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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선산의 상황을 정밀하게 그린 선산읍의 지도. 회화식 지도 가운데 당시 선산부 내외의 관아와 건물 배치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묘사한 지도이다. 지도에서 지역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산에서 제작하여 상송한 것으로 보인다. 「선산읍전도」는 1축(軸)의 채색도(彩色圖)로 크기는 128×58㎝이다. 「선산읍전도」는 읍의 내부 각 건물의 배치를 잘 알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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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선산부의 옛 읍지. 도지에 수록된 선산부(善山府) 옛 읍지로 지역에서 편성되어 상송되었으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60년(영조 36) 이후 전국적 상송령에 따라 수집 편성된 『여지도서』선산편에 이어 지역의 현실을 담은 읍지가 계속 편찬되어 상송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선산부읍지』가 있다. 『경상도읍지』의 『선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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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선산의 옛 읍지. 선산에 대한 지리 정보를 보여주는 ‘선산읍지’는 1618년 편찬된 최현의 『일선지』를 비롯하여 『경상도읍지』 내의 『선산부읍지』 등이 있다. 특히 상송령이나 필요에 따라 지역에서 작성되어 단권으로 있는 『선산읍지』는 여러 종이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앞선 시기의 것으로는 미산본 『선산읍지』가 있다. 같은 유형의 규장각본은 1899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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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인동의 옛 읍지. 『옥산지』는 1699년(숙종 25) 조정에서 각 고을에 영을 내려 지지(地誌)를 수정하여 올리도록 하자 인동부사 최문징(崔文澂)이 권유하고 지역의 인사들이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699년(숙종 25) 조정에서 지지(地誌)를 수정하여 올리도록 하였으므로 인동부사 최문징이 권유하고, 향교 도유사였던 안재(安齋) 장유(張瑠)가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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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인동부의 옛 읍지. 도지에 수록된 인동부의 옛 읍지로 지역에서 편성되어 상송되었으며,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60년(영조 36) 이후 전국적 상송령에 따라 수집 편성된 『여지도서』인동편에 이어 지역의 현실을 담은 읍지가 계속 편찬되어 상송되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경상도읍지』에 수록된 『인동부읍지』가 있다. 『경상도읍지』의 『인동부읍지』는 과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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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인동부의 옛 읍지. 인동에 대한 지리 정보를 보여주는 ‘인동읍지’는 숙종조의 『옥산지』를 비롯하여 『경상도읍지』 내의 『인동부읍지』 등이 있다. 특히 상송령이나 필요에 따라 지역에서 작성된 단독의 『인동읍지』는 여러 종이 있으며, 19세기 후반기에 집중적으로 편찬되었다. 도지(道誌)에 수록되지 않으면서 단독으로 나오는 『인동읍지』는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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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에 최현이 편찬한 선산의 옛 읍지. 선산부사로 부임하였던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1477년 읍민들에게 공평한 세정을 펼치고 관할 지역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한 자료로 「선산지도지(善山地圖誌)」를 만들었으며, 이를 행정 자료로 이용하였다. 이후 노경임(盧景任, 1569~1620)은 1601년 『숭선지(嵩善誌)』를 편찬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 인재(訒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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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월호리에 있던 조선 말 유곡찰방(幽谷察訪) 고영석(高永錫)의 송덕비. 선산 지역 내에는 구미(仇尾), 안곡(安谷), 연향(延香), 상림(上林) 등 4역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 역들은 유곡찰방의 관할 하에 있었다. 이에 따라 옛 연향역이 있었던 해평에 유곡찰방인 고영석의 선정비가 세워졌다.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해평중학교 내 운동장 담장 아래에 장한 효자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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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야은 길재 선생 추정 묘비. 길재의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이며,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말년에는 선산의 향리에서 강학을 베풀어 그 학통을 김숙자(金叔滋)에게 전하고 이를 다시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이 이었다. 길재 묘비는 충의를 기리고, 학문적 성과를 기리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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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에 있는 조선시대에 세운 고려 충신 길재(吉再)의 정려비. 길재 정려비는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자료인 삼강정려비각 내에 있다. 이 비각은 고려 충신 길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한 배숙기(裵淑綺), 정절을 지킨 조을생(趙乙生)의 처 약가(藥哥)의 정려비를 모아 1795년(정조 19)에 세웠다. 길재는 봉한리 마을 출신으로 조선 건국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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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조선 말의 선산부사 김사철 송덕비. 김사철의 자는 자유(子由)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1878년(고종 15) 문과에 급제한 뒤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90년(고종 27) 9월 선산부사로 도임하여 1892년(고종 29) 8월 이임하였다. 1910년 일제에 병탄당한 뒤 일제로부터 남작 작호를 받았다. 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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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봉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료 박수홍의 묘비. 박수홍의 자는 유언(裕彦), 호는 봉곡(蓬谷)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권지부정자에 보임되었으며, 외직을 거쳐 성균관전적, 예조좌랑을 역임하였고, 예조정랑겸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강화로 호종하였으며, 그 뒤 경외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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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 있는 조선시대 객사. 