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 청년들은 애국에 뜻을 두고 일신단(一身團)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였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의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다음날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총검으로 출동하자, 일신단원들은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김해 김씨와 하동 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강성환(姜聖煥)의 처 김해 김씨는 남편이 병들어 백방으로 애썼지만 효험이 없자 입으로 종기를 빨아 치료하였다. 그 뒤 맹인이 되어 23년을 앞을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동 정씨는 김해 김씨의 아들 강진황(姜鎭璜)의 처이다. 시어머니가 맹인이 되자 언제나 시어머니와 한 몸...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소속 교회. 1950년 초 고전교회로 출석하던 신도들 중에 지역의 복음화를 꿈꾸던 교인들이 선진기도소 허락을 받아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새 소망을 가지고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선소마을에 선진기도소를 설립하였다. 1955년 1월 선진교회를 설립하여 이정남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1971년 12월 경상남도 하동군...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예장고신] 소속 교회. 고전교회는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지향하며, 복음 전파에 주력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사람을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며, 나아가 축복 받고 베푸는 교회가 되기 위함이다. 고전교회는 선교사의 선교와는...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에 있는 농공 단지. 고전농공단지는 합리적인 공업 배치를 통한 농공 단지 운영의 효율성 제고 및 균형적인 지역 육성 발전을 위해 조성되었다. 1988년 12월 2일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지역이 경상남도로부터 고전농공단지로 지정됨에 따라 1989년 7월 실시 계획 승인 및 고시를 받았다. 1989년 10월 2일 산업단지 조성 공사를 착공하여 19...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었던 정기 시장. 경상남도의 서남부인 하동군 남부에 위치한 고전시장은 남해고속도로와 인접한 하동군의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하동군 고전면의 서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는 섬진강과도 가까운 곳이었다. 『고전면지(古田面誌)』에 의하면 1960년과 1970년대에는 연간 판매고가 하동시장 다음으로 높았다고 한다. 그동안 고전시장은 1일·...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지․덕․체․예․관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 육성을 비전으로 삼아 자주적으로 지식을 만들어가는 슬기로운 인재 육성, 바른 인성으로 공동체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 육성, 굳센 마음, 튼튼한 몸으로 심신이 건강한 인재 육성, 꿈을 가꾸고 새롭게 생각하는 창조적 인재 육성, 당당하고 매사에 자신감 있는 긍정적 인재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행정 구역. 고현면(古縣面)의 ‘고’자와 마전면(馬田面)의 ‘전’자를 따서 고전면(古田面)이라 하였다. 조선 시대 하동군(河東郡) 고현면·마전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전면으로 통합되었고, 1916년 팔조면 신월리(新月里)가 편입되었다. 북쪽으로 정안산(鄭晏山)[448m]을 중심으로 좌우로 산지가 뻗어 있고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작은 물줄...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 있는 사회복지 시설. 고전면 복지회관은 하동군 고전면 관내 각종 기관 단체들의 사무실이 위치해 있어 주민 자치 활동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소외된 노인들의 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경로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의 여가 선용 및 자기 계발을 위하여 국선도 교실, 댄스 스포츠 교실, 가요 교실, 장구 교실, 요가 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으...
-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고전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상남도 하동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하동읍], 12개 면[화개면, 악양면, 청암면, 옥종면, 적량면, 횡천면, 북천면, 양보면, 고전면, 금성면, 금남면, 진교면] 중 고전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는 고전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지원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19...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실천 중심의 생활 지도를 통해 정직한 어린이,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 배양을 통해 진취적인 어린이, 탐구력과 창의성 신장을 통해 창의적인 어린이, 학교 체육 활성화를 통해 건강한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고남면의 학생이 먼 거리의 고전초등학교나 신월초등학교에 통학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고남면의 유지들이...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하동군의 읍치였으므로 옛 하동을 뜻하는 구하(舊河) 또는 고하(古河)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고현면(古縣面)의 고하동촌(古河東村),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고하동(古河東)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고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하동동(...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곡부(曲阜). 자는 태숙(泰淑), 호는 죽정(竹汀). 어촌판윤(漁村判尹)을 지낸 공부(孔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공재선(孔在善)이고, 아버지는 공영갑(孔永甲)이며, 어머니는 남평 문씨(南平 文氏)이다. 공언식(孔彦植)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타고난 성품이 매우 효성스러웠다고 전한다. 13세 때 어머...
