 만년에는 하환정(何換亭)을 지어 자연 속에서 학문과 수양에 힘쓰며...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영운리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칠원군 읍지(漆原郡邑誌)』에 보이는 주요 도로망은 관아에서 동쪽으로 운곡(雲谷)을 지나 창원 경계까지 10리[약 3.93㎞]이고, 서쪽으로 창인역(昌仁驛)을 지나 함안 경계까지가 10리이다. 남쪽으로 갈치(葛峙)를 지나 창원 경계까지가 7리[약 2.75㎞]이고, 북쪽으로 송치(松峙)를 지나...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철기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고고학에서 사용되는 시대 구분의 명칭으로서 철기 시대는 인류가 철을 이용하여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를 말한다. 이러한 철기 시대는 톰센에 의해 선사 시대를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으로 나누는 삼 시대법이 완성되면서 만들어졌다. 한국의 철기는 중국 전국 시대 철기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으며,...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청동기나 간석기를 제작하여 사용하던 시대. 청동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인류의 물질 문화 발전 단계에서 금속기인 청동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시대로서 우리나라는 청동 도구와 함께 간석기도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청동기 시대의 연대는 지역마다 시작과 끝이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신석기 시대의 종말과 철기의 유입을 기점으로 대체적으로 기원전 15세기에서...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수곡리 퇴휴당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함안 수곡리 청송 심씨 퇴휴당 종중 문서류(咸安藪谷里靑松沈氏退休堂宗中文書類)」는 2책 35점의 고문서로 이루어져 있다. 수은(藪隱)심명즙(沈明楫)[1808~1883]이 기록한 『교관공 실기(敎官公實記)』는 필사본 1책으로 규격은 20.5×30㎝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과 더불어 고려 시대에 각 지역에 설치되었던 하층민들의 집단 주거지이었다. 고려 시대 확인 가능한 소는 총 285곳, 경상도 지역은 58곳이다. 그 가운데 함안군에는 다섯 곳이 있고, 칠원현에는 소가 설치되지 않았다. 소의 거주민들은 금·은 등의 광산물, 비단·명주 등의 수공업 제품, 미역·...
-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춘곡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에 보이는 군내의 주요 도로망을 살펴보면 동쪽으로 창원 경계까지 25리[약 9.82㎞]이고, 서쪽으로 진주 경계까지 31리이며, 남쪽으로 진해 경계까지 27리[약 12.17㎞]이고, 북쪽으로 의령 경계까지 38리[약 14.92㎞]이다. 군외(郡外)로는 서울까지 86...
-
저항의 혼이 흐르는 역수의 땅 함안에서 불의에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키며 살아온 함안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함안은 예로부터 충성스럽고 절개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고장이다. 조선 왕조를 부정했던 조순(趙純), 학자 모은(茅隱)이오(李午)가 있으며,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했던 생육신(生六臣) 중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1420∼1489]도 함안 사람이다. 박한주(朴漢柱...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구성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읍성. 2004년에 경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조사한 '칠원읍성(漆原邑城) 내 도로 개설 부지 내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로 일정 부분 읍성 부속 시설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었으며, 조사 결과 읍성의 북문 터를 비롯해 담장 석렬 4기, 건물 터 1동, 우물 1기, 추정 도로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칠원읍성은 1...
-
고려 전기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과 칠북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칠원현(漆原縣)은 고려 시대의 행정 명칭으로 통일 신라 시대의 칠제현(漆隄縣)이 개칭된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물계자전에는 칠포국(柒浦國)으로 나타나는데, 포상팔국(浦上八國) 중의 하나이었다. 남산 신성 비문(南山新城碑文)에는 칠토군(柒吐郡)으로 나온다. 940년(태조 23...
