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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방에서 고기 잡을 때 부르던 민요. 강릉 지방 연안어업에서 그물을 당겨 올린 다음, 그물에 담긴 고기를 가래로 퍼 담으면서 부르던 어업 노동요의 하나로 「태질소리」라고도 한다. 여기서 ‘태’란 고기를 퍼 담는 도구를 가리키는데, 지역에 따라 ‘쪽대’ 또는 ‘바디’라고도 한다. 현재는 어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부르지도 않고, 노래가 전승되지도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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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관노들이 가면을 쓰고 추는 성황신제 계통의 탈춤을 중심으로 강릉 단오제 때 행하는 민속극. 「강릉 관노 가면극」은 연희자들이 구한말까지 강릉부에 속했던 관노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매년 단오 때마다 관노들이 놀이판에 직접 참가하여 탈놀이를 하였다. 무언극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강릉 관노 가면극」은 조선시대의 다른 가면극처럼 풍자가 혹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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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관노 가면극」에서 입는 의상. 중요 무형 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에는 예부터 관노(官奴)들의 탈놀이인 「강릉 관노 가면극(官奴假面劇)」이 있었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음력 5월 단오제의 주신(主神)인 대관령 국사 서낭을 모셔 놓은 서낭당에서 연희되었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타지방의 가면극과는 달리 연희자(演戱者)가 관노들이었다는 특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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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방에서 불리던 향토민요. 「긴 아리랑」 또는 「긴 아라리」라고도 부르던 노래로 흥겹게 노는 좌석에서 유희요의 하나로 부르며, 때로는 모내기소리로도 불렸다고 한다. 현재 모내기소리로 전승되는 「자진아라리」와 곡조나 사설이 비슷하지만, 「자진아라리」보다 느리게 부르며 박자 구조가 3소박 4박자이다. 1980년 경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황석관이 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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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죽도봉 동남쪽에 있는 여서낭당 건립 배경 신화. 강릉시 강문마을 북쪽에는 죽도봉이 있다. 이 봉우리 동남쪽에는 암서낭이 있으며, 남쪽 개울 건너에는 숫서낭이 있다. 두 서낭 사이에 ‘진또배기’라고 하는 높이 5m, 둘레 26㎝가량의 솟대가 서 있다. 남서낭은 목조건물에 스레트 지붕을 얹은 당집이 있으며, 여서낭당은 주변에 담장이 쌓여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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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인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로 강릉 등 동해안의 절경을 읊은 작품. 정철[1536~1593]은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인종의 귀인이 된 첫째 누이와 계림군의 부인이 된 둘째 누이 덕택으로 어려서부터 궁중 출입이 잦았는데, 1545년 을사사화 때 계림군이 연루되면서 아버지가 유배되고 큰형이 죽는 화를 당하였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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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구산의 마패성황에 괸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 사는 권오제[남, 65]가 1991년 5월 26일에 제보하였다. 「구산 마패성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산 위에 올라가면 성황당이 하나 있사. 그 질[길] 저쪽에 가면 그 성황당이 이름이 뭔가 하면 그게 마패성황이라 그러네야. 그 원인은 어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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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던 민요. 동해에 접한 강릉 지역은 연안어업이 발달했는데,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재래식 그물을 당겨 올리면서 불렀던 노래가 1970년대 초에 채록되어 전한다. 지금은 전승이 단절된 이 노래는 강릉시 강문에서 채록된 것으로 당시 이용선이 노래하고 최종민이 채록하였다.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소리를 주고받으면서 노래하였다. 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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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논에서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래. 강릉 지방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향토민요의 하나로, 강원 영동지방에서는 모내기를 한 지 20일쯤 지나면 ‘아이 김매기[초벌 김매기]’를 하는데, 이때는 손으로 풀을 뽑는다. 두벌 김매기는 그로부터 20일쯤 지나서 하고, 마지막 세벌 김매기는 다시 20일쯤 지나서 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 지방에서는 논을 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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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불러온 노동요의 하나. 이 노래는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참을 먹으러 나올 때 부른 소리이다. 날머리 소리는 참을 부르는 소리도 되는데, 들에서 이 노래 소리가 들리면 아낙네들은 참을 이고 들로 나가기도 한다. 요요질을 매고 조조질을 매고 임에 논질 모두다 매여주세 (후렴) 요게서 조게서 우우후 지야자 자네 자네도 훌적 모두 다 매여주세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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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 사는 최덕자[여, 68]가 1991년 5월 27일에 제보하였다. 「능금뱅이 장사꾼」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능금뱅이라구 있는데 이기 장마다 다니는 장사꾼이라. 이 능금뱅이가 한 번은 말 둬 필에 비단을 싣고서 비단을 광목으루 싸서 실구 가는데 그 대관령을 넘는데 날이 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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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전해 내려오는 범일 국사의 출생담과 당신화. 대관령 국사 성황당은 대관령 휴게소에서 북쪽으로 1㎞ 지점의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제당은 약 5평 규모의 목조와가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범일 국사의 화상이 그려져 있다. 매년 음력 4월 12일 금줄을 치고 4월 15일 제사를 지낸 후 위패를 모시고 대관령 여국사 성황당에 합위(位牌)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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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대관령 국사 여성황의 당신화. 강릉시 홍제동의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대관령 국사 여성황당은 목조와가로 건축되었으며, 당 내부에는 대관령 국사 여성황의 화상이 그려져 있다. 또한 여성황신의 앞에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고 화상 앞에는 국사여성황신위라는 위패(位牌)가 있다. 해마다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 국사 성황신을 모셔다가 20여 일 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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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산신이 된 김유신(金庾信) 장군에 대한 설화. 강릉단오제 때 제사하는 대관령 산신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내용은 허균(許筠)이 쓴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竝書)」에 들어 있다. 김유신이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는 신화적 근거는 강릉 출신 허균이 1603년(선조 36) 직접 대관령산신제를 보고 행사를 주관한 사람에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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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시신을 매장하고 무덤을 다지며 부르는 소리. 세상을 떠난 망자의 유해를 산소에 모신 다음, 흙을 덮고 봉분을 다지면서 부르는 노래로, 달구꾼들이 발을 맞추기 위하여 부른다. 느리게 부르는 「긴 덜구소리」와 빠르게 부르는 「종종덜구소리」가 있는데, 「긴 덜구소리」를 부르다가 덜구질이 막판에 이르면 잦은 소리인 「종종덜구소리」를 부르는데, 「긴 덜구소리」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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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학자 이곡(李穀)[1298~1351]이 지은 기행문. 이곡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이다. 찬성사 이자성(李自成)의 아들이며, 이색(李穡)의 아버지이다. 1317년(충숙왕 4) 거자과(擧子科)에 합격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원나라에 들어가 1332년(충숙왕 복위 1) 정동성(征東省) 향시에 수석으로 선발되었다. 그 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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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면서 부르던 노래.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에서 조사된 이 노래는 노를 저으면서 부르던 노래였으나, 노래가 조사되던 1970년대에도 이미 작업 현장에서는 불리지 않았다. (메기는소리) 에이야아 에이야아 에이야아 (받는소리) 에이야아 에이야아 에이야아 (메기는소리) 에이야아 청실홍실을 목에다 걸고 (받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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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서 마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우리나라에 분포된 아기장수 설화에 등장하는 장소는 ‘용소[용연못]·장수바위·장군묘’ 등으로 나타나는데 강릉지역의 「마정(馬井)」에 나타난 장소는 ‘마정[말우물]’이다. 또 아기가 죽을 때 나타나는 동물로는 용마(龍馬)가 있는데, 강릉지역의 마정에 나타난 동물은 채록에 따라서 ‘용마’로 나타날 때도 있지만, ‘백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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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통나무나 큰 돌처럼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부르는 민요. 산에서 큰 나무를 베어 옮길 때, 또는 축대를 쌓거나 집을 지을 때 큰 돌을 옮기면서 부르는 일종의 노동요이다. 이 밖에도 철도 건설이나 토목 현장에서 무거운 것을 옮길 때는 흔히 불렀던 노래이다. 옮기려는 무거운 물건에 줄을 달고, 이 줄을 묶은 긴 나무를 좌우에서 메고 옮기는데, 물건의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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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발락고개와 죽일의 지명에 대한 전설. 이 전설은 강릉최씨의 시조 최문한(崔文漢)과 관련된 전설이다. 이와 관련된 지명으로 용지각, 용강정, 쑥부뎅이, 발락고개, 북바위, 죽일 등이 있다. 「발락고개와 죽일」 이야기는 1996년 10월에 발간된 『강릉시사(江陵市史)』의 제6장 언어 및 구비문학 가운데 전설(傳說) 부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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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상여가 망자의 집을 떠날 때 부르는 소리. 강릉 지방에서는 상여를 메는 사람을 ‘상군’이라 한다. 상군들이 상여를 메고 집을 떠날 때, 상여의 머리를 세 번 숙여 하직인사를 하고 나면,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며 자유스런 리듬으로 “아 어어이 우 어어”라 하면서 느리게 노래를 부르면, 상여꾼들이 제창으로 뒷소리를 받는다. 이어서 “인제 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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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활동한 극단사람[후에 극단 사람들로 개명]의 대표적인 청소년 연극공연 작품. 1988년 4월 극단사람이 공연한 청소년 대상의 연극이다. 각본은 윤대성이 쓰고 연출은 극단사람의 대표인 신성구가 하였다. 청소년의 방황과 가족애를 표현한 이 작품은 당시 청소년 연극의 붐을 조성하였다. 극이 시작되면 낡은 작업복 차림의 중년 아저씨가 아들 이름을 부르며 객석 통로를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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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당기며 부르던 민요.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에 전승되는 어업 노동요의 하나로, 정치망이 아닌 재래식 그물을 당기면서 부르던 노래이다. 그물을 당기는 작업에서 부르는 노래이므로, 사설의 내용은 별 의미가 없는 입타령으로 작업의 동작을 맞추고 힘을 내기 위한 구령에 가깝다. 받는 소리 역시 짧은 호흡의 간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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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방에 전승되는 그물에서 고기를 빼어 내면서 부르는 민요. 재래식 어업 과정에서 불리던 어로요(漁撈謠)의 하나이다. 바다에서 걷어 올린 그물을 배에 싣고 돌아오면 주로 부녀자들이 그물에서 고기를 빼어 내는데, 이 작업을 ‘삣기기’라 하며, 이 때 부르는 노래를 「삣기는 소리」라 한다.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소리를 주고받으며 부른다. 메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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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에서 용소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72년 최철이 발행한 『영동 민속지』에 「사천 용소(沙川龍沼)」 설화가 수록되어 있으며, 1996년 강릉문화원이 발행한 『강릉시사』상에 1991년 5월 25일 김덕순으로부터 채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모두 내용상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데 차이점을 찾자면 다음과 같다. 『영동 민속지』는 표준어로 기술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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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문인 김원기의 창작 동시. 김원기는 1937년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여찬리에서 출생하여 강릉사범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다.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198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강원도문화상, 한국아동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다. 강릉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회, 조약돌아동문학회, 해안문학회, 솔바람동요문학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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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활동한 극단사람의 연극공연 작품. 극단사람의 대표 신성구가 대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연극공연이다. 1987년 8월 29일 강원도 내에서 처음으로 65평 규모의 연극전문 소극장을 개관하면서 극단을 창단한 극단사람[후에 극단사람들로 개명]의 창단 공연으로 1987년 11월 7일부터 15일까지 9일간 12회 공연을 실시하였는데, 관람한 관객 숫자가 무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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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과정에서 새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하여 부르는 주술적인 성격이 강한 민요. 정초의 세시의례와 관련된 노래로, 흔히 「새 쫓는 소리」라 하면 가을철에 벼가 익어 갈 무렵 새를 쫓기 위하여 외치는 소리를 떠올리지만, 이때는 새를 쫓기 위하여 허수아비를 세우고 큰 소리를 내거나 고함을 질러 새를 쫓을 뿐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 「새 쫓는 소리」로 전하는 향토민요는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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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 이이(李珥)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의 행적을 기록한 글. 선비란 남에게 세상을 떠난 자기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고, 행장이란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의 일생의 행적을 적은 글이다. 신사임당은 1551년 5월 17일에 4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때 이이의 나이는 열여섯 살이었다. 신사임당이 세상을 뜨자 어머니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이이가 쓴 글이 「선비행장(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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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전승되는 민담의 하나. 1996년 10월에 발간된 『강릉시사(江陵市史)』의 제6장 언어 및 구비문학 가운데 민담(民譚) 부분에 실려 있다. 이 민담의 채록자는 장정룡이며 제보자는 최순옥[여, 78, 강릉시 유천동]으로 1991년에 채록되었다. 그전에 한 사내가 눈이 어두워서 더듬더듬하고 참 소경이 되아 앉았는데 여자가 군서방을 갖다 놓고는 상에다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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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강릉고등학교 주변에 있는 소나무 숲의 유래. ‘숨은 솔’은 은밀하게 숨을 수 있는 소나무 숲이라는 뜻이다. 전해오는 설화에 의하면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서 젊은 남녀가 애정행위를 하였다고 해서 ‘숨은 솔’이라 불리었다는데, 설화라기보다 지명의 속뜻을 풀이해놓은 단편적인 서술이다. 「숨은 솔」은 『강릉시사(江陵市史)』에 수록되어 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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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서낭당에 전해 내려오는 당신화.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피내골에 자리하고 있는 이 서낭당은 전통한옥의 팔작지붕으로 지어져 있다. 당집 주변에는 돌담이 쌓여 있으며 특이한 것은 마을 중심부의 민가에 서낭당이 건립되어 있다. 이 마을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해안단구 지층이 형성되어 학술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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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늙은 심마니가 백두산 산신령의 도움으로 10년 만에 산삼을 얻었다는 민담. 10년이 지나도록 산삼을 찾아다녔으나 구경조차 못해본 늙은 심마니에게 백두산 산신령이 현신해 산삼을 많이 캘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이다. 한 늙은 심마니가 산삼을 캐러 다닌 지 2년이 지나도록 심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0년 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산속을 헤매고 다녔으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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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학산오독떼기」 중 논에서 풀을 맬 때 부르는 노래의 하나로서 논매기 작업의 마지막에 불리는 소리.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논매기소리는 「오독떼기」인데 논매는 작업의 특성에 따라 장시간의 작업과정에서 피로도 덜고 음악적인 다양성도 꾀하기 위하여 잡다한 여러 노래를 덧붙여 부르기도 한다. 이 중에서 논매기 작업의 마지막에 불리는 노래가 「싸대」인데, 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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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능력을 가진 안선달(安先達)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주었다는 전설. 안선달은 설화 속에서 일반인과는 다른 비범함, 예컨대 무술에 능할 뿐 아니라 힘도 센 인물로 등장한다. 큰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인 일반 사람들과는 달리 비범한 능력을 발휘해 사람들을 구했다는 안선달의 영웅성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그 영웅성은 민요의 노랫말로도 전해지고 있다. 옛날 강원도 명주군[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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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에 전하는 죽은 기생의 원혼과 영험을 모티브로 하는 어촌 당신화. 강릉시 강동면 안인 2리 해랑산 근처의 서낭당은 원래 돌로 된 제당이었으나 100여 년 전에 당집을 지어 해랑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1980년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김선풍(金善豊) 채록의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2-1, 1995년도 강원도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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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원의 동시. 남진원이 지은 동시로 6차 교육 과정 초등학교 4학년 읽기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시이다. 남진원은 1953년 10월 18일 정선 골지리에서 태어나, 문래초등학교, 경포중학교, 강릉고등학교, 강릉교육대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다. 『월간문학』 신인상(시조부문),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하였다. 계몽사어린이문학상, 강원아동문학상, 문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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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선조 33) 강릉 지역 사족들이 운영한 자치 규약. 지역 사회에서 사족들의 주도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다. 중국의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을 수용하여 그 4대 강목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별도로 ‘부록’과 별조(別條)를 두어 향촌사회의 질서를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해주일향약속』과 일치하고 있다. ‘부록’에서는 시벌(施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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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강릉 연곡면 지역에서 시행된 향약문. 1600년에 편찬되었다. 겉표지는 1862년(철종 13)에 다시 덧붙였으며, 속표지에 시행된 시기와 장소가 기재되어 있다. 필사본으로 연곡면 지역의 사족들이 주도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목적을 띠고 편찬, 활용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의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을 수용하여 그 4대 강목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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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 지은 규방가사. 허난설헌의 본관은 양천이며, 본래 이름은 허초희(許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이다.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허엽(許曄)의 딸이고,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염지봉선화가」는 『난설헌집』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봉선화 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던 고유한 풍속을 소재로 하여 여인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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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서 용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지(龍池)」는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의 용지(龍池) 유래와 용지각(龍池閣)의 배경 설화이다. 최문한(崔文漢)과 관련한 전설이 전하는 용지는 작은 연못으로, 중앙에는 용지각이라는 비각이 세워져 있다. ‘고려 부마도위 최공문한 유적비(高麗駙馬都尉崔公文漢遺蹟碑)’라는 글자처럼, 이 비각은 강릉 최씨의 시조 최문한을 기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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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소화(笑話) 형식의 민담. 민담은 동물담, 본격담, 소화의 셋으로 분류하는데, 「원님과 수수께끼」 이야기는 웃음이 있는 소화에 속한다. 소화는 일종의 사기담(詐欺譚)인데 거짓말이나 지혜로 상대방을 속이고 의도했던 바를 성취한다는 구조를 지닌다. 「원님과 수수께끼」는 집에서 놀고 있던 한 남자가 꾀를 내어 여러 차례 물건을 바꾸고 결국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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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두산동에 있는 월대산과 수렁바위에 얽힌 전설. 월대산은 두산동과 입암동 경계 지역에 위치한 산으로 태장봉, 증봉, 모산봉과 함께 강릉의 사주산(四柱山)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산꼭대기에 봉화 터가 있었으나 지금은 바위를 쌓았던 축대만 남아 있다.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이자 강릉의 기둥으로 여겨져 그와 관련한 설화가 생성,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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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의 작품으로 전해지고 있는 조선 중기 회화작품. 「월하고주도(月下孤舟圖)」에는 나지막한 산들이 옆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수면을 따라 전개되는 공간은 폐쇄됨이 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또한 토파(土坡)나 산의 묘사에는 당시 크게 유행되지 않고 있던 절파계(浙派系)의 필묵법이 구사되어 있다. 그 구도와 인물 중심의 표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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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년(중종 36) 신사임당(申師任堂)이 지은 한시. 「유대관령망친정시」는 신사임당의 아들 이이(李珥)가 지은 「선비행장(先妣行狀)」에 실려 전한다. 신사임당의 부모는 딸만 다섯 두었는데, 신사임당이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신명화(申命和)가 세상을 떠났다. 신사임당은 홀로 된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친정에서 지내는 때가 많았는데, 이 시도 어머니와 함께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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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와 불교를 근본 주제로 하는 바리데기류의 인간담. 이 이야기는 1992년 5월 30일 강원도 강릉시 유천동의 최상근[남, 74]이 구연한 것이다. 옛날 유천골에 화전(火田)을 일구며 살아가는 부부가 자식이 없어 걱정을 하였으나 뒤늦게 두 아들을 낳게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낫지 못할 병에 걸리고 말았다. 작은아들이 의원을 잡고 애원을 하자 서역국에 있는 부처님에게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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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1리에 전해지는 당신화. 「주문리 당신화」는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1리 1반에서 동북쪽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마루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엔 서낭당이 있고, 서낭당 주변으로 전형적인 어촌마을이 밀집해 있다. 한국 전통건축 양식인 우진각지붕으로 되어 있는 당집 외부의 벽은 어촌 서낭당을 암시하듯 문어, 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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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지은 한시. 여인의 내면을 연꽃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채련곡」을 지은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본관은 양천이며, 본래 이름은 초희(楚姬)이며,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이다.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으로 허엽(許曄)의 딸이고,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남편에게 소박맞고 자식마저 잃는 불행한 생애를 보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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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강남동 신석 마을에 있는 파명재에 얽힌 풍수설화. 신석[납돌]이라는 동네에 파명재라는 산이 있다. 이전에 파명재 옆에 어떤 성씨가 살았는데 부자로 살았다. 그 부잣집에는 종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만 종이 죽었다. 파명재의 산 끝이 좀 구부러진 곳에 종의 묘를 썼는데, 그 곳에는 물이 깊은 곳이 있었다. 그런데 해만 지면 소란한 농악대 소리 같은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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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한송정을 소재로 한 작자 미상의 고려 초기 가요. 『고려사(高麗史)』 「악지」 속악조(俗樂條)에 오언절구의 한역 시와 그 내력이 수록되어 있으나, 작가와 연대는 알 수 없다. 『고려사(高麗史)』악지에 「한송정곡(寒松亭曲)」에 관련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노래는 거문고 밑바닥에 써서 둔 것이 중국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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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성덕왕 때의 고시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편(紀異篇)」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에 배경설화와 함께 실려 전한다. 신라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는 도중 바닷가의 한 정자에서 제를 올리는데, 돌연 용이 나타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을 바다 속으로 납치하였다. 순정공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한 노인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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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상여가 망자의 집을 떠나 장지를 향하여 가는 길에서 상여꾼들이 부르는 소리. 상여가 발인 절차를 마치고 길에 나서면 상여꾼들이 「행군소리」를 부르는데, 강릉 지방에서는 이를 「유대꾼소리」라고도 한다. 강릉 지방의 「상엿소리」로는 「에호소리」와 「어넘차소리」가 있는데, 이는 모두 뒷소리가 부르는 후렴구절을 따서 부르는 이름이다. 요령을 잡은 선소리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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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략을 써서 대관령을 넘은 이야기. 1991년 5월 30일 강릉시 옥계면의 박순심[여, 81]이 구연한 것으로, 부부가 지략을 써서 사람 잡아먹는 호랑이가 버티고 있는 대관령을 무사히 넘은 이야기이다. 지략이란 부인이 아랫도리를 벗고 엉덩이를 보이며 걷는 것이었는데, 낯선 모습을 본 호랑이가 자기와 입이 다르게 생겨 무서운 짐승일 것이라 추측하고 도망갔다는 것이다. 옛날 강릉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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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안렴사 박신(朴信)과 강릉 기녀 홍장의 이야기. 강원도 안렴사 박신이 사랑하던 기생 홍장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크게 슬퍼하던 중, 부사 조운흘(趙云仡)과 함께 경포대에 놀이를 나갔다. 거기서 신선이 탔다고 생각했던 배에 홍장이 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비로소 자신이 속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수록되어 있으며, 『신증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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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부에 부임하였던 역대 관원의 성명, 직명, 생년월일, 본적 따위를 기록한 관원 명부. 관원의 진퇴지적(進退之蹟)을 기록하여 권과(權課)의 규범으로 삼고자 관아에서 간행한 것이다. 필사본이며 8행에 각행 20자이다. 크기는 가로 29.7㎝, 세로 41.7㎝이다. 4침(針) 선장(線裝)이다. 신라 이사부(異斯夫)부터 역대 강릉부에 부임한 관원의 부임시기와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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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사편찬위원회에서 주관하고 강릉문화원에서 발간한 시지. 『강릉시사(江陵市史)』는 1996년 강릉시사편찬위원회에서 그간 정리되지 않았던 지역관련 역사적 사실과 자료들을 총망라한 관찬읍지 형태로 발간된 책이다. 1975년 임영지증보발간위원회에서 『임영(강릉·명주)지(臨瀛(江陵·溟洲)誌)』를 간행한 이후 강릉시 전반에 관한 역사서 또는 지리지가 필요하다는 인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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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발행되고 있는 주간신문. 1987년 6·29선언에 입각한 언론자유화 정책에 따라 강릉 지방 신문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1989년 7월 신문의 창간 작업에 착수하였다. 발기인 7명으로 구성되어 강릉시 포남동 1105번지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1989년 10월 4일 문화공보부 신문2과에서 등록번호 다-1030인 특수 주간신문으로 등록증을 발급 받았다. ‘바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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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강릉 지방에서 발행되었던 일간 신문. 한국전쟁 후 『동방신문』이 문을 닫자 1950년 12월 『동방신문』 창간 사장이던 김석호를 사장으로 추대하고 편집국장에 심상열, 총무국장에 이상민, 업무국장에 김덕기를 주축으로 『강릉일보』가 발행되었다. 강릉, 삼척 등을 보급 영역으로 하여 570호까지 발행하였으나 재정난으로 발행이 중단되었다. 그 당시 속초, 고성,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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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발행되었던 주간 지역신문. 1993년 9월 27일 등록번호 다-3216호로 주간 『강원동도신문』으로 등록되었다. 같은 해 12월 4일 16면으로 구성된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창간 당시의 사장은 박치호, 발행·편집인은 박경희, 인쇄인은 김상영이었으며, 사옥은 강릉시 포남동 1161-5번지에 두었다. 지방화 시대에 걸맞는 지방소식을 알차고 신속히 전달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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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관동문학회에서 발행하는 정기간행물.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 지역 문인들의 모임인 관동문학회에서 매년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발행하는 동인지 성격의 문학 잡지이다. 1958년 1월 18일 창립된 관동문학회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1987년 5월 금학동 동보성에서 신봉승 시인이 회지 발행비 일체를 담당하고 엄창섭 교수가 회장을 맡는다는 약속 아래 조영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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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문학단체 암호동인이 발행한 무크지. 1979년에 결성된 암호동인회에서 발행한 무크지이다. 잡지와 단행본의 성격을 띤 부정기 간행물이다. 1979년 장병훈, 이종린, 신승근, 박남철, 박기동, 박용재 등 주로 교직에 몸담고 있는 젊은 시인들이 모여 개인과 개인의 심장이 닿는 공간에 시적 위치를 설정하여 체험을 공유하고자 하였던 모임이 바로 암호동인이다.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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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원도의 각 읍지를 집성한 책. 19세기에 편찬되었다. 당시의 각 고을의 사회상황과 그 변천 내력을 파악하여 기술하였다. 원본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전체 7권으로 편집되었으며, 각 권에 3~4개의 관읍 내용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각 고을 첫머리 부분에는 지도를 한 장씩 작성하여 첨부하였다. 도 단위에서 편찬된 것으로 보이며, 도내의 각 고을 사회변화상을 보다 정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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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강릉 지방에서 격일간으로 발행되었던 지역 신문. 1945년 9월 7일 미군정 당국의 신문발행 허가 제1호로 강릉에서 창간되었다. 사장 겸 주필 김석호, 편집국장 염태근, 업무국장 김덕기, 기자 박상민, 김광래, 그리고 편집 이준호 등이 참여하였다. 형태는 타블로이드판(8절지) 2면을 등사판으로 인쇄했고 1면은 미군정 당국의 포고문 또는 행정지침을, 2면은 지방뉴스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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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9월부터 1895년 3월까지 강원 영동지방 각 읍에서 펼쳐진 동학농민군 토벌과 관련된 사항을 정리·기록한 고서. 저자는 미상이며, 필사본이다. 지질은 한지이고, 면수는 254면이다. 소장처는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선교장이다. 『동비토록(東匪討錄)』의 ‘동비’는 관군의 입장에서 동학농민군을 지칭한 표현이다. 상급관청과 하급관청 그리고 각 군진(軍陣)과 주고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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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을 중심으로 후손들의 명단과 행적을 기록한 문집. 강릉김씨 본관의 근원과 보배로운 책자라는 뜻으로 『명원보감(溟源寶鑑)』이라 하였다. 동성으로 관향이 다른 동성이관(同姓異貫)은 경주김씨를 위시하여 84개 성씨이고, 동원이성(同源異姓)은 강릉왕씨 등 5개 성씨이다. 강릉을 관향으로 하고 있는 강릉김씨 문중에서 시조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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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강릉에서 창간되었던 계간 문화계몽지. 종합문화지로서 향토논단과 문학지의 성격을 공유한 잡지로, 시사적인 내용과 역사자료도 소개하고 있다. 명주(강릉)에서 송치훈(宋治勳)에 의해 주도되고, 1960년과 1967년에 명주군수에 당선된 김남형이 발간에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글을 쓴 작가는 대학 재학생과 전문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작고한 황금찬·박기원 등은 전문작가이고, 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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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문학 관련 연속간행물. 1992년에 설립된 동해안문학연구소[소장 남진원]에서 간행한 문학 관련 연속간행물로 당시 주간지 형태로 간행되었다. 남진원은 1953년 10월 18일 정선[골지리]에서 태어나, 문래초등학교, 경포중학교, 강릉고등학교, 강릉교육대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및 관동대학교 교육대학원을 각각 졸업했다. 그는 등단 이후 계몽사어린이문학상, 강원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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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허균(許筠)의 시문집. 허균의 호인 성소가 지은 부부고라는 뜻으로 ‘부부’는 장독 뚜껑을 덮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책을 겸손하게 표현한 말이다. 국립도서관본, 규장각본, 홍문관본, 연세대학본, 고 박종화본 등 필사본이 있다. 허균[1569~1618]의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혹은 성소(惺所)라 했다.