-
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광산(光山). 남편은 김경좌(金慶佐)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경좌 처 광산 김씨는 18세에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로 시집을 왔다. 효심으로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남편에게는 유순했으며 동서 간에는 우애롭게 지냈다. 1871년(고종 8) 봄에 남편이 병에 걸리자 하인을 시키지 않고 몸소 약을 달이고 죽을 쑤어 간병하고,...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에 있는 개항기 김경좌(金慶佐) 처 광산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광산 김씨(光山金氏)는 김해 김씨(金海金氏) 김경좌의 처이다. 18세에 시집가서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으로 모셨다. 김경좌가 세상을 떠나자 53세의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라 생을 마감하니, 그 열행을 기리기 위해 김해 김씨 문중에서 1875년(고종 12)에 열녀비를 세웠다. 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의 김봉규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 김봉규 소장 고문서는 교지 6점이다. 1821년(순조 21) 김광옥(金光玉)을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제수하는 교지 1점, 1821년 김상택(金尙澤)을 가의대부(嘉義大夫) 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부(漢城府左尹兼五衛都摠府) 부총관(副摠管)에 제수하는 교지 1점, 1821년 유인(孺人) 이씨(李氏)를 숙부인(淑夫...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겸지(兼之).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김수직(金守直)은 1794년(정조 18)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순후하고 효성스러워서 어려서부터 고기나 과일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님께 먼저 드렸다. 어른이 되어서는 농사를 지어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여름에는 생선을 차...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개항기 김수직(金守直)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김수직은 본관이 용궁(龍宮)이며, 자는 겸지(兼之)이다. 1794년(정조 18)에 태어났으며,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천성이 순후하여 부모를 섬기는 데 여름에는 생선을 구하여 봉양하였고, 겨울에는 미음을 준비하여 공양하였다. 아버지가 종기를 앓자 여러 달 동안 입으...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남성마을에 있는 돌무더기. 남성마을 당산이란 마을 앞 도로변 정자나무들 아래의 길 좌우에 있는 자연석을 쌓아 올려 만든 돌무더기를 일컫는다. 옛날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서 주로 도보로 이동하였으며, 종일토록 걷는 날이 많아 자주 발병이 났다. 따라서 길 걷는 사람이 발병이 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이 당산에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하동군 고전면...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서 너본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너본바위 이야기」는, 고전면 성천리 남성(南城)마을 입구에 고인돌로 보이는 넓은 바위 두 개가 있는데, 도사가 제자에게 명지(名地)를 설명하며 너도 보았느냐고 묻자 보았다고 대답하여 ‘너본바위’라고 불렸다는 암석유래담이다. 2003년 고전면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고전면지』에 실려 있다. 또한 2004년...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 있던 고대 성곽. 노봉산성(老峯山城)은 함양의 가야인들이 514년경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으리라 추측되며, 고려 때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수축하였다고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노봉산성의 축성 시기는 신라 후기 토성에서 석성으로 전환하는 시대인 것으로 보이나, 채집되는 유물과 성곽의 전반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연대는 알 수 없다. 하동...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노화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노화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 아침 노화마을에 있는 당산과 마을 입구의 표지석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노화마을은 고속국도 10호선의 하동IC에서 섬진강을 끼고 차량으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노화마을 당산제의 연원에 대해서 정확...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독골·큰덕골·큰터골·큰도골 등을 한자로 표기하여 대덕(大德)이라 하였다. 우리말 이름은 풍수지리상 마을 산세가 큰 닭처럼 생겨 ‘큰닭’으로 부르던 것이 변한 이름이라고도 하고, 마을 뒤에 큰 계곡이 많아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개 너머 작은독골[小德]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金鷄抱卵形) 형국과 관련이 있는...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대덕에 있는 김해 김씨 동성 마을. 본디 큰덕골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한자로 표기하면서 ‘큰 대(大)’자와 ‘덕 덕(德)’자를 써서 대덕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상 마을 지세가 닭의 형국이라 큰닭골이라 하였는데 큰덕골로 음이 바뀌었다가 오늘날 대덕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 중기 사과(司果) 벼슬을 지냈던 김해 김씨 김익중(金益重...