-
통일 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라 경덕왕이 757년 지방 9개 주의 명칭을 비롯한 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칠토현(漆吐縣)을 칠제현(漆隄縣)으로 바꾸었다. 군현 명칭의 변경은 지방에 대한 중앙 집권적 통치의 강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칠원현으로 개칭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칠토현(漆吐縣)은 양주(良州) 의안군(義安郡) 칠제현(漆隄縣)의 옛 지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물계자전에서는 칠포국(柒浦國)으로 포상팔국(浦上八國) 중의 하나에 속하였다. 남산 신성 비문(南山新城碑文)에는 칠토군(柒吐郡)으로 나온다. 삼한 시기에는 포상팔국 중의 하나인 칠포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때문에...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과 칠서면, 칠북면에 걸쳐 있던 초기 국가 시대의 소국. 함안군 칠원 광려천 주변에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과 취락지 등이 있으며, 가야의 유적들도 확인되고 있다. 특히 오곡리 유적(梧谷里遺蹟)은 이른 시기부터 칠원 지역에 정치 집단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광려천 주변 들판은 오래전...
-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 관아나 역(驛) 주변, 각 역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 함안군에는 월촌원(月村...
-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 출토된, 점토로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그릇. 우리나라에서 처음 토기가 발생한 때는 이집트와 서아시아, 인도, 중국과 비슷한 기원전 6000~50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토기는 서아시아와 중국의 채문 도기(彩文陶器) 문화와는 계통을 달리하는 빗살무늬 토기 문화로 한반도 전역에 넓게 분포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였다. 우리나라...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통정대부 거제 도호부사 인천 이씨의 비. 통정대부 거제 도호부사 이공 묘비(通政大夫巨濟都護府使李公墓碑)는 1661년(현종 2) 거제 도호부사를 지낸 인천 이씨(仁川李氏)의 무덤에 세워졌다. 함안군 군북면 소포리 인천 이씨 배향소인 봉남재가 위치한 배후 산 능선의 하단부에 위치한다. 봉남재가 건...
-
경상남도 함안군 파산 봉수대가 있는 봉화산의 가야 시기 이름. 『일본서기(日本書紀)』 흠명기(欽明紀) 22년 조에 신라가 아라 파사산에 성을 쌓아 일본에 대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라 파사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함안군 산천조 및 봉수조에 나오는 ‘파산(巴山)’으로 비정된다. 파산은 지금의 봉화산(烽火山)으로 봉수대는 아라가야(阿...
-
고려 시대부터 개항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함안군 읍지(咸安郡邑誌)』에 보이는 군내의 주요 도로망을 살펴보면 동쪽으로 창원 경계까지 25리[약 9.82㎞]이고, 서쪽으로 진주 경계까지 31리이며, 남쪽으로 진해 경계까지 27리[약 12.17㎞]이고, 북쪽으로 의령 경계까지 38리[약 14.92㎞]이다. 군외(郡外)로는 서울까지 86...
-
209~212년 골포국을 비롯한 포상팔국이 아라가야를 침입한 사건. 변한(弁韓)에 소속된 12국은 중국 군현과의 교역을 통해 선진 문물을 수입하여 정치적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3세기 전반 후한(後漢)이 멸망하게 됨으로써 동북아시아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313년, 314년의 낙랑(樂浪)과 대방(帶方)의 축출은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하기리·서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삼국 시대 고분군. 하기리 무덤실 유적은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하기리와 서촌리 서쪽의 배후 구릉에 위치한다. 유적이 위치한 곳은 함안천이 북류하여 남강에 합류하는 지점으로, 남강은 사행을 반복하여 동북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된다.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 범위 중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서촌...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제방 유적. 가야리 전 토성(伽耶里傳土城) 터는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66번지 가야동에 위치한다. 가야리 전 토성 터는 『함주지(咸州誌)』의 기록을 근거로 신가야동을 에워싸는 아라가야의 왕궁 터로 알려져 왔다. 다만 가야국 구허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 왕궁 터라고 기술한 것은 아니며, 발굴...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형성된 마을.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蹟址)는 성균관 진사(進士)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고려동을 택하여 거처를 정한 뒤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고려동 유적지는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에 있다. 이오는 끝까지...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조선 시대 생활 유적. 2004년에 경남 발전 연구원에서 함안 고인돌 공원 조성 부지 내 유적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 시대의 논 및 관련 배수로[구덩이], 구상 유구(溝狀遺構), 기둥 구멍 등 약 120여 기의 유구와 조선 시대의 건물 터 1동, 석렬 1기를 확인하였다. 