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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김광백의 아버지는 김기(金玘)이고, 할아버지는 김용려(金用礪), 증조는 김보(金黼)이다. 처부는 군수를 지낸 최운상(崔雲祥)이다. 1603년(선조 36) 생원에 입격하였고, 1612년(광해군 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 비인현감(比仁縣監) 재직 시 병으로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되어 향리들의 작폐가 심해지자 사헌부에 체직(遞職)을 요청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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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건보(健甫). 김준현(金峻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호변(金虎變)이고 아버지는 김홍적(金弘績)이다. 1658년(효종 9) 경릉참봉이 되고, 166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김천찰방·감찰·예조좌랑·병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666년(현종 7)에는 홍천현감을 지냈다. 경직(京職)에 돌아와서는 1667년 정언을, 1670년 지평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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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퇴옹(退翁).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5대손으로 현령 김윤귀(金允貴)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대(金臺)이고 어머니는 강릉권씨 권경수(權景壽)의 딸이다. 아들은 김광진(金光軫)과 김광철(金光轍)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시를 거쳐 1496년(연산군 2)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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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김여계(金汝契)이며 어머니는 김겸(金謙)의 딸이다. 아우는 김양신(金養身), 김양정(金養正)이며 아내는 최충남(崔忠男)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27년(인조 5)에 문과에 올라 첨정(僉正)·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였고, 집현전 창정(集賢殿 彰幀)을 개수(改修)하였다. 김양성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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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김지(金輊)이며 어머니는 전공총랑을 역임한 고첨(高瞻)의 딸이다. 형은 김자갱(金子䃘)이며 아우는 김자현(金子鉉)이다. 1444년(세종 26)에 식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호조참의(戶曹參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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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안국(安國). 할아버지는 김을후(金乙侯)이고 아버지는 김근(金墐)이며,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465년(세조1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72년(성종 3)에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에 합격하고 출사하였다. 교서정자(校書正字)를 시작으로 전중(殿中)을 지냈으며, 재주가 문무를 겸하였으므로 영안북도평사(永安北道評事)에 제수되었고 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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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소(子昭). 강릉박씨 양주파(襄州派)의 파조이다. 고조는 박연(朴演)으로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였고, 증조 박지계(朴之桂)는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냈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으로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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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 남매(南邁)의 딸이다. 형으로는 박시원(朴始元), 박시창(朴始昌), 박시형(朴始亨)이 있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추장시(秋場試)에 올라 벼슬이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이르렀다. 젊었을 때 강릉의 기생 옥반주(玉盤珠)와 서로 사랑하였다. 감사(監司)가 강릉에 머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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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경(華卿). 증조부(曾祖父)는 이조참판 박이서(朴彛敍)이고 조부(祖父)는 병조참판 박노이며 아버지는 초정공(草亭公) 박수현(朴守玄)이다. 1666년(현종 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를 시작으로 저작박사(著作博士),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감찰(監察), 예조좌랑(禮曹左郞), 정언(正言), 병조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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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호조전서(戶曹典書) 서의(徐義)의 증손으로, 목사(牧使) 서미성(徐彌性)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4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다. 그 뒤 집현전박사·경연사경(經筵司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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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본관은 청주.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 주부인 양희수(楊希洙)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에 문명을 떨쳤던 양사준(楊士俊)이 형, 양사기(楊士奇)가 아우이다.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현감(三登縣監)·평창군수(平昌郡守)·강릉부사(江陵府使)·함흥부윤(咸興府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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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유학(幼學) 유운흡(柳雲翕)이고 어머니는 겸사복(兼司僕) 한덕룡(韓德龍)의 딸이다. 