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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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의 정화사업을 마치고 그간의 내력을 적어서 편찬한 책자. 오죽헌은 400여 년을 전해 오는 동안 건물이 퇴락하고 경내가 좁아 율곡 선생의 위업을 기리기에 부족하여 1976년에 정화사업을 통해 새롭게 정비하였다. 『오죽헌정화지』는 그 결과를 정리한 자료집이다. 1976년 5월 7일 오죽헌 정화사업 준공식이 거행되었으며, 정화사업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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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강원도 강릉시에서 창간되었던 주간 신문. 1994년 8월 김용철이 ‘영동 참사랑 실천사업단’의 한 사업체로서 임영신문사를 설립하고, ‘영동인의 하나됨을 주도하는 선구적 길에 앞장설 것”을 사시(社是)로 하여 주간 『임영신문』을 창간하였다. 『임영신문』은 1994년 8월 5일 등록번호 다-3817호로 등록되었다. 당시 『임영신문』의 발행인은 김용철, 편집인은 심헌섭,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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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정조 1)부터 1782년(정조 6)까지 강릉에서 발생한 하남재의 서원화 추진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문건을 필사한 고서. 2책이며, 필사본으로 필사자와 필사 시기는 미상이다. 삼척심씨들은 1778년(정조 2) 충주 운곡서원(雲谷書院)에서 주자 영정을 모셔와 하남영당에 봉안하고 하남영당의 서원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그러나 1777년 강릉 지방 유생들은 하남재는 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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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1728년(영조 4)에 편찬된 사찬 읍지. 지역의 실정과 현황을 파악하여 행정자료로 활용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다. 현재 3권이 전해지고 있으나 1권이 누락되었다. 지역의 자연 지리적 특징과 인문 사회적 상황을 망라하고 있다. 현재 전승되는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읍지로서 이 지역의 시대적 상황을 담고 있으며, 아울러 후대에 편찬되는 읍지의 모본으로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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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에 창간된 강릉 지역 최초의 문학 동인지. 황금찬, 함혜련, 이인수, 김유진, 최인희 등 1950년대 초반 강릉을 중심으로 창작열을 불태웠던 청포도 동인들이 간행한 문학동인지이다. 1952년 강릉사범학교 교사였던 황금찬과 제자들이 전쟁에 지친 상황 속에서 정적(靜的)인 작품을 창작하자는 뜻을 모으고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황금찬은 후일 『청포도』 동인지의 문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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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의 학자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 선생과 관련된 내용을 총체적으로 모아서 편찬한 한문본 책자. 정몽주와 관련된 연보와 행장, 시, 유묵과 여러 글 등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다양하게 편집, 자료적 가치를 높여서 강릉 지역 유림들이 정몽주의 유지를 받들어 편찬한 정몽주 관련 서책이다. 1972년 3월 명주군 구정면 제비리 개화대(開花臺) 포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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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13세에 아버지를 잃고 홀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사람들과 함께 들일을 하러 갈 때에는 어머니를 업고 가서 나무 밑에 앉혀 놓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자기 밥을 받아서 어머니에게 주고 자기는 일손을 쉬지 않았다. 보다 못한 마을 사람이 점심을 나누어 먹자고 하면 사양하며 “내 점심은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또 남의 점심을 나누어 먹어서야 되겠느냐”라고 하였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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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혼인, 입양 등으로 관계되어 공동 생활체를 꾸려가는 구성원을 총칭하는 말.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공동체 단위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시대마다 혹은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남녀 부부가 중심이 되고 여기에 성혼하지 않은 자녀와 부모를 토대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입양, 친분 등과 같이 법적 절차에 따른 구성원도 가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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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종합 대학교. ‘가톨릭적 가치관과 호연지기를 갖춘 사회적 지도자 양성, 국가와 세계 발전에 기여하는 열정적 전문인 양성, 따뜻한 인간애로 세계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성적 인재 양성’을 교육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가톨릭적 가치관 함양, 전문성의 극대화, 문화와 문명의 다양성에 대한 탐구’를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진실’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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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관동대학교가 클래식 및 관현악을 보급하고 소개하기 위해 만든 대학 심포니오케스트라. 대학생에 의한 클래식 음악의 보급과 관현악의 소개에 목적이 있다. 1986년 10월 류석원 교수의 지휘로 창단연주회를 갖고 개교 50주년 기념 음악회를 비롯하여 매년 1회의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을 위한 특별 음악회, 수능 후 특별 학습 프로그램으로 고등학교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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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강원도 강릉 지역에 처음으로 개신교회인 강릉중앙감리교회[현 기독교 대한감리회 강릉중앙교회]를 설립한 교파. 남감리교회 선교사인 하디(R.A. Hardie, M.D.)[1865-1949] 선교사가 1898년 5월 15일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본래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선교사로 내한하여 8년이 지난 후 한국 남감리교 선교사로 전입을 요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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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과에 속하는 다년초 또한 식용 지하 덩이줄기. 감자는 현재 세계 130여 나라에서 재배되고, 연간 2억7천~2억8천 톤 정도가 생산되고 있어 생산량 기준으로 옥수수, 벼, 밀 다음을 차지하는 작물이다. 국가별 생산량을 보면 러시아, 폴란드, 중국, 미국 등이 주요 생산국이며 우리나라는 전체 생산량의 0.17%로 아주 적은 양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감자 재배는 대부분 영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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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강판에 갈아 건더기와 앙금을 섞어 반죽한 후 강낭콩과 팥을 삶은 물에 넣어 익힌 음식. 감자는 특히 강릉 지역의 기후에 적합할 뿐 아니라 어떤 땅에서도 잘 재배되어 중요한 구황식품으로 이용되었다. 강릉 지역에서 생산되는 감자는 파삭거리면서 하얀 분이 많고 맛이 좋아 다양한 음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감자범벅은 강릉 지역에서 옛날에 쌀이 귀했을 때 끼니로 먹었던 음식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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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녹말가루와 삶은 팥을 켜켜로 하여 찐 시루떡. 감자는 특히 강릉 지역의 기후에 적합할 뿐 아니라 어떤 땅에서도 잘 재배되어, 예전에는 중요한 구황식품으로 애용되었고 지금도 흔하게 먹는 식품이다. 강릉의 감자는 파삭거리면서 하얀 분이 많고 맛이 좋다. 감자를 여름에 한 달 가량 삭혀서 녹말을 만들어 하루에 10번 정도씩 우려 3일간 웃물을 갈아 주면서 앙금을 얻은 다음, 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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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감자를 동그랗게 빚어 멸치 육수에 갖은 채소와 함께 끓인 강릉 지역 향토음식. 감자는 특히 강릉 지역의 기후에 적합할 뿐 아니라 어떤 땅에서도 잘 재배되어, 예전에는 중요한 구황식품으로 애용되었다. 감자옹심이는 쌀이 모자라던 시절에 많이 해 먹었던 음식이다. 감자를 간 것을 새알심처럼 빚어 만들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감자옹심이를 만드는 법은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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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1998년 10월 1일, 과소 행정동 통폐합 정책에 따라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노암동·장현동·월호평동을 하나로 통합하여 만든 행정동으로 남대천 남쪽에 있다. 현재 8개의 법정동[노암동, 유산동, 장현동, 담산동, 박월동, 신석동, 운산동, 월호평동]을 관할하고 있는 도시·농촌복합형 동이다. 동의 명칭은 지역의 연혁이라든가 인구가 제일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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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면. 강릉시 남·동부 지역에 있는 행정면으로서 상시동리, 하시동리, 모전리, 안인리, 안인진리, 임곡리, 정동진리, 산성우리, 심곡리, 언별리가 법정리로 속해 있다. 강동면은 강릉시의 남동부에 있으며, 면의 동쪽은 바다, 서쪽은 구정면, 남쪽은 옥계면, 북쪽은 월호평동과 접해 있다. 도로망은 철도 16㎞, 국도 16㎞, 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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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정동진, 임원진 등 해안으로 상륙한 북한군에 대응해 치른 방어전투. 한국전쟁 당시 정동진, 임원진 등 강원도 동해안 지역으로 침투하여 남쪽으로부터 강릉 지역 협공을 기도하는 북한군 제766유격대와 제549육전대 등 2개 사단 규모의 북한군과 맞서 국군 제8사단 병력이 강동지구를 중심으로 방어전투를 치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동해안 지역은 제8사단이 담당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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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 농악패들이 각 가정을 방문하여 벌이던 농악. 강릉 지역 농악패들이 마을 농악대의 기금과 마을 공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 가정을 방문하여 벌이던 농악의 하나이다. 강릉 걸립굿은 상쇠의 인도로 먼저 마을 서낭당에 들려 서낭굿 농악을 한다. 그리고 서낭님을 농기[굿대]에 모시고 마을 우물에서 우물고사를 지낸다. 이후 각 가정을 방문하여 본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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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 있는 강릉 관노 가면극의 보존 및 계승을 위한 단체. 강릉 관노 가면극 보존회는 중요 무형 문화재 제13호인 강릉 단오제 때 행해지는 강릉 관노 가면극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동시에 강릉 관노 가면극 공연을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강릉 관노 가면극은 우리나라 전국 유일의 전통 관노 무언극이다. 하지만 그 주된 신분층이 관노였다는 이유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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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제일 고등학교와 강릉 중앙 고등학교의 정기 축구 대항전. 일농정기전이라는 명칭은 강릉제일고등학교와 강릉농공고등학교[현 강릉중앙고등학교]의 정기 대항전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본래 강릉제일고등학교는 강릉상업고등학교였으나 2001년 10월에 교명을 개칭하면서 일농정기전이 되었다. 일농정기전의 또 다른 명칭은 단오정기전이다. 강릉시의 대표적 축구 명문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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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조선 시대 주택인 강릉 선교장 내의 사립 민속박물관. 강릉 선교장 민속박물관은 조선 후기 사대부 저택인 선교장을 포함하여 주변에 있는 부속 건물까지를 포함한 개념이다. 선교장은 안채·사랑채[열화당]·동별당·서별당·행랑채·활래정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주위로 교육관·생활 유물 전시관 등의 부속 건물이 있다. 효령 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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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강릉송정지구의 택지조성을 위해 강릉시가 추진했던 개발사업. 강릉시는 포남지구 구획정리사업을 통하여 구도심에서 동쪽으로의 외연적 확장을 꾀한 바 있으며, 그 과정에서 포남지구 동편 지역에 대한 개발사업도 이루어져 지금의 택지가 조성되었다. 1989년 5월 4일 송정동 일원의 187,000㎡에 대하여 건설부 고시 제220호로 택지개발예정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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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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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의료 기관. 환자 진료와 질 높은 서비스를 통하여 밝은 가정과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91년 2월 10일에 한세현 원장이 현 위치에 명 병원을 설립하였다. 1995년 8월 1일에 연세 병원[고강덕 원장]으로 개칭하였으며, 2001년 4월 1일부터 김치용 원장이 운영하였다. 2016년 현재 고강덕 원장이 병원을 맡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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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사족들과 강원도 관찰사, 강릉부사들의 친목 모임인 임영족회(臨瀛族會) 구성원의 명부. 임영족회가 열리고 그 상황을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편찬되었으며, 후대에 이르면서 각 문중의 문헌록에 등재되어 전승되고 있다. 임영족회는 다섯 차례에 걸쳐 열렸다. 그 때마다 명부가 작성되었으며, 여기에 서문과 발문을 붙였다. 서문과 발문으로 족회의 명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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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 문화 체육 시설 단지 내에 건립 중인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 관련 7개 체육 시설과 2개 문화 시설을 합친 복합 체육 시설. 강릉시가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 빙상 스포츠 개최 도시로서의 문화유산을 남겨 스포츠 관광 도시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하여 교동 체육 시설 단지를 ‘강릉 올림픽 파크’로 공식 명명하고 향후 지속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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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정보 통신부 소속의 기관. 강릉 지역의 우편 사업 및 우체국 금융 사업을 총괄하고 우편물[통상 우편물, 소포 우편물]을 접수, 배달하는 기본 우편 업무를 수행하고 우체국 예금, 우편환, 우편 대체 업무를 취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895년 5월 26일에 농공상부 분과 규정 칙령 127호, 125호로 우체사 관제를 공포하고 우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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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 있는 국립 종합 대학교. 환동해권 중심 대학을 넘어 동북아 거점 대학인 강릉 원주 대학교는 대학의 이념을 바탕으로 거시적 차원에서의 교육 목적과 구체적인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고등 교육법을 모체로 하여 학칙을 통해서 선언적 의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실천적인 교육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다. 강릉 원주 대학교가 교육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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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 있는 강릉 원주 대학교 부속 박물관. 발굴·조사를 근거로 각종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영동 지역 고대사 연구의 산실이자 매장 문화재에 대한 꾸준한 발굴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강릉 원주 대학교의 박물관이다.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7[지변동 123] 학교 건물 도서관 4층에 박물관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강원 영동 지역의 선사 및 역사·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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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었던 대안 중·고등학교. 공교육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교육 방법으로 청소년들을 교육하고자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개교한 중·고등학교이다. 근로 청소년과 만학도 등 배움의 시기를 놓친 모든 사람들에게 민주적인 사고와 자질함양, 기본 소양과 지식을 습득하도록 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 현재 교장인 김운기 선생이 교육의 기회를 놓친 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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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의 동해 고속 도로에 있는 입체 교차로. 강릉 인터체인지는 강릉시를 우회하여 영동 고속 도로와 동해 고속 도로를 연결하는 총연장 12.5㎞의 영동-동해선 연결고속 도로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설치된 5개의 교차로 중 유일한 입체교차로이다. 강릉시를 우회하는 영동 고속 도로와 동해 고속 도로를 연결하는 영동-동해선 연결 고속 도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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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때 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전기 회사. 강릉 지역에 발전소를 건립하고 전기를 공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강릉 지방은 지형상 동서를 가로막고 있는 태백산맥으로 인하여 전기 송전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전기 공급은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에 따라 1925년 9월 25일에 최재린, 최돈기, 박기동, 최돈승 등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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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에 있는 지역 산업 단지. 강릉시가 시내 중심의 쾌적성과 환경성을 살리는 동시에 이전 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을 위해 입암동 일대에 조성한 산업 단지이다. 1980년대 이전까지 강릉 시내 중심가에는 자동차 정비업을 비롯하여 소음과 큰 작업 공간을 필요로 하는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도심 경관과 환경에도 부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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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에 조성된 건축물로서 강릉 지역에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을 용도와 성격에 따라 관아건축, 향교 건축, 민가 건축, 누정 건축, 사찰 건축 등으로 나눠서 살펴본다. -옛집 구경 가는 길 -강릉 지역의 전통 건축 문화유산 강릉은 옛날부터 백두대간의 동쪽, 동해안 지역 동예(東濊)의 고도로서 영동 고을의 수부 지역이다. 여름이 시원하고 겨울이 따뜻한 해양성 기후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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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 축산 농가의 진흥 사업을 수행하는 협동조합. 조합원의 축산업 생산성을 제고하고, 조합원이 생산한 축산물의 판로확대 및 유통원활화를 도모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자금 및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9년 6월 30일 구 명주군 축산업 협동조합으로 발족하였다. 1959년 12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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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 항일 운동의 실상과 독립운동 정신을 선양하기 위한 단체. 강릉 항일 운동 얼 선양회는 강릉 지방의 항일 독립운동사를 연구하여 그 실상을 밝히고, 독립운동 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9년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 기념탑 건립 이후 강릉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사에 대한 체계적인 조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다 2004년 강릉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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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경찰 사무를 맡아 보는 관서. 강릉경찰서는 관내 치안 유지 및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강릉경찰서는 1945년 10월 21일에 국립 경찰의 창설과 동시에 용강동에 개서되었다. 1948년 6월 15일에는 주문진 경찰서가 신설되었는데 1956년 1월 1일에 주문진 경찰서는 폐지되고 강릉경찰서로 관할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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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었던 고등 과정 기술 학교. 1961년 4월 8일 경상북도 안동에 안동 고등 기술 학교로 설립되었다가 1964년 강릉으로 이전한 고등 기술 학교이다. 1961년 4월 8일 박희종에 의하여 안동 고등 기술 학교[재단 법인 경북 학원]로 설립되었다. 1964년 정관이 변경되어 경상북도 안동시 서동문로 193[동부동 65번지]에서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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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강원도 강릉시에 설립되었던 여자 실업 교육 학교. 여성에게 실업 교육을 시키기 위해 1926년 강릉공립보통학교에 강릉공립여자잠업실수학교를 병설하였다. 1930년에는 학교명을 강릉공립여자실수학교로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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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서 7번국도를 따라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교량. 대관령에서 발원하여 강릉시 남쪽을 흘러 동해로 유입하는 남대천에는 내곡교·남산교·강릉철교·강릉교·포남교·월드컵교·공항대교가 놓여 있다. 강릉교는 이들 중 하나이다. 강릉시 옥천동과 노암동을 이어주는 교량이며, 강릉시 강남로의 연장이다. 1970년에 가설되었다. 길이는 180m, 폭은 18m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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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법무부 소속의 교정 기관.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이들 수형자에게 형기 동안 교육, 교화 활동 및 직업 훈련 등을 실시함으로써 출소 후 사회에 복귀하여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성공적으로 사회에 정착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영동 지역의 유일한 교정 기관으로서 수용자들을 올바르게 선도하여 사회에 복귀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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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 있는 국토 관리 기관. 영동 지역의 지속적인 교통망의 확충으로 유지·관리해야 될 국도가 증가하면서 국도 관리에 효율성을 기하고 신속한 업무 처리를 위해 원주 지방 국토 관리청의 산하 기관으로 강릉에 사무소를 설치하였다. 강릉 지역에 사무소가 설치됨으로써 영동 지역의 국토 관리 업무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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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의 굴산사지에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강릉굴산사지석불좌상은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하나인 사굴산문의 본산으로 알려진 굴산사지에 위치한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다. 굴산사는 통일 신라 문성왕 9년(847) 구산조사의 한 사람이었던 범일(梵日)이 명주 도독(溟州都督)의 권유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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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미국의 선교사 래시(R.M.Rash, 羅時得)가 전도를 목적으로 강릉 지역에 설립한 교회. 1958년에 미국의 래시 선교사가 강릉에 도착하여 교회를 열었으며, 다음해인 1959년 3월 옥천동에 선교부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1959년 옥천동 232번지에 선교부 건물을 기공, 1964년 율곡로 2834[옥천동 157-3번지]에 교회 예배당 신축 기공, 1978년 옥천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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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유산동에 위치한 과실과 채소류를 전문으로 거래하는 도매시장. 농산물도매시장은 강릉 지역 농산물의 원활한 유통과 가격안정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이익을 보호하고, 시민생활 안정을 위하여 총사업비 21,364백만 원을 투입하여 1999년 11월 19일 개장하였다. 전국에서 생산된 모든 과실과 채소류를 전문으로 거래한다. 시장권역은 강릉을 중심으로 하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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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강릉시 농민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 이익 증진을 위해 조합원에 의해 설립·소유·운영되는 협동조합. 1957년 설립된 농업 은행과 1958년에 설립된 농업 협동조합을 통합하여 1961년 8월 15일에 이동 단위 조합으로 설립되었다. 1969년 이동 단위 조합을 4개 조합으로 합병하였고, 1972년 1월에는 성덕 조합 사무소 및 연쇄점을 개설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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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9년부터 1895년까지의 강릉 읍격. 1389년(공양왕 원년), 강원 영동 지방의 행정적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강원 영동의 거진(巨鎭)의 의미로 강릉대도호부로 읍격을 정하였다. 조선 개국 후 군현제 개편 시에도 강릉 대도호부의 읍격을 유지하였다. 특히 여말 선초의 전환기에 공신의 반열에 올랐던 김광을(金光乙), 함전림(咸傳霖) 등의 출사와 고려 초에 왕씨 성을 사성받았던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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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 내의 최고 관장(官長). 강릉은 하슬라(何瑟羅), 하서량(河西良) 등으로 불리다가 신라 선덕왕(善德王)이 소경(小京)을 설치하였으며, 경덕왕(景德王) 16년에 명주(溟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 19년에는 동원경(東原京)으로 편제되었으며, 성종(成宗) 2년에 하서부(何西府), 동왕 5년에 명주 도독부(溟州都督府), 동왕 11년에 명주목(溟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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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에 있는 농업용수 개발 사업으로 조성된 저수지. 현 한국 농촌 공사인 구 한국 농업 기반 공사에서 조성한 농업용수 개발 사업의 저수지로서 구 명주군 성산면에 있었으나,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된 시설이다. 영동 고속국도가 1975년에 개통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식량 증산과 관련한 사업이 영동 지역에서도 펼쳐지게 되었다. 당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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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의료 기관. 지역 의료의 취약성을 해소하고 의료 시혜의 기반을 구축하여 향상된 의료 편의를 제공하고 의료 보장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양질의 의료 시혜로 국민 보건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개원하였다. 1980년대 초, 제대로 된 종합병원이 거의 없던 시절 영동 지방에서는 최대의 규모와 최신 의료 장비를 갖추고 진료와 봉사의 요람으로써 이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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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에 있었던 사립 남자 중학교. 1949년 6월 16일 강릉 유도회에서 명륜 중학 설립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49년 9월 18일 강릉 명륜 중학원 설립 인가가 신청되어, 1949년 11월 13일 개원식 및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1953년 2월 25일 강릉 명륜 중학교로 설립 인가되었다. 1955년 4월 20일 강릉 성심 중학교가 폐교되어 학생들을 인수하였으며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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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예술 문화 시설. 강릉문화예술관은 시민을 대상으로 문화 예술을 보다 쉽게 접하고 공연 및 전시, 교육 등을 위한 시설 및 공간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강릉시의 대중문화 예술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강릉시에서 1993년 3월에 세웠다. 강릉문화예술관의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대공연장 438석, 소공연장 200석 등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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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강릉 지방의 향토 문화 창달을 위해 문화 및 사회 교육 사업을 실시하는 비영리 특수 법인체. 강릉 시민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증진시키며, 문화 예술적 감성을 개발 향상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54년 미 공보원 강릉문화원으로 처음 개원하여, 1965년「지방 문화 사업 조성법」이 제정·공포되면서 사단 법인 제83호로 설립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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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문화 공간 및 평생 교육 기관. 누구나 문화를 체험하고 향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1997년 8월 7일 개관한 강릉시문화의집은 주민들이 다양한 형태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생활 속 문화 복지 공간으로 강릉시민들의 문화감수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주민 스스로가 문화를 창작, 향유하고 동아리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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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전력 시설. 변전소는 발전소에서 전력을 변압기 또는 정류기 등에 의해 구외(構外)로부터 들여온 교류 전력을 적당한 전압의 교류 또는 직류 전력으로 바꾸어 다시 송출하는 시설로서 강릉변전소는 한국 전력 제천 전력 관리처 강릉 전력소 산하에 있는 변전소이다. 1937년 7월에 강릉 전기 주식회사가 조선 전력 주식회사에 매수된 이후 193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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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분청사기 도요지. 강릉시내에서 구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약 10㎞가면 우측으로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있다. 그 포장길을 따라가면 삼왕동 명주군왕릉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북쪽의 좌측 소로를 따라 약 1㎞쯤 가면 베리안 마을이다. 이 마을의 산기슭에서 아래쪽 계곡에 닿는 경작지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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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에 있는 아동 복지 시설.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아동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 양육 및 교육을 위해 설립되었다. 1951년 8월 8일 당시 6·25 전쟁으로 인한 사회의 혼란 속에서 개설되어 1951년 11월과 12월에 각각 수복 지구에서 전쟁고아 100명을 공수하여 수용하였다. 1952년 3월 1일에는 송명익 원장이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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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설치되어 조선 말에 폐지된 강릉 지역의 지방 관청. 1308년(충렬왕 34)에 설치되어 1896년(고종 33)에 강릉군으로 개편되었다. 『강릉부읍지(江陵府邑誌)』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건치연혁조(建置沿革條)에 관련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 명주(溟州), 명주목(溟州牧), 창해명주도,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 강릉도(江陵道)가 차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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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항진동과 하시동에 걸쳐 위치하는 비행장. 초기에는 민간 및 군용으로 사용되었으나 양양 국제공항이 개설된 이후로는 군용 비행장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1958년 대통령령 제1341호에 의하여 서울·부산·광주·제주와 동시에 설치되었다. 한국 공항 공단 강릉 지사는 1990년 6월 20일부터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양양으로 이전되었다. 강릉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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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원 양성을 위하여 강릉시 명주동에 세워졌던 교육기관. ‘자율(自律), 봉사(奉仕), 근실(勤實)’이다. 해방 후의 부족한 교사와 급증된 취학 아동에 대한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시적이나마 응급조치가 필요했다. 그 대안으로 일제 때부터 내려온 사범학교의 심상과와 연습과 본과[경성사범학교는 보통과와 본과]에 강습과 혹은 초등교원 양성과를 부설하고 각 시·도에 임시 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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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6월에 발족된 강릉 지방의 사진작가 단체. 초대 회장은 강인흥이며, 1978년 7월 강릉문화원 전시장에서 제1회 창립회원전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 강릉지부와 함께 매년 회원전을 개최하는 등 강릉 지방 사진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역 사진문화 발전과 향상을 위하여 공헌하며, 타 단체 및 동아리와의 사진문화 교류를 기하고 회원의 권익 옹호와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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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종합운동장길 88[교동]에 있는 상공업자들의 지역별 종합경제단체. 상공업의 종합적인 개선 발전과 국민경제 그리고 지역사회의 균형성장을 도모함은 물론 상공인의 권익보호를 위한 대변기관으로서 다양하고 광범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1947년 당시 강릉은 강릉읍을 비롯한 묵호읍, 주문진읍 그리고 10개 면을 포함하여 인구 48만의 영동지역 중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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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임당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소속의 교회. 1923년 3월, 경성신학교 지방전도대에 의해 강릉시 용강동 28번지 박신동씨 사가에서 기도처를 정하고 조선야소교 성결교회 강릉교회를 설립하였다. 1925년 9월 첫 주일에 차진학(車鎭學) 전도사가 부임하여 박신동, 서순명, 최원주, 김인열, 김상열, 이부대 등 장년 5명 유년 13명과 함께 창립예배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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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강릉 지역의 소방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 강릉소방서는 화재를 예방·경계·진압하고 화재, 재난, 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에서의 구조·구급 활동 등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 및 복리를 증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강릉소방서 개소 이후 많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많은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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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지개량조합의 옛 명칭 1938년 5월 조선토지개량협회가 발족된 2년 후인 1940년 7월 조선수리조합연합회가 설립된다. 이를 토대로 1942년에 조선농지개발영단이 설립되고 지방에는 수리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전국에 걸쳐 수리조합이 산하기구로 발족되게 된다. 강릉수리조합은 1947년 11월 27일 성덕수리조합이 설립되고, 1952년 11월에는 금광수리조합이, 다시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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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위치한 영동 지방의 중심 도시. 강릉시는 강원도 백두대간의 동쪽 영동 지역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가 있고, 서쪽으로는 평창군·정선군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해시와, 북쪽으로는 양양군과 각각 인접해 있다. [표1] 강릉시의 위치[출처:시정백서(강릉시, 2016)]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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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강릉 지역의 농업 기술 및 경영을 개발·관리하는 기관. 농촌 진흥청의 산하 조직으로 강릉 지역의 농업에 대한 기술과 농업 경영을 개발·관리하면서 농가에 보급·지도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강릉 지역의 농업 생산성과 농업 소득, 나아가 농가 소득을 높이고 농촌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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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동부시장3길 22에 있는 사회단체. 살기 좋은 강릉 건설을 위해 현안 문제들이나 시정사항 등에 대한 건의 및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강릉시를 21세기를 향한 미래의 도시로 발전시키자는 시민들의 여망에 따라 강릉시 현안문제 및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살기 좋은 강릉 건설에 목적을 두고 있다. 1982년 3월 강릉시 명주동의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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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의료 기관. 시민 건강이 보장되는 건강 도시의 실현을 목표로 건강한 강릉시 구현을 위한 건강실천의 생활화 정착 및 노인과 저소득층, 그리고 취약계층의 건강권 보호 및 위생업소의 친절·위생 관리 강화와 감염병 중점 감시로 질병 예방과 보건 의료 서비스 향상을 위해 설립되었다. 열린 보건 행정 서비스와 다양한 의료, 보건 사업을 통해 노인과 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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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생활 체육 동호인 협의회. 