특히 유적에서는 계단식 논이 확인되었...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일대에는 동촌리 27기, 덕대리 5기 등 많은 수의 고인돌이 무리 지어 있다.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는 지금까지 함안 지역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함안 남문외 고분군(咸安南門外古墳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17-9번지 남문 마을의 맞은편 구릉지에 위치한다. 괘안 마을 북동쪽 구릉의 정상부[해발 79.9m]에서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로 뻗어 내린 해발 30m 내외의 저산성 구릉지에 약 20기의 크고 작은 봉토분(封土墳)이 분포해 있다. 이...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 청간정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여주 이씨 사직공파 종중에서 내려온 분재기와 입안. 「함안 내곡리 청간정 고문서(咸安內谷里淸澗亭古文書)」는 내곡리여주 이씨(驪州李氏) 사직공파 종중에서 이루어졌던 분재기(分財記) 9건과 국가와 관에서 특정한 권리나 권한을 공증했던 입안(立案) 2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함안...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함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는 약 1억 년을 전후하여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 퇴적층인 경상누층군 함안층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및 새 발자국 화석이 확인된다. 이는 백악기 당시 한반도 남부에 대규모 호수가 조성되었던 지형적 조건과 초식 공룡의 먹이 식물이 풍부하...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말산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咸安末伊山古墳群)은 아라가야(阿羅伽倻) 왕과 귀족의 묘역으로서, 아라가야의 정치적 성장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아라가야의 모습이 1914년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고고학 발굴 조사를 통해 더욱 뚜렷이 확인되고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배후의 말이산 전역에 걸쳐 고...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 함안 명관리 공룡 발자국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백이산 서북편 계곡에서 발견된 화석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9천만 년 전에서 1억 년 전에 호숫가 주변을 거닐던 초식 공룡들이 발자국을 남겼다. 이후 이곳이 두꺼운 퇴적물이 쌓여 열과 압력을 받아 함석으로 굳어지고 다시 융기하여 백이산...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무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 함안 무기연당(咸安舞沂蓮塘)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움으로써 양무 원종훈 일등 공신(揚武原從勳一等功臣)에 오른 국담(菊潭)주재성(周宰成)[1681~1743]의 덕을 칭송하고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난이 평정된 뒤 도내 사림의 공의로 주재성의 생가 한쪽...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송정리·모곡리에 있는 가야 시대·신라 시대의 산성. 함안 문암산성(咸安門巖山城)의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지만 함안 문암산성Ⅰ은 아라가야에 의해서, 함안 문암산성Ⅱ는 신라에 의해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함주지(咸州誌)』 고적조의 기록으로 보아 1587년(선조 20) 이전에 성곽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경상남도 함안군...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 박한주(朴漢柱)[1459∼1504]는 자(字)는 천지(天支), 호(號)는 오졸재(汚拙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485년 성종 때 문과에 급제, 정연 헌납(正筵獻納)을 거쳐 예천 태수(醴泉太守)가 되어 정치를 잘 살펴 그를 공경하고 복종하였다. 연산군 때 간관이 되어 왕의 실정을 극간(極諫)하여 평안도...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가연리 배종찬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배상엽과 관련한 고문서. 배상엽(裵尙曄)의 호는 화축암(華畜庵)으로 모헌(慕軒)배진명(裵震明)의 손자이다. 조선영조 때 칠원 지역의 유학자이자 효자로 이름을 남겼다. 배상엽의 덕을 기리기 위해 1861년(철종 12) 가학정을 세워 배향하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손되었다...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와 함안면 괴산리에 걸쳐 있는 신라 시대의 산성. 함안 성산산성(咸安城山山城)은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17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6세기 중반에 신라에 의해 축성된 함안 지역의 치소성으로 밝혀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와 『함주지(咸州誌)』에서 성산에 가야국 구허(舊墟)가 위치하였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소재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의 목간. 목간(木簡)이란 종이 대신 나무를 반듯하게 다듬은 면에 먹글씨를 쓴 기록 유산으로서, 당대 사람들이 직접 쓴 서사 자료로 당시 생활상을 반영하고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중국에서는 얇은 대나무에 묵서한 것을 죽간(竹簡), 나무에 묵서한 것을 목독(木牘)이라 하는데, 한국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죽...