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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반딧불이 서식지 보호를 위해 경기도 광명시의 시민 단체가 벌인 시민운동. 가학산 반딧불이 살리기운동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산에 있는 반딧불이 서식지를 보호하고자 추진되었다. 광명YMCA 생태 모임의 가학산 모니터링 과정에서 가학산에 반딧불이 서식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나, 광명시에서 가학산을 지나는 고속 철도의 광명 역사 연계도로 건설 계획에 따라 가학산 관통 터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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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서 연탄이 부족하여 일어난 주민 시위사건. 연탄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서울시가 연탄을 반출하지 않자 광명 지역, 특히 소하동 주민들이 연탄 공급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1973년 엄습한 석유 파동으로 유가가 천정부지로 뛰자 연탄의 수요가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연탄 공급 역시 차질이 생겼다. 그리하여 정부는 서울 주민들의 연탄 수급을 원활히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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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광명 지역에서 발생한 차작지 관련 소송사건. 근대 전환기 관속들의 탐학과 부패라는 사회적 문제와 농민 토지의 경작이 연결된 사건이다. 원고 신석준은 자신이 5~6년간 경작하던 경기도 시흥군 서면[지금의 광명시] 소재 친군영의 둔답을 장덕환이 빼앗으려 하자 경작권을 지키기 위한 소송을 내장원(內藏院)에 제기하였다. 1901년(고종 38) 3월의 소장에 따르면 원고 신석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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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한반도 신탁 통치안에 대해 광명 주민들이 벌인 반대 시위. 모스크바3상회의의 신탁 통치 결정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반탁 운동이 일어났으나, 좌익이 찬탁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좌우익의 이념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 3국의 외상들이 모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고 5년 기한의 신탁 통치를 결정하였다. 보다 중요한 사항은 임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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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에 있는 광명성애병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전개된 노사 분쟁. 광명성애병원은 1981년 11월 의료법인 광명의료재단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84년 12월 9일 개원하였다가 1992년 5월 21일 광명성애병원으로 개명하였다. 광명성애병원 노동조합은 2002년 3월 22일 광명시 종합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병원 측의 노동 행위 탄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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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31일 경기도 광명시 광명 3동 광명시장에서 일어난 화재. 1995년 12월 31일 오전 7시 40분에서 8시 30분에 광명시 광명3동에 있는 광명시장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였다. 불은 광명시장 내에 있는 중앙상가에서 시작되었다. 불은 중앙상가 경복상회에서 발화하였는데 원인은 전기 누전이었다. 광명시장 내 중앙상가는 2층 건물로 1971년 건립된 뒤 준공 검사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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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경기도 광명시 4개 택시 노동조합이 연대하여 벌인 노동운동. 경기도 광명시에는 화영운수를 비롯하여 화승운수, 금강운수, 오환교통, 기호운수, 연희택시, 경인운수, 흥천운수 등의 운수 업체가 있다. 택시 노동운동 연대투쟁에 참여한 경인운수 노동조합은 1988년 6월 18일, 화승운수 노종조합은 1987년 8월 13일에 각각 설립되었다. 이중 경인운수 노동조합, 금강운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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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가학리 광산 폐광 마을에서 광석 가루가 유출되어 주민들이 중금속에 노출된 사건. 1993년 9월 환경처에서 전국 260개 지역, 1,300개 지점에 대해 토양 중 중금속 함유량을 조사한 결과,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 소재 가학리 광산[시흥광산]의 경우 아연 및 카드뮴 함량이 자연 함량보다 20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서독산 중턱에 있는 가학리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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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경기도 광명시를 비롯한 중부 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인해 발생한 수해. 1984년까지 우리나라의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홍수로서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의 한강 수위 12.26m, 1972년의 11.24m에 이어 1984년 11.03m를 기록함으로써 세 번째로 많은 비가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의 첨두(尖頭) 시간과 광명시를 둘러싼 안양천 및 목감천의 첨두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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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 일원에서 발생한 수해. 광명시를 휘감아 지나는 안양천과 목감천 주변의 지리적 특성은 저지대에 형성된 자연 마을과 주거 지역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특성상 태풍을 비롯한 강수량을 증가시키는 자연적인 기상 현상은 광명시의 자연 재해를 촉발하는 원인이 되어 왔다. 1990년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기록을 보면 피해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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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삼각주마을에 발생한 수해. 안양천과 목감천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 삼각주마을은 두 하천에서 유입되는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지리적 특성을 갖춘 곳이다. 평지가 발달해 있으므로 사람의 정착에 유리하여 실제 이곳 삼각주마을에 276세대가 정착, 생활을 해왔다. 연중 호우 때나 장마철에는 상습 침수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현지를 떠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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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두 차례의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에 발생한 수해. 