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산기」[송병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942
한자 瑞石山記-宋秉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고성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36년 - 송병선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05년 - 송병선 사망
배경 지역 무등산 -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지도보기
성격 기행문
작가 송병선

[정의]

근대 학자 송병선이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무등산을 유람하고 지은 글.

[개설]

「서석산기(瑞石山記)」를 지은 송병선(宋秉璿)[1836~1905]의 자는 화옥(華玉), 호는 연재(淵齋), 동방일사(東方一士),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9세손이다. 태릉참봉, 경연관(經筵官)·서연관(書筵官)·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 등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힘썼다. 국권을 빼앗기자 이에 통분하여 자결하였다. 저서로 『연재집(淵齋集)』, 『근사석록(近思續錄)』 등이 있다.

「서석산기」송병선이 국권을 빼앗긴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갑갑한 마음을 잊기 위하여 무등산을 유람하고 쓴 글이다. 송병선무등산의 여러 곳을 들러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으나, 특별히 자신의 소회를 밝힌 부분은 많지 않다. 다만, 유람을 통하여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자연 속에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내용]

「서석산기」무등산을 오른 동기, 주상절리의 형상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무등산을 오른 동기

송병선의 나이 63세인 1898년 3월에 지리산을 유람하기 위하여 외사촌 형인 정해최(鄭海最)를 방문하였는데, 그때 무등산에 올랐다.

2. 주상절리의 형상

송강정,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등을 들러 뛰어난 경치를 감상한 후 풍암정에서 시작하여 원효사, 의상암 옛터, 함춘령, 서석대, 입석대, 반야봉, 비로봉, 천황봉, 지공너덜, 규봉, 광석대의 여정으로 이동한다. 서석대의 높이는 백여 자 정도이며, 서로 포개어져 높이 솟아서 마치 사람이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하며, 연꽃이 핀 듯도 하고, 천상의 궁궐이 드리워진 것도 같다고 표현하였다. 마치 신과 귀신이 솜씨를 발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등 주상절리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송병선「서석산기」를 비롯하여 많은 유산기를 남긴 경험이 있다. 이러한 경험으로 글의 구성이 명료하고 짜임새를 갖출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밀한 표현으로 당시 무등산의 풍광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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