강릉시 생활 체육 협의회의 설립 목적은 첫째, 다양한 종목 결성으로 강릉시민의 체육 활동 참여 욕구 충족 여건 조성 둘째, 생활 체육의 저변 확대와 중점적인 육성으로 엘리트 체육에 일조 셋째, 강원도민의 건강한 삶 영위로 화목한 가정, 명랑한 강원, 복지 국가 건설에 기여하는 것이다. 1991년 7월 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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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수산업 종사자들의 상호 이익을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 화합과 협동의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고 수산업 종사자들의 지위 향상 및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2년 2월 13일에 조선총독부에서 어업 조합 규칙을 제정·공포하면서 1918년 2월 22일에 강원도 강릉군 신리면 주문리 어업 조합으로 설립되었다. 1955년 당시 강릉군에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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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여성 복지 시설. 여성의 자아실현과 능력을 개발하고 사회 참여 및 복지 증진과 문화적 잠재력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2년 8월에 일곱 개의 여성 단체가 모여 강릉 지역 여성 단체 협의회[초대 회장: 최귀패]를 조직하여 산발적인 여성 단체의 활동을 결집해 조직적인 여성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강릉시와 여성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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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시민들을 대표하여 지방 자치 단체의 사무를 심의·의결하는 기구. 한국의 지방 자치 역사는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1기는 1949년 7월 4일 지방 자치법이 제정된 후, 1952년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 군사 혁명 위원회 포고 제4호에 의해 해산될 때까지 10년간 실시되었다. 2기는 1961년 9월 1일 지방 자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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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인위적·자연적 재난에 대비·대응하는 기관.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하며,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그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토를 보존하고 지역민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재난 및 안전 관리 체제를 확립하고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 그 밖에 재난 및 안전 관리에 필요한 사안에 대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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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에 위치한 시립 공원묘원.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산줄기는 석교리에서 고도가 낮아지는데, 공원은 사천면 석교1리와 석교2리의 경계를 이루는 낮은 산줄기가 동으로 뻗어나가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강릉에서 북쪽으로 10여㎞쯤 되는 7번국도에서 서쪽으로 완만한 사면을 올라가 약 2㎞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묘지는 주로 북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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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강릉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교향악단. 강릉 시민의 정서 함양과 지방 문화·예술 창달을 위해 설립되었다. 강릉의 관혁악 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은 1985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강릉 원주 대학교에 재직 중인 지휘자 곽진용 교수는 1984년 12월 강릉시 교향악단을 조직하여 1985년 5월 18일에 강일 여자 고등학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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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자활 복지 시설. 사회적 불평등으로 야기된 시설 생활자 개인들의 문제를 인식하여 이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존중하고 자립 능력을 배양하는 데 적극적인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 이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 1962년에 불우한 시민들을 위해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산17번지에 강릉시 구호소를 설치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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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강릉시에서 시민들의 음악예술 대중화를 위해 공공재로 운영하는 합창단. 1969년 5월 김형기 강릉시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강릉시립 합창단이 창단되었고, 그해 10월 시민관[현 강릉 우체국]에서 마침내 창립 음악회[지휘 이성균, 피아노 김혜정]를 개최하였다. 1970년대 들어 새마을 어머니 합창단으로 변신하였다가 1993년 5월 7일에 강릉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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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하슬라로 27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강원도 외 지역으로는 부산을 비롯한 광주광역시까지 연결되며, 주로 수도권 지역의 시들과 연결이 많은 편이다. 과거의 교동시외버스터미널은 공간이 협소하여 강릉시가 홍제동으로 이전을 추진하여 건립되었다. 강릉의 시외버스 터미널은 1970년대 초반에는 일정한 장소가 없었고, 지금의 성내동 일대에 강원 여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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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역 시조동호인 단체. 강릉시우회의 설립은 전통 문화 예술의 하나인 시조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고 시조 문화에 대한 계승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강릉시우회는 1957년 전통국악인 시조 애호인 20여명이 시조 인구의 저변확대와 후진양성을 위해 관동시우회를 조직하고 강릉시 임당동 8번지 구 철도관사 최반규씨 댁에서 발기하면서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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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지방 자치 행정 기관. 강릉시의 행정 및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55년 9월 1일 법률 제369호로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병합하여 강릉시로 승격되었다. 당시의 강릉시 행정 구역은 38개동 489개 반이었다. 강릉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강릉군은 명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1월 1일에는 강릉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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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1동에 있는 금융기관. 신협은 서로 믿고 신뢰 수 있는 사람들이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조직한 비영리 금융협동조합이다. 신협은 국가가 신협법을 제정하여 보호하고 육성하는 우리나라 대표 서민금융기관으로서 같은 지역주민들이 만든 지역신협, 단체[종교, 시장 등]나 협회[의사, 변호사 등] 구성원들이 만든 단체신협, 직장[은행,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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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영동선의 종점이 되는 철도역으로 영동선과 경강선의 종착역. 1962년 11월 6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79년 3월 1일 경포대역이 폐쇄됨으로써 영동선(嶺東線)의 종착역이 되었다. 강릉역은 강릉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경포대(鏡浦臺)와 오죽헌(烏竹軒), 선교장(船橋莊),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 정동진 등을 여행하기에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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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강릉 지역에 창립되었던 문학단체. 1987년 8월 최갑규, 김정개, 구영주, 이광식 등이 발기하여 창립한 문학동인회이다. 강릉오죽문학회는 장르 구분 없이 문학에 뜻을 둔 사람들의 임의 모임으로 출발하였다. 초대 집행부는 회장 구영주(丘英珠), 총무 김찬윤(金燦潤)이 선임되었으며, 회원으로는 조봉규, 최인숙, 전수자, 홍승자, 김영준, 박정미, 권혁남 등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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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은 뛰어난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어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이를 소재로 시문을 지었고, 또 이 지방 문인들과 교유(交遊)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자연의 정취에 몰입되어 감흥을 읊던 이런 정서는 신라의 화랑들로부터 고려, 조선의 시인 묵객들로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누구라도 시인이 되는 고장, 강릉의 문인들- 아름답고 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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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내동·명주동·용강동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 강릉부의 행정성(行政城). 읍성(邑城)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치소지(治所地)에 축조한 성곽으로 조선 전기에는 대략 120여 곳이 유지되었다. 상비군에 의한 충분한 조치가 어려웠던 당시 불시에 발생하는 외침으로부터 주민의 생명은 물론, 지방 관아의 각종 행정 자료와 물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읍성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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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읍성은 근대 이전 고려와 조선시대에 강릉 지역의 치소(治所)가 위치했던 행정중심지에 조성되었던 성곽을 말하며, 관아 유적은 강릉읍성 내에 존재했던 치민을 위한 시설물을 일컫는다. -읍성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 강릉읍성과 관아 유적 강릉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부의 동해안에 위치하며, 서·남·북으로 고도 약300~1,0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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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의복, 보자기, 침구류 등의 생활용품에 수놓은 일. 동양자수는 페르시아에서 시작하여 인도와 중국을 거쳐 고려 고종(高宗) 때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자수는 화조(花鳥), 산수(山水), 길조(吉鳥) 동물 등을 소재로 한 조선시대 자수로 사실적이고 장식적인 문양, 선명한 색채 등이 특징이다. 그러나, 강릉자수는 추상적이고 화려한 문양으로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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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직후 강릉에서 행정 및 치안을 담당한 자치위원회 또는 치안대. 광복 직후 혼란한 정국 하에서 강릉의 행정 및 치안을 자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광복직후 도내 각 지방에는 자치위원회 또는 치안대가 자율적으로 조직되어 행정 및 치안을 담당해 왔는데 1945년 8월 16일 독립운동가 김우종을 중심으로 강원도자치위원회라는 통합기구가 춘천에 발족되고 원주, 강릉에서도 유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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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정기시장. 조선후기 강릉 지방에는 강릉장[2일·7일 개시]을 비롯한 6개의 장시가 있었다. 이들 장시는 모두 지역민들의 수요와 공급의 필요에 따라 교통중심지대에 개설되어 행상중심으로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시장이었다. 이들 장시는 상설시장이라기보다는 5일 간격으로 열리는 정기시장으로 농산물·임산물·수산물, 그리고 부업으로 만든 수공업품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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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창조과학부 소속 기관으로서 강원도 지역의 전파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 전파 감시, 혼신 조사, 불법시설 단속, 국제전파 감시, 통신보안 등을 통해 국가 전파를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다. 1947년 체신부 전무국 광장분실이 설치된 이래 전파감시국이 만들어진 뒤 1964년 강릉전파감시국이 개설되었다. 1964년 10월 23일 강릉시 유산동 70번지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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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소속의 교회. 1945년 9월 19일 강릉시 임당동 133번지 이학원 씨 집에 교우 10명이 참석하여 해방 축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대한예수교장로회 강릉읍교회를 창설하였다. 강릉읍교회 창립 이래 1945년 9월 20일 명주동 12번지에 있던 개인 주택을 개조·수리하였고 1946년 3월 12일에 예배당을 증축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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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2동에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1901년 하디 선교사가 명주동 명국성의 초가에서 첫 예배를 드린 것이 강릉중앙교회의 시작이며 1912년에 이동식 목사가 파송되어 한국인 목사시대를 열었다. 초가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21년 한옥성전을 건립하여 금정(錦町)교회로 불렀으며 1935년 중앙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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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위치한 기독교 한국침례회 소속의 교회. 1955년 5월 27일 천막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7월 21일 정식으로 창립했다. 7월 27일 최성업 목사를 모시고 최성문 집사 댁에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천막과 집사 댁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57년 9월 8일 나요한 선교사로 인해 미국 테네시주 멤티스시의 COLONIAL침례교회 성도들의 선교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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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학생들이 군대에 편입되어 북한군에 대항해 벌인 전투. 한국전쟁 당시 국군에 편입된 학도의용군들은 계급도 군번도 없이 인천상륙작전, 낙동강 방어선전투, 북진작전, 혜산진 전투, 흥남 철수작전, 중동부 전선 전투, 태백산·설악산·서남지구의 잔비 소탕작전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전투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국전쟁 발발시 남한의 병력 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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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전승되는 향토 민요. 「강릉 학산 오독떼기」는 강원도 강릉 지방에서 논김을 맬 때 부르는 농업노동요의 하나로, 남쪽으로는 동해시의 망상·옥계부터 북쪽으로는 양양군 남부 지역까지 분포되어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논농사 소리가 불리지만, 어느 지역이든 논매는 소리가 가장 다채롭고, 음악적으로도 세련되어 있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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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송정동 안목 해변 부근에 있는 항구. 2008년 5월 강릉항으로 개칭되기 전까지는 ‘안목항’으로 불리웠는데 ‘안목’은 원래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라는 뜻으로 ‘앞목’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앞목’의 발음이 어려워 ‘안목’으로 고쳐 부른 것이라고 한다. 강릉시 송정동 안목해수욕장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은 승용차로 강릉인터체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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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강릉 사람인 효자 김덕장(金德璋)의 효행을 적은 효자비. 이 비석은 조선 중종 때 강릉 사람 김덕장(金德璋)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이 세웠다. 김덕장은 어릴 적부터 천성이 어질고 착하여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였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侍墓)를 살던 중, 하루는 산불이 나서 묘소에까지 이르자 통곡하며 하늘에 비니 돌연 비바람이 일어나 산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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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소규모의 교량. 연장 56m, 폭 11m, 경간장 16m, 설계하중 24DB의 T빔형 소교량이다. ‘강문(江門)’은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으로 ‘경포대를 품고 있는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을 의미한다. 현재의 강문교(江門橋)는 경포천을 통과하는 8개의 소교량 중 하나이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의하면 원래 강문교는 나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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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의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 ‘강문(江門)’은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으로 ‘경포대를 품고 있는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을 의미한다.강릉부 동북쪽 10리 되는 북일리면에 있으며, 경포호수의 동쪽 출구이다. 해안이 우뚝 솟은 봉우리는 견조도와 서로 마주 바라보고 섰으며, 읍을 호위하고 있는 관문으로 위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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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과 초당동에 속한 법정동. ‘강문’은 ‘강이 흐르는 입구 또는 강릉의 문’ 이란 뜻인데, 옛날 강릉 시내로 관류하던 물줄기가 공제[홍제동], 경방을 지나 옥거리[옥천동]에서 궁개[포남동], 보남이, 도투재 밑 베루끝[한국 전력 공사 아래쪽]으로 돌아 초당[쏠터]에서 강문으로 흘러 경포호 하구 죽도봉 앞에서 바다로 빠졌다. 그래서 ‘강문’은 강릉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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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항구.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에 위치한 작은 항구이다. 경포해수욕장과 근접하고 횟집이 많아 외래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과 여류시인인 허난설헌의 생가와 시비공원이 있어 문학기행 답사자들의 좋은 방문지가 되고 있다. ‘강문’은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이며, 경포대를 품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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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閒溪)·청월헌(聽月軒), 시호는 문정.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강주(姜籀)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강릉부사와 강원감사를 지냈기 때문에 강릉과 인연을 맺었으며 청백리(淸白吏)로 녹선(錄選)될 정도로 재직 중에 청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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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수산 사무를 전담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 주로 어민들의 행정 업무 처리상의 불편 해소를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어민 지원뿐만 아니라 해상 수산 자원의 보존·육성, 관광 등 해양 수산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해양 수산 자원의 보존과 육성, 관광 자원화를 통한 새로운 소득원의 창출 등을 통해 동해안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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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대관령 지역과 구정면 지역에서 벌어진 남로당 유격대원 섬멸 작전. 1949년 1월 18일에 남로당이 대관령 문암동에 강원도당 군사위원부를 설치하고 유격대 조직에 착수하고 있다는 것을 포착하고, 성산 지서 병력이 출동하여 분쇄하였다. 1949년 4월 초에는 강릉 경찰서에서 구정면 언별리의 단경동 망덕봉의 남로당 유격대대를 일망타진하였다. 대한민국 수립 후 남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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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장전항에 있던 주문진수공업고등학교의 전신. 주문진수공업고등학교의 전신인 강원도립수산전습소는 1947년 10월 6일 주문진수산초급중학교로 인가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수산에 관한 지식과 기술 습득이 목적이다. 강원도립수산전습소는 해방 후 우리나라 수산계의 당면 과제인 질적으로 우수한 수산기술자의 양성을 위해 1945년 12월 12일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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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보훈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 국가 유공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보훈, 제대 군인의 보상·보호 및 군인 보험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관할 구역 내의 국가 보훈 대상자들에 대한 보훈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1961년 7월 5일 법률 제647호로 군사 원호청 설치법이 공포되면서 서울특별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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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시외버스 운송업체. 1921년 3월 28일에 내선 여객 자동차 주식회사로 설립되었다. 1936년 10월 1일에 경춘 철도 주식회사 여객 자동차부로 변경·운영되다가 1944년 3월 28일에 도내 운수업체 통합으로 강원여객자동차 주식회사로 변경되었다. 1966년 12월 9일에는 자동차 운송 사업체 기업화 방안에 의해 준직영업체로 전환되었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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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기독교 방송의 지역 방송국. 기독교 방송은 공정한 보도와 예리한 비판, 시사, 정보, 선교 매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TV, 라디오, 인터넷, DMB 등 모든 매체를 통하여 시·청취자들에게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보다 신속하게 제공하기 위해 설립했다. 1983년 3월 8일에 강릉시 기독교 연합회 결의로 ‘CBS 강릉 방송국 설립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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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율곡로 2705에 있는 병무 행정 기관. 영동 지역의 효율적인 병무 행정을 수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1년 11월 2일에 강릉 병무 지청이 개소되었으며, 1982년 2월 12일에 강원도 강릉시 교동으로 이전[임대 청사]하였다가 1982년 11월 1일에 청사 준공 및 이전을 완료하였다. 2000년 1월 1일에는 기관 명칭 변경 및 징소집 업무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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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부로63번안길 7-9[내곡동 96번지]에 있는 공공기관에서 필요한 물자구매, 시설공사 계약과 관리를 담당했던 기관. 영동권지역 공공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구매하고, 공공분야에서 발주하는 시설공사의 계약과 관리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9년 7월 6일에 조달청 춘천사무소 강릉출장소로 강릉시 옥천동에 개소하였으며, 1980년 5월 29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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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에 있는 강원도 환동해 본부 산하의 시험장. 수산 종묘의 대량 생산과 방류를 통해 연안 자원 조성과 기르는 어업을 통해 어민들의 소득 증대는 물론 해양 수산 자원 확보의 전초 기지로서의 역할을 위해 설립하였다. 강릉 지역에 수산 양식 시험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일제 강점기 때이다. 1921년 6월 14일에 조선 총독부 강원도령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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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찐 후 말려 튀겨 고물을 입힌 음식. 강정의 유래는 한나라 때의 한구에서 찾을 수 있으며 아침밥을 먹기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하여 ‘한구’라는 음식을 먹는 습속에서 시작되었다. 모양, 고물, 색에 따라 이름이 불려진다. 한나라 때에는 강정을 ‘한구’라고 했고, 진나라 때는 ‘환병’이라 불렀으며 당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그 모양이 누에고치 같다고 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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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8년(숙종 14)부터 1692년(숙종 19)까지, 1728년(영조 4)부터 1738년(영조 14)까지 불렸던 강원도의 옛날 이름. 조선시대에 강상죄가 발생한 지방의 경우 읍호를 강등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또 반대로 왕실이나 국가와 관련하여 경사스러운 사안이 발생하면 읍호를 승격시켜주었다. 강원도는 조선조에 역적의 출생지라 하여 일시적으로 강춘도(江春道), 강양도(江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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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직조된 베.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의복 재료로 사용하여 온 것은 대마(大麻), 저마(苧麻)이다. 옛 문헌에는 대마와 저마를 구분하지 않고 마(麻)로 기록한 경우가 많고 이들 직물의 경우도 포(布)라고 기록한 경우가 많다. 대마는 기후에 잘 적응하는 식물로 세계 곳곳에서 재배되며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적으로 재배되어 왔다. 옛 직물에 있어서 포(布)란 대마포(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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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그리스도교의 분파.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스도교[가톨릭교]를 천주교(天主敎), 프로테스탄트를 개신교(改新敎)라고 부른다. 개신교는 로마가톨릭교회 및 동방정교회와 더불어 기독교[천주교]의 3대 교파를 이룬다. 1893년부터 1909년에 이르기까지 각 교파의 선교회들 사이에 선교 지역 분할 협정이 꾸준히 이루어졌는데 1909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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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이념과 정신을 구현하고 실현하기 위해 강릉 지역에 설립한 개신교 관련의 각종 기관 및 단체. 강릉시에는 개신교의 이념과 정신을 구현하고 실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여러 단체들이 있다. 1. 강릉시기독교연합회 2005년 현재 112개의 교회가 회원 교회로 활동중인 강릉시기독교연합회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선교와 연합 사업을 위한 교회 협력과 회원들의 친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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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릉경찰서 병력과 북한군 패잔병들이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 지역에서 벌인 전투.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결과 국군은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였고, 북한군은 6개 사단 이상이 남한 내에 고립되어 전력이 분산되었다. 고립되어 잔류 중이던 북한군 패잔병들은 산악지대를 따라 북쪽으로 퇴각하거나 산악지역으로 숨어들어 남한 내의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교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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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인위적으로 새로 개척하여 농사를 지으며 사는 마을. 개척대 마을은 평야 지대나 구릉 지대를 개척하여 생긴 마을이다. 개척대 마을은 3단계로 구분되는데 먼저 일제강점기 초기의 개척대 촌락, 해방 이후의 개척촌락,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개척대 촌락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개척된 마을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와 학산리에 있는데 일제의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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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산업 중 토목·건축 기타 이와 관련되는 건설 공사의 도급을 받는 영업. 건설업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인공 시설물들인 토목과 주택·상가·공장·사무실 등의 건축물을 건설하는 공사를 맡아 수행해 주는 영업이다. 건설업은 첫째, 시장 구조면에서 주문 생산적 기업 즉 수주 산업이다. 둘째, 생산 활동이 옥외적·분산적이다. 셋째, 생산 대상이 특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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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속한 법정동. ‘견소(見召)’는 남대천 하류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본다는 뜻이다. 마을 앞에 있는 견조봉(堅造峰)에 올라가 남대천에서 흘러온 물이 바다로 빠지는 ‘물살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하여 생긴 지명으로 원래는 ‘견조(見潮)’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쉬운 ‘견소’로 변경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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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견소동에 있는 마을. 견소(堅召)는 마을 앞에 있는 젠주봉[죽도봉]에 올라가 남대천에서 흘러온 물이 바다로 빠지는 것을 보면 “물살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하여 ‘견조(見潮)’라 불리다가 일본인들이 견조를 발음하기 쉬운 ‘견소’로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견소진리는 안목(安木)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주변지역에서 벌채한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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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명주[지금의 강릉] 출신의 고승. 자는 혜일(慧日), 법명은 결응(決凝). 성은 김씨, 증조할아버지는 명주 호족 김영길(金英吉)이고 할아버지는 김선희(金善熙)로 장보(章保)·기연(器璉)·굉홍(宏洪)의 관직을 지냈다. 아버지는 김광률(金光律)로 금곡경(金穀卿)을 지냈다. 어머니는 강릉 군부인(江陵郡夫人) 방씨(方氏)로 내의령(內議令) 강명(康明)의 딸이다. 결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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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방이 두 줄로 배치되어 평면 구조가 겹으로 되어 있는 집. 건물의 각 방들이 평면에 배치되는 형식이 전자(田字)와 같이 배치되는 집을 말한다. 추운지방에서 외부에 노출되는 벽체의 면적을 최소한으로 하여 열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함경도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 산간지방까지 전통민가에서 많이 보인다. 강릉 지방은 추운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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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을 추모하는 유교식 제례. 매년 음력 3월 5일 강릉박씨대종회 주관으로 거행되는 박제상을 추모하는 제례이다. 1939년 강릉박씨대종회가 박제상의 위패를 봉안하면서부터 다례를 시작하였다. 박제상의 위패가 있다. 제관은 강릉박씨대종회에서 논의하여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집사, 축관을 선정한다. 이때 강릉시장이 제관으로 참석한다.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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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상공업자, 농업인 등이 각각 공동 및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 경제단체가 설립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동일 업계나 동일 조직 공동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때로는 정부가 일정한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들이나 노동자들이 단체를 구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는 경제단체가 구성될 경우 업계나 조직의 목소리가 통일되어 정부가 산업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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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공공질서와 안녕을 보장하고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 작용. 1945년 10월 21일 국립경찰 창설과 동시에 강릉경찰서가 용강동에서 개서하였다. 주문진에는 주문진경찰서가 1948년 6월 15일에 창설되어 별도로 운영되다가, 1956년 1월 1일 강릉경찰서와 주문진경찰서를 통폐합하였으며, 1963년 1월 1일에는 인구지서가 양양경찰서로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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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 도립 공원 내에 있는 해변. 경포호 서쪽 언덕 위의 경포대와 더불어 주변에 수많은 누정, 경승지와 어우러져 있어 볼거리가 많은 해변이다. 경포 해변의 모래사장은 고운 모래질로 구성되어 있고, 바닷물은 깨끗하고 수심은 완만하다. 강릉 시내에서 북으로 6㎞, 경포대에서 1㎞ 되는 곳에 위치한다. 시내버스는 강릉 시내에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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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가 고시한 강릉시 저동·초당동 등 경포 호수 주변과 사천 해변 일부 지역의 도립 공원. 1982년 강원도 도립 공원으로 지정된 경포도립공원은 2015년 기존 9.475㎢ 구역 중 27.5%인 2.609㎢가 해제되었다. 해제된 지역은 사근진 해변부터 안목 해변까지로 주로 해양 특구 사업이 가능한 지역이었다. 해제 사유는 도립 공원 지정으로 인해 개발 행위가 제한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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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경포대 주변의 동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강릉시의 행정동으로 지명은 경포대에서 유래하였다. 수많은 명승과 문화재들이 있다. 강릉시의 중심에서 주문진 방향으로 약간 벗어난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동, 강문동, 성산면, 사천면 등과 접해 있다. 경포동의 중심으로 주요 도로가 지나고 있다. 경포동은 1998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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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을 참기름으로 볶다가 불린 쌀, 전복 내장을 넣고 물을 부어 쑨 죽. 먼저 전복의 창자를 떼 내어 깨끗하게 씻어 놓는다. 전복 내장을 잘게 다진 다음 물에 불린 쌀에 넣고 푸르스름한 색깔이 날 때까지 바락바락 주물러 준다. 냄비에 다시마와 무를 넣고 삶아 육수를 만든다. 전복 살은 잘게 썰어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서 볶다가 쌀을 넣고 같이 볶으면서 불을 줄인다. 여기에 다시 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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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에 수립된 강원도 강릉시 경포지구에 대한 종합개발계획. 1982년 이후 강릉시와 강원도에서는 경포지구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하고 환경성과 관광성을 살려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였다. 1975년 영동고속도로 개통을 계기로 강릉의 동해안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따라서 강릉시에서는 대표적인 경관을 갖춘 경포지구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하고 공원이용계획을 수립하고자 1982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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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강릉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 1260년(원종 1)에 설치되어 1263년에 강릉도(江陵道)로 개칭되었다. 고려 고종 때 당시 무인집정자 최의(崔竩)를 죽임으로써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공을 세운 낭장(郞將) 김홍취(金洪就)의 공을 포상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강릉의 읍호를 승격시켰다. 1258년(고종 45) 김홍취는 유경(柳璥)·김준(金俊)·박송비(朴松庇)·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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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있는 행정리. 고단리는 고단 1리, 고단 2리, 고단 3리의 법정리를 포함하고 있는 왕산면의 행정리로서 고랭지 작물 재배 지역으로 유명하다. ‘고단(高丹)’은 높은 곳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보안도(保安道)에 딸린 고단역이 있어서 ‘고단’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강릉에 와 있던 고려 시대 충신 고상단충(高尙丹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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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도 고원이나 산지 등 서늘한 땅에서 재배되는 채소류. 고랭지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농업을 고랭지 원예농업이라고 한다. 소비지 근교에서 여름철 고온으로 채소를 출하할 수 없을 때 고랭지에서는 배추·양배추·무 등을 출하한다. 이것을 단경기 채소 재배라고도 하며, 강릉 지방에서는 왕산면을 중심으로 시행된다. 고랭지의 해발고도는 600~1,000m 정도로, 남부 지방의 해발고도는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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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고봉익(高鳳翼)은 성품이 효성스러워 어머니가 병이 나자 배설물을 맛보며 치료하였다. 또 어머니의 병을 대신해서 앓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면서 약시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상을 당했을 때에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고, 상이 끝난 다음에도 비바람을 무릅쓰고 성묘를 하였다. 시묘살이를 할 때에 호랑이가 와서 보호해 준 기이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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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고분의 총칭. 