객사는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 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패를 두어 예를 행하였으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사신들이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객관(客館)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지금의 선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1914년 현재 위치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완전리 59-3[선산중앙로 73]으로 옮겼다. 고려와 조선시대 각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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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독동리에 소재한 고전적자료전시관의 노진환(盧鎭桓)이 소장한 고전적. 선산 노진환 전적은 17세기 이후 조성된 전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집류로는 영남·기호 지역의 학자들의 문집을 합하여 3,000여 종 총 20,000여 책에 달한다. 그 외 잡저류로는 250여 종 1,600여 책이 있다. 고문서로는 13,000여 점이 있는데 이에는 교지, 호구단자,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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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2일 경상북도 구미 선산장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선산에서는 선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13일 만세 계획이 있었으나 실패로 끝나고 4월 12일 권오환(權五煥)을 중심으로 선산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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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에 있는 고려 전기에 태조 왕건이 머물렀다고 전하는 유적. 선산의 진산인 비봉산의 동쪽 줄기에 해당하는 태조산에서 이어지는 선산읍 생곡리 앞 낙동강 변의 조그마한 구릉 위에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진을 치고 머물렀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선산부읍지』에 따르면 한 그루의 나무가 무성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수레의 일산(日傘)과 같아 사람들이 어성정(御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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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조선 후기 장학(張澩)의 강학 시설. 여차정은 남파 장학이 1659년 제자들과 공부하기 위해 건립한 곳으로, ‘여차정(如此亭)’이란 이름은 바깥 세상은 시끄럽지만 현재의 이곳은 맑다는 뜻으로 지었다. 마당에 있는 백일홍은 장학이 건립 당시에 심은 것이라 전한다. 1659년(효종 10)에 건립하였으며, 1959년 복원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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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오가리 구평마을에 있는 전윤무(田胤武)의 재실. 전가식의 후손이며 전좌명의 증손인 가정 전윤무(1511~1560)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이다. 1878년(고종 15)에 건립하였으며, 1960년 중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1층 기와집이다. 평면은 중앙에 어칸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1칸의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 挾室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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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인동현감 이보의 송덕비. 이보(李輔)의 자는 경임(景任), 호는 남계(南溪)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군위 소보 출신으로 유성룡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0년(선조 23)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해(金垓)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활약하면서, 1594년 인동현에서 둔전관겸가수(屯田官兼假守)로 근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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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옥계동에 있는 조선시대 인동부사 이희면(李熙冕)의 선정비. 비신의 앞면이 훼손되어 있어 영세불망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뒷면의 1840년(헌종 6) 즈음에 부임한 인동부사로는 1838년(헌종 4)에 부임하여 1842년(헌종 8)에 이임한 이희면(李凞冕)이 유일하므로 인동부사 이모는 이희면으로 추정된다. 인동부사 이희면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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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지역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명. 인동은 외부의 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교통 요지에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문명이 발전하였으며, 풍부한 물산과 군사적 요충지로 인해 조선 후기까지 도호부 관할 하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와 철도가 약목을 통과하게 되고 운하 교역이 감소하면서 칠곡과 선산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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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해평·군위 일원을 관장하였던 신라시대 행정구역. 일종의 군관구로 설치된 일선주는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삼국 통일의 중요한 보급 기지가 되었다. 통일 전쟁 과정에 총관이 직접 출전하기도 하였으며, 일선주 백성들은 전쟁에 사용된 병력과 물자를 제공하였다. 신라의 영토 확장과 함께 선산 지역은 신라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이 설치되었다. 낙동강 동안의 낙산리 일대에 대형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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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8일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한말 의병장 허위(許蔿)의 출신지인 구미시 임은동은 항일의 기풍이 강한 곳으로, 1919년 4월 8일 강용준(姜龍俊)·유시동(劉時東)을 중심으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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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장수(張脩)이다. 장보는 풍저창승(豊儲倉丞)을 지냈으며 1460년(세조 6) 5월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진목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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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우문(遇文), 호는 성와(省窩). 심곡 장제원(張悌元)의 후손이며 장점(張點)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재옥(張在玉), 아버지는 장진구(張鎭九)이다. 재종숙 장진오(張鎭五)에게 입양되었다. 