광명시를 포함 전국적으로 국지적인 호우를 뿌려대 적지 않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발생시킨 2001년 집중 호우는 태풍 우토와 중국 화남 지방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장마 전선에 힘을 실어주면서 서울, 경기도, 전라북도 등지에 최고 310㎜의 장대비를 쏟아 부었다. 당시 국가 전체로 보아 2001년 호우로 인한 피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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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 및 안양시 일원에 발생한 수해. 1977년 7월 8일과 9일 경기 지방에 내린 집중 호우는 당시 우리나라 기상 관측 이래 최고의 강우량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기록에도 근접하는 것이었다. 안양천 유역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시흥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났고, 안양천은 유수량을 미처 배수하지 못해 일대가 침수되는 수해를 입었다. 당시 집중 호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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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태풍 셀마의 후폭풍에 의해 경기도 광명시 일원에 발생한 수해. 1987년 7월 15일과 16일에 걸쳐 괌에서 발달한 태풍 셀마가 강풍과 폭우를 동반하여 한국에 상륙, 세력이 약화되는 듯하였으나, 다시 활력을 얻어 한반도를 빗겨가면서 남동 해안에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켰다. 당시에는 태풍의 진로를 잘못 판단하고 엉뚱한 예보를 함으로써 사고와 재해를 키웠다는 것이 후일 밝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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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 목감천 유역에 발생한 수해. 1972년 8월 18일과 19일 중부 지방을 강타한 집중 호우로 광명시 목감천 주변 유역의 강우량이 급격히 하천으로 유입되면서 한강 수위가 높아지고 광명시의 수해가 가속화되었다. 1972년 당시 발생한 광명 지역의 집중 호우는 오늘날과 견주어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연재해였다. 최근에도 광명시의 저지대에 해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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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집중 호우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서 발생한 수해. 최근 지구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지역을 불문하고 국지적 집중 호우, 게릴라성 호우, 예보 사각 지대형 호우 등이 출몰하여 기상 당국을 곤란하게 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급발성 집중 호우 현상은 광명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1997년 8월초 이틀간에 걸친 집중 호우로 실제 8월 4일에는 하루 동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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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2년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시흥광산(주)에서 전개된 노동운동. 시흥광산(주)은 1903년 5월 2일 일본인 이이다 규이치로[飯田久一郞]가 한국 정부로부터 채광 허가를 받아 설립한 광산으로 은, 동, 아연 등을 채굴하였다. 해방 이후 허익, 황기룡 등이 운영하였다가 1961년에는 최재항이 경영하였다. 이때 시흥광산(주)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노사 분쟁이 일어났다.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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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 남침으로 경기도 광명시에서 있었던 전쟁의 양상.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3년 1개월간 지속된 전쟁으로, 당시 시흥군에 속해 있던 광명 지역도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흥은 서울~수원~오산으로 이어지는 인민군의 주공격 방향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시흥군이 수도 서울에 인접했기에 서울 방어와 탈환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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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광명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1904년(고종 41)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그해 1월 조선 정부는 국외 중립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강제적으로 한일의정서를 채택, 한-러 간에 맺은 모든 조약을 폐기시키는 한편 전쟁 수행을 위한 철도를 착공하고 통신망을 강점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1904년 9월 일본은 병참 기지와 철도 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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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광명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봉기. 19세기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60여 년간은 세도 정치의 폐해 및 봉건적인 지주 전호제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것이 삼정[전정, 군정, 환정]의 문란으로 이어지면서 농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경기도 시흥군[지금의 광명시]에서는 전임 군수 문봉오(文鳳梧)의 탐학과 수탈 및 향리들의 불법 행위, 침탈 등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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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태풍 프라피룬으로 인해 경기도 광명시에 발생한 소규모 수해와 대형 풍해. 2000년 광명시를 스쳐간 제12호 태풍 프라피룬은 태국에서 명명한 이름이다. 태풍 프라피룬[태풍 번호 0012, JTWC 지정 번호 20W, 국제명 Prapiroon]은 1등급 태풍[SSHS]으로 분류될 만큼 강력한 바람을 동반하여 북서태평양에 발생한 12번째 태풍으로서, 한반도에 상륙하여 한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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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를 비롯한 7개 시에서 KTX 영등포역 정차 반대 및 광명역 정상화를 위해 벌인 시민운동. 2004년 1월 속도의 혁명이라는 KTX[고속 철도]가 개통되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 사업이라는 고속 철도는 공사 과정과 차량 구입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4,000억 원을 투입해 건설된 광명역은 애초의 시발역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정차 역으로 전락하는 기형적인 사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