고분은 광의로는 옛 무덤으로 통칭할 수 있으며, 과거 사회에서 죽은 자를 위해 수행된 매장의례가 물질적인 증거로 남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옛 무덤은 선사고고유적과 역사고고유적으로 구분된다. 시기상으로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를 선사고고유적으로, 이후 시대의 것을 역사고고유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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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어버이를 섬길 때에 효성을 다하였으며 어머니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흘려 넣어 낫게 하였다. 고욱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고욱의 효행을 조정에서 듣고 1555년(명종 10)에 정려(旌閭)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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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나이 22세에 남편이 병이 들어 급기야 숨이 끊어지려고 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 며칠을 더 살게 하였다. 남편이 죽자 세수도 하지 않고 정절을 지켰다. 고익지(高益智) 처 신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부영(府營) 및 어사(御使)에게 호소하여 포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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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돌을 가지고 만든 청동기시대의 돌무덤.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받치고 있다는 뜻으로 ‘괸돌’, ‘지석묘’, ‘탱석’이라고도 하며, 마을 이름에도 ‘괸마을’, ‘괸돌마을’, ‘지석리’ 등이 있다. 커다란 덮개돌이 밖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왔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지만 공동무덤을 나타내는 묘표석이나 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으로서도 기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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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부. 나이 19세에 남편의 상을 당하여 상장(喪葬)의 예를 다하고 삼우제(三虞祭)가 끝나는 날에 남편을 따라 죽었다. 고제인(高濟寅) 처 전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여러 번 관부에 알려져 아름다운 행실을 기리는 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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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 취나물 중 가장 향기가 많아 어린잎으로는 나물, 쌈, 개피떡, 절편을 만들어 먹거나, 녹즙을 만들어 음료로 마신다. 꽃은 튀겨 먹는다. 곰취는 곰이 좋아하는 나물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는 곰이 살 정도로 깊은 산에서만 자란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하며 웅소(熊蔬)라고도 한다. 습기 찬 깊은 산에서 자라는 키 1~2m의 다년초로, 근경은 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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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공적 이익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공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을 말한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를 수행하는 이른바, 관공서는 물론 공기업·준정부기관 및 준정부조직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서의 공공기관이라 하면,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으로서 '공공기관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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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는 본당보다 작은 천주교회 단위.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에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예절이 행해지며,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서 성사가 집행된다. 금광리 공소 현판에는 1887년 창립으로 적혀 있어 19세기 말에 벌써 신자들이 이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금광리 공소 신자들이 1921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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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서 사천면 방동리에 이르는 도로. 대전동과 사천면 방동리 일대에 조성한 강릉 과학 산업 단지 안에 있는 도로여서 과학단지로라고 이름 붙였다. 과학단지로는 강릉 과학 산업 단지 안에서 외부와의 접근이 쉽게 만들어진 다리이다. 사임당로와 연결되어 강릉 시내를 경유하지 않고 동해 고속 도로로 바로 접근하게 되어 있다. 길이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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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김주원의 부하였던 곽길은 최대내(崔大奈)·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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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풍속·자연 풍광·음식·특산물 따위를 즐기기 위해 찾아보는 일. 현대적 의미의 관광은 일상생활을 떠나서 견문을 넓히고, 위락하고 경제적인 소비를 하며, 내일의 건전한 생활을 위한 형태 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보고 듣고 즐기는 차원의 관광에서, 관광지의 문화를 직접 만지며 참여하여 체험하면서 느끼는 차원의 관광 여행이 더욱 증대되고, 심신의 안정과 건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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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에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특별히 지정한 지역. 1986년부터 농림부는 주말농장이나 관광농원과는 달리 마을 단위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마을의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관광객들의 숙박에 필요한 편의시설 등을 갖추도록 지원하였다. 관광농업지구로 지정되면 정부에서 지구별로 최고 2억 원까지 연리 8%의 10년 상환조건의 개발자금을 융자해 주었다. 1990년까지 관광농업지구로 지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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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설치되어 있었던 지방 관청인 강릉부(江陵府) 관할지역의 의병부대. 일제에게 당한 치욕을 갚고 동해안 일대의 일본인을 섬멸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창의대장 민용호가 강릉의진과 합진(合陣)하여 설립하였다. 단순한 의병에서 출발하여 1896년 1월 30일에 관동구군도창의소를 창설하고 2월 15일에는 관동구군도창의부대로 개편하여 항쟁의지를 새롭게 가다듬었다. 군비를 조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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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지역 문인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문학상. 관동문학회에서 1991년부터 매년 지역 문학 발전에 기여한 문인에게 수여하는 문학상이다. 1959년 1월 19일 관동문학회가 창립되었으나 경제적 여건으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문학의 밤, 시화전 등의 행사에 머물렀다. 그 후 1987년 신봉승, 엄창섭(嚴昌燮), 조영수(曺永秀), 장병훈 등에 의해 영동 지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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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 계몽 운동 단체인 관동학회의 지회. 서울[당시 한양]에서 멀고 교통·통신이 빈약했던 강릉에 근대 교육 운동의 전개 방법과 내용을 제공했던 향토 교육 단체이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인하여 외교권을 일본에게 박탈당하고 국권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자 서울에서 활동하던 개화 선각 지도자들이 단합하여 고향인 강릉에 근대 교육을 지원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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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법정리. 관음 1리와 관음 2리의 행정리가 있는 성산면의 법정리이다. 성산면 한가운데 있으며, 동쪽은 금산리·구정면 제비리, 서쪽은 어흘리·보광리, 남쪽은 구산리, 북쪽은 보광리·위촌리와 접해 있다. 관음리는 본동 입구 북쪽 골에 관음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1916년 안곡[안국동]·개자리[가좌리]·괴일[고곡동]을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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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광물 자원을 개발하는 작업이 실행되는 장소. 광산이란 가치 있는 광물 자원이 표출되어 있거나 매장되어 있어 개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광석을 채굴하는 장소뿐만 아니라 선광, 제련 등의 공작소도 포함된다. 광산은 채굴되는 광물에 따라 크게 금속 광산과 비금속 광산으로 나뉜다. 따라서 석탄, 석유가 생산되는 곳도 광산이라고 하지만, 석탄을 생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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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법정동. 교 1동과 교 2동의 행정동이 있는 강릉시의 법정동으로서 강릉을 상징하는 강릉 향교가 중심인 지역이다. 영동에서 유일하게 인구 3만 명이 넘어간 단일 동이며, 계획 도시 개념의 주거 환경이 조성되어 있고, 교통망이 편리하다. 교동은 강릉 향교를 중심으로 2㎞권 이내의 지역이다. 대략 방송국↔운정교↔시청 북쪽의 동해 고속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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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지역에서 단오제 기간 중 개최되던 시(詩) 백일장. 강릉단오제 행사 기간 중 한국문인협회 강릉지부 주관으로 관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한글 시 백일장이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강릉 출생 허균(許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당시 강릉단오제 행사를 목도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허균은 그의 누이인 허난설헌(許蘭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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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을 실시하는 곳.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교육은 국민 사이의 강렬한 교육열과 정부 차원의 행정력이 전국에 획일적으로 미치면서 전개되어 왔으며 정부수립과 함께 교육 팽창정책이 실시됨에 따라 강릉 지역의 교육은 획기적 발전을 거듭하였다. 특히 교육열 증대와 현대적 가치관에 따라 남녀교육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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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강릉시의 중심부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포남동, 서쪽으로는 임당동·교 1동, 남쪽으로는 옥천동, 북쪽으로는 운정동과 접해 있다. 교통의 중심지이며, 기차역이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강릉 향교가 있어 향교 마을·향교말 또는 교촌(校村)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강릉군 남일리면에 속한 지역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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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동쪽으로는 교 2동, 서쪽으로는 유천동, 남쪽으로는 홍제동과 임당동, 북쪽으로는 죽헌동과 인접해 있다. 주요 간선 도로는 서북쪽 영동 고속 도로로 이어지는 국도와 강릉역까지 이르는 영동선 철도가 있다. 강릉 향교가 있으므로 향교 마을·향교말 또는 교촌(校村)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강릉군 남일리면에 속한 지역으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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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강원도의 이름. 995년(성종 14)에 지방행정구역을 10도로 나눌 때 함경도와 합하여 삭방도(朔方道)라 하였다가 1178년(명종 8)에 삭방도를 폐지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의 해안지방을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춘천·철원 일대의 영서 지방을 동주도(東州道)라고 개칭하였다. 1263년(원종 4)에 연해명주도는 강릉도(江陵道)로, 동주도는 교주도(交州道)로 고쳤고,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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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도로, 철도, 해상로, 항공로 등을 이용하여 사람과 화물을 이동시키는 수단. 강릉의 교통 수단은 도로와 철로를 이용하는 육상 교통, 해상로를 이용하는 해상 교통, 항공로를 이용하는 항공 교통 등이 있다. 강릉에 자동차가 처음 다니기 시작한 것은 1917년 강릉~경기도 이천 사이에 도로가 생긴 그 이듬해인 1918년부터이고, 열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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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행정리. 강릉시 주문진읍의 중심부에 있는 행정리로서 주문진읍의 교통 중심지이며 공공 기관들이 밀집해 있다. 다리 옆에 마을이 형성되어 다리목집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지산이라 하며 명주의 속영으로 하였고, 1018년(현종 9) 지방 관제의 개정에 의해 연곡면에 소속된 마을이었다. 1734년(영조 1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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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와 체계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884년 흐레이스 뉴톤 알렌에 의해서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885년 부활절에 장로교의 호레이스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헨리 아펜젤라 목사가 제물포에 도착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새문안교회와 정동교회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한국에 선교하기 위해 진출한 개신교의 각 교파는 전교의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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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행정리. 중국 노나라 때 공자의 어머니가 이구산(尼丘山)에 가서 치성을 드리고 공자를 낳아 공자의 이름이 구이다. 공자의 어머니가 치성을 드린 이구산과 비슷하게 생겨 ‘이구산’이라 부른 산이 있었다. 그 후 ‘니(尼)’ 자를 떼어 내고 그냥 ‘구산(丘山)’이라 하다가 성현의 이름은 함부로 쓰지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고 하여 ‘구(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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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개설되었던 5일장의 하나. 조선 후기 강릉 지역에는 여러 곳에 5일장이 개설되었는데 대표적인 5일장이 강릉장[2, 7개시], 연곡장[3, 8개시], 옥계장[4, 9개시], 주문진장[1, 6개시], 강동장[1, 6개시], 망상장[5, 10개시], 구산장[1, 6개시]이 있었다. 이들 장시는 모두 지역민들의 수요와 공급의 필요에 따라 교통중심지대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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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부터 약 1만 년 전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돌을 깨뜨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로 인류 최초의 문화 단계.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는 생물학 분류에서 인류가 유인원(類人猿)에서 진화하여 사람으로 분류되는 고인류(古人類)가 처음 등장한 때부터 1만 2천 년 전 무렵 플라이스토세가 끝날 때까지에 이르는 긴 시간대에 걸친 인류 문화의 원초 단계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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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천로(天老). 구강(具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구신충(具信忠)이고 아버지는 구이(具頤)이다. 어머니는 덕수이씨로 현감 이의영(李宜榮)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성리학에 몰두하여 명망이 있었고 언론을 통하여 기묘사림파에 대한 신원의 길을 열었다. 1519년(중종 4)에 생원이 되고 1528년 식년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여 박사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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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구정리의 ‘구정’은 마을에 거북이가 나온 우물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옛날 효자가 살았는데 효자의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 있었다. 병이 깊은 아버지는 고기를 먹고 싶어 했으나, 때가 겨울이라 고기를 구할 수가 없었다. 효자가 집 앞 우물에 나와서 하늘에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니 우물에서 거북이가 나왔다. 그 거북이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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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속한 면. 강릉시의 중앙부에 있는 면으로서 도시 근교의 농촌 지역이다. 북쪽으로 강남동, 동쪽으로 강동면, 남쪽으로 옥계면과 왕산면, 서쪽으로 성산면에 접한다. 구정면의 ‘구정’은 마을에 거북이가 나온 우물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옛날 이 마을에 효자가 살았는데 효자의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 있었다. 병이 깊은 아버지는 고기를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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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에서 여찬리 앞까지 이어지는 도로. 구정면 소재지인 여찬리와 구정리, 제비리를 잇는 중심 도로여서 구정중앙로라고 이름 붙였다. 구정중앙로는 구정면 제비리에서 구정면 구정리를 지나 구정면사무소가 있는 여찬리로 가기 위해 만든 도로로, 제비리와 구정리 사이를 잇는 옛 농로 겸 면로를 확장하였다. 길이 2,709m, 폭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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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덕천 교차로와 강원도 강릉시 중앙동 옥천오거리를 연결하는 대한민국의 일반 국도이다. 부산 북구 덕천동에서 강릉까지 이르는 길이 349.7㎞의 국도 35호선은, 1981년 3월 14일 국도 35호선 부산-강릉선의 신설로 시작되었다. 이후 1981년 4월 13일 국도로 승격된 삼척군 장성읍 동점리~강릉시 성내동 115.4㎞ 구간이 개통되었으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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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서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을 잇는 대한민국의 일반 국도 국도 7호선은 부산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이어지는 일반도로이다. 1969년~1970년 경주~울산 구간을 시작으로 하였으며, 총연장 1,192㎞의 남북방향 도로로서 남측구간은 481.8㎞이다. 강원도 구간은 동해안의 저평지를 따라 개설되어 있으며, 삼척시를 지나 동해, 양양, 속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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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에 강원도 강릉의 우익인사들이 우익단체의 조직과 결속을 위해 만든 단체. 1947년 민우회가 발전하여 국민회가 되었으며, 이승만의 독립촉성국민회의를 지지하는 단체로 설립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우익진영의 최돈제, 김기린, 김진환 등이 중심이 되어 우익진영의 조직과 결속을 위해 민우회를 조직하였다. 결성식을 1945년 12월 8일 강릉초등학교 강당에서 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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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건립된 조계종 계통의 암자. 강릉 굴산사지 인근 넓은 벌판 가운데 동향으로 건립되었다. 굴산사지에 건립되었다고 하여 ‘굴산사’라 이름하였다. 1999년부터 범일국사 추모 다례를 올리고 있다. 굴산사는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641-20에 위치한다. 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건물이다. 법당에는 굴산사지 유물인 비로자나불좌상 2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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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고구려[태봉]의 건국자이자 왕. 신라 제47대 헌안왕(憲安王) 또는 제48대 경문왕(景文王) 김응렴(金膺廉)의 아들이라고 한다. 왕비는 강씨부인이고, 아들은 청광보살(淸光菩薩)과 신광보살(神光菩薩)이다. 궁예는 신라 하대 왕의 서자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의 여러 징조가 장차 국가에 해로울 것이라고 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나 탈출하는 과정에서 유모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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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성집(聖集), 호는 죽암(竹岩). 참판인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권윤재(權允載)이고 아버지는 효자인 권득형(權得衡)이다. 1747년(영조 23)에 식년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부사직 겸 춘추시강원문학(副司職 兼 春秋侍講院文學)을 지냈다. 1781년에 기후가 고르지 못하여 재앙이 생겼을 때에 정조(正祖)가 구언(求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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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오죽헌 권처균(權處均)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권윤재(權允載)이다. 권득형(權得衡)은 천성이 효성스러웠으며 어버이를 사모하는 추모의 정이 늙어갈수록 더하였다. 어버이의 묘소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매월 초하룻날이면 더울 때나 추울 때나 항상 찾아가 성묘를 하였다. 어느 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도저히 더 갈 수가 없어 근처 마을에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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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字)는 치오(稚五). 세마(洗馬)인 권련(權璉)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권상익(權尙益), 할아버지는 권시창(權始昌) 그리고 아버지는 권두재(權斗載)이다. 1727년(영조 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장령을 지냈다. 벼슬을 지낸 후 서울에 가지 않고 20여 년이나 경호(鏡湖)에 은거하였다. 그러던 중 어사(御史) 이현중(李顯重)이 포상을 위하여 계(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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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권수근은 효자 권은상(權殷常)의 후처 김씨의 아들이다. 권은상의 며느리는 정씨이다. 시어머니인 김씨가 제사를 보러 친정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눈보라를 만나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겨우 집 앞에 있는 산에까지 와서는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아들을 부르자 홀로 있던 정씨가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가 자기 치마를 찢어 시어머니의 발을 감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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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열녀. 시부모를 효성을 다해 모셨다. 시어머니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치료하였고, 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드렸다. 시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 베를 짜서 받은 품삯으로 제수를 마련해 상을 잘 치렀다. 남편인 권억영은 스승을 따라 유학하고 있다가 불행하게 일찍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로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죽을 것을 결심했으나 늙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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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안동. 예판전교시사(禮判典敎寺事) 권숭(權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권륜(權綸)이고 아버지는 참봉인 권송(權悚)이며, 어머니는 군수를 지낸 청송심씨(靑松沈氏) 심산보(沈山甫)의 딸이다. 문장에 능숙하여 1519년에 사마시에 응시하였는데 회위(會圍) 김모재(金慕齋)가 그의 글을 보고 “금년 장원은 반드시 자네에게 돌아갈 것이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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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인 권연(權璉)의 묘비. 권연이 졸한 후 수백 년이 지나 권연의 행적을 알 수 있는 문헌이 유실되자 권연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고 공덕을 기리기 위해 1882년에 11대 후손인 권진영(權晉榮) 등이 주축이 되어 비석을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있다. 비신의 높이가 152㎝이고 비신 두께 및 너비가 67㎝인 비석이다. 비제는 "유명조선국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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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관노가면극」의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강원도 강릉시 유천동 출신으로 1993년 8월 2일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김동하와 차형원 보유자의 뒤를 이은 인물이다. 본래 강릉시 유천동농악대 상쇠로 활동하다가 1983년 강릉문화원 조기현 원장의 권유로 「강릉관노가면극」을 맡아서 활동하였다. 강릉단오제 때 「강릉관노가면극」을 공연하여 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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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출신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북경대학을 졸업하였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회원, 강릉농민동맹 회원 그리고 가두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다. 1930년 5월 1일 강릉군[지금의 강릉시] 옥천동(玉川洞) 자택에서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는 사회과학 및 일반서적을 윤독하여 교양을 높이고 일제 식민교육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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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안동. 비조(鼻祖)는 고려 태사(太師)인 권행(權幸)이다. 고조는 권만선(權萬選)이고 증조는 권세섭(權世燮)이며 할아버지는 권민교(權敏敎)이고 아버지는 권성도(權星度)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며, 이숭진(李崇鎭)의 딸이다. 1794년에 태어나서 1874년에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열여덟 살에 어머니인 이씨가 병으로 14개월 동안을 앓았다.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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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상(權殷常)과 그의 부인 강릉김씨의 효자비. 부효부열(夫孝婦烈, 남편은 효자이고 부인은 열부)은 예나 지금이나 드문 경우이어서 반드시 그 정신을 숭상하고 널리 알리기 위하여 현손인 권오식(權五植)이 자료를 수집하여 이 비석을 세웠다. 이 효자비는 권은상이 돌아가신 지 71년이 되는 1944년에 세웠다. 김윤경(金潤卿)이 글을 짓고 최돈국(崔燉國)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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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말기의 효부(孝婦). 지극한 효성으로 시어머니를 모셨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권종열(權鍾烈)의 처 김씨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시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으로 정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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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사중(士中), 호는 오죽헌(烏竹軒). 감사인 권륜(權綸)의 증손이고 세마(洗馬)인 권연(權璉)의 손자이며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이종제(姨從弟)이다. 정시(庭試)에 수석으로 올랐으나 허균이 권처균은 율곡 이이의 무리라고 하면서 조정에 글을 올려 관로(官路)를 저지하였다. 권처균은 세상의 도가 어지러움을 개탄하면서 과거를 단념하고 벼슬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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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임진왜란 때에 적을 피해 산골짜기로 들어가다가 적을 만났다. 적이 김씨를 욕보이려고 하자 김씨는 칼을 빼앗아 자살하려고 하였다. 김씨는 있는 힘을 다해 대항하며 끝내 굴하지 않았다. 적은 화를 내며 김씨를 베고 가버렸다. 윗동서인 권처평의 처 최씨 또한 정조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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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살았던 조선 중기의 열녀.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으로 진사 최문해(崔文海)의 딸이다. 권처평(權處平)의 처 최씨는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만나 욕을 보일 위기에 처하자 벼랑에 스스로 몸을 날려 죽음으로써 정절을 지켰다. 아들 권덕유(權德裕)는 왜적의 손에 죽은 어머니 시체를 안고 장례를 치른 후 3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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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릉농업학교 독서회에 참여하여 일제 식민교육정책에 반대하는 등 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렀던 독립운동가이다. 강릉농업학교 3학년 때 동맹휴학을 주도한 혐의로 퇴학되었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회원이었다. 1930년 5월 1일 강릉군 옥천동(玉川洞) 권오훈(權五勳)의 집에서 결성된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는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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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열부.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를 섬겼다. 남편이 죽자 늘 칼을 품고 자결하려고 하였으나, 집안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겨우 만류하여 보호하였다. 스스로 죄인이라 하면서 문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해를 보지 않았으며, 흰 옷과 변변찮은 음식을 입고 먹으며 일생을 보냈다. 남편의 기일에는 종들에게 시키지 않고 제물을 손수 정성껏 마련하였으며, 제사를 마치고는 초상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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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을 비롯하여 산간 지방에서 통나무를 가로로 포개어 쌓아올려서 벽체를 만든 집. 일반적으로 모서리와 교차 부위에는 서로 아래위를 따서 물리게 하여 하중을 견디게 한다. 통나무를 대신하여 각재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부면만 평탄하게 하여 쌓아 올리는 경우도 있다. 귀틀집은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 외부 기후조건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귀틀집의 통나무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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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규석(硅石)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 규석광이란 광물 자원으로서의 규석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을 말한다. 규석은 사기그릇, 유리, 내화성 벽돌의 원료가 되는 유용한 광물 자원이다. 건축에서 내화성 벽돌의 수요가 증가하고 다양한 종류의 내화성 벽돌 상품이 개발됨에 따라 규석의 중요도가 더욱 높아졌다. 국내 광물 자원 가운데 비금속 광물에서 매장량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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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시작한 교회로서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교단. 그리스도의 교회는 환원운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서에 바탕을 둔 교회, 신앙, 예배, 생활, 봉사에 있어서 완전히 처음의 원(元)교회로 돌아가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의 모습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명칭도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로마서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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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나 음악, 무용 따위를 공연하거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하여 무대와 객석 등을 설치한 건물이나 시설. 원래 연극을 공연하는 장소만을 지칭하다가 무용·음악·예능 등의 모든 무대예술을 공연하는 장소로 극장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공연 시설물을 가리키게 되었다. 극장(theatre)의 어원이 관람석(theatron)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듯이 극장은 배우와 관객을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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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조직된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여성단체. 근우회 강릉지부는 강릉청년동맹의 김남숙 등의 주도로 강릉여자불교청년회를 끌여들여 조직되었다. 근우회 강릉지부는 불교단체를 주축으로 결성되었으므로 정치적 활동보다는 주로 여성 계몽운동 차원의 활동이 주축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 여성계몽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여성의 의식 수준을 높이며, 견고한 단결과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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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4교구의 말사. 소금강산, 소금강 청학동 지역에 위치하여 금강사라 부른다. 1995년부터 개축불사를 진행하여 현재의 법당, 요사채, 삼성각 등 대부분의 전각들이 최근에 증축 및 개축되었다.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2리 1-10번지, 소금강 십자소와 식당암에 이르는 계곡의 북측 산기슭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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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청학동 소금강 지역에 있는 고대 산성. 금강산성은 해발 714m의 소금강산을 정점으로 하여 노인봉(老人峰) 쪽으로 피동 부근의 남쪽에 위치한 산성이다. 성이 위치한 이 지역은 1970년 11월 18일 명승 제1호로, 1975년 2월 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청학동 소금강’ 지역으로 금강산성은 1984년 6월 2일 강원도 문화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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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금광리는 강릉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8㎞ 정도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덕현리, 서쪽으로는 학산리, 남쪽으로는 어단리와 언별리, 북쪽으로는 운산동과 접해 있다. 금광리의 명칭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금덩이를 건져 올린 용금정이 있어서 용금정의 ‘금’ 자를 따서 ‘금빛이 나는 고을’이란 뜻에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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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 지역 유학자들의 계회(契會). 조선 초기의 재지사족들은 중앙의 숭유억불 정책에 힘입어 성리학을 수용하여 정착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강릉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리학을 수용한 재지사족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을 교양으로 하여 입신출사를 지향하였으며, 나아가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추구하였다. 강릉 지역 금란반월회의 성향도 이와 같았다. 한편, 조선 초기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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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노. 심원준(沈元濬)의 여자 종으로 지극정성으로 주인을 섬겼다. 심원준의 처인 김씨가 사경을 헤매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넣어 소생시켰다. 향리 사람들은 주인을 극진히 섬긴 그 충성에 감복하여 ‘충노 금복 비(忠奴 金福 碑)’라는 비석을 세우고 그 마음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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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행정리. 금산리의 명칭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조선 11대 임금 중종 때 김광헌(金光軒)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갱금]라 하던 것을 나중에 금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강릉 최씨[평장공파]의 시조인 최입지의 묘가 있는 산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옥녀 탄금형]’이어서 금산(琴山)이라 하였다가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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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1리와 금산2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강릉김씨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 금산리(金山里)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조선 중종 대 김광헌(金光軒)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建金里)[갱금]라 하던 것이 1916년 장안동(長安洞), 제동(堤洞), 구동(鷗洞), 성하(城下)를 합하여 금산리라 했다. 금산리에는 강릉 최씨 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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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서 성남동에 이르는 도로. 금성로는 강릉 읍성 동문 밖을 나와 강릉의 상가 밀집 지역인 옥천동과 성남동 사이에 있는 상가 도로이다. 강릉의 번화가인 금학동과 강릉 중앙 시장이 있는 성남동을 잇는 도로여서 두 행정동의 첫 글자를 따 금성로라고 이름 붙였다. 금성로는 상가 밀집 지역인 강릉 중앙 시장과 성남 시장을 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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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호는 청원정(淸遠亭). 