유원명(柳遠鳴)은 1789년(정조 13)에 진사(進士)에 올랐고, 1794년(정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22년(순조 22)에 강릉에 부임되어 왔다가 1824년에 관직을 사퇴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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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승지 유태명(柳泰明)의 손자이며, 유무(柳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한중희(韓重熙)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생원이 되고 현감을 지낸 뒤, 176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5년에 정언(正言)·사서(司書)·수찬·교리를 역임하고 1775년(영조 51) 집의(執義)로서 영남어사(嶺南御史)가 되었다. 1776년 왕세손의 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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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사간원 정언을 지낸 유성삼(柳星三)의 아들이다. 1681년(숙종 7) 알성시(謁聖試)에서 병과 3인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690년 사헌부지평에 올랐고, 같은 해에 부제학 이담명(李聃命)에 의하여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이 올랐다. 이듬해에 홍문관교리가 되었고, 이후 수찬·교리·장령·부교리 등을 거쳐 참의에 이르렀다. 17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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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옥진(尹玉珍)이며 어머니는 민윤(閔昀)의 딸이다. 1536년(중종 31) 친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고, 2년 뒤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6년(명종 1) 장령에 이어 교리(校理)·사간(司諫)·사성·검상·사인·동부승지·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나 진복창(陳復昌)의 탄핵을 받아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어머니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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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효자.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덕함(尹德諴)이며 어머니는 권즙(權濈)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 과거에 올라 벼슬이 승문원 부정자(承文院 副正字)에 이르렀다. 아버지 윤덕함(尹德諴)이 병이 났을 때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아버지 입에 흘려 넣어 아버지를 소생케 하였다. 그때 같은 고을에 살았던 한 집안인 윤덕중(尹德重), 윤정중(尹廷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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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우계(羽溪). 할아버지는 우계[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출신 이지방(李之芳), 아버지는 참판 이광식(李光軾)이며, 어머니는 이세응(李世應)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에 생원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명종 연간에 정언을 비롯한 삼사(三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이언적(李彦迪)을 탄핵하는 등, 윤원형(尹元衡)을 좇아 사림파(士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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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계(羽溪). 대사헌을 지낸 이감(李戡)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15)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주서(注書)·찰방(察訪) 등을 지냈다. 이성헌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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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1486년(성종 17)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1516년(중종 11)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1522년(중종 17)에 울진군수를 지냈으며, 이후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지냈다. 이전손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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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으로, 감역 이진원(李進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조철명(趙哲命)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들어갔다. 이조좌랑·장령·이조참의·대사성·승지를 거쳤다. 1790년에 강릉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이어 대사간·대사헌과 외직으로 안동부사를 거쳤다.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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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릉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간성(杆城). 자는 경민(景民). 아버지는 이흥상(李興商)이며, 조부(祖父)는 이만번(李晩蕃)이고 증조부는 이배근(李培根), 외조부는 신기(辛耆)이다. 1738년(영조 14) 24세의 나이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로 과거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많은 치적을 남겼다. 1745년(영조 21)에 사헌부장령을 거쳐 1750년(영조 26)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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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字)는 낙숙(樂叔). 조산대부(朝散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전성명(全性命)의 아들이며 외조부는 권송(權悚)이다. 1517년(중종 12)에 별시문과(別試文科)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注書)에 발탁되었다. 1531년(중종 26) 울진군수를 지냈으며, 개성판윤(開城判尹)·함흥판관(咸興判官)·강동현령(江東縣令)·평산부사(平山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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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字)는 원경(元卿). 통덕랑(通德郞) 전계현(全繼賢)의 아들이다.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1528년(중종 23)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로 있을 때는 서장관(書狀官)으로 두 차례나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금으로 주조한 향로를 선물로 하사받았다. 그 후 풍천(豊川)·정선(旌善)·원주(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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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천장(天章), 호는 낙전당(樂全堂).