1810년(순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김천도찰방,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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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죽정(竹亭) 장잠(張潛), 아버지는 장윤(張崙)이다. 장사진은 당시의 인동현에서 태어났으며, 현재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오천리로 이사했다. 어려서부터 의협심이 있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였으므로 이웃사람들은 의협인(義俠人)이라고 불렀다. 군위향교 교생으로 면학하던 중 임진왜란을 맞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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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용규(張龍逵), 자는 진백(震伯), 호는 유헌(遊軒)·운전(雲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호(張濠), 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어머니는 김구운(金龜雲)의 딸로 선산김씨(善山金氏), 처는 허참(許傪)의 딸로 김해허씨(金海許氏)이다. 장학덕(張學㯖)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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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견가(見可), 호는 춘고(春皐).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동암(東巖) 장대방(張大方)의 5세손, 만인당(晩忍堂) 장지학(張趾學)의 현손, 장수형(張壽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윤구(張胤矩), 아버지는 장호추(張好樞), 어머니는 이동혐(李東馦)의 딸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장석준은 1852년(철종 3) 문과에 급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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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이다. 장선은 고려 전기에 금오위상장군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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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이며, 자는 자진(子陳)이다.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학거(鶴渠) 장순(張峋)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심곡(深谷) 장제원(張悌元), 아버지는 지암(止庵) 장내겸(張乃謙)이다. 장세기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했으며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사후에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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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장신원(張信元)이다. 장신원은 고려 전기에 봉어(奉御, 정6품)와 직장(直長, 정7품)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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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안세(張安世), 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이다. 유일(遺逸)로 천거되었다. 태종 때에 칠원감무(漆原監務)를 역임하였으며, 사헌부지평과 집의를 거쳐 1430년(세종 12) 장령에 이르렀다. 간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인동으로 물러나 세상을 마쳤다. 『옥산지(玉山志)』에 인동부 동헌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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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중용(仲庸). 송와(松窩) 장영(張塋)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장몽규(張夢奎), 아버지는 장흥옥(張興玉)이다. 장수용은 1756년(영조 32)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전적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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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유생이자 학자.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앙(景仰), 호는 학거(鶴渠). 장금용(張金用)계로서 통찬(通贊) 장맹저(張孟儲)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인동장씨 진평파 파조 장신손(張信孫), 아버지는 장사랑 장항(張沆), 어머니는 이조참판 박추(朴鰌)의 딸로 울산박씨(蔚山朴氏)이다. 장순은 할아버지 장신손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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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 장인숙(張仁淑)이다. 장순은 고려 후기에 밀직사부사(密直司副使)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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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호(士浩)·자활(子活), 호는 오재(悟齋)·송암(松庵). 장순효(張純孝)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경원(張敬源), 아버지는 군수 장중지(張重智),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장순손은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480년(성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85년(성종 16) 문과에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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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유(公裕), 호는 운정(雲庭). 장금용(張金用)계로서 산음현감 장옥(張鈺)의 8대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호옹(四好翁) 장학추(張學樞), 아버지는 장석구(張錫龜)이다. 14세 때 중부인 장석용(張錫龍)에게 입양되었다. 백부는 장석봉(張錫鳳)이다. 장승원은 1885년(고종 22) 증광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주서를 시작으로 홍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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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교위 장진(張震), 아버지는 내사문하성내사령 장국신(張國伸)이다. 장신원은 당시의 인동현(仁同縣)에서 태어났다.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관직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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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송은(松隱).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밀직사부사 장순(張純), 아버지는 장균(張均)이다. 장안세는 고려 후기 함주(현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갈한천(乫罕川)이 해마다 범람하여 재해가 연속되자 함주부사에 임명되었다. 10여 년 동안 재임하면서 치수에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70칸이 되는 만세교(萬歲橋)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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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화중(和仲). 아버지는 통선랑(通善郞) 장보한(張輔漢)이다. 