증조부는 금진고(琴進高), 조부는 금조(琴操), 아버지는 금극해(琴克諧), 아들은 금이영(琴以詠)이다. 외조부는 이인실(李仁實)이며 박천석(朴天錫)의 사위이다. 1396년(태조 5)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大司諫)과 대사성(大司成) 등 청환직(淸宦職)을 거쳤다. 1419년(세종 1) 참의(參議)로서 강릉부사에 임명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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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금융 시장에서의 자금의 수요와 공급. 강릉 지역의 근대적 금융 기구로는 1889년 1월 15일 강릉시 경강로 2057[성내동 28번지]에 우체국이 설치되어 체신예금을 취급한 것이 효시가 되었으며, 1906년 1월 26일 주문진읍 주문리 313번지에 우체국이 개설되어 체신 예금을 통한 금융 업무가 시작되었으나 금융에 대한 인식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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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속한 행정리. 금진리의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 서쪽으로는 낙풍리, 강동면 산성우리, 남쪽으로는 낙풍리, 현내리, 주수리, 북쪽으로는 강동면 심곡리와 접해 있다. 금진리 뒷산[말탄봉]의 형국이 ‘금(金)’ 자처럼 생겼고, 고기잡이배를 대는 나루가 있어 금진이라 했다고도 하며, ‘금진’의 금(金) 자는 ‘검다’는 뜻을 나타내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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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항구. 땅이 검고 개(津)가 있어 먹진(墨津) 또는 흑진(黑津)이라 했는데 1916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건남리(建南里)를 병합하여 금진이라 하였다. 마을 뒷산이 금(金)자처럼 생겨 금진이라 했다는 설도 있으나 실은 ‘검다’는 뜻의 음을 빌린 것이라고 한다.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은 승용차로 강릉인터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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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중앙동에 속한 법정동. 강릉시 중심부에 해당되는 곳으로 교통망이 잘 발달되어 있다. 금학동(錦鶴洞)은 지형이 학의 모양이고, 옥녀가 비단을 짜는 옥녀 직금(玉女織錦)의 형상으로 직금형에 학체가 있다고 생긴 이름이다. 옛 농산물 시장 자리가 학의 머리에 해당된다. 강릉군 남일리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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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방의 매년 되풀이되는 정상 상태에 있는 대기 현상의 종합된 평균 상태.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 지방의 기후는 태백산맥이 겨울철의 북서계절풍을 차단하고 동한 해류(東韓海流)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 남단의 다도해 다음으로 따뜻한 지역이다. 연평균 12~13℃이고, 서해 사면보다 2~3℃ 높다. 강수량은 다도해보다 많아, 연평균 1,300㎜ 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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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노. 상전인 최택(崔澤)이 세 살 때부터 정성껏 길러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였고, 여러 대의 제사를 자기가 보살펴 지냈다. 가묘(家廟)가 허물어져 비바람을 가릴 수 없게 되자 따로 사당을 짓고 기와를 올려 정교하게 꾸미고 신주를 봉안하였으며, 향 피우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상전을 잘 모신 충성스러운 행동으로 어사(御使) 오명준(吳命俊)이 장계(狀啓)를 올려 정려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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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지봉(芝峰) 김몽호(金夢虎)의 후손이다. 사람됨이 준엄하고 기풍과 도량이 뛰어 났으며, 기강을 바로잡아 세우며 엄숙단정 하였다. 강릉부사 소두산(蘇斗山)이 벼슬이 갈려 돌아갈 때 대관령을 넘으면서 “내가 비록 너희 고을을 떠나지만 김격(金格), 김니(金柅) 형제는 정말로 두려워하였다.”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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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시집간 지 사흘 만에 남편이 병이 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 회생시켰으나 남편은 사흘을 더 살다 죽었다. 동생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남편을 따라 죽고 싶으나 시부모가 계시고 또 뱃속에 아이가 들었으니 한때의 슬픔을 참고 견디어 뒤에 바른 길로 가겠노라”고 하였다. 그 뒤 아들을 낳아 “할아버지 할머니를 정성껏 봉양하라”고 가르쳤다. 묘막에서 삼년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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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신라 종실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시랑평장사(侍郞平章事) 김상기(金上琦)의 아들이며, 문하시중(門下侍中) 김인존(金仁存)의 동생이다. 1104년(숙종 9)에 밀진사(密進使)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1109년(예종 4)에는 좌승선지이부사(左承宣知吏部事)를 지냈다. 1112년에는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1117년(예종 12)에는 대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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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이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그의 아들 김추(金錘)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1392년(태조 1)에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352년(공민왕 1)에 공을 세워 찬화공신(贊化功臣)으로서 명주부원군(溟州府院君)에 책봉되었다. 관직은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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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임(子任), 호는 이설당(梨雪堂). 김세훈(金世勳)의 아들이고, 애일당(愛日堂) 김광철(金光轍)의 아우이다. 1519년(중종 14) 사마시 생원에 입격하였고, 1526년(중종 21) 별시에 을과로 합격하였다. 성품이 중후(重厚)하고 덕이 높고 도량이 컸다고 한다. 당시 이기(李芑)나 윤원형(尹元衡)이 세력을 떨치며 권력을 농단할 때에도 자신의 뜻을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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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유(子由), 호는 애일당(愛日堂).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세훈(金世勳)이다. 안성이씨 이석진(李碩進)의 딸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 김양(金讓)은 직장(直長), 둘째 김인(金訒)은 찰방(察訪), 셋째 김근(金謹) 주부(主簿), 넷째 김겸(金謙)은 별좌(別坐)였고, 사위는 심운(沈雲)과 참판을 지낸 허엽(許曄)이다. 1487년(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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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자는 중여(仲輿), 호는 정봉(鼎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24세손으로 고조는 현령(縣令)을 지낸 김윤귀(金允貴), 증조는 증통훈대부좌통례(贈通訓大夫左通禮) 생원(生員) 김필양(金匹陽), 조는 헌납을 지낸 김지(金墀)이다. 1487년(성종 19)에 증통훈대부군자감정(贈通訓大夫軍資監正) 생원공(生員公) 김반석(金盤石)과 진사 최유남(崔洧南)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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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열녀. 남편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고 그 피를 입에 넣어 사흘을 회생시켰다. 남편이 마침내 죽자 자살을 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장사지내는 날 남편의 시신과 함께 구덩이에 뛰어들어 죽으려 하자 “시부모가 아직 살아 계시는데 죽으면 누가 봉양하겠느냐”며 집안사람들이 온갖 말로 타일러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낙범(金洛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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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부. 95세를 살면서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김담(金譚)의 어머니 심씨(沈氏)에게는 눌질정(訥叱丁)이라는 여종이 있었는데 이 여종은 84세를 살면서 심씨를 정성껏 봉양했고 죽은 뒤에도 3년 동안 상복을 입었다. 사람들이 “소리(所里)의 딸은 오래 살면서 효성을 다했고 심씨의 종은 90세가 가깝도록 충성을 다하였다.”고 하면서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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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등가(登可), 호는 반곡(盤谷). 진사출신으로 전객령(典客令) 김천(金蕆)의 5대손으로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현령인 김윤귀(金允貴)이며, 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고 어머니는 강릉왕씨(江陵王氏)로 현감 왕갱(王䡖)의 딸이다. 김대(金臺)는 명주군왕인 김주원의 21대 후손으로 생몰연대는 알 수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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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대(金臺)의 무덤 앞에 세운 비. 1831년(순조 31)에 세웠다가 비문의 자획이 마모되어 1985년에 다시 세웠다. 12대 손인 김병혁(金秉爀)이 지었고, 17대 손인 김수남(金壽南)이 글씨를 썼다.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탑동에 있다. 비석은 전체높이 183㎝, 비신 130㎝, 폭 43㎝이다. 비의 제목은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통훈대부 사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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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을 역임한 대한민국 행정관리. 서울대학교 법대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중요 행정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국회의원까지 지낸 행정관리이다. 1947년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1950년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1985년 미국 워싱턴대학과 조지타운대학에서 수학하고 귀국하여 중요 행정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행정쇄신을 위해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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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김진(金璡)의 아들이다. 큰아버지 김원경(金元璟)의 양자가 되었으며 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생부(生父)가 병이 나서 오랫동안 고생하자 다른 자제나 종이 있었는데도 대소변을 손수 받아 치웠고 때가 묻은 빨래도 손수 하였다. 의원에게 물어 정성껏 약을 지어 올렸으며, 맛난 음식을 거르지 않고 마련하여 봉양하였다. 상을 당하자 가례를 따라 상례와 제례를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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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부. 한평생을 남편과 시아버지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남편이 병이 난 지 오래되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남편의 입에 넣어 소생시켰다. 또 시아버지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드렸다. 사림에서 그의 효열에 감동하여 부영(府營)에다 여러 번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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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출신으로 강릉교육구 장학사를 역임한 교육자. 강원도 강릉시 출신으로 1926년 교사를 시작하였으며, 1940년 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강릉교육구 장학사, 삼척교육구 교육장을 지냈으며, 1970년 성산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였다. 초등학교 교사, 강릉교육구 장학사, 삼척교육구 교육장, 성산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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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선비. 유학적 소양을 지닌 문장가로서 출사하지 않고 고을 사람들과 한평생 동고동락하며 지냈다. 재주가 출중하고 문장이 뛰어나 유궁(儒宮)에 출입하였으며, 또 고인(古人)의 기상이 있어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여겼다. 집은 동문 밖에서 몇 리 떨어져 있었으며, 뜰 가에 은행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이곳에 정자를 짓고 고을 사람들과 함께 즐겼다. 고을에서 사람의 됨됨이를 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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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조선 전기의 강릉 출신 문신인 김몽호(金夢虎)의 후손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나 돌아가셨을 때에도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님을 섬기며 살았다. 어버이가 돌아가시자 예를 다하여 상을 치렀다. 김매진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효행이 뛰어나 조정에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증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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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었으며, 상을 마친 뒤에도 의복과 음식을 화려하게 하지 않았다. 아들 김석진(金錫晉)도 부친의 병에 배설물을 맛보아 가며 간호하였고, 어머니의 병에도 마찬가지로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각기 3년씩 죽을 먹으며 시묘살이를 하였다. 김석진의 후처인 최씨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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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열녀. 어버이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남편이 병이 들어 병세가 점차 위급해지자 김씨는 매일 밤 목욕하고 하늘에 빌었으며, 운명할 무렵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주었으나 남편은 결국 죽고 말았다. 밤낮으로 울며 예를 다하여 상을 마치고는 스스로가 죄인이라 자처하면서 빗질과 세수도 하지 않고 문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병이 나 위급한데도 약 먹기를 거부하여 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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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평소 효성을 다해 시부모를 섬겼다. 하루는 시어머니와 함께 자다가 시어머니가 변소에 간다기에 부축하여 문을 나섰는데, 그때 갑자기 호랑이가 시어머니를 잡아가려 하였다. 최씨는 한 손으로 시어머니를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 호랑이를 내리쳤다. 호랑이는 몇 발자국을 끌고 가다 버리고 달아났다. 최씨는 시어머니를 업고 돌아와 정성껏 치료하였으나 이튿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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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며, 첨의평리(僉義評理) 김여흥(金予興)의 아들이다. 김상기의 아들은 문신이자 학자인 김인존(金仁存)이다. 1070년(문종 24) 좌우보궐(左右補闕)을 거쳐, 1084년(선종 1) 이부시랑(吏部侍郞)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를 겸한 뒤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다. 이듬해 예부시랑(禮部侍郞) 최사문(崔思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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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1764(영조 40년) 12월 그믐날 오시(午時)에 99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다섯 시간이 모자라는 100세를 살아 자손들이 100세 할머니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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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생원인 김계(金啓)의 손자이다. 4살 때 아버지를 잃고 효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모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회갑을 맞이하여 머리를 풀고 3년 동안 상을 입었다. 눈비를 가리지 않고 아침과 저녁으로 아버지의 묘소에 가서 참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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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부모가 병에 걸려 매우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치료하였다. 문학으로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쳤다. 김성일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으며 정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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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건보(健甫). 김준현(金峻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호변(金虎變)이고 아버지는 김홍적(金弘績)이다. 1658년(효종 9) 경릉참봉이 되고, 166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김천찰방·감찰·예조좌랑·병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666년(현종 7)에는 홍천현감을 지냈다. 경직(京職)에 돌아와서는 1667년 정언을, 1670년 지평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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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퇴옹(退翁).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5대손으로 현령 김윤귀(金允貴)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대(金臺)이고 어머니는 강릉권씨 권경수(權景壽)의 딸이다. 아들은 김광진(金光軫)과 김광철(金光轍)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시를 거쳐 1496년(연산군 2)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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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선비. 타고난 자질이 뛰어났고 용모 또한 준수하고 맑았으며, 항상 마음을 바르게 갖고 품행을 닦는데 힘썼다. 15세 때 명재(明齋) 윤증(尹拯)을 알현하였는데, 윤증은 그의 기특함을 한번 보고는 “이 사람은 나이 20이 되지 않아 성명천도(性命天道)의 근원을 꿰뚫을 것이니 우리 무리가 지향하고 있는 성리학이 앞으로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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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타고난 성품이 효성스러워 부모에 대한 음식 공양과 아침·저녁 문안을 한결같이 하였다.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편찮으시면 하늘에 축원하기를 자기가 대신 앓게 해 달라고 하여 여러 번 기이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어버이 상을 다하여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정려(旌閭)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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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귀족이자 대신.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9대손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 할아버지는 김종기(金宗基), 아버지는 파진찬 김정여(金貞茹)이다. 딸은 문성왕의 왕비이다. 828년(흥덕왕 3)에 고성군태수(固城郡太守)가 되고 이어 중원소경(中原小京) 대윤(大尹), 무주도독(武州都督)을 역임했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을 남겨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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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김여계(金汝契)이며 어머니는 김겸(金謙)의 딸이다. 아우는 김양신(金養身), 김양정(金養正)이며 아내는 최충남(崔忠男)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27년(인조 5)에 문과에 올라 첨정(僉正)·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하였고, 집현전 창정(集賢殿 彰幀)을 개수(改修)하였다. 김양성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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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20세에 남편 김연조(金演祚)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집안 사람들이 제지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얼마 후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음식을 먹지 않고 슬퍼하다가 결국 죽었다. 효행이 관에 알려져 정려(旌閭)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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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신라의 귀족 각간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며, 시중(侍中) 김인존(金仁存)의 아들이다. 형제인 김영석(金永錫), 김영관(金永寬)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1151년에 지공거(知貢擧)가 되었고 1156년(의종 10)에 국자감대사성(國子監大司成)이 되었다. 1162년(의종 16)에는 추밀원부사 수사공(樞密院副使 守司空)이 되어 등극사(登極使)로 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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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 김운성(金雲成)은 보따리 장사를 하느라 영남 지방에 갔다가 죽었다. 당시 부음을 듣고 시신을 거두려 곧 달려가려 했으나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애들이 있어 틈을 낼 수가 없었다. 그 후 마침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성장하자 마음을 굳게 먹고 남편이 죽은 곳으로 떠났다. 그런 다음 남편의 유골을 거두어 짊어지고 돌아와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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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장군이자 대신. 김유신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는 데 큰 공을 세웠는데, 이러한 업적으로 인하여 그와 관련된 신이(神異)한 이야기들이 설화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또한 사후에 신격화(神格化)되어 민간과 무속에서도 산신 또는 서낭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김유신은 강릉 단오제(端午祭)와 관련하여 숭배되고 있다. 대관령산신당(大關嶺山神堂)에서는 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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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시인. 김유진은 1926년 강릉시 구정면에서 출생하여 강릉 지역 문단에서 활동한 시인이다.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1958년 1월에 창립된 관동문학 회장을 비롯하여 1980년 초기 엄창섭, 구영주 시인의 권유로 『해안문학』[동인지]의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강릉중앙초등학교 교장, 고성군교육장과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강릉지부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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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덕수(德叟), 호는 괴당(槐堂).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부친은 김여명(金汝明)이고, 모친은 김지(金輊)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6년(성종 7)에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사록(司祿), 전적(典籍), 주부(主簿), 경상도사(慶尙都事)를 거쳐 전중감찰(殿中監察)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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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처후(處厚), 호는 문성(文成), 초명은 김연(金緣).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9세손으로 시랑평장사(侍郞平章事) 김상기(金上琦)의 아들이다. 김인존의 아들은 김영석(金永錫), 김영윤(金永胤), 김영관(金永寬)으로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직한림원(直翰林院)에 임명된 후 선종·헌종·숙종의 삼대에 걸쳐 벼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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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왕족. 태종무열왕의 8대 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 아버지는 소판(蘇判) 김종기(金宗基)이다. 김장여(金璋如)와 형제간이고, 아들은 김양(金陽)이다. 관등은 파진찬(波珍湌)에 이르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양전(金陽傳)에 의하면 김주원·김종기·김정여가 대대로 장상(將相)이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그도 시중(侍中)을 비롯한 관직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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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재상.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7대 손이며, 아버지는 이찬(伊湌) 김주원(金周元)이고, 아우는 김헌창(金憲昌)이다. 아들은 김정여(金貞茹)·김장여(金璋如)이며, 손자로는 김양(金陽)과 김흔(金昕)이 있다. 관등은 소판(蘇判)의 관등으로서 집사부(執事部)의 시중(侍中)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김주원은 신라 하대에 무열왕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785년 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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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왕족이며 강릉김씨의시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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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의 신도비. 1960년에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인 김주원의 묘역 입구에 김주원의 37대 후손인 김진만(金振晩)이 건립하였다. 신도비의 규모는 높이 317㎝, 비신 180㎝, 두께 36.5㎝, 폭 69㎝이다. 비문의 글씨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李承晩)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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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이 명주군왕의 봉작(封爵)과 함께 받은 강릉 일대의 수조지(收租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고, 김주원은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명주는 김주원의 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는데, 특히 김주원의 아버지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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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으로 생원(生員) 김효안(金孝安)의 손자이며 참봉(參奉) 김광(金光)의 아들이다. 1071년(문종 25) 명주에서 태어났으며 1126년 이자겸(李資謙)과 척준경(拓俊京)의 반란 때 궁궐에서 불에 타 죽었다. 과거에 급제한 후에 영광군(靈光郡)의 군수(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당시 안무사(按撫使) 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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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안국(安國). 할아버지는 김을후(金乙侯)이고 아버지는 김근(金墐)이며, 어머니는 윤씨(尹氏)이다. 1465년(세조11)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72년(성종 3)에 춘당대시(春塘臺試) 병과(丙科)에 합격하고 출사하였다. 교서정자(校書正字)를 시작으로 전중(殿中)을 지냈으며, 재주가 문무를 겸하였으므로 영안북도평사(永安北道評事)에 제수되었고 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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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출신의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2일 강릉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2일 강릉 장날을 이용한 만세운동에서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 등 6명과 함께 아침부터 12시경까지 약 1백 매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을 제작·배포하였다. 장날에 모인 시위군중 수백 명을 규합하여 경찰서로 향하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이미 증가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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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좌의정 김상헌(金相憲)의 증손이고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의 셋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해주목사 안정나씨(安定羅氏)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다. 노론(老論) 4대신의 한 사람인 김창집(金昌集), 조선 후기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호론(湖論)을 주장한 김창협(金昌協)의 동생이다. 삼연 김창흡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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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10 선거 전후 시기 남로당에 의한 우익 인사 테러 사건. 남로당이 깡통을 이용한 사제 폭탄을 만들어 우익 인사의 집에 투척한 사건이다. 해방 후 한국 문제에 관한 유엔의 결의와 유엔한국위원단의 활동에 대하여 남로당은 전국적인 반대투쟁을 결정하였다. 즉 남한에서의 단독선거가 명백해지자 이를 방해 저지할 목적으로 1948년 2월 7일을 기하여 2·7구국투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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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에 있는 법정동. 강릉시 중동부, 경포호 서쪽에 위치하며 저동, 죽헌동, 운정동과 접한다. 행정동인 경포동 관할이다. 마을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끊어질 듯 다시 이어져 마치 난초 잎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는 조선 태조 때 호수 근방에 누정을 짓고 덕비(德妃)를 추모하여 정자 이름을 ‘난옥(蘭玉)’이라 하고 지명을 ‘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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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경포대로 진입하는 입구에 위치한 마을. 난곡동에는 여러 자연 마을이 있다. 날밑은 오죽헌에서 선교장으로 가면서 다리 건너 왼쪽으로 운정동 사무소 앞 일대를 말한다. 이 마을이 남향받이로 마을로 내려온 산줄기가 끊어질 듯하면서 다시 이어져 마치 난초 잎처럼 생겼다고 한다. 행정말은 된봉 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에 큰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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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가 199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정화사업. 강원도 강릉시의 젖줄 역할을 하는 하천인 남대천은 강릉시에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유역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며, 지역주민의 휴식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남산교 주변 강변에서는 강릉단오제가 열려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축제의 장이 되고 있기도 하다. 남대천 유역은 마름모꼴의 형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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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중앙동에 속한 법정동. 옛날 강릉읍성의 남문인 어풍루(馭風樓)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강릉군 남일리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남문외리와 북성리면의 산황리 일부를 합해 대정정(大正町)이라 하여 군내면(郡內面)에 편입시켰다. 1916년 군내면이 강릉면이 되었고, 1931년 4월 1일 강릉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강릉읍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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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노암동에 있는 다리. 연장 165m, 폭 25m, 견간장 30m, 설계하중 24DB의 T빔형 장대교이다. 원래는 철도침목을 이용하여 만들었던 목재교량이었으나 1972년의 홍수로 다리의 중간부분이 휘어지게 됨에 따라 새로 건설되었다. 남산교는 내곡동과 노암동 일대 및 모산 등지의 주민들이 중앙시장으로 장보러 다닐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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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속한 행정리. 옥계면 소재지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마을의 동쪽으로는 동해시 망상동, 서쪽으로는 산계리, 정선군 임계면, 남쪽으로는 동해시 삼흥동, 북쪽으로는 천남리, 현내리, 산계리와 접해 있다. 옛 지명이 ‘오일(梧谷, 午日)’이어서, 아랫오일[1리], 윗오일[2리]이라 칭하였는데 ‘현내 남쪽, 양지쪽’이라 하여 남양리라 불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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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덕동에 속한 법정동. 남항진은 남대천과 섬석천이 만나 바다로 빠지는 곳에 있는 포구로, 옛날 송정에서 한송사(寒松寺), 한송정(寒松亭), 불하산(佛下山)으로 가는 남쪽 길목에 있는 나루라는 뜻에서 생긴 지명이다. 1914년 강릉군 덕방면(德方面) 남항진리가 되었다. 1920년 덕방면과 성남면을 통합한 성덕면의 남항진리가 되었다. 195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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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속한 행정동. 대관령에서 강릉으로 진입하는 길목의 오른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성산면, 노암동, 홍제동, 구정면과 접하고 있다. 내곡동은 법정동인 내곡동, 회산동으로 이루어진 행정동으로서 가톨릭 관동 대학교가 있는 교육의 중심지이자 신흥 개발 지역이다. 최운상(崔雲祥)의 처 심씨는 효성이 남달리 지극했다. 심씨는 나이 많은 시어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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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붉은 소나무 조각으로 지붕을 덮은 집. 강원도에서는 느에집 또는 능에집이라고도 한다. 너와는 200년 이상 자란 붉은 소나무 토막을 길이로 세워 놓고 쐐기를 박아 쳐서 잘라낸 널쪽으로,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가로 20~30㎝, 세로 40~60㎝이며 두께는 4~5㎝ 정도이다. 너와를 지붕에 덮을 때는 용마루 쪽에서부터 끝을 조금씩 물려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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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속한 법정리. 노동리는 강릉시 중심에서 북쪽으로 10㎞ 지점인 주문진과 강릉의 중간에 있다. 동쪽으로 동해,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남쪽으로는 강릉시 대전동, 북쪽으로는 강릉시 연곡면에 접해 있다. 과거 노동리 중앙에 커다란 갈대밭이 있어서 갈골, 즉 갈대 마을이란 뜻의 한자어 ‘노동(蘆洞)’이라 불리게 되었으나 현재는 갈대밭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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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속한 법정동. 강릉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남대천의 오른쪽에 있는 지역으로 동쪽으로 입암동·청량동·신석동, 서쪽으로 내곡동, 남쪽으로 장현동과 박월동, 북쪽으로 명주동과 접해 있다. 강릉시의 중심부와 접해 있어 강릉 시내로 접근하기는 편리하다. 행정동인 강남동 관할이다. 노암동에는 냇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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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업 종사자들이 상호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한 단체. 농업은 타 산업에 비해 취약하여 민간차원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고 예부터 관주도형으로 발전하여 왔으며 일반 행정에서 취급하는 농축산업 행정 외에 농촌지도사업의 적극적 추진 결과로 농촌지도소가 독립되었고, 1961년에 설립된 농업협동조합 1947년부터 시작된 농지개량조합 농어촌진흥공사, 그리고 최근에 만들어진 농수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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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내동에 있는 농업인의 경제적 이익 증진을 위한 협동조합 기업인 농협 중앙회의 강릉시 지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 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의 향상과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1961년 8월 15일에 농업협동조합중앙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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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업을 농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지역. 농촌은 농업 생산을 담당하는 마을을 뜻하지만, 농업을 주생업으로 한다고 해서 밭농사와 논농사만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농촌에서는 농경과 함께 축산, 양잠, 원예, 과수, 임업 등을 함께 해 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산촌과 농촌을 구별하기 어려운 점도 있으며 또 어촌의 경우도 생계를 위해 농사를 겸하는 ‘반농반어’가 많았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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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소재한 누각(樓閣)과 정자(亭子)의 총칭. 누정(樓亭)이란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다. 누각은 누관(樓觀)이라고도 하며, 대개 높은 언덕이나 돌 혹은 흙으로 쌓아올린 곳에 세우기 때문에 대각(臺閣) 또는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경포대(鏡浦臺)가 대표적인 예이다. 누각에 비하여 정자는 작은 건물로서,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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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북방 경계가 되는 하천. 신라는 니하(泥河)를 경계로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경계를 이루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발해와 경계를 이루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신당서(新唐書)』에 니하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니하의 위치에 대한 논란은 두 기록의 니하를 같은 지역으로 볼 것인가 또는 다른 지역으로 볼 것인가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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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명절날·조상의 생일 등에 지내는 제사. 