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으로 참봉(參奉) 정충원(鄭忠元)의 아들이다. 강릉 말산리(末山里)[지금의 강릉시 두산동]에서 태어났다. 5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삼척 초분리(草紛里)로 이주하였다. 1540년(중종 35)에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고, 1544년(중종 39)에 별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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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의 후손으로 조근(曺瑾)의 아들이다. 1681년(숙종 7)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조징한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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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금구현령 조헌주(曺憲周)의 아들이다. 1711년(숙종 3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2년(경종 2) 장릉참봉(章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정시문과에 장원하였다. 이후 동몽교관(童蒙敎官)·공조좌랑·의령현령 등을 거쳐 1739년에 승지, 1741년에 대사간을 지냈다. 1742년(영조 18)에 강릉부사로 왔다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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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조정벽(趙廷璧)의 아들이다. 1792년(정조 1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조항존(趙恒存)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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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개지(介之), 호는 매창(梅窓).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며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셋째 아들이다. 1498년(연산군 4) 소과에 입격하고, 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에 장원급제를 하였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다. 1506년(중종 1)에 왕에게 상소하여 성균관 전적에 올랐고, 이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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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초명(初名)은 최의집(崔義集), 자는 일신(日新), 호는 누곡(樓谷). 호조참판을 지낸 최구담(崔具曋)의 아들이다. 1639년(인조 17) 생원시에 입격하고, 1651년(효종 2) 식년시 병과로 급제하여 통예정랑(通禮正郞)에 제수되었다. 후에 보안(保安)과 고산(高山)의 찰방(察訪)을 거쳐 예천·안산·정선·안성·양양의 수령을 지냈다. 벼슬이 동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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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대중(大中), 호는 내한(內翰). 고성군수를 지낸 최자점(崔自霑)의 증손이며, 최해(崔瀣)의 아들이다. 부인은 권화(權和)의 딸로서 효행이 뛰어났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입격하고, 1570년(선조 3) 식년시 을과에 급제하였으며 감찰(監察)을 지냈다. 『내한유고(內翰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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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찬보(粲甫).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으로 최하적(崔夏績)의 아들이다. 1729년(영조 5)에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함경도판관에 이르렀다. 벼슬을 지낸 후 조급하거나 서두르는 일이 없이 분수를 지키며 살았다. 거처하는 곳에 집을 지어 ‘양한재(養閑齋)’라 이름 하였다. 소나무와 대나무·매화·국화를 매우 사랑하여 군자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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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최문한(崔文漢)의 증손이며 직장(直長) 최윤행(崔允行)의 아들이다. 1465년(세조 11)에 진사와 생원 양시에 합격하였다. 1472년(성종 3)에 문과에 올라 사간원 정언으로 있었으나 간신들의 비위에 거슬려 고성군수로 나갔다. 이 때 강원도 감사 박원종(朴元宗)이 간신들이 사주를 받아 최자점을 파직시키기 위해 최자점의 재산을 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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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최필숭(崔必崇)의 아버지는 최옥연(崔玉淵)이다. 1480년(성종 1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486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충청도사(忠淸都事)에 이르렀다. 최필숭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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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한배후(韓配厚)의 아들로, 한배연(韓配淵)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유익기(兪益基)의 딸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벼슬길로 나아가 1740년(영조 16)에 정선군수를 거쳐 정랑에 올랐다. 1754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60세의 나이로 보덕이 되었고, 이어 지평·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였다. 17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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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의 아들이고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의 형이며, 허난설헌(許蘭說軒)의 오빠이다. 1568년(선조 1)에 생원이 되고, 1583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0년 전적(典籍)으로서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이 되어 정사 황윤길(黃允吉), 부사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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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 예문관대교를 지낸 홍계정(洪係貞)의 아들이다. 1534년(중종 29)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35년(중종 30)에 별시(別試)에 올랐다. 1555년(명종 10) 강릉부사로 부임하였다. 1556년 강원도관찰사 윤인서(尹仁恕)와 전 부사 함헌(咸憲), 최운우(崔雲遇) 등과 함께 오봉서원(五峰書院)을 건립하였다. 오봉서원을 건립할 때에 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