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돌을 쪼아 만든 다리가 있었다 하여 조신다리·조신더리 등이라 하였고, 한자로는 명교(銘橋)로 표기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명교촌,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죠신다리,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명교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고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동군 고전면 명교리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명교리 명교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명교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고전면 명교리 명교마을에 있는 명교숲의 느티나무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명교마을은 양보면 운암리 진암마을과 지례리 만지마을과 인접하며, 마을 주위로 주교천이 흐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신체가 위치하며 기이한 형태의 바위가 있...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묵(朴永默)은 같은 마을 사람인 이종인(李宗仁) 등과 함께 1919년 4월 6일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있는 배다리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뒷날 일본 경찰이 마을을 포위하고 주동자를 찾자 스스로 주동자라고 외쳐 경성고등법원에서 2년 6개월 형을 받아 복역하였다. 박영묵의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1881년 5월 5일 지금의 경상남도...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범사동(泛槎洞)의 ‘범’자와 아동(鵝洞)의 ‘아’자를 따서 범아리(泛鵝里)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범사촌·아배촌(鵝背村),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아동·두룸박골 등 관련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마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마전면 범사동과 아동이 통합되어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가...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매자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는 백석마을, 아정마을, 율촌마을, 범사마을, 매자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백석마을이 고전면 소재지에 해당한다. 1914년 행정 개편 이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범사마을의 ‘범’ 자와 아동마을의 ‘아’ 자를 따서 범아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마을 동쪽...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범사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는 백석마을, 아정마을, 율촌마을, 범사마을, 매자마을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백석마을이 고전면 소재지에 해당한다. 1914년 행정 개편 이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범사마을의 ‘범’ 자와 아동마을의 ‘아’ 자를 따서 범아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 마을 동쪽...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중기 정안(鄭晏)이 쌓았다는 정안봉 산성 남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남성(南城)·성내·성천(城川)이라 하였다. 마을 주변에 있는 여섯 개 고개 안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재내라 하였다가 잔내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재내의 ‘재’가 보통 성(城) 또는 고개[峴]를 의미하기에 정안성 또는 여섯 고개와 관련된 지명 유래가 전해 오는 듯하다. 『조...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성천리 고인돌군은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 입구 삼일 독립운동 의거 기념비(三一獨立運動義擧紀念碑) 주변에 위치한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고전천 제방 공사를 할 때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남성마을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는 7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남아 있는 덮개돌[上石]...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상성에 있는 영일 정씨 동성 마을. 상성은 성천리에서 가장 윗동네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성천리는 본디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외부로 통하는 여섯 개의 고개가 있어, 고개 안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재내[峙內] 또는 잔내라 하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한자로 표기할 때 행정 공무원이 재내에 해당하는 한자를 고른 끝에 ‘재 성(城)’자와 ‘내 천(川)’자를 써서 붙...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베리[벼랑]가 있어 베리대 또는 성평(星坪)이라 하였다. 『호구총수(戶口總數)』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성평촌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조선지지자료』에는 ‘당밋’이라는 한글 이름도 있는데, 당집이 있어 남당(南堂)이라 불리던 산 아래 있는 마을이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 하동군 고현면에 속했던 지역으...