장여간은 당시의 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33년(인조 1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35년(인조 13) 증광 문과에 합격하였으며 판관과 현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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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명세(鳴世), 호는 소매당(訴梅堂).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장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 여헌 장현광에게서 학문을 이어받았다. 1662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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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이상(而相).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아버지는 청천당(聽天堂) 장응일(張應一), 어머니는 목사 송광정(宋光廷)의 딸로 야로송씨(冶爐宋氏)이다. 형이 소매당(訴梅堂) 장영(張𨥭)이다. 장옥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음직(蔭職)으로 산음현감을 지냈다. 묘소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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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백응(伯應), 호는 남와(南窩). 장금용(張金用)계로서 남파 장학의 후손이자 장한시(張漢蓍)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온재(穩齋) 장수모(張守模), 아버지는 통덕랑 장인섭(張仁燮)이다. 백부인 통덕랑 장운섭(張運燮)에게 입양되었다. 장용팔은 1803(순조 3) 문과에 급제하였다. 1806년 사헌부지평을 제수받았으나 이어지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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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인동장씨 남산파의 파조. 본관은 인동(仁同).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해부사 장중양(張仲陽), 아버지는 사헌부장령 장수(張脩)이다. 훗날 인동장씨 남산파(南山派)의 파조가 되었다. 장우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사천진병마첨절제사겸현감으로 재임 중 해변에 성채를 쌓고 군량미를 비축하여 방비를 튼튼하게 하였다.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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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공지(拱之).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삼우당(三優堂) 장해(張𣴴)이다. 장우극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수안군수, 삼수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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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장우환(張羽寰), 자는 보경(輔卿), 호는 침류정(枕流亭)이다.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장원(張厡)이다. 장우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2년(현종 13) 무과에 급제한 뒤 오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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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봉거(鳳擧).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남파 장학(張澩)이다. 장우영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현종조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승정원동부승지를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경상좌도수군절제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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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초휘는 장우천(張羽天), 자는 제천(梯天).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삼우당(三優堂) 장해(張𣴴)이다. 장우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학식과 재덕을 두루 갖추고 있었으며 글씨에 재능이 있었으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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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중(經仲), 호는 귀로정(歸老亭).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이조참판 장계증(張繼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희(張熙), 아버지는 월포(月浦) 장현도(張顯道), 어머니는 도시인(都是仁)의 딸이다. 장우일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으며 종숙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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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두경(斗卿), 호는 임졸재(任拙齋).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극명당(克明堂) 장내범(張乃範)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만회당(晩悔堂) 장경우(張慶遇),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장원(張厡)이다. 형으로 장우주(張宇柱), 장우상(張宇相)이 있다. 장우추는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679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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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학부(學夫), 호는 동릉(東陵). 여헌 장현광의 후손으로, 사이당(四而堂) 장지덕(張趾德)의 6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장위(張瑋)이며, 할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장석이(張錫頤)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장인원(張仁遠)이다.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급제하였다. 승정원가주서를 거쳐 승정원주서,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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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贇’은 속음이 빈이기 때문에 ‘장빈’으로도 불린다. 장윤(張贇)은 당시 일선주(一善州)의 속현인 해평현(海平縣)에 살았다. 고려 후기에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안산군수를 역임하였다. 정인지(鄭麟趾)가 쓴 「해평향교기(海平鄕校記)」에 따르면 해평은 선산에 딸린 현이므로 향교를 설치하지 않았으나 부까지는 너무 멀어 당시 향선생(鄕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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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숙(經叔), 호는 청천당(聽天堂).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이조참판 장계증(張繼曾)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장열(張烈), 아버지는 월포(月浦) 장현도(張顯道), 어머니는 이부춘(李富春)의 딸이다. 종숙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에게 입양되었다. 