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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 청년들은 애국에 뜻을 두고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였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의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총검으로 출동하자, 일신단원들은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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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7월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조직된 항일 여성 운동 단체. 근우회는 1927년 창립되어 1931년에 해산된 여성 항일 구국 및 여성 지위 향상 운동 단체이다. 1927년 신간회가 조직된 직후, 자매단체의 성격을 띠고 같은 해 5월 민족주의 여성 운동계의 김활란(金活蘭)·유영준(劉英俊)·유각경(兪珏卿)·최은희(崔恩喜)·현신덕(玄信德) 등과 사회주의 여성 운동계의 박원민(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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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에 있는 항일 투사 김홍권(金弘權)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우(何尤) 김홍권[1892~1937]은 1908년 하동보통학교[하동향교 내 설치]에 재학 중이던 1909년 안희제, 이원식, 남형우와 함께 비밀 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지하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 운동을 목도하고 자극을 받아 메이지 대학생 유경환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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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당시 경상남도 하동의 독립운동가들이 제작, 배포한 독립 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는 일명 하동독립선언서라고도 불리는데, 하동 지역 인사 12명의 이름으로 작성되어 3·1 운동 당시 하동군 내에 배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은 한 장뿐인데, 독립운동가 박치화(朴致和)가 살던 하동군 적량면 동산리 고택 처마 밑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3·1 운동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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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에서 1894년 일어난 동학 농민군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군이 외세를 물리치고 민족과 조국을 구하려는 굳은 의지로 싸울 때, 서부 경상남도의 농민군은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河東北芳里高城山城)에서 집결하여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이때 농민군 수천 명이 현장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일본군 보고서에 의하면 농민 농민군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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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있는 문공학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 살던 문공학(文孔學)[1897. 9. 27~1946. 8. 27]은 전국적인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애국 애족심이 일어나 1919년 3월 21일 횡천면의 3·1 운동을 지도하고 피신하였다. 다시 그해 4월 3일 하동군 북천면의 3·1 운동을 지도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5월 29일 부산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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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었던 신간회의 하동 지회. 신간회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합작하여 결성된 전국적인 민족 운동 단체로서, 안재홍(安在鴻)·이상재(李尙載)·백관수(白寬洙)·신채호(申采浩)·신석우(申錫雨)·유억겸(兪億兼) 등 34인이 발기했다. 진주·하동 지역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두 학자 하재화와 정태석 등이 발기인과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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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정동리 취간림에 있는 항일 의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 개항기 지리산과 가야산, 그리고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투쟁한 의병들이 수만 명에 달하였는데, 대부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만약 그 이름이나 활동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조선인이 기록한 투쟁사는 아주 드물게 남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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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서 1910년 사이 조선의 국권 회복을 위해 경상남도 하동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실력 양성 운동. 1904년 한일 의정서와 한일 협약,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조선은 국권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이에 한편에서는 의병 투쟁이, 또 한편에서는 애국 계몽 운동이 일어나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애국 계몽 운동은 1904년 보안회의 황무지 개척 반대 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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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던 독립운동 단체. 일신단(一身團)은 오직 한 뜻, 한 가지, 한 몸처럼 뜻을 모아 투쟁한다는 의미의 비밀 항일 운동 조직으로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출신 독립지사들이 뜻을 모아 3·1 운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금남면민과 고전면민 33명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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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정낙영(鄭洛榮)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낙영[1879~1947]은 1919년 3월 29일 하동군 금남면과 진교면의 3·1 운동을 지도 지휘하고, 남해군남해읍까지 진출하여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만든 독립선언서는 정낙영을 비롯한 하동 출신 인사 12명이 지은 것으로 현재 하동군청 민원실 입구에 복사 확대본이 게시되었고, 독립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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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3·1 운동 유공자를 추모하는 비. 하동군 청암면민들은 나라와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독립 만세 시위의 주동 인물인 김기범, 정재옥, 정남시(鄭南時), 하형수(河炯壽)[1887-1969], 권대형(權大衡)·이수부(李壽溥)·이현주(李鉉周) 등은 1919년 4월 5일 태극기를 제작하여 그해 4월 7일 하동군 청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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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의 효자 추성원(秋成元)의 효행에 대한 표창 상서문 및 이에 대한 답서. 추성원은 고려 충렬왕 때 민부상서 예문관 대제학과 국학교수 재임 중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지은 추적(秋適)의 18세손이며, 조선 임진년의 공신이며, 명나라 무강자사 추수경(秋水鏡), 증직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의 9세손이며, 순조 때의 효자이다. 1850년(헌종 15) 2월 13세 때 부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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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었던 청년 조직. 하동청년동맹은 풍속 교정, 덕성 함양, 문자 보급, 지식 계발, 애국 계몽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7년 8월 20일 창설되었다. 『동아일보』 1927년 8월 24일자에 의하면 하동청년동맹이 8월 20일 발회식을 거행하였고 대표 임원들은 김익원, 김계영, 우용현, 문태규라고 밝혔다. 회원들은 대부분 하동 지역의 유지급 청년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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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던 청년 단체. 하동청년회는 3·1 운동 후 민족 운동의 영향이 전국에 널리 퍼져 도시와 농촌, 사상과 종교, 계층을 떠나 점점 확대되자 하동 지역 청년들에게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배우게 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하동청년회는 1920년에 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초대 회장은 김익원(金翊源)이었다. 1921년 4월 10일에 있었던 정기 총회에서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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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의 애국 청년들이 애국 애족의 뜻을 같이하여 일신단 33명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이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신단원들은 이튿날 아침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지소마을 뒷산으로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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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있는 화개장터에서 일어난 3·1 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개장터는 하동군의 3·1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난 현장이다. 1919년 4월 6일 쌍계사 승려와 학생 김주석(金周錫)·양봉원(梁鳳源)·정상근(鄭相根:丁湘根) 등이 앞장서고 애국 청년 이강률(李康律)·이정수(李汀秀)·임만규(林萬圭)·이정철(李正哲) 등이 동참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장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