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성평에 있는 하동 정씨 동성 마을. 가야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별아대 또는 별벌이라 하였는데 정확한 뜻은 알 길이 없다. 훗날 마을 명칭을 한자로 고쳐 표기할 때 ‘별 성(星)’자와 ‘들 평(坪)’자를 써서 성평이라 하였다. 1600년경 처사 정홍장(鄭泓長)의 후손들이 성평에 영모재(永慕齋)를 세우고 대대로 세거하면서 하동 정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성평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성평마을 당산제는 매년 양력 1월 1일 아침 고전면 성평리 성평마을 어귀에 있는 느티나무에서 천룡사 스님의 주도하에 불교식으로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성평마을은 주교천을 끼고 발달한 마을이다. 예전에는 마을 담이 모두 돌로 되어 있다고 해서 돌담마을이라 불렸다. 성평마을은 시인이자...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고려 후기 토성. 소란산성(小卵山城)은 고려 후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하였다고 전한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신방마을에 있는 소란산 정상부에 위치하며, 하동읍성(河東邑城)에 인접해 있는 관방성이다.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와 전도리의 경계에 자리하고, 섬진강에 임해 있다. 부(府)의 남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군(郡)의 남쪽에...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나루. 신방나루는 남해고속도로 하동나들목에서 고남교를 건너 하동포구터널을 지나면 숨은 듯이 있다. 국도 19호선이 4차선으로 이전 확장되기 이전 옛길로 접어들면 나오는 강촌 나루터인 신방나루는 과거에는 지역 교통의 요지였으나 현재는 재첩 잡이 배들만이 남아있는 고즈넉한 어촌 마을 나루이다. 과거 육상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하동군 하동읍으...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신월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로서 예배와 찬양, 기도로 회복되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섬김과 나눔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하며, 신앙 회복[영성 회복]과 성장을 목적으로 1987년 11월 7일 고전면 신월리 599에 설립되었다. 신월교회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교회로서 주일...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 모양이 마치 반달처럼 생겼으므로 신월리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신월촌(新月村)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팔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시목동(柿木洞)·호화동(芦花洞)·신월동·냉정동(冷井洞)·사평동(沙坪洞)·양막동(羊幕洞) 등이 통합되어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가 되었다...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산. 양경산은 높이 149m로, 주변에 150~300m 안팎 높이의 산줄기가 뻗어 있고, 산줄기에서 동쪽 또는 동남쪽으로 뻗은 50m 안팎 높이의 능선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양경산에는 하동읍성이 있는데, 읍성의 안쪽은 작은 곡부(谷部)를 이루고 있다. 물은 대부분 남서쪽의 남문 터 주변에 집중되어, 동쪽으로 흘러 남서 방향으로 빠지는 지형...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대승불교 조계종 경남서부교구 소속의 사찰. 1973년에 공순애(孔順愛) 보살[법명 경월]이 소량산 기슭에 연등사(蓮燈寺)를 지었으며, 현재는 창건자가 세상을 떠나고 주지인 혜정 외 1명의 승려가 있다. ‘연동사’라고도 한다. 연등사는 불법(佛法)을 전하고 주민의 교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마을과 인접해 있어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이 활발하고, 평...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염삼섭(廉三燮)은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하동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서울에서 3·1 운동이 일어나고 얼마 후인 3월 18일 하동읍에서 만세 사건이 일어나는 등 만세 운동의 기운이 고조되자 같은 학교 학생 박문화(朴汶和), 정점금(鄭点金), 전석순(全錫舜) 등과 함께 비밀 회합을 열고 의거를 협의하였다. 그들은 하동 지역의...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주(坡州). 자는 내일(乃一), 호는 청산(靑山). 고려 후기 재상을 지낸 충경공(忠敬公) 염제신(廉悌臣)의 후손이다. 염정일(廉廷一)은 1801년(순조 1)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어느 해 아버지가 아파서 의원을 찾아가는 길에 나루에 이르렀는데, 어떤 여자가 “남쪽에서 의원을 구하면 효험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 있는 개항기 염정일(廉廷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여각. 효자 염정일[1801~?]의 자는 내일(乃一)이고, 호는 청산(靑山)이다. 유명한 효자 염종환(廉宗煥)의 아들이다. 염정일이 어느 날 아버지가 아파서 의원을 찾아 가는 길에 나루에 이르렀는데, 어떤 여자가 “남쪽에서 의원을 구하면 효험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여자가 말한 대로 의원...
-
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주(坡州). 자는 사빈(士彬), 호는 죽월(竹月). 고려 후기 재상을 지낸 충경공(忠敬公) 염제신(廉悌臣)의 후손이다. 염종환(廉宗煥)은 1742년(영조 18)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등창이 심해 병석에 누워 있을 때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고 똥의 맛을 보면서 병세를 살펴 등창을 낫게 하였다. 어느 해 여름...