절사(節祀) 또는 차사(茶祀)라고도 하며 아침에 올리는 제사이다. 현재는 설과 추석에 가장 많이 지내고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대보름·한식·단오·칠석·중양절·동지 등에 지내기도 한다. 조상에게 달·계절·해가 바뀌고 새로 찾아옴을 고하고 절식(節食)과 절찬(節饌)을 올리는 의례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성씨별로 유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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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강릉 지역에 창립되었던 문학단체. 1994년 8월 1일 참신한 문인들이 모여 발족한 문학 단체로 3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였다. 창립 당시 고문은 유규만(柳奎萬)[당시 KBS 강원총국장], 명예회장에 전용찬(全龍燦) 시인이 추대되었으며, 회장은 심은상(沈殷相)이 맡아 활동하였다. 강릉을 상징하는 경포대의 다섯 개의 달을 상기시켜 현대 문명사회에서 서정성을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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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속한 법정동. 구정면 북부의 장현 저수지 남쪽에 있으며, 행정동인 강남동의 관할이다. 담산동은 지금의 칠성산의 과거 이름인 ‘담산’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강릉군 남이면(南二面) 지역이었고, 1914년 성남면(城南面) 담산리가 되었으며, 1920년 성남면과 덕방면(德方面)을 합친 성덕면(城德面)에 속하게 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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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산신과 대관령 국사 서낭신을 제사하는 서낭제에서 입는 복식. 제례복 일습은 헌관복 6벌, 제례복, 대축복, 행차복 각 한 벌, 집사복 6벌, 예모 6점, 유건 10점, 전립 2점 등이다. 헌관복은 초헌관(初獻官) 2인, 아헌관(亞獻官) 2인, 종헌관(終獻官) 2인의 복식으로 조선시대의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이 함께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즉 초헌관은 7량관을 쓰고 홍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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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의 보건·휴양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조성한 산림. 강릉 영림서 강릉 관리소에서 관장하며, 1993년 5월 1일부터 임업 협동조합에 위탁 운영하여 유료화한 산림 휴양지이다. 1988년 산림의 보건·휴양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개설되었다. 대관령 휴게소를 지나 강릉 방향으로 8㎞ 거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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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시립 박물관. 홍귀숙(洪貴淑) 관장이 수집한 문화재를 전시하기 위해 1993년 5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374번지 대관령 옛길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2,380㎡[720평] 규모로 고인돌 형태를 본떠 지은 건물이 주변 자연 풍치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생활 문화상과 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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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로 상·하행선 대관령 구간에 설치된 총 7개의 터널. 대관령터널 7개 모두 상행선은 3차로, 하행선은 2차로이다. 대관령 1터널의 상행선만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위치하고 대관령 2·3·4·5터널은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위치하며 대관령 6·7터널은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위치한다. 대관령 1터널은 상행선 길이는 1,800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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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관직. 태조가 고려를 세운 직후에 태봉(泰封)의 관계를 이어받아 919년(태조 2)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태광(太匡)’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문관과 무관에게 수여된 관계 중 실질적으로 최고위에 해당하며, 정1품 상계(上階)를 대광, 정1품 하계(下階)를 정광(正匡)이라 하였다. 고려 전기의 관계였던 대광·대승(大丞)·원보(元甫) 등은 958년(광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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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릉시 성산면 대궁산성 터에서 공비들과 치른 전투. 1952년 1월 24일 조선노동당 제4지구당을 향하여 남하한 공비 18명을 대궁산성 터에서 기습하여 2명을 생포하였다.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에 접어들면서 38도선에서 방어에 주력하는 장기전 태세로 넘어갔으며, 1951년 7월부터는 휴전회담도 시작되었다. 이에 노동당은 남한 지역에서 제2전선 역할을 수행하던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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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속한 행정리. 대기리의 명칭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 큰 터가 자리하고 있어 한터, 큰 터, 대기라 칭하였다는 설과 유기[중국 원말 명초의 유학자이며 정치가]를 추모하여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 사당을 강선당이라 하고 그 상리를 소기(小基), 그 하리를 대기(大基)라 했다는 설이 있다. 효종 때 밀양 박씨가 들어오고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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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유격대 섬멸전투. 남한 내에 있는 북한군 유격대 잔당들과 합류하기 위해 오대산 일대로 남하한 약 300명의 김상호 유격대를 토벌하기 위해 강릉경찰서 병력과 10연대의 2개 대대, 주문진의 3대대 일부병력들이 합동작전으로 1950년 3월 24일부터 4월 17일까지 25일간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 1949년 6월 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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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9월에 결성된 한국의 청년운동 단체. 1947년 9월, 해방 후 파쟁과 정쟁으로 인한 혼란을 막고 청년운동을 단일화하려는 취지로 발족하였다. 1946년 12월에 이승만이, 1947년 4월 21일에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이 귀국하면서 조선 독립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청년운동의 단일화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청년단체의 대동단결을 부르짖었다. 지청천의 청년단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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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에 속한 법정동. 강릉 시내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사천면에 진입하기 전 왼쪽 지역에 있다. 동쪽으로 난곡동, 서쪽으로 사천면 송암리와 성산면 위촌리, 남쪽으로 죽헌동, 북쪽으로 사천면 덕실리와 접해 있다. ‘대전(大田)’이라는 명칭은 마을에 큰 밭이 있어 ‘한밭’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대전동은 원래 강릉군 정동면에 속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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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살아가는 강릉 지역 시민들의 생활 곳곳에서 생산·소비되는 일반적인 문화 현상을 통칭하여 이르는 말. 대중문화는 도시사회로의 발전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가져오게 되는 근현대를 지나면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문화현상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다양한 문화활동들이 보다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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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4월 남한의 공장 종업원들이 노동자의 해방과 복리를 위해 결성한 연맹. 1946년 당시 조선노동운동은 지도자의 비민족적 정신이 부식되어 갈 뿐 아니라 정치적 색채가 농후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국제노선에 입각하여 한국민족으로 독자적 입장에서 자본가의 착취를 배격하고 완전한 민주주의 원칙하에 노동자의 해방과 복리를 위해 결성되었다. 194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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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 있는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의 강릉 지역 출장소. 법률 지식이 부족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법률 상담, 변호사에 의한 소송 대리 및 형사 변호 등의 법률적 지원을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법률 구조 사업이란 억울한 손해를 입고도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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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2월 19일 기존 우익청년단체를 통합해서 신설한 대한청년단의 강릉단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정치적인 지지 기반이 매우 취약하였다. 지지세력은 지주 및 보수 우익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한민당, 친일 경력이 있는 관료들, 친미지식인, 농촌지주층을 중심으로 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우익청년단체 등이었다. 그러나 한민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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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 선생의 유덕(遺德)을 추앙하는 제례 및 문예·학술행사. 1962년 11월 당시 국가재건위원회 박정희 의장이 처음 추모제례를 올렸으며, 그 이후에는 도지사를 초헌관, 도교육감을 아헌관, 그리고 지역유림에서 종헌관을 맡아 하는 전통을 이어 오고 있다. 기간은 매년 10월 25~26일경이며 부대행사는 10월 20~29일경에 개최된다. 장소는 오죽헌 문성사와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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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덩굴성 식물. 어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1431년에 간행된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이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는 가덕(加德)이라 표기되어 있다. 가는 ‘더할 가’이니 ‘더’라 읽고 덕은 ‘덕’이라 읽으니 더덕은 이두식 표기라 할 수 있다. 사삼(沙蔘)이라고도 한다. 더덕은 숲 속에 나는 다년생 덩굴식물이다. 뿌리는 굵고, 덩굴을 자르면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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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법정리. 옛 선비들이 글을 짓고 놀았던 덕장봉이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사천면 관할이 되었고, 1916년 버덩말, 새이말, 앞결, 잿말을 합쳐 덕실리라고 하였다. 1955년 9월 1일 법률 369호에 의거하여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함에 따라 명주군 사천면 관할이 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강릉시와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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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강릉 시내에서 남동쪽에 있으며, 구정면에서도 가장 남쪽 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상시동리와 모전리, 서쪽으로는 금광리, 남쪽으로는 언별리·어단리, 북쪽으로는 금광리와 상시동리에 접해 있다. 마을 위쪽에 덕고개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또한 옛날에는 부자가 많이 살았는데 부자들이 마을 고개에서 덕을 받도록 산신령에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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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여러 지역을 서로 이어 사람, 마차, 수레, 자동차 등을 이동시키기 위해 육상에 만든 길. 도로는 생산, 유통, 교류 등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 강릉의 도로를 보면, 신라 때는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는 서라벌로, 북쪽으로는 함경도 지역으로 다녔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서쪽에 있는 대관령을 넘어 송도, 한양으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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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덕꾸덕 말린 도루묵에 차조밥이나 멥쌀밥, 다진 마늘, 고춧가루, 소금으로 양념하여 삭힌 젓갈. 식해는 내장을 제거한 생선을 깨끗이 씻은 뒤 6~8% 식염에 18~20시간을 절여 소금물을 제거하고 조밥과 고춧가루, 마늘, 파 등과 혼합해 20℃에서 2~3주간 발효시켜서 만든다. 도루묵식해는 발효 과정에서 생선의 살과 뼈가 물러져 토막 친 생선 전체를 먹을 수 있으므로 칼슘을 충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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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속한 법정리. 북쪽으로는 성산면 상북리와 오봉리, 서쪽으로는 왕산리, 남쪽으로는 목계리와 대기리, 동쪽으로는 구정면과 접해 있다. 도마리는 복숭아와 매화가 많다고 하여 도매리(桃梅里)라 하였으나 고려 말 우왕이 이곳 큰골에서 은거할 때 나무[林]가 삼[麻]처럼 우거진 곳에 도읍하였다 하여 ‘도마(都麻)’라 하였다는 설과, 마을 형국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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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에서 음력 3월 3일 삼짇날에 농악을 울리며 노는 행사.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마을에서는 매년 삼짇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명절이라 하여 화전놀이를 겸하여 농악놀이를 하였다. 도신놀이는 그 명칭이 신에게 제사를 올린다는 뜻으로, 본래 가신(家神)에게 지내는 종합제사 형태로 가을 10월 상달에 행하는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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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기나 청자, 백자, 분청사기를 구워내던 가마의 터. 도요지는 청자(靑瓷), 백자(白瓷), 분청사기(粉靑沙器) 등을 제작하는 가마의 터를 말하며, 예로부터 제작되는 목적과 소성 효과(燒成效果)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가마가 제작되어 왔다. 가마는 경사도에 따라 평가마(平窯)와 오름가마(登窯)가 있고, 다시 오름가마는 아궁이 이외의 전체가 터널 모양으로 된 지하식(地下式)과 반지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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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있는 법정리. 도직리는 강릉시의 최남단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이다. 동쪽은 동해 바다, 서쪽은 삿갓봉을 경계로 천남리, 남쪽은 동해시 망상동, 서북쪽은 주수리와 접해 있다. 도직리의 이름은 “길이 곧다”는 뜻인데, 본래 나루가 있어 도직진 또는 도직이라 하였다.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도직진 또는 도직이라 하다가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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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도직리에 있는 항구. ‘길이 곧다’는 의미의 ‘도직’에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도직리에 위치해 있다. 교통은 승용차로 강릉인터체인지[안인]에서 7번국도, 정동진, 심곡, 금진, 옥계를 지나면 도직으로 이어진다. 버스로는 강릉시내 또는 남대천에서 111번 버스[2시간에 한 대]를 타고 옥계에서 하차하여 동해로 가는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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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치를 김치와 함께 양념하여 익힌 음식. 도치는 도칫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로 생김새가 심통맞게 생겨 ‘심퉁이’라고도 부른다. 외형은 못생겼지만 기름기와 비린내가 없는 담백한 생선이다. 또한 살이 연하고 뼈도 그냥 씹어 먹을 수 있다. 도치는 원래 값싼 생선으로 예전에는 먹지 않았으나, 요즘은 담백한 맛으로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도치는 끓는 물에 살짝 튀겨 비늘을 긁어내고 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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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속에 속하는 나무 열매의 총칭. 너도밤나무과의 신갈나무·떡갈나무·갈참나무·졸참나무 등의 열매를 모두 도토리라고 한다. 참나무 속의 식물은 상록 또는 낙엽교목인데 드물게 관목인 경우도 있다. 잎은 호생하며 넓은 피침형으로, 뒷면에는 다세포의 짧은 털이 있다. 잎은 연한 녹색이며, 뒷면은 진녹색으로 광택이 난다. 꽃은 암수한그루이고, 수꽃 이삭은 밑으로 쳐지며, 암꽃이삭은 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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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녹말을 물에 풀어 끓인 다음 굳힌 음식. 묵은 한국에만 있는 고유 식품으로 녹말이 들어 있는 곡식이나 열매로 만든다. 묵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열매나 곡식에 따라서 여러 가지 빛깔과 맛을 즐길 수 있다. 봄에는 녹두 녹말을 만들어서 쑤는 푸른 빛이 도는 흰색의 청포묵, 가을에는 짙은 갈색의 도토리묵, 겨울에는 옅은 갈색의 메밀묵을 먹는다. 도토리묵은 약간 씁쓸하면서도 떫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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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릉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릉의 독립운동은 영동 지방에서의 의병 활동의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을미의병 당시 민용호(閔龍鎬)에 의해 강릉에 설립된 관동구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儀所)는 영동 지방 전체를 활동무대로 강릉의 대표적인 유림인 권인규(權仁圭)[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의 지원을 받으면서 전국 최대의 규모로 일제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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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조식물문 보라털과 김속의 바닷말 중에서 암초에 착생하고 있는 해초. 돌김은 바위에 자라고 있는 것을 채취하여 만든 것으로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양식 김에 대응하는 말이다. 또한 돌김을 원료로 제품화한 김을 말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돌김은 양식한 김에 비하여 색이 짙고 향기가 좋다. 돌김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중국 등지에서도 식용하는데, 증산을 위하여 양식하기도 한다. 돌김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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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속한 법정리. 경포대 방면에서 주문진까지 이어진 해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연곡천 방면의 6번 국도로 이어지는 부근 남쪽의 마을이다. 해안 쪽은 연곡천 하류에 연곡 해수욕장이 있다. 동쪽은 동해 바다, 서쪽은 송림리, 남쪽은 사천면 석교리·판교리, 북쪽은 방내리·영진리와 접해 있다. 동덕리는 동원 최씨 문중에 최극림이라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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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 2리에 있는 저수지. 동막저수지는 어단 2리 동막골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며 동막저수지에 모인 물은 어단리와 금광리의 넓은 들로 흘러간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동막저수지는 관개 개선 및 지목의 변환을 목적으로 쌓았다. 1952년 11월 5일에 착공하여 1961년 11월 30일에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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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송정동과 초당동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 동명 월송로 삼거리(東溟 月松路 三距里)는 초당동과 송정동의 규모가 커지면서 교통량이 증가되어 새로 닦은 길이다. 월송로는 공항대교 북쪽의 송정동에서 경포해수욕장 입구 충헌탑 광장까지의 자동차 길이다. 월송로에는 송정솔밭·삼거리·월송교가 있다. 아스팔트로 만들었다. 동명 월송로 삼거리는 월송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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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지역과 환경 속에서 사는 모든 동물의 종류. 동물상은 식물상과 상대되는 말이다. 일정한 지역에 생존하고 있는 동물상을 상세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작은 지역이라도 어렵다. 그러나 동물상을 파악하는 것은 생태계나 생물군집에 관계되는 생태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 동물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서식지를 중심으로 한 분류, 생활형태에 따른 분류, 특정분류를 통한 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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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과 교동에 걸쳐 있는 상설시장. 강릉시의 상권은 중심시가지인 옥천동·중앙동·임당동·교동에 집결되어 있다. 강릉시의 가장 큰 중심상업 집적지는 중앙동의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에 발달한 상점군이다. 중앙시장은 강릉시의 생성과 더불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 대 생활권 중심을 이루면서 팽창하여, 현 시점에서는 본래의 시장보다 몇 배나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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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강원도 지역의 산림을 관리하는 기관. 국유림 자원을 잘 관리하여 산림 휴양 및 야생 동물 서식처 제공, 맑은 물과 공기 공급, 문화재용 소나무와 송이의 생산·제공 등 수많은 유·무형의 혜택을 국민과 지역 사회에 제공하고자 설립되었다. 국민과 지역 사회에 자연이 주는 가장 고귀한 선물을 제공한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으며, 산림 자원의 연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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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 1동에 있는 강원도 지역의 통계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 강원도 강릉 지역의 신속하고 정확한 통계 자료를 생산하고, 통계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63년 1월에 강원도청 및 강원도 13개 시군에 통계 요원이 배치되었다. 1975년 8월에 경제 기획원 조사 통계국 강릉 연락 사무실이 설치되었다. 1990년 5월 강원 통계 사무소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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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후 신랑이 처음으로 처가에 갈 때 신부 쪽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신랑을 다루는 풍속. 마을의 젊은이들이 신랑을 불러서 방 가운데 앉히고 “이 동네 처녀를 훔쳐간 도둑의 발을 잰다”며 포목으로 홀치기를 하여 신랑발목을 묶어 천정에 매달고 마치 죄인을 다루듯이 방망이로 발바닥을 때리며 신부를 부르라고 한다. 대체로 신부가 귀한 몸이라는 뜻으로 신랑에게 경각심을 주는 장난으로 장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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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함경남도와 강원 동북부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동예 지역은 처음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는데, 서기전 108년 한(漢)나라의 침략으로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나라가 원산·안변 일대를 중심으로 임둔군을 설치하자 동예의 북부 지역이 그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서기전 82년 임둔군이 폐해졌고, 서기전 75년에는 현도군이 고구려족의 저항에 의해 군치(郡治)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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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지금의 강릉(江陵) 지역을 일컫던 지명. 강릉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313년(미천왕 14)에 하서량[河西良·阿慧羅]라고 하였다. 이후 신라에 포함되어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가 군주(軍主)로 파견되어 우산국(于山國)[지금의 울릉도]을 복속하였다. 639년(선덕여왕 8)에는 하슬라주로 북소경(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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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으로 수호신에게 올리는 제사. 민간신앙의 여러 형태 가운데 마을의 수호신을 신당(神堂)에 모셔 놓고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위해 동민(洞民)들이 합동으로 제의(祭儀)를 올리는 형태이다. 이와 같은 마을의 공동제의를 동신제(洞神祭)·동제(洞祭)라고 부른다. 강릉 지방은 민간신앙의 보고(寶庫)라 지칭될 정도로 민간신앙이 활발한 곳으로 각 마을별로 동제도 활발하고 산악지대와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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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가운데 하나로 밤이 가장 긴 때. 우리나라 역법에서 11월을 동짓달이라 부르듯이 널리 알려진 세시 명절이다. 작은 설이라고도 부른다. 시식으로 팥죽을 먹는데 찹쌀가루로 새알 모양의 떡을 만들어 죽 속에 넣고 꿀을 타서 시절 음식을 삼아 제사에 쓰며 문에 뿌려 상서롭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 동지가 음력 11월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지 않고,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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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 주인이었던 이근우(李根宇)가 강릉시 운정동에 설립했던 근대식 학교. 구한말 개화파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 당시에 팽배하던 민족주의 교육사조 추세에 부응하여 1900년 전후 운정동 강릉 선교장의 주인이었던 이근우(李根宇)가 동네 유지들과 더불어 설립하였다 1911년 이후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 학생유치의 어려움 때문에 폐교되었다. 수업 연한은 3년이었으며, 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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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해운대구를 기점으로, 강원도 속초시를 종점으로 하여 남북을 잇는 대한민국의 고속도로이다. 동해고속도로는 1973년 11월에 개통되어 영동 지역과 태백권을 연결하는 주 교통축을 형성하면서 영동 및 동해안 지역의 관광 개발 및 산업 발전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대한민국에서 일곱 번째로 개통된 노선으로 현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와 울산광역시 울주군을 잇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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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학생 문학 동아리. 강릉고등학교 재학생들의 문학 동아리 모임이다. 동아리 명칭인 동해람은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경포호를 표현하며 ‘孤고舟쥬解해纜람하야 亭뎡子자 우헤 올나가니’라고 읊조린 것에서 ‘해람’을 원용했다고 한다. 1970년 당시 강릉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심재상[현재 관동대학교 교수, 시인]이 중심이 되어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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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북평에서부터 속초시에 이르는 철로. 동해북부선은 원래 북평~속초 간 110.3㎞에 해당되며, 그 중 옥계~속초 간 92.6㎞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으로 책정됨으로써 이미 그 투자가치가 인정되고 있었다. 태백산 지구의 지하자원과 동해안의 수산자원의 경제적 수송으로 지역개발을 촉진시키고, 관광사업 개발 및 국방상 중요 역할을 담당할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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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경계지역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동해안지구전투는 동해안지구 경찰합동작전으로도 불리어지는데, 북한 제526군의 각 부대 중앙당 정치연락대원 28명이 석병산과 만덕봉 골폭산 일대에 거점을 형성하고 약탈을 자행하면서 흉계를 기도 중인 것을 1952년 12월 8일부터 12월 16일까지 9일간 강릉경찰서·주문진경찰서·삼척경찰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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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변동에 있는 해양 생물 자원 연구 기관. 동해안을 연안으로 하고 있는 강릉시의 지정학적 위치로 해양 생물 자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에서 해조류 및 미세 조류의 대량 배양 기술, 해양 생물로부터 고부가가치 기능성 소재 및 치료약 소재 개발 등 해양 생물 자원의 개발 및 이용을 위해 설립되었다. 동해안해양생물자원연구센터는 강릉시는 물론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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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을 넣어 빚는 술. 꽃을 먹을 수 있고 약에도 쓸 수 있어서 강릉에서는 진달래꽃을 ‘참꽃’이라고도 한다. 진달래꽃을 두견화라고도 하므로 진달래꽃을 두견주라고 한다. 두견주를 만드는 법은 1800년대에 간행된 조리서인 『규합총서(閨閤叢書)』, 『술만드는 법』, 『시의전서(是議全書)』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규합총서』에서는 찹쌀과 가루누룩으로 청주를 빚어 술이 부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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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나무의 새 순. 목말채·모두채라고도 한다. 독특한 향이 있어서 산나물로 먹으며 땅두릅과 나무두릅이 있다. 땅두릅과 나무두릅을 모두 두릅이라고 하지만 두 가지는 다르게 사용된다. 땅두릅은 4~5월에 돋아나는 새순을 땅을 파서 잘라낸 것이고 나무두릅은 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한다. 산기슭의 양지쪽이나 골짜기에서 자란다. 높이는 3~4m이다. 줄기는 그리 갈라지지 않으며 억센 가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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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덕동에 속한 법정동. 강릉시 중심부에서 동남쪽에 있으며, 병산동, 학동, 교동, 포남동, 송정동 등과 접해 있다. 행정동인 성덕동 관할이다. 두산동은 말산이라고도 하는데 마을 일대가 ‘목이 마른 말이 물을 캐는 형국’인 갈마 음수형으로 생겨 ‘말산’이라 하고, 마을로 내려온 산줄기가 곡식을 담는 ‘말(斗)’처럼 생겨 ‘말산’이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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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위치한 해변.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일원의 암석 해안 중의 소규모 사빈 해안으로 지형적으로 완만한 만입부에 형성되어 있다. 인근 관광 자원으로는 등명해변 외에 백사장(길이 700m), 바다낚시, 안보 등산로 상의 고려성지, 등명 낙가사, 사찰 내의 약수터, 안인과 정동진까지의 안보등산로, 무장공비 침투지에 만들어진 안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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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땅의 크기를 재면서 노는 여자 아이들의 놀이. 땅의 크기를 자신이 원하는 만큼 차지하는 놀이로 지역에 따라 놀이 방법이 다소 다르다. 강릉 지역에서는 자기 집을 정한 다음 돌로 만든 말을 튕겨서 영역을 확장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 차지하는 방법과 자기 집의 바깥 선에 왼손엄지 손가락을 대고 밖으로 가장 긴 장지로 반원을 그리며, 금을 그어 금 안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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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곡식 가루를 찌거나, 그 찐것을 치거나 빚어서 만든 음식. 강릉 지방은 평야 지대가 적고 산지가 많은 자연환경 때문에 감자, 옥수수, 메밀 같은 작물을 많이 재배하여 음식의 주재료로 삼았다. 강원도의 감자는 하얀 분이 많이 나고 질척거리지 않으며 특히 맛이 좋다. 옥수수도 알이 굵고 차진 찰옥수수이다. 그 때문에 떡도 멥쌀가루로 만든 떡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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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만들고 남은 거칠고 굵은 가루. 떡을 만들기 위하여 빻은 곡식 가루를 체에 쳐 고운 가루를 빼고 남은 가루이다. 대보름에 부럼을 깨물어 먹음으로써 부스럼을 없앤다는 속신과 같은 의미로, 대보름까지 남은 떡을 다 먹기 위해 이때 설 떡을 먹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월 14일을 까치보름날 혹은 소보름, 작은 보름이라 한다. 이날 강릉 지방에서는 설 떡을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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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껍질만 벗겨 낸 거친 메밀가루로 굵게 뽑은 국수로 만든 음식. 강원도 산간지역은 척박하여 메밀을 주로 재배하였기에 메밀로 만든 막국수를 즐겨 먹었다. 막국수는 김칫국물이나 육수에 말아 먹기도 하고,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기도 한다. 막국수란 ‘막 부서져서 막 먹는 국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칼국수처럼 반죽을 얇게 밀어서 칼로 썰었으나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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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신의 신체를 나타내는 단지. 강원도 강릉시 교동과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등에서는 성주단지를 ‘막단지’라 부르는데 매년 11월경에 묵은 쌀을 꺼내서 메를 지어 담은 그릇을 성주 앞에 놓고 집안이 평안하도록 해달라며 고축을 한다.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서는 식구들의 생기를 맞추어 정월, 4월, 동지에 안택을 올리며 2월은 ‘남의 달’이라 하여 피한다. 택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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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와 옥계면 북동리, 왕산면 목계리 사이에 있는 봉우리. 삼덕사의 망봉이며 강릉에서 남쪽으로 높이 보여 강릉의 안산(案山)이 된다. 강릉시와 평창군의 경계가 되는 대관령으로부터 남쪽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산줄기 중에서 강릉시와 정선군 임계를 연결하는 고개인 삽당령에서 동으로 굽어 내려오다가 높이 솟은 두리봉[1,033m]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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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월 27일 만덕봉에서 벌어진 공비토벌전투. 1952년 1월 24일 대궁산 전투에서 2명이 생포되고, 남쪽으로 도주한 잔당들을 강원전경 제8대대 1중대와 강릉경찰서 병력이 합동으로 만덕봉에서 공비 2명을 추가로 사살하였다.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에 접어들어 38선에서 방어에 주력하는 장기전 태세로 넘어갔으며, 7월부터는 휴전회담도 시작되었다. 이에 노동당은 남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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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국립공원 소금강지구 속에 있는 계곡. 여러 가지 기암괴석이 중첩되어 마치 만물이 진열된 듯 천태만상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롱연에서 만물상계곡을 따라가면 막 나래를 펴고 있는 학 모양의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 학유대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좌우에 번갈아 바꿔서는 기암괴석 밑으로 넓게 좁게 구비치는 계곡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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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오봉리 도마천(都麻川) 하류에 있는 고개. 옛날 고을 원님이 말을 타고 가파른 이곳을 넘다가 말과 함께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말굴이재는 소규모 분수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강릉시 남대천 상류에 해당하는 도마천이 왕산면 왕산리에서 흘러내리는 왕산천(旺山川)과의 합류지점에 만들어 놓은 오봉저수지에 근접하여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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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정월 대보름날 달을 보면서 소망을 기원하는 세시 행사. 음력 정월 대보름날 강원도 강릉시 남대천 둔치에서 달맞이, 제례, 민속놀이 등 다양한 대보름 행사를 시민과 함께 개최하는 망월 축제이다. ‘망월제(望月祭)’는 임영민속연구회에서 만든 신종어(新種語)로 달맞이를 하면서 한 해의 소망을 비는 제사를 올린다는 복합어다. 「망월가」, 망월굿, 망월점 등의 용어가 이미 사용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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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산. 옛날 강릉 일대에 해일이 일어 산봉우리에 매 한 마리만 앉을 수 있는 곳만 남겨놓고 모두 침수되었는데, 그 후로 마을사람들이 이 봉우리를 매봉이라 불러왔다고 한다. 한편 산모양이 매가 날개를 펼친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매봉산이라 칭했다고도 한다. 매봉산은 해발 817.5m로 구정면에서 가장 높으며, 구정리와 여찬리를 지나 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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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를 주재료로 하여 담근 술. 강릉의 방언으로 머루는 ‘멀구’라고 한다. 단어 사이에 ‘ㄱ’음이 들어가 있는 어형이 많은 강릉 방언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단어이다. 머루 열매는 9~10월에 검게 익는다. 이것을 따서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다음 꼭지를 떼고 유리병에 담는다. 머루 사이사이에 설탕을 넣고 소주를 부어 1개월 정도 발효시킨다. 복중(伏中)에 천둥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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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위촌리 사이에 있는 재. 생김새가 소에게 씌우는 멍에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중에서 자연부락인 무1동에 아주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 이 고개를 넘으면 하천 지류를 따라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를 연결하는 작은 옛길이 있다. 최근 대관령 터널의 개통으로 인해 새로운 영동고속도로가 고개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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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경상도, 함경도 등 한반도 동부지역의 향토음악이 지니는 음악적 특징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 강릉 지방의 무가, 민요는 주로 메나리목으로 되어 있는데, 메나리목은 본래 판소리에서 경상도풍의 창법이나 발성을 가리켰던 용어로서 '메나리조' 또는 '메나리토리'라고도 부른다. 