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북촌리와 산인면 입곡리에 걸쳐 있는 신라 시대의 산성. 함안 성점산성(咸安城岾山城)의 건립 경위를 알려 주는 기록은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을 참고할 때 조선 전기까지는 성곽의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되는 1587년(선조 20)에는 고적조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587년 이전...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 분묘 및 삼국 시대 분묘 유적. 함안 암각화 고분(咸安岩刻畵古墳)은 함안 말이산 고분군(咸安末伊山古墳群)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도동 마을에서 백산으로 넘어가는 소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봉토의 서쪽 비탈에 청동기 시대 암각화(岩刻畵)가 비스듬하게 놓여 있어 '암각화 고분'으로 불리고 있으며, 함안 도항리...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있는 조선 전기 어연과 부인 함안 이씨, 아들 어변갑과 부인 창녕 성씨의 묘. 어연(魚淵)[1345~1429]은 1409년(태종 9) 충주 판관을 지내고 이후 대구 현령이 되었으며, 1429년(세종 11) 84세로 생을 마쳤다. 어연의 맏아들 어변갑(魚變甲)[1381~1435]은 1408년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한 뒤 1420년...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용산리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새 발자국 화석.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는 약 1억 년을 전후하여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 퇴적층인 경상누층군 함안층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및 새 발자국 화석이 확인된다. 이는 백악기 당시 한반도 남부에 대규모 호수가 조성되었던 지형적 조건과 초식 공룡의 먹이 식물이 풍부하게 자랐던 환경적 조건이 만나 공...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윤환의 묘. 윤환(尹桓)[?~1386]은 충혜왕부터 공민왕에 이르기까지 다섯 명의 왕을 섬겼고, 세 차례 재상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칠원(漆原)이며, 시호는 충효(忠孝)이다. 충혜왕 때 대언(代言)을 지냈다. 1339년(충숙왕 복위8) 조익청과 충혜왕 측근의 불량배들을 제거하려다 참소를 입어 칠원군으로 추방되었다...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강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조려의 묘. 조려(趙旅)[?~1489]는 단종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은자(漁溪隱者),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었고 수양 대군이 등극하자 고향인 백이산 아래에 은거하고 출사하지 않았다. 1698년(숙종 24) 단종이 복위되자 이조 참판으로 추증(追贈)...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조안의 묘소.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에 조선단종 때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어계(漁溪)조려(趙旅)의 아버지인 조안 묘소를 비롯하여 큰아들 조동호(趙銅虎)와 장손자 조순(趙純) 및 손자 조건, 장증손자 조정견 등 5대에 걸쳐 다섯 부부의 묘 10여 기가 있다. 가장 위쪽에 조동호와 그의 부인의 묘소가 있다. 2기의 봉...
-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에 있는 조선 전기 주세붕의 묘역. 유학자인 주세붕(周世鵬)[1495∼1554]은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1522년(중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풍기 군수로 재직하던 중 1542년 백운동에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의 사당을 세우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을 세웠다. 그 후 직제학, 승정...
-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유원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1998년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에 의해 이루어진 시굴 조사 결과 칠원산성(漆原山城)은 6세기 전반경에 아라가야가 축조한 산성임이 밝혀졌으나 문헌 기록이 소략한 편이다. 창원과 칠원 시가지에서 함안 지역으로 진입하는 적을 통제하기 위하여 축성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 시대와 조선 시대 문헌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내곡리와 주동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대.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봉수제는 기록상으로 고려 중기[12~13세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
-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신산리에 있는 가야 시대의 산성. 함안 포덕산성(咸安飽德山城)의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아라가야 시대에 창원·마산 방면에서 함안으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인 신당 고개를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되었다고 본다. 산성에서 서쪽으로 4.5㎞ 지점의 함안 문암산성(咸安門巖山城)·동지산성과 연동하여 1차, 2차 순으로 이 통로의 차단을...