-
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주(坡州). 자는 주원(周湲), 호는 지성(至誠). 고려 후기 재상을 지낸 충경공(忠敬公) 염제신(廉悌臣)의 후손이다. 고조부는 염종환(廉宗煥), 증조부는 염정일(廉廷一)인데, 모두 효자로 유명하다. 염태섭(廉台燮)은 1872년(고종 9)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치질(痔疾)이 심하여 약으로 산삼이 제일 좋다는...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경호(李璟鎬)[혹은 李敬鎬로도 씀]는 1890년(고종 27) 6월 17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291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던 이경호는 1910년 경술국치의 비보를 듣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하였다. 그리고 붉은 글씨로 ‘항일 투쟁’, ‘일본 타도’를 써서 벽에 붙여두고 항일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이후 성천...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이영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영완(李永完)은 본관이 금구(金溝)이다. 1920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서 태어나 11세 때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양복 기술자로 사회 활동을 시작하였다. 30세 때 직물 공장을 설립하였고, 33세 때 동신기업주식회사를 창업하여 수출에 힘써 국가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되어 1983년 대통령 산업...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인(李宗仁)은 1869년(고종 6) 6월 15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90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이종인은 박영묵(朴永默)·정상정(鄭相正)·정의용(鄭宜鎔)·추홍순(秋鴻順) 등과 동지 33명을 규합하여 일신단(一身團)이란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약하였다. 1919년 4월 6일 하동군 고전면 주교리...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들 가운데 섬처럼 생긴 조그만 산이 있어 앞섬·전도(前島)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호구총수(戶口總數)』와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전도촌(錢島村)이라는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 말 하동군 마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전도동·월진동(月津洞)·선소동(船所洞)·신방동(新芳洞)이 통합되어 하동군...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신방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는 신방마을, 원전도마을, 월진마을 등으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섬진강 변에 위치한다. 전도리 고분은 소란산성(小卵山城)이 위치하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납골당 부근 능선의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내려온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서편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주변의 대부분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산...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석성. 전도리 성지(錢島里城址)의 건립 경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섬진강 하구의 물길을 서편으로 한 천연의 요새에 자리하여 외부 침입에 대비해 축조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섬진강 하구 동안의 구릉, 즉 고남초등학교 북편 야산에 위치한다. 동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4㎞ 정도 떨어진 곳에 하동...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선소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산포지.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는 신방마을, 선소마을, 월진마을, 전도마을로 이루어진 행정 구역으로, 선소마을이라는 지명은 예로부터 마을로 배가 들고나는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의 월진마을은 달이 넘어가는 곳이라는 뜻으로 달머리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나루터가 있던 곳이라고 하여 붙...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전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전도마을 당산제는 매년 섣달그믐에 고전면 전도리 전도마을 내 벚꽃나무 당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전도마을은 고전면 소재지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전도마을은 인근에 고속국도 10호선의 하동 IC가 있고 국도 19호선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하동의 관문이자 교...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석순(全錫舜)은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범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하동공립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학우 박문화(朴汶和)·염삼섭(廉三燮)·정점금(鄭點金) 등과 하동 지역에서 일어났던 만세 운동을 목도하고 “우리 학생들도 궐기하여 의거를 결행하자!”고 결의하였다. 이에 수차례 비밀 회합을 가진 후, 기숙사에서 3~4학년...
-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현대 시인. 1963년 장편 서사시 「미 8군의 차」로 필화 사건을 경험한 정공채(鄭孔采)는 첫 시집 『정공채 시집 있습니까』를 펴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격변기 한국 문단의 발전은 물론 고향 하동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후배 문인들의 등불이 되었다. 정공채는 1934년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서 태어...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상정(鄭相正)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선중(善中), 호는 석정(石亭)이다. 1878년(고종 15) 10월 10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1103번지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던 정상정은 지리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던 중 의병대장 유명국(柳明國)의 명으로 노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귀향하였다. 1919년 3월 박영묵...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 애국지사 정상정의 묘소. 정상정은 영일 정씨로 1878년(고종 15) 10월 고전면 성천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전면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인 일신단을 주도하며 1919년 4월 6일 고전면 고하리, 배더리 장날 이종인, 박영묵, 정의용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장꾼을 모아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 일본 헌병 20여 명과...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봉수대. 정안봉 봉수를 축조하였다고 알려진 정안(鄭晏)[?~1251]은 하동 정씨(河東鄭氏)로서 부친 정숙첨(鄭叔瞻)과 조부 정세유(鄭世裕)는 관직에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정안은 진양의 수령으로 나갔다가 모친이 연로하다며 사직하고 하동으로 돌아와 정안봉 봉수가 있는 정안봉 산성(鄭晏峯山城)에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정안봉 봉수는...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에 있는 고려 후기 석성. 정안봉 산성(鄭晏峯山城)을 축성한 정안(鄭晏)[?~1251]은 하동 출신으로서, 고려 후기 무신 정권기에 참지정사를 지냈다. 몽골족이 침입해 국토를 유린하는 상황에서 무인 집정이었던 최이(崔怡)를 도운 애국자였으며, 사재를 들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판각할 만큼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정안봉 산성은 정안이 1216년(고종...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독립 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자, 이에 부응하여 4월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서는 박영묵(朴永默)의 주도 아래 일신단(一身團)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에 동참하려는 준비가 진행되었다. 정윤용(鄭潤鎔)은 이때 일신단의 일원으로 만세 운동을 준비하고 주도했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당시 같은 마을에 사는 이종인(李宗仁...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의 배다리장터에서 열린 만세 운동에는 인근 양보·진교·금남 주민 1천여 명이 동참하여 하동군 내 어느 지역보다 규모가 컸다. 이들이 만세 운동을 진행했던 배다리장터에는 현재 장은 서지 않고 그 터만 남아 있으며, 만세 운동을 기념해 하동군 고전면민 만세 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배다리장터는 ‘배더리장터’...