그 예는 「흥부가」에서 놀부처가 박타는 대목이나, 「심청가」에서 뺑덕어멈의 길소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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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쌀에 멸치·감자·시래기나물 등을 넣고 끓인 강릉 지역 향토음식.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김순복이 제보한 메밀국죽을 만드는 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통 메밀을 삶아 말린 다음 물을 조금 붓고 방아에 찧어 껍질을 벗긴다. 냄비에 물을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국물을 만든다. 국물에 메밀쌀과 멸치, 감자, 시래기나물 등을 넣어 끓인다. 한소끔 김이 오르면 기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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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각 절기의 특별한 날, 즉 절일(節日)을 맞아 그 뜻을 기리면서 만들어 먹는 음식. 절일은 한 철의 명절을 일컫는 말로, 이때 여러 제사나 민속놀이 등의 행사와 함께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명절 음식, 즉 절식은 우리나라의 세시풍속(歲時風俗)과 직접 연결되는 식생활 풍습의 하나이다. 지역적인 자연환경, 농업, 어업 등 각 지역에서 주를 이루는 생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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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오대산 국립 공원에서 태백산맥 동사면에 속한 연곡천 상류 지역의 골짜기.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의 명주 청학동 소금강은 우리나라 명승 제1호로 지정[1970년 11월 18일]되어 있으며 오대산 국립 공원 면적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계곡이다. 오대산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소금강(小金剛)은 본래 청학산 소금강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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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지방의 중앙 및 강원도 동남부 해안에 접하여 1955년부터 1994년까지 존속했던 행정 구역. 1955년 9월 강릉군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되면서 강릉군의 나머지 지역이 명주군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인접한 양양군, 정선군, 강릉시에 명주군의 일부가 편입되었고, 1980년에 4월에는 묵호읍이 분리되어 신설되는 동해시에 통합됨으로써 명주군의 관할 구역은 계속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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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김씨 후손들이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의 능소에서 시조 군왕의 얼을 기리고 선양하는 행사. 신라 선덕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시중 겸 병부령인 김주원(金周元)은 상대등(上大等)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쟁탈전에 패하여 785년 어머니의 고향인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영동 지방의 9주를 다스리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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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22개 역도(驛道) 가운데의 하나. 983년(성종 2)에 개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통정책에 따라 편성한 역로(驛路)의 하나이다. 중심역은 대창역(大昌驛)[溟州]이다. 명주도의 관할 지역 범위는 강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양양까지, 남쪽으로 삼척-울진-평해에 이어지는 역로와 서쪽으로 대관령을 넘어 평창-횡성에 이어지는 역로이다. 이에 속하는 역은 대창역을 비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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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중앙동에 속한 법정동. 강릉시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남대천과 면해 있으며, 행정상 남문동, 성남동, 성내동과 함께 중앙동에 편입되어 있다. 원래 강릉군 남일면(南一面) 지역에 속하였으며, 1914년 북일면(北一面), 북이면, 남일면을 합친 군내면(郡內面)의 명주리가 되었다. 1916년 군내면이 강릉면이 되었고, 1931년 4월 1일에는 강릉면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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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신라 하대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는 성. 신라 하대에 원성왕과의 왕위계승 다툼에서 실패한 김주원(金周元)이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한 이후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에 있다. 명주성(溟州城)은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의 북쪽 구릉(122m)을 정점으로 그 남사면의 2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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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해안 지역에 풍부한 대구목 대구과의 바닷물고기. 몸길이는 30~50㎝ 정도이며 몸의 형태는 대구와 비슷하나 대구보다 가늘고 길다. 또한 입을 다물었을 때 대구는 위턱이 아래턱을 덮고 명태는 아래턱이 위턱을 감싼다. 눈과 입이 크고 아래턱에 아주 짧은 수염이 하나 있다. 몸의 색은 등 쪽은 갈색, 배 쪽은 흰색이며 옆구리에 2개의 갈색의 세로띠가 있다.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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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덕꾸덕 말린 명태에 식은 밥이나 된 찰밥을 섞어 엿기름가루와 갖은 양념을 하여 삭힌 젓갈. 식해는 내장을 제거한 생선을 깨끗이 씻은 뒤 6~8% 식염에 18~20시간을 절여 소금물을 제거하고 조밥과 고춧가루, 마늘, 파 등과 혼합해 20℃에서 2~3주간 발효시켜서 만든다. 식해는 발효 과정에서 생선의 살과 뼈가 물러져 토막 친 생선 전체를 먹을 수 있어 칼슘을 충분히 섭취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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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있는 산봉우리. 모산봉은 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을 품고 있는 이 마을 최고봉으로, 높이는 105m이다. 모산봉은 강릉의 안산으로 불리는 명산이다.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겨 ‘밥봉’이라고도 하고, 볏짚을 쌓아 놓은 것 같다는 뜻의 ‘노적봉’으로도 불린다. 또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 하여 ‘문필봉’으로도 불린다.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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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 직전인 1909년 3월 26일 강릉에 설립 인가된 근대식 사립학교. 같은 시기에 설립된 강원도 내 사립학교는 명동학교[삼척, 1910. 3. 9], 보명학교[삼척, 1910. 4. 28], 동진학교[강릉, 1909. 6. 4], 신리학교[강릉, 1909. 9. 21], 공명학교[간성, 1910. 3. 31], 동명학교[통천, 1909. 7. 9], 보양학교[통천,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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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속한 법정리. 모전리(茅田里)는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마을에 띠[풀 이름]가 많은 곳이라 하여 뙡지 마을 또는 모전이라 하였다. 1916년 행정 구역 변경에 따라 일부 지역을 갈라서 모전이라 하고 그 나머지를 언별리, 안인리라 하였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과 성덕면, 경포면이 합하여 강릉시로 승격할 때 분리되어 명주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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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의 법정리 중 하나. 조선 시대 평릉도(平陵道)에 딸린 목계역이 있었던 목계리(木界里)는 옛날에는 모개 또는 모계(茅溪)라고 하다가 목계(木界)로 개칭되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목계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방터골, 벌말, 귀약골 등이 있다. 방터골은 목계교 북동쪽에 있는 큰 골로 옛날 방씨(方氏)들이 피난살이를 했다고 한다. 벌말(坪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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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외국과 제품과 서비스를 거래하는 활동. 무역은 국민경제간의 상품 교환을 통해서 재화나 용역의 효용 및 경제 가치를 증가시키는 활동이다. 재화를 교환하는 무역을 상품무역이라 하고, 용역을 교환하는 무역을 용역무역 또는 서비스무역이라 한다. 현재 무역의 개념은 상품의 교환과 같은 눈에 보이는 무역과 기술 및 용역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역 및 자본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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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을 소재로 하여 육체의 내적·외적 행동을 통해 감정·정경·상황 등을 표현하는 예술 활동. 무용의 본질은 음악적이라는 데에 있다. 따라서 무용가는 음악의 정서적 내용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또한 무용은 형식 예술의 일종이며 움직이는 회화, 움직이는 디자인, 움직이는 조각의 연출이다. 아울러 팬터마임도 무용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무용은 종류가 많고 분류 방법도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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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의 귀족. 아버지는 사인(思仁)이고, 아들은 김주원(金周元)이다. 부인은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朴氏)이다. 774년(경덕왕 3) 정월에 이찬(伊湌)으로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745년 정월 아버지 사인이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된 직후인 5월에 천재지이(天災地異)를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였다. 무월랑은 명주(溟州)[지금의 강릉]지방의 세력가인 박씨와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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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언별리에서 매년 음력 9월 9일에 자식 없이 죽은 사람들을 위해 지내는 제례. 혼자 살다가 죽은 사람들에게 후손을 대신해서 마을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례이다. 자손을 두지 못한 사람이 죽으면 제사를 지내 줄 사람이 없어 망령이 위안을 얻지 못해 무자귀(無子鬼)가 된다고 하여 이를 예방하고 마을의 안녕을 위해서 무후제사를 지내주는 것이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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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 문성사는 율곡 이이의 시호에서 명명되었다. 문성사는 1976년 오죽헌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 문성사 자리에는 원래 어제각이 있었으나 문성사가 건립된 이후 가장 뒤쪽으로 이전되었다. 문성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콘크리트 구조 건물이다. 봉안된 영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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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또는 여러 사람이 개인의 글, 혹은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엮은 책. 문집은 중국 양(梁)나라 완효서(阮孝緖)에 의해 『칠록(七錄)』이 만들어질 때 그 분류 항목 가운데 ‘문집록(文集錄)’을 설정한 데서 유래한다. 문집은 크게 나눈다면, 개인의 작품을 모아 편찬한 별집(別集)과 여러 사람의 글 전부 또는 일부를 적록(摘錄)한 총집(總集)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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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문학단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산하 한국문인협회 강릉지부가 정식 발족된 것은 김유진이 지부장을 역임한 1976년 8월이다. 그 후 지역에서 성장한 문인들과 외지에서 직장 관계로 이주한 문인 등 다양한 계층의 문인들이 문학단체를 조직하여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강릉 지역에는 크고 작은 문학회, 시 동인회 모임이 상당수 있어 문학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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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와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 문자로 나타내는 예술 및 그 작품을 간행하는 잡지. 강릉 지역 최초의 문학지는 1951에 발간된 강원도 최초의 시동인지 『청포도』이다. 황금찬·최인희·이인수·함혜련·김유진 등에 의해 1952년 2집까지 간행되었다. 이후 6~7년간 청포도 동인들이 관동문학을 주도하는 가운데, 이성교·신봉승·김남형·김혜숙·박춘희 등이 관계한 순수 학생 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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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는 문화를 통한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문화 분야 서비스 관련 모든 시설. 문화시설은 행정상으로는 공연 시설, 전시 시설, 지역 문화 복지 시설, 기타 시설로 분류한다. 공연 시설은 종합 공연장·일반 공연장·소공연장·영화관으로 분류되며, 전시 시설은 미술관·화방으로 분류되며, 기타 시설은 문화원·국악원·전수 회관으로 분류된다. 1. 강릉문화예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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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분야인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연예·출판을 진흥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하면, 문화예술의 범위에는 문학·미술·음악·무용·연극·영화·연예·출판 등이 포함된다. 이 법은 문화예술을 진흥하기 위한 국가 및 지방 자치 단체의 시책 및 장려, 문화예술 기관 및 단체에의 협조, 중요 시책을 심의하는 문화예술진흥위원회와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한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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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미술·공연·전시 등 문화예술과 관련된 사업을 계획과 일정에 따라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참여하여 치르는 일. 강릉에서 실시되고 있는 문화예술행사는 규모에 있어 국제적인 행사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소규모 행사까지 매우 다양하다. 또 문화예술행사의 목적으로 보면, 전통문화를 계승·보존하려는 목적으로 개최하는 문화예술행사와 강릉 지역의 문화예술을 증진시키기 위한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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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는 문화적 활동의 결과물로 가치가 인정되어 국가 혹은 지방 자치 단체에서 지정, 관리하는 문화유산. 문화재란 인간이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된 결정으로서 문화상으로 가치가 있는 것, 즉 종교·철학·예술 기타 고도의 정신 작용에 의하여 가치가 주어진 것을 말한다. 강릉시는 동해안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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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미적 능력을 바탕으로 시각적 공간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조형 예술 활동. 한국 미술은 자연주의적 양식을 띠면서 발전해 왔다. 한국적 자연환경, 즉 준엄한 듯하면서도 소나무 등으로 부드럽게 나타나는 산의 곡선, 유유히 굽이져 흐르는 강, 사시사철 변하는 화초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강릉 지방의 경우 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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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민간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옛날이야기, 옛말, 이야기라고도 한다. 동화는 물론 지역전설, 야사[야담], 일화(逸話), 우화(寓話), 우스갯소리, 그리고 성인들 사이의 성(性)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도 포함된다. 민담은 민중 사이에서 창작되고 민중 사이에서 전해진 서사문학임을 뜻하면서 동시에 민중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진 서사문학임을 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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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전해오는 전통적이고 향토색이 담긴 놀이. 옛날부터 강릉 지역 민가에서 어린이나 어른, 남녀를 불문하고 함께 향유한 놀이이다. 민속놀이는 놀이 주체의 성격에 따라 아이 놀이, 성인 놀이[남성 놀이, 여성 놀이], 남녀 공동놀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아이 놀이 가운데 남자아이들의 놀이로는 자치기, 제기차기, 장치기, 깡통차기, 딱지치기, 돌치기, 말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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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옛날부터 민중 사이에서 불려지고 전해 내려오는 노래. 우리 민요의 특징은 민중이 부르되, 그것도 소외된 서민사회의 노래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그것은 속요처럼 자연발생적이면서 소박한 민중의 공유심음(共有心音)을 담을 수 있는 그릇 노릇을 해왔다. 고정옥은 민요가 ① 작자가 없고, ② 부단의 개작품(改作品)이고, ③ 향유제급은 농촌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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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시 낭송 모임. 1983년 10월 강릉 지역에서 문학 활동을 하던 신승근, 이언빈, 장병훈, 박기동, 박호영, 심재상 등에 의해 결성된 시낭송 단체이다. 시인과 독자와의 감정의 파장을 맞추고자 하는 의도로 시 낭송 모임을 결성하게 되었다. 1979년 개인과 개인의 심장이 닿는 공간에 시적 위치를 설정하면서 체험의 공유를 믿는 젊은 시인들이 모여 ‘암호동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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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대관(大觀), 호는 강호(江湖)·사지(四止). 부친은 박시행(朴始行)이고, 모친은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진사 남과(南薖)의 딸이다. 26세 때인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이 되었으나, 수신(修身)과 독서에만 힘쓸 뿐 벼슬에는 뜻이 없었다. 1516년(중종 11) 가을 금강산에 유람 왔던 충암(冲庵) 김정(金淨)이 박공달(朴公達)을 만나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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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릉에서 활동했던 서예가. 자는 일원. 호는 강재, 강옹, 차강. 차강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관향은 강릉이고 삼사공파의 33세손이다. 박기정은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6세부터 이미 마을에서 신동이라 불렸다. 12살 때 경상우도에서 이름 높은 진주향교의 집필사(執筆士)로 발탁될 만큼 서예의 자질이 뛰어났다. 우연히 강릉 선교장에 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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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무형 문화재인 강릉 농악의 예능 보유자. 박기하는 1920년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강릉 농악의 상쇠로서 강릉 농악의 전승·보급에 노력하고 있으며, 후계자 양성에도 노력하여 강릉 농악 예능보유자로 인정·예고된 정희철 등 제자들을 키워냈다. 강릉시 6개동(洞) 농악대와 초·중·고 10개교 농악대를 출장·지도하고 있으며, 매년 어린이 농악 경연 대회를 개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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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 삼가당(三可堂) 박수량(朴遂良)의 후손이다. 정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겼다.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 배설물을 맛보아가며 치료하였고,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흘려 넣어 7일을 더 살게 하였다. 그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사림에서 부영(府營)과 예조에 글을 올려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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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아픈 시부모를 위해 새와 물고기를 구해 시부모를 정성껏 보살폈다. 또한 남편 박문오(朴文五)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어 1년을 더 살게 하였다. 남편이 죽자 세수와 빗질을 하지 않았으며, 어린 자식들을 훌륭히 길렀다. 박문오 처 어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부영(府營)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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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아버지가 병을 앓을 때 대변을 맛보며 간호를 하였고, 생선과 꿩을 얻어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을 때는 죽으로 연명하며 여묘살이를 하였다. 1865년(고종 2)에 강릉부와 순찰사가 “생선과 꿩을 구한 것은 왕상(王祥)이 붕어를 구해 효도한 것에 부럽지 않으며, 죽을 먹으며 몸소 여묘살이 한 것은 맹순(孟筍)의 효행과 비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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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공립·사립·대학박물관으로 고고자료, 미술품, 역사적 유물, 그 밖의 학술적 자료를 널리 모아 보관·진열하여 일반 대중에게 전람 및 교육시키는 시설. 박물관은 국제박물관회의헌장[ICOM憲章]에 따르면 “예술·역사·미술·과학·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동물원·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각종의 방법으로 보존하고 연구하여, 일반 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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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열녀. 나이 18세 때 남편 박병은(朴炳殷)이 위독하자 손가락 세 개를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었다. 남편은 7일을 더 살다 죽었다. 남편의 상을 당하였을 때는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늙으신 시부모님을 두고 차마 죽을 수가 없었다. 시부모님을 끝까지 정성껏 봉양하여 마을에서 효열이라고 칭송하였다. 박병은 처 김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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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어느 날 밤 화적(火賊) 떼 수십 명이 집 안에 들어와 남편을 죽이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남자 옷으로 갈아입고서는 화적들이 버린 큰 종이로 얼굴을 덮어쓰고 화적들 틈에 섞여 함께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가위로 화적들의 옷깃을 몰래 잘라 놓았다. 화적들이 흩어진 후 관가에 가서 전후의 실상을 낱낱이 알려 화적들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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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출신의 정치인. 일본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광업평론사 사장을 지냈으며, 경제일보사와 현대일보사의 주간, 대한농민총연맹(大韓農民總聯盟) 중앙총본부부위원(中央總本部副委員)·대한계몽협회부회장(大韓啓蒙協會副會長)을 역임하였다. 한청강릉군 단장(韓靑江陵郡 團長), 3대 민의원을 지내면서 1960년대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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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군거(君擧), 호는 삼가정(三可亭). 부친은 교수(敎授) 박승휴(朴承休)이고, 모친은 영해이씨 감찰(監察) 이중원(李仲元)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모친상을 당한 뒤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1518년(중종 13) 7월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충청도사(忠淸都事)와 용궁현감(龍宮縣監)을 거쳐 사섬시주부(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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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경포대를 건립한 고려 후기의 지방관리. 1326년(충숙왕 13) 박숙정이 존무사(存撫使)로 강원 영동 지방을 순행할 때 강릉 경포대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박숙정이 건립한 경포대는 현재 전해지는 경포대가 아니다. 즉 그가 경포대를 건립한 곳은 현재 경포현대아파트 옆 인월사 뒤 높은 대(臺)에 세웠다. 이곳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것은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 한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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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소(子昭). 강릉박씨 양주파(襄州派)의 파조이다. 고조는 박연(朴演)으로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였고, 증조 박지계(朴之桂)는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냈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으로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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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어려서 부터 효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겼으며, 시집가서는 시부모님을 더욱 정성껏 공경하였다. 박시언 처 김씨의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효행이 알려져 암행어사와 관찰사가 포상을 하였으며, 호역(戶役)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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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고조는 고려 때 국자박사(國子博士)였던 박연(朴演), 증조는 고려 때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이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낸 박중신(朴中信)이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 김예(金輗)의 딸과 광주이씨 이초지(李初之)의 딸이다. 박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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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호는 수암(修庵).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낸 박연(朴演)이 고조이고,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가 증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된 박중신(朴中信)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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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 남매(南邁)의 딸이다. 형으로는 박시원(朴始元), 박시창(朴始昌), 박시형(朴始亨)이 있다. 1468년(예종 즉위년)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이듬해에 추장시(秋場試)에 올라 벼슬이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이르렀다. 젊었을 때 강릉의 기생 옥반주(玉盤珠)와 서로 사랑하였다. 감사(監司)가 강릉에 머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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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이고, 어머니는 김지(金祉)의 딸이다. 박시원(朴始元), 박시창(朴始昌)이 형이고 박시형(朴始亨)이 동생이다. 1456년(세조 2)에 생원·진사시에 동시에 합격하였고, 1459년에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여 사헌부 장령, 호조좌랑, 홍문관 박사·교리, 동부승지, 안동부사, 예문관직제학을 역임했고 후에 후원공신(厚原功臣)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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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화경(華卿). 증조부(曾祖父)는 이조참판 박이서(朴彛敍)이고 조부(祖父)는 병조참판 박노이며 아버지는 초정공(草亭公) 박수현(朴守玄)이다. 1666년(현종 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를 시작으로 저작박사(著作博士),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감찰(監察), 예조좌랑(禮曹左郞), 정언(正言), 병조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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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초기 개신교 신도. 박신동은 강릉 지역의 초기 개신교 신도로, 1923년 3월에 강릉시 용광동 28번지의 박신동 자택에서 조선 야소교 강릉성결교회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초대 교역자는 평남 용강 태생의 차진학(車鎭學) 전도사였다. 초창기 신자들로는 서순명, 최원주, 김인열, 이부대 등과 다수의 학생들이 집회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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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박영은 최대나(崔大奈)·함신(咸信)·곽길(郭吉)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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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출신의 교육자. 해방 후 초등학교 교사로 강원도의 초등교육에 이바지하였으며 1982년 강원도 고성군 교육장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 강원 교육계에 투신하였으며 강원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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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정치인.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 시절 국회의원과 그에 따른 요직을 두루 거친 정치인이다.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봉화(奉化)·예천(醴泉) 군수와 경상북도 상공국장(商工局長)을 역임했다. 이후 정계에 진출하여 3·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대한임산개발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1954년 5월 20일 치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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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할아버지는 박문규(朴文圭)이고 아버지는 박관(朴琯)이다. 1301년(충렬왕 27)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전주목사록겸장서기(全州牧司錄兼掌書記)를 거쳐 권지전교교감(權知典校校勘)이 되었다. 충선왕이 원나라 연경에 있을 때는 예문관검열로서 왕을 보좌하였다. 1335년(충숙왕 복위 4)에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어서는 기강을 바로 잡은 공으로 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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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시동 출신의 근대 문인·유학자. 박원동(朴元東)의 자는 덕영(德英), 호는 시호(詩湖)로 어려서부터 한학에 힘써 그 학문이 향촌에 으뜸이었다. 벼슬은 종사랑으로 안변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으며 귀향하여 면장을 지냈다. 또한 풍호정을 짓고 시풍을 즐겼다. 1933년 7월부터 2년간 강릉향교 직원(直員)으로 재직하였다. 시호 박원동 선생은 강릉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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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조선 영조 때 강원도에 대 기근이 들었다. 박원봉(朴元奉)은 이 때 80세였는데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껍질을 벗겼고 밤에는 화롯불 옆에서 짚신을 삼아 시장에 팔아 쌀과 고기를 사서 98세의 어머니를 봉양했다. 관의 구호 대상자 명부에 박원봉과 그의 아내도 올랐다. 당시 강원감사(江原監司) 김리소(金履素)는 효자로서 박원봉의 이름을 익히 듣고 있던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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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속한 법정동. 박월동은 장현 저수지로부터 동해로 유출되는 섬석천 바로 남쪽에 있는 낮은 봉우리인 덕우봉을 중심으로 산지와 평탄부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박월’이란 이름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고려 유신들이 송도 만월대의 고사를 생각하여 ‘박월’이란 지명을 만든 데서 유래하였는데 이곳에 만월대가 있었다고 한다. 박월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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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현 강릉시 박월동(博月洞)에 설립되었던 야학 형태의 사립학교. 1928년 4월 마을의 유지인 최인철(崔仁澈), 최돈호(崔燉浩), 최진태(崔鎭泰), 권중호(權重浩) 등이 발의하여 ‘박월개량서숙’이라는 사립학교를 설립하였다. 1931년 ‘박월학습강습소’로 개칭되었다. 정도에 따라 갑·을·병 3개 반으로 나누고 모든 반이 매년 1월부터 4월까지 4개월간, 6월부터 8월까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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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이며 종성부사(鍾城府使) 박희유(朴希有)의 5대손으로 중서령 박종대(朴從台)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전객(典客)인 박령연(朴令演)이다. 아버지는 참지정사인 박지계(朴之桂)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김언지(金彦之)의 딸이다. 1364년에 태어나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충효를 잘 실천하였고 백성들에게는 덕을 세우는 데에 힘써서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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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지역의 독립운동가. 유년 시절 한문을 배웠으며 초당의숙[영어학교]에서 수학하며 신문학을 익혔다.강릉청년회 지도자, 초당리 청년회 지도자, 창동회 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4일 강원도 강릉군 강릉면 남대천(南大川)에서 보수축(洑修築) 공사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농민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태(笞) 90대를 언도받았다. 1995년 대통령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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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아버지가 80세에 종기를 얻어 온몸에 번졌다. 박재환(朴在煥)은 밤낮으로 아버지의 병이 낫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약을 구하러 다니다, 길에서 노인을 만나자 노인이 두꺼비와 뱀을 복용하라고 하였다. 마침 겨울철이라 구할 길이 없었다. 어두워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옆 숲 속에서 두꺼비가 뛰어 나오기에 잡아서 드렸다. 또 다음날에는 까마귀가 날면서 어지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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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자(字)는 숙립(叔立). 할아버지는 봉선대부서운부정(奉善大夫書雲副正) 박지계(朴之桂)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지단천군사(通政大夫 知端川郡事)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이며 어머니는 봉정대부 봉상부령지제교 겸 예문춘추관편수관 성균직강(奉正大夫 奉常副令知製敎 兼 藝文春秋館編修官 成均直講) 밀성김씨 김지(金祗)의 딸이다. 먼저 강릉김씨 김예(金輗)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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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인 박중신(朴中信)이 1438년(세종 20) 식년문과시(式年文科試)에 정과(丁科)로 합격하고 국가로부터 받은 합격 증서. 발급 시기는 1438년(세종 20)이다. 수급자는 단천 군수(端川郡守)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의 아들 강릉박씨 박중신(朴中信)이다. 박중신은 1390년 강릉에서 출생하여 143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 등을 역임하였으나, 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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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 드려 하루를 더 살게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죽을 먹고 상복을 벗지 않았다. 고을에서 효성이 지극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증석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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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연(朴演)이다.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좌랑(정5품)을 거쳐 서운관 부정(종3품), 예문관제학과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올랐다. 공민왕이 최만생·홍륜 등에게 살해당하고 정몽주·김구용 등이 유배되었을 때 박지계도 9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복권된 뒤 정몽주의 천거로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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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속한 법정리.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북쪽 7번 국도와 바닷가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방동리 북쪽은 사천천이 바다로 유입하고 미노리, 사천진리와 경계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산대월리와 이웃하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산의 형세가 ‘방(方)’ 자처럼 되어 있어 방골 또는 방동이라 한다. 1916년 가매골, 왕상골, 후릿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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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고 이를 공중[시청자]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 방송에는 지상의 무선국을 이용하여 행하는 지상파방송, 전송·선로설비를 이용하여 행하는 다채널방송인 종합유선방송, 인공위성의 무선국을 이용하여 행하는 위성방송이 있다. 또 방송은 말단의 표시 형태에 따라 음성을 중심으로 한 라디어방송과 음성 및 영상을 전달하는 텔레비전방송으로 구분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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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남을 축하하는 백일, 돌, 생일 때 그 주인공에 대한 기원과 의례의 의미를 상징하는 특별한 양식에 따라 차려지는 음식. 백일은 아기가 태어난 날로부터 꼭 백 일째 되는 날이다. 백일을 맞이한 아기에게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자란 것을 대견하게 여겨 이 날을 축복하며, 앞으로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백일 상을 차리고 잔치를 벌여 축하하였다. 