장응일은 7세 때 장현광에게 입양되어 가학을 이었다. 1629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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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자유(子裕), 호는 지분헌(知分軒).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죽정(竹亭) 장잠(張潛)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장곤(張崑), 아버지는 의병장 개옹(㝏翁) 장봉한(張鳳翰)이다. 장이유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효경(孝經)』과 『소학(小學)』을 익혔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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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장위(張偉)이다. 장인숙은 고려 후기에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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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공무(公武), 호는 운초(雲樵).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후손으로 사이당(四而堂) 장지덕(張趾德)의 5세손이며 장윤문(張胤文)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증이조참의 장위(張瑋),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장석이(張錫頤)이다. 장인원은 당시의 인동도호부(仁同都護府)에서 태어났다. 1839년(헌종 5) 별시에 급제한 후 1840년 승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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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구미 출신의 유생.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원(浩原), 호는 죽정(竹亭).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통례문통찬(通禮門通贊) 장맹저(張孟儲), 아버지는 충순위 장적손(張嫡孫), 어머니는 전호군(典護軍) 최한충(崔漢忠)의 딸로 화순최씨(和順崔氏)이다. 후손들이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황상동 일대에 세거함에 따라 훗날 인동장씨 황상파(凰顙派)의 파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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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인동. 자는 중순(仲順), 호는 심곡(深谷).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증조부는 진평파 파조인 진사 장신손(張信孫)이고, 아버지는 생원 장순(張峋)이다. 어머니는 성산이씨로 진사 이태연(李泰然)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1591년(선조 24)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에는 과거 공부를 폐하고 한강 정구(鄭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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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상장군 장선(張善)이다. 고려 초 교위(校尉)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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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장진홍(張鎭弘)은 자는 준극(俊極), 호는 창여(滄旅)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1894년(고종 31년) 6월 6일 인동의 옥계동 문림리 352번지에서 태어나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을 벌이다가 1930년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장진홍은 1907년 4월 1일 현 인동초등학교의 전신인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졸업하였다. 특히 인명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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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자는 능운(凌雲). 장령(掌令) 장수(張脩)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충무위부사용(行忠武衛副司勇) 장찬(張燦)이다. 부사과(副司果)로 있다가 1678년(숙종 4) 증광시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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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장령(掌令) 장수(張脩)의 후손이다. 장추(張湫)는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이 토포사(討捕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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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죽정 장잠(張潛)의 후손이다. 장필흥(張必興)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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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학자. 본관은 인동. 자는 성원(聖源), 호는 남파(南坡).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증공조참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이며, 아버지는 증승정원좌승지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이다. 형제로는 형 장해(張𣴴))와 동생 장원(張厡)이 있다. 장학(張澩)은 11세의 나이로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장현광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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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학자이자 의병장. 본관은 인동. 자는 거원(巨源), 호는 삼우당(三優堂).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22대 주손(冑孫; 제사를 잇는 맏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증공조참판 극명당 장내범(張乃範)이며, 아버지는 증승정원좌승지 만회당 장경우(張慶遇)이다. 형제로는 장학(張澩)과 장원(張厡)이 있다. 장해(張𣴴)는 1642년(인조 20)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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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구미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장현광(張顯光)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이기설에서 일본설(一本說)에 입각하면서도, 이이의 ‘기발이승’을 수용하는 등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힘을 기울였으며, 산림의 한 사람으로서 도덕정치의 구현을 강조하였다. 장현광의 강학 시설로 구미시 임수동에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가 있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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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 자는 순거(順擧). 고려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張潛)이며,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장곤(張崑)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로 내금위(內禁衛)를 지낸 이훈(李薰)의 딸이다. 