-
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하동군에서도 하동읍·고전면·북천면·옥종면·청암면·화개면 등지에서 만세 운동이 다발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만세 운동 중 하동보통학교 학생 160여 명이 하동시장에 모여 만세를 부른 운동이 있었다. 1919년 4월 7일 하동보통학교 학생들이 광평 송림으로 소풍을 가는 날, 학생들은 박문화(朴汶和) 등 4학...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조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조진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상순[초하루에서 초열흘 사이] 중 택일한 날에 고전면 대덕리 조진마을 안 팽나무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조진마을은 고전천과 주교천이 만나는 해상 교통의 요지였던 대덕포구 인근에 위치해 있다. 마을 뒤로는 고속국도 10호선이 통과하고 앞으로는 고...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죽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죽전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고전면 고하리 죽전마을에서 지신밟기[집돌량] 행사의 일환으로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죽전마을은 금오산 인근에 자리 잡은 자연 부락이다. 고하마을 앞 안산의 끝자락에 위치한 남향 마을이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앞들이 비옥하여...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지소마을 당산제는 매년 동짓달 그믐날 아침에 고전면 성천리 지소마을 입구에 있는 당산 할매[돌무덤]와 네 방위의 당산 할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지소마을은 예전에 닥나무가 많이 재배되어 그것을 이용해 한지를 생산하던 자연 마을이다. 지소마을에는 삼산봉의 정기가 서려 있고, 풍...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고하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읍성. 하동은 조선 후기 숙종 때까지는 현이라는 조그만 고을이었고, 관아가 있는 읍치(邑治)는 고현면[현재의 고전면] 고하리에 있었다. 현재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를 둘러싸고 있는 양경산(陽慶山)의 정상부를 따라 축조된 성곽이 하동읍성(河東邑城)으로, 주변의 산석을 이용하여 쌓아 올렸다. 조선 시대 태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에 있는 하동 정씨 네 열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하동 정씨(河東鄭氏) 집안의 네 열부인 정한종(鄭翰宗)의 처 연안 차씨(延安車氏), 정한종의 질부 김해 김씨(金海金氏), 정한종의 재종질부 파주 염씨(坡州廉氏), 정한종의 손부 진양 강씨(晉陽姜氏)의 열행이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고 묻혀 버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하동 정씨 문중에서 1966년...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에 있는 3·1 독립 만세 기념비. 하동군 고전면과 금남면의 애국 청년들이 애국 애족의 뜻을 같이하여 일신단 33명을 조직하였는데, 이는 민족 대표 33인을 본받아 만든 항일 단체이다. 일신단은 1919년 4월 6일 고전면 주교리 일명 배다리장터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신단원들은 이튿날 아침 노약자들을 하동군 고전면의 지소마을 뒷산으로 피신...
-
개항기 하동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정수(貞秀). 고려 상서좌사랑중 증공부시랑 평장사(尙書左司郞中贈工部侍郞平章事)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하정덕(河廷德)이고, 아버지는 하경순(河慶淳)이며, 어머니는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하상원(河相源)[1854~1926]은 천품이 온후하였다. 부모를 성심을 다해 봉양하였으며, 부모의 마음을 잘 받들었고 물질적...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합진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합진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초닷새 이전]에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 합진마을에 있는 먼당, 새터, 작은독골, 마을 입구, 제방 등의 오당산에서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합진마을 당산제의 연원에 대해서 정확히 기억하는 마을 주민은 찾을 수 없었으나 마을이 생기고 난 이래 계속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