-
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전기까지 경상남도 함안군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함안(咸安)은 다 함께 화합하여 안가 태평(安家泰平)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시량군에서 757년 신라경덕왕이 지방 9개 주의 명칭을 비롯한 군현(郡縣)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함안군으로 변경되었다. 군현 명칭을 중국 한자로 변경한 이유는 지방에 대한 중앙...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 발자국 화석. 경상남도 함안 지역에서는 약 1억 년을 전후하여 형성된 중생대 백악기 후기 퇴적층인 경상누층군(慶尙累層群) 함안층(咸安層)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 및 새 발자국 화석이 확인된다. 이는 백악기 당시 한반도 남부에 대규모 호수가 조성되었던 지형적 조건과 초식 공룡의 먹이 식물이 풍부하게 자랐던...
-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와 북촌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읍성. 함안읍성(咸安邑城)은 연해 읍성으로 1510년(중종 10)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성되었으며, 1555년(명종10)의 증축으로 규모가 확장되었다. 읍성의 규모와 구조, 시설에 대해서는 『함주지(咸州誌)』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초축 시의 규모는 5,160척[1.56㎞], 증축 시의 규모는...
-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던 고려 전기 지방 행정 구역. 함안군의 옛 명칭은 함주(咸州) 이외에 아라가야(阿羅伽耶), 아라국(阿羅國), 안야국(安邪國), 안라(安羅), 전라(前羅), 아량촌(阿良村), 아라라성(阿羅羅城), 금라(金羅), 사라(沙羅) 등이 있다. 가야의 아시량국(阿尸良國)[아라가야·안라국]이었다가, 560년경 신라에 복속되어 아시량군이 되었...
-
고려 전기 함안 지역에 설치한 관직. 고려 시대에 지방 세력의 통제를 강화하고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자사(刺史) 제도를 받아들였다. 자사는 당나라 안사의 난 이후 관찰사·단련사·자사·방어사를 설치하고 외관제(外官制)를 편성할 때 지방에 파견된 관직이다. 983년(성종 23) 12목을 개편하여 12절도사를 두고, 이보다 작은 주군(州郡)에는 도단련사·단련사·자사·방어사...
-
통일 신라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신라 경덕왕이 757년 지방 9개 주의 명칭을 비롯한 군현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소삼현(召彡縣)을 현무현(玄武縣)으로 바꾸었다. 군현 명칭의 변경은 지방에 대한 중앙 집권적 통치의 강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4 지리1 강주(康...
-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에 있던 숙식을 위한 편의 시설. 원(院)은 지방의 관아나 역(驛)의 주변, 각 역 사이의 적절한 중간 지점 등 요충지에 설치되어 일반 행인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한 숙박 시설이다. 산간 벽지에서는 사원이 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부터 설치되었던 원은 역제(驛制)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1587년 『함주지(咸州誌)』가 편찬될 당시에 함안...
-
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경상남도 함안 지역 사회에 있었던 독립적 지방 세력. 호족(豪族)은 신라 하대 이후 진골 귀족이 분열되면서 지방에 성읍(城邑)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주민들을 무장시키고 성주(城主)·장군(將軍)을 칭하면서 지방을 독립적·반독립적으로 다스리던 지방 세력을 말한다. 호족을 출신별로 보면 해상 세력, 촌주(村主) 출신, 지방관 및 낙향 귀족, 군진...
-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에 있는 가야 시대 고분군. 황사리 분묘군(篁沙里墳墓群)은 경상남도 함안군 법수면 황사리 산34번지 매곡 마을 일대의 나지막한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1985년 이래 경상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함안 서부 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1991년 2월 19일부터 같은 해 3월 30일까지 경상 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
-
조선 후기 함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창원(昌原). 초명은 헌수(憲壽), 자는 명여(命汝), 호는 덕암(德庵). 증조할아버지는 황치문(黃致文)이고, 할아버지는 황정기(黃正基)이다. 외할아버지는 안석중(安碩重)이며, 아버지는 황용덕(黃龍德)이다. 부인은 상주 주씨(尙州周氏)로,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황도성(黃道性)이고, 사위는 이임현(李任鉉), 주경회(周璟會), 배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