장홍한은 임진왜란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산·개령·선산·지례 등지에서 왜적을 토벌하였다. 상주판관(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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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인동. 상장군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봉어 장세림(張世林)이다. 선의랑(宣議郞) 위위시주부동정(衛尉寺注簿同正)을 역임하였다. 위위시는 의장(儀仗)에 쓰이는 예기(禮器)와 병기(兵器) 등을 관장하였으며, 위위시주부는 종7품에 해당한다. 동정(同正)은 산직(散職)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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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재덕(全在德)의 본관은 옥천이며, 1924년 3월 1일 지금의 구미시 장천면 상장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전장호이고 어머니는 김월선이다. 전재덕은 장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성립(安東省立) 봉성농업학교에 재직중 만주국 관비 유학 시험에 합격하여 일본 추전일만공업학교에 유학하였다. 그 후 만주 봉천 군수 공장에 배치되어 있던 중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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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좌명의 묘비. 전좌명의 자는 충언(忠彦), 호는 성암(性庵)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양친 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하였다. 1472년(성종 3) 성종은 효자 정려를 내렸으며, 명종은 효행을 칭찬하는 어제시판(御製詩板)을 내렸다. 묘비의 뒷면에는 1762년(영조 38)에 해당하는 ‘숭정기원후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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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0월 18일 장진홍이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발물을 배달시켜 폭발토록 만든 사건. 3·1운동에 나타난 만세시위 위주의 평화적·수세적 방식으로는 독립이 요원해지자, 1920년대에는 독립운동이 행동적·공세적인 방식으로 변해갔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많은 비밀결사체가 조직되고, 독립운동의 전선도 사상이나 이념에 따라 커다란 변화를 보이게 되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발사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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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2일과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인동 진평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 3·1운동은 일제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인동 진평동에서는 3월 12일과 14일 두 번에 걸쳐 학생과 지역 유지들이 결합하여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상북도 지역에서는 3월 8일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의거를 시발로 비안·김천·포항을 거쳐 안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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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목사. 최재화의 호는 백은(白恩), 본관은 경주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산양리에서 최도원(崔道源)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이명으로 최재하(崔在河), 최동수(崔東秀)를 사용하였다. 최재화는 서울 경신중학교를 졸업하고 해평면 산양동에 내려와 신앙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19년 만세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나자 4월 3일 해평면 해평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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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시 해평 지역의 조선시대 행정구역 명칭. 이 지역은 낙동강 동쪽의 분지로 대구에서 다부를 거쳐 해평·낙동·태봉·문경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의성·군위·개령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교차하여 육상 교통로의 중요한 거점이면서 또한 낙동강 유역의 해상 교통로였으므로 일찍부터 창(倉)이 설치되어 물자 수송의 요충지가 되었다. 또한 해평(海平)이라는 지명처럼 넓고 비옥한 평야 지대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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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겸(許蒹)의 호는 성산(性山)이다.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 어머니는 진성이씨이고, 방산 허훈의 동생이자 왕산 허위의 형이다. 허겸은 다른 이름으로 허혁(許爀)·허환(許煥)·허노(許魯)를 같이 사용하였다. 허겸은 1896년 3월 아우인 허위가 김산에서 이기찬을 대장으로 추대하여 의진을 일으키자 찬획으로 참여하였다.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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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종(許鍾)의 자는 성증(聖曾), 호는 중산(重山)이다. 아버지는 방산 허훈의 장자인 허숙이다. 외조부는 한주 이진상이다. 일찍이 조부인 허훈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허종은 종조부인 허겸과 같이 신민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전후에는 백농(白儂) 이동하(李東廈)가 경영하였던 대구의 삼산여관을 중심으로 김응섭(金應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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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학(許壆)의 자는 박경(博卿)이다. 왕산 허위의 4남 2녀 가운데 장남이다. 아명은 허만령(許萬齡)이며, 일명 허형(許瀅) 혹은 허영(許瑩)이라고도 하였다. 허학은 아버지 왕산 허위가 1907년 경기도 연천에서 창의할 때 참여하여 연락과 무기 조달을 담당하였다. 1912년 중부(仲父)인 성산 허겸을 따라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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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형(許蘅)의 호는 범산(凡山)이다. 허희(許禧)의 장자이며 허필(許苾, 1855~1932)의 형이다. 방산 허훈 형제와는 사촌간이다. 첫째아들 허민(1870~1910)은 1904년 제릉참봉, 1907년 궁내부주사를 지냈다. 둘째아들 허발(1872~1955)과 셋째아들 허규(許珪, 1884~1957)는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딸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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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허형식(許亨植)은 1909년 11월 18일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에서 허필(許苾, 1855~1932)의 아들로 태어나 조국 광복을 위해 온 몸을 바쳤던 항일투사였다. 본명은 허극(許克)으로 알려져 있으나 호적에는 허연(許埏)으로 등재되어 있다. 한말 의병장 왕산 허위(許蔿, 1855~1908)의 종질이기도 하다. 허형식은 북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