강릉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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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지내는 세시풍속의 한 날인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은 조상을 기리는 날인 동시에 농업생산 활동과 관련되어 있는 날이다. 불교에서는 백 가지 과일을 차리고 망친의 영혼을 제사하는 우란분재를 한다. 농가에서는 집집마다 김매기를 끝낸 기쁨으로 서로 축하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목을 도모하는 날로 세서회(洗鋤會) 즉 호미씻이를 한다.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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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재배된 버섯을 가공한 상품. 현재 강릉 지방에서는 자연과 조화된 청정 특용작물 생산을 위하여 산간지, 중산간지에는 산지 부존자원을 활용한 버섯 생산을 위하여 산촌마을 버섯재배단지를 조성하였다. 또한 평난지에는 버섯재배사의 환경조절 제어 시스템의 구축으로 연중생산 여건을 조성하였다. 특히 짧은 시간 안에 출하가 가능토록 시설 및 기술을 투입하고 있으며. 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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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진료하거나 질병을 예방하는 시설을 갖춘 기관. 1957년에 세계보건기구(WHO)는 병원을 ‘주민에게 치료와 예방을 포함하는 완전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을 가진 사회조직의 하나’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의료법 제3조 4항에 의하면 ‘병원, 치과병원 또는 한방병원이라 함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각각 그 의료행위를 행하는 곳으로서, 입원환자 20명 이상을 수용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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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지방자치단체, 보건의료기관, 보건의료인이 국민을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보다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거나 증진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활동. 「보건의료기본법」의 설립 목적은 국민에게 양질의 보건의료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보건의료 분야의 균형 있는 발전과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이 법은 국민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무, 국민·보건의료인의 권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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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법정리. 동쪽으로는 관음리와 위촌리 및 사천면 사기막리,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와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어흘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에 접해 있다. 신라 때에 낭원 대사가 세운 보현사(普賢寺)의 ‘보’ 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보광리(普光里)는 본래 강릉군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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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보광1리, 보광2리를 대상으로 한 농산촌 테마관광 종합타운이 조성된 마을. 보광리 산촌마을은 강릉시의 서부 산간 지역에 특화사업을 벌여 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된 조성 사업이다. 도시민들에게는 농촌의 현장과 전통문화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건강 쉼터가 갈수록 필요하며, 이는 강원도의 역점사업인 ‘강원 그린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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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를 흐르는 남대천의 한 지류. 보광천은 강릉시 사천면과 성산면을 경계하는 곤신봉에서 뻗은 산줄기에서 남동쪽으로 흘러 오봉댐에서 흘러나오는 지류와 합하여 남대천으로 흘러들어간다. 보광천은 남대천 본류에 합류하기 전 대관령에서 흘러내려오는 작은 지류와 성산면 어흘리에서 마주친다. 보광천은 가장 상류부에 명주군왕인 삼왕릉에서 물이 흘러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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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1리 보현사 부근에서 일어난 전투. 1952년 7월 16일 조선노동당 강릉군당을 재건하기 위하여 강릉 지역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3명 중 1명이 주문진경찰서로 귀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강릉경찰서 병력이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시작하여 1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1952년부터 북한의 노동당은 남한 내의 빨치산을 지원하고 조선노동당을 재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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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산.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북쪽에 있는 해발 1,000m의 산이다. 강릉시의 주요 유적의 하나인 대공산성[일명 보현산성 또는 대궁산성]이 위치해 있으며, 산 아래에 보현사가 위치해 있다. 1952년 초 강릉 일대의 공비토벌과 관련된 전적지로 유명한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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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정월 보름날 김이나 취와 같은 나물잎으로 싸서 먹는 쌈. 복쌈은 음력 정월 보름(상원날)에 김이나 마른 취에 밥을 싸서 먹는 풍속을 말한다. 취·호박고지·고비·고사리·도라지·가지·시래기 등을 가을에 말려 두었다가 볶아서 먹고, 밥을 싸서 먹거나 김을 구워서 쌌고, 들깻잎으로 싸서 먹기도 하였다. 『한국음식용어(韓國飮食用語)』에 김, 상추, 배추잎, 취, 호박잎, 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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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에 있는 마을. 부연동의 부연천 가운데 마치 가마처럼 생긴 가마소가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부연동을 흐르는 부연천은 연곡면 삼산3리 신배령 및 물푸레골에서 발원하여 신선골을 지나 부연동마을에서 복룡골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와 원일전리로 흐른다. 부연동은 전후재 북쪽 마을로 서쪽은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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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국군과 북한군 정찰대 병력이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2리 부연동에서 벌인 전투. 1951년 7월 10일부터 휴전까지는 한국전쟁의 교착기였다. 그러나 휴전회담이 개시될 때 쌍방은 협정 조인 시까지 군사 작전을 계속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협상장에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전장에서는 수시로 전투가 벌어졌으며, 남한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투들이 이어졌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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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에 흐르는 하천. 연곡면 삼산3리 신배령 밑 물푸레골에서 발원하여 신선골을 지나 부연동마을에서 복룡골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와 원일전리로 흐르는 하천이다. 부연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천이 흘러나오는 분수계의 범위를 알 필요가 있다. 크게는 오대산국립공원의 한 부분에 속하는 분수계로서 백두대간을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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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 부연마을에서 채취하는 꿀. 1980년대 후반에 경상북도 성주시에서 부연마을로 이주한 김영철(金永哲)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영철은 마을 주민들과 토종꿀 작목반을 만들어 3천 여 봉군의 토종벌을 기르기 시작하였고, 그 뒤 부연마을은 전국 최대의 토종꿀 생산지가 되었다. 1987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조사한 『전국향토특산물 실태조사』에 의하면 강릉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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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 있는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이익 증진을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 조합원의 농업 생산성을 제고하고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의 판로 확대 및 유통 원활화를 도모하며,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기술·자금 및 정보 등을 제공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69년 12월 10일에 주문진리 농업 협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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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옛 명칭. 신라의 국가 발전과정에서 동북방면으로 진출하여, 지금의 강릉 지역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512년(지증왕 13)에 하슬라주(何瑟羅州)를 설치하였으며, 639년(선덕여왕 8)에는 북소경(北小京)을 두었다가, 658년(태종무열왕 5)에 에는 소경을 폐지하고 다시 주를 설치하였다.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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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동북쪽 변경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군사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삼국시대인 658년(무열왕 5)에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 지역이 말갈(靺鞨)과 맞닿아 있어 백성이 편안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곳에 설치되었던 북소경(北小京)을 폐지하여 주(州)를 설치하고 도독(都督)을 두어 지키게 하였으며, 실직(悉直)[지금의 삼척]으로 북진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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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 북한군 패잔병들이 퇴각하면서 강릉 지역을 공격하여 벌인 전투.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남한 내에 고립되어 있던 북한군 패잔병들이 동해안 산악지대를 따라 북상 중에 1개 사단 병력이 강릉을 공격하여 많은 인명을 살상한 전투이다. 1950년 9월 15일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1950년 9월 28일에는 수도 서울을 탈환하였고, 북한군 6개 사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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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불교단체. 불교단체라는 범주 속에는 다양한 단체들이 포함될 수 있다. 사찰을 중심으로 조직된 승려들의 수행 공동체인 승가를 대표적인 불교단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밖에도 불교의 교리를 학습하거나 불교 수행법을 실천하기 위하여 승려와 신도들이 조직한 단체들이나, 불교적인 가치관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응하고 나름의 기여를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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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모래가 바람에 의해 운반·퇴적되어 형성된 구릉 지형. 강릉 지역의 사구는 해안에서 형성된 사구 즉, 해안 사구이다. 사빈[모래사장]의 모래는 강풍이 불 때, 바람에 의해 다시 운반될 수 있다. 강릉 지역 해안 사구의 모래는 동해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강풍이 불 때 사빈의 모래가 육지 쪽으로 이동되다가 퇴적된 것이다. 사빈의 모래 중에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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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용수골에 위치한 조선시대 백자 도요지. 사기막리 백자 도요지[용수골]는 1984년 10월 사천천 상류 지역의 관개용수용 저수지를 만들기 위한 공사 시 주변 간이도로공사로 인해 도요지 유구가 파괴되면서 발견되었다. 이후 관동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수습 조사되면서 소개된 유적이다. 그러나 발견당시 도요지의 수습 조사 이외의 조사는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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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과 명주군 경계 지역에서 일어난 공비 귀순 작전. 1953년 휴전 후 빨치산 부대들은 장기적인 활동을 고려하여 사상무장을 강화하고 부대를 소규모로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1953년 9월에 들어 지구당은 소규모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빨치산은 주로 지리산 지구, 덕유산 지구, 회문산 지구, 형제봉 지구, 모후산 지구, 전남 동부 지구, 영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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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행하는 수력·풍력 등에 의하여 토양에 발생하는 각종 재해의 예방·복구를 위한 사업. ‘사방 사업’이란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심하여 흙·모래·자갈 등이 이동하여 나타나는 재해를 예방·복구하기 위해 실시하는 공사를 말한다. 사방 사업에는 주로 토목적인 방법과 조림적인 방법 또는 양자를 병행하여 실시하고 있다. 시공 장소에 따라 산지사방·야계사방(野溪砂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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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이루어지는 법에 의한 민사 및 형사 사건의 재판과 그에 관련된 국가 작용. 사법은 입법, 행정과 함께 국가 통치 작용의 하나이다. 개인 상호간 또는 국가와 개인 간의 법률관계에 관한 쟁의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무엇이 적법인가를 선언하는 행위이다. 사법제도는 좁은 의미로 재판제도를 의미하나, 넓은 의미로는 검찰제도와 행형제도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사법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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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영랑(永郞)·술랑(述郞)·남랑(南郞)·안상(安詳) 등 네 국선(國仙).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서 진흥왕대에 제정된 화랑도(花郞徒)는 15~18세 사이의 청소년으로 조직되어 보통 3년 정도 수련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 진흥왕 37년에는 “도의(道義)로써 서로 연마하고 혹은 노래와 음악으로 서로 즐겼으며, 산천을 찾아 노닐고 즐겨 멀리 이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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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4월 8일로 불교의 개조인 석가모니 탄생일. 사월초파일은 불교의 가장 큰 명절인 동시에 그 연원이 오래되고 불자들이 많은 관계로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기는 민속명절로 전승되어 왔다. 사월초파일은 욕불절(浴佛節)이라 하는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례인 욕불행사를 하기에 붙여진 명칭이고, 이외에 ‘불탄일’, ‘석탄일’, ‘부처님 오신 날’ 등으로 풀어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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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 있는 여학생 교육원. 사임당의 얼과 덕성을 이어 받아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하고 심신 수련을 통한 민주 시민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다. 강릉 지방의 대표적 유적지인 오죽헌의 정비 사업 준공식에 참석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원도 교육감, 강원도지사, 강릉시 유지 등이 모인 자리에서 강릉 지역에 사임당의 얼을 계승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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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나 복사 에너지의 작용을 통해 감광성의 물체 위에 피사체의 형태를 영구적으로 기록하는 방법. 강릉에서의 최초의 사진 활동은 1934년경 원로 사진가 임응식이 부산에서의 활동 중 강릉우체국 근무를 하면서 강릉사우회를 조직하여 약 4년 동안 활동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임응식의 강릉사우회의 활동 내역은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활동 내역이 파악되고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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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지역에서 지표면이 모래로 덮여 있는 해안. 강릉 지역에는 화강암과 사암이 넓게 분포한다. 강릉 지역에서 화강암은 화학적 풍화작용을 깊이 받은 상태로 존재해 왔다. 그 상태는 석영 등 화학적 풍화작용을 잘 받지 않은 광물이 모래 크기로 남아 있고 화학적 풍화작용을 잘 받은 광물은 점토·실트 크기의 2차 광물로 변해 있는 상태이다. 한편 사암은 화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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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佛道)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곳. 1. 문헌 수록 사찰 강릉시 소재 사찰로서 문헌에 수록된 사찰로는 굴산사(掘山寺), 보현사(普賢寺), 문수사(文殊寺), 신복사(神福寺), 등명사(燈明寺)[현 등명낙가사], 안국사(安國寺)[안곡사], 산계암(山溪菴), 염양사(艶陽寺), 청학사(靑鶴寺), 용연사(龍淵寺), 칠성암(七星菴)[현 법왕사(法王寺)],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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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해안에 위치한 해변. 사천 해변은 사천천 하구를 중심으로 남쪽으로 뻗은 백사장을 바탕으로 1975년 7월 1일 조성된 해변이다. 사천천에서 토사가 원활하게 흘러들어 해수욕장의 입지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사천천 하구 북쪽에 자리 잡은 사천진리의 어촌 관광 지역과 근접하여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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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중북부에 있는 면. 강릉시의 도심에서 북쪽으로 10㎞ 지점인 강릉 시내와 주문진과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사천면의 북쪽으로는 연곡면, 서쪽으로 평창군 대관령면, 남쪽으로 성산면과 저동·죽헌동에 접하고, 동쪽으로 동해에 면해 있다. 사천면의 명칭은 사화산(沙火山)의 이름을 따서 사화산면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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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에 있는 저수지. 사천저수지의 주요 기능은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명 사기막 저수지 또는 용연 저수지라고 부른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천저수지를 만든 사천천은 최상류부가 용수골이며, 분수계로는 서쪽의 백두 대간 중에서 매봉[1173.4m, 연곡면과 사천면·평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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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에 있는 국가어항. 최근 들어서 관광지로 개발되어 새로운 항구로서 면모를 보이고 날이 갈수록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어 강릉시 사천면에서 가장 발전하는 곳이다. 관광어촌으로서 횟집을 비롯한 수많은 상점과 숙박시설 등이 경관상 확연히 구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천진항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분수계로부터 동으로 흘러나온 사천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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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를 흐르는 하천. 사천면 사기막리 매봉 밑 무릉담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용연, 사기막을 지나 미노리 후리둔지에서 바다로 흐르는 하천이다. 사천천은 최상류부가 용수골이며 분수계로는 서쪽의 백두대간 중에서 매봉[1173.4m, 연곡면과 사천면,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으로부터 남쪽으로 곤신봉[1136m, 사천면과 성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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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강릉은 인심이 후하고 선현들의 얼이 지속적으로 이어 온 전통적인 문향·예향의 도시이다. 1955년 강릉읍과 경포면, 성덕면을 합해 시로 승격된 강릉은 2011년 9월 말 현재 1,040㎢의 면적에 인구 220,121명에 이르는 영동의 교육·문화·교통·행정의 중심지이면서 동해권의 중추적 도시로 발전하였다. 강릉은 백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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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부·비영리 조직으로 각 영역에서 공익적 목표를 지향하는 자발적 결사체.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를 밝고 바르게 만들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운동이다. 정치·사회·복지·환경·교육·문화 등 어떤 분야에서 누가 어떻게 만들고 참여를 하든지 상관이 없다. 이렇게 시민운동을 하는 단체를 ‘시민단체’ 또는 ‘사회단체’라고 하며, 보통은 ‘시민사회단체’라고 한다. 이렇게 시민운동을 하는 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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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사회복지 및 사회봉사를 실천하기 위하여 설립된 단체. 사회복지단체는 종합적인 사회복지 사업을 통하여 지역 주민의 경제적·사회적 난관을 극복하고, 지역 사회의 문제를 예방·치유함으로써 지역 주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사회복지단체는 그 대상에 따라 사회복지단체, 아동복지단체, 노인복지단체, 장애인복지단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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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에서 주위에 비해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산’에는 산봉과 능선이 해당된다. 산봉은 정상부가 높이 솟아 있는 지형이고, 능선은 선 모양으로 길게 높이 솟아 있는 지형이다. 한편 산이 ‘설악산’, ‘오대산’ 등 고유 명사로 쓰일 경우, 산은 일정한 공간적 범위 안에 있는 산봉, 능선, 계곡, 평탄 지형 등을 모두 포괄하여 지칭한다. 강릉 지역에서는 능선들이 뚜렷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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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속한 법정리. 산계리는 주수천 중상류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남양리, 동북쪽은 현내리, 낙풍리, 서쪽은 왕산면 목계리, 남쪽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왕산면 송현리, 북쪽은 북동리, 낙풍리와 접해 있다. 산계리에 산계사(山溪寺)가 있어 산계라 했다. 또 세 골[절골, 황지골, 영밑골]에서 흘러내리는 내가 세 개라 삼계라 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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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사천면에 속한 법정리. 사천면의 동남단에 있으며, 경포 쪽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지역이다. 해안 도로변에 형성되어 있는 마을로서 남쪽으로는 경포대, 북쪽으로는 사천진리를 통해 7번 국도와도 연결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봉인 매봉에서 사방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들의 모양이 해와 달이 입을 맞추는 ‘일월합구형’이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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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속한 행정리. 성산면 면소재지인 구산리와 접해 있으며 구정면·왕산면의 경계 지역에 있다. 동쪽으로는 구정면 제비리, 서쪽으로는 오봉리, 남쪽으로는 왕산면 도마리, 북쪽으로는 구산리와 접해 있다. 강릉 시내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35번 국도와 인접해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산북리’라는 명칭은 칠봉산 서남쪽 낙맥과 새재[왕산면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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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속한 법정리. 강동면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남쪽으로는 옥계면 북동리·낙풍리, 동쪽으로는 강동면 심곡리, 옥계면 금진리, 서쪽으로는 강동면 임곡리, 북쪽으로는 강동면 정동진리·임곡리와 접해 있다. 동남쪽 산 능선에 옛 성터[삼한의 성지로 추정]가 있어 ‘성재의 산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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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지방 즉 산골에 입지하고 있는 촌락에 대한 총칭. 산촌은 자원의 이용과 기술의 활용에 따라 원시산촌, 근대산촌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산업을 기준으로 나누기도 한다. 산업을 기준으로 구분할 경우 산촌은 화전촌락·고랭지촌락·임업촌락·축산촌락·광산촌락·교통촌락·신앙촌락·관광촌락·군사촌락 등으로 나뉜다. 우리나라 산촌은 일반 농사와 함께 화전을 통해 식량을 해결하였는데, 1979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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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문동에 위치한 대한불교 천태종 소속의 사찰. 천(天)·지(地)·인(人)의 법(法)을 다 여는 자리라는 의미의 삼개(三開)라는 말에 연유하여 삼개사(三開寺)라 하였다. 자기 수행을 통하여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깨끗이 소멸하고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최고의 인격을 완성하여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고 또한 이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하여 중생을 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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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속한 법정리이자 행정리. 삼교리는 주문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장덕리, 남쪽으로는 연곡면 퇴곡리, 서쪽으로는 연곡면 삼산리와 양양군 현북면, 북쪽으로는 양양군 현북면과 현남면에 접하고 있다. 세 갈래 길이 있다는 의미의 ‘세거리[三街洞]’와 물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는 의미의 ‘물다리[水橋洞]’라는 이름이 합쳐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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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에 있는 천주교 주문진본당 산하의 작은 교회. 삼산공소는 신도 수가 적어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 예절이 행하여진다.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 성사가 집행된다. 1956년 12월 29일부터 행정공소 교우들에 의해 전교가 시작되어, 1957년 4월 20일 부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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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행정리. 연곡면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릉시의 가장 북쪽에 해당한다. 동쪽으로는 퇴곡리, 주문진읍 삼교리, 서쪽으로는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 조개리, 남쪽은 평창군 대관령면, 북쪽은 양양군 현북면과 접해 있다. 삼산리의 ‘삼산(三山)’에서 1산은 태백 산맥의 낙맥이 동대산으로 이어져 부연동이 되고, 2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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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아이의 출산, 수명과 질병 등을 관장하는 신. 삼신할머니를 찾는 신앙은 아이와 관련이 있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아이의 출산과 수명과 질병 등을 관장하는 신이 삼신할머니이다. 며느리가 출산을 한다면 출산을 쉽게 해달라고 비는 대상이 삼신할머니이고, 또 아이가 아파도 삼신할머니를 찾는다. 출산을 하면 가장 먼저 삼신할머니에게 고맙다고 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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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강릉 일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서울 등 주요 도시에서 비롯된 만세운동은 곧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강릉에서는 초당리 청년 최돈옥(崔燉玉)이 탑골공원의 독립선언 식장에 참여하고 돌아온 즉시 창동회(昌動會)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대체로 강릉 지방의 3.1운동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 후인 4월 2일과 4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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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의 3·1절 기념식 행사 시 벌어진 좌·우익세력들 간의 대립·충돌 사건. 1946년 3월 1일 해방 후 첫 3·1절 기념식을 좌익은 강릉초등학교, 우익은 옥천초등학교에서 각각 개최하였는데, 좌익이 우익의 3·1절 기념식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우익 기념식장에 몰려와 서로 갈등을 빚었다. 3·1절 기념식은 1919년 3월 l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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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기에 정선, 명주[양양 일부 포함], 삼척, 울진을 관할하여 군사정치를 행한 기관. 미소간의 한반도 분단점령이 결정된 후 미군 중장 하지의 지휘 하에 미육군 24군단은 9월 8일 인천에 상륙, 서울로 들어와 9월 9일 삼팔선이남 지역에 대한 군정을 포고한 데 이어, 9월 12일 미군 소장 아널드가 군정장관에 취임함으로써 미군정체제가 수립되었다. 그 후 1948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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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혼상제 가운데 사람이 죽으면 장사지내는 예법. 예속 중 상례는 비교적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므로 격식에 맞추어 행하고 있다. 상례의 시작과 끝은 초종(初終)에서 3년 상이 지난 뒤의 담제와 길제까지이다. 대체로 초종, 염습, 문상, 치장, 기타 제의로 나눌 수 있다. 지역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가례집에 따르고 있고 조선 시대 학파의 색목(色目)에 따라 일부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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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상례를 치르면서 차리는 음식. 상례는 초종으로부터 시작하여 3년상이 지난 후의 담제까지의 과정을 이른다. 대체로 초종(初終), 염습(殮襲), 문상(問喪), 치장(治裝), 기타 제의(祭儀)로 진행된다. 초종은 임종을 맞는 절차이며, 염습은 시신을 수습하여 관에 앉히는 절차이며, 문상은 손님을 맞는 절차이며, 치장은 상여가 장지를 향해 나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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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속한 법정리. 구정면 덕현리와 강동면 언별리와의 경계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시동천 유역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현재 행정 구역으로는 상시동리와 하시동리로 구분되어 있다. 시동은 원래 ‘사동’이라 칭하였다. 박수량의 현손 박진해[호 완하당]는 1639년(인조 17) 기묘년 과거에 진사에 오른 선비이다. 박진해는 원래 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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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상품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넓은 의미로 상업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 활동을 일컫는다. 즉,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재화의 사회적 유통에 관한 모든 활동, 생산 및 소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여 그것들을 지도하는 활동, 가격을 형성하고 조정하는 활동, 유통을 효율화하기 위한 모든 보조적인 활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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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가정 및 시설물에 수돗물을 생산·공급하는 시설과 사용하고 난 물을 처리하는 시설. 일반적으로 수도라고 하면 상수도를 가리키나, 하수나 공업용 수도와 구별하기 위해 상수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수도법에는 파이프에 의하여 음료수를 공급하는 것이 수도의 조건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수도는 사용목적에 의하여 물을 송수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수도는 3가지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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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농촌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시행했던 종합개발사업.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면서 농촌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펼치게 되는데, 농업인들을 위하여 설립된 농협을 중심으로 농촌 소득 제고를 위해 종합적으로 펼친 개발 계획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제창된 새마을운동은 근면·자조·협동정신을 바탕으로 피폐해 있던 농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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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대구(大丘). 자는 강중(剛中), 호는 사가정(四佳亭)·정정정(亭亭亭). 호조전서(戶曹典書) 서의(徐義)의 증손으로, 목사(牧使) 서미성(徐彌性)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1438년(세종 20)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4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다. 그 뒤 집현전박사·경연사경(經筵司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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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서낭신에 기원하는 굿이나 제의(祭儀). 서낭굿은 동제(洞祭)의 일종으로, 제(祭)와 굿이 혼합되어 치러진다. 명칭상 ‘제(祭)’는 비의적(秘儀的) 성격을 띠고 있으며 직접적 참여자는 제관(祭官)이다. 제의(祭儀)의 진행 과정이나 제장(祭場)은 다른 성원들의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반면, 굿은 오신행사(娛神行事)로서 사제자(司祭者)가 중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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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서낭신은 마을신앙 중에서 가장 광범한 분포를 보이는데, 한자로 성황신(城隍神)이라고 쓰는 신격을 봉안하고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강릉 지방에서 서낭신앙에 대한 명칭은 동해안에 접한 어촌과 평야 중심의 농촌, 그리고 대관령을 중심으로 하는 산간 지역에서 그 명칭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어촌에서는 용왕제, 풍어제, 서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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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3리 대곡동 지역에서 벌어진 북한군 유격대원 토벌전투. 북한 제526군은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이며, 한국전쟁으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남파되어,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비정규전 활동을 자행하였다. 제526군 예하에 2개의 연락소와 6개의 지대를 두어, 남한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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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위치한 상설시장. 서부시장의 위치는 임영로155번길 6[용강동 29번지]로 과거 읍성의 북서부에 자리 잡고 있다. 1977년도에 상설시장으로 개설되었다. 서부시장은 1982년 노후된 구 시장 건물을 철거하고 재개발하여 아파트와 시장이 공존하는 복합건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시장의 상세가 부진하고 시장 건물만 콘크리트 구조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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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 기관. 조선왕조 최초의 서원은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이후 서원은 전국 각지에서 꾸준히 증설되었다. 서원은 사림의 장수(藏修)·강학(講學)의 장소이다. 사림들이 서원 건립에 적극적이었던 까닭은 성리학적 지배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도였으며, 이 과정에서 재지사족층의 사회적 역할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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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활동한 신학자이자 교육자. 원적은 대구시 남구 봉덕동 862번지이나 강릉 소재 관동대학교에 근무하며 본적을 강릉시 내곡동 산 72-1번지로 전적하였다. 사리원농업학교[전문대학]와 장로회총회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경북대학교 문리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경북대학교 철학과 강사, 계명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철학과 강사, 장로회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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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행정리. 북쪽으로는 연곡면 송림리와 행정리, 서쪽으로는 노동리와 연곡면 행정리, 남쪽으로는 덕실리와 노동리, 동쪽으로는 판교리와 접해 있다. ‘돌다리’는 사천면 석교리의 옛 이름이다. 과거 사천천의 물을 마을 앞의 넓은 들로 대는 농수로가 있었는데, 이 농수로에 넓적한 돌로 만든 다리가 있어 이를 석교라 하였다. 이 돌다리는 도로가 생기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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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명륜고등학교 주관으로 시행되었던 영동지역 학생 백일장. 영동지역 청소년들의 문학적 재질과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강릉명륜고등학교의 교화인 ‘석류’를 표징하여 8월 방학 중에 폭넓게 시행되었던 문예행사이다. 1984년 8월 14일 강릉명륜고등학교에서 영동지역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하기 시작했던 백일장으로, 1996년까지 시부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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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옥계면 산계 3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사이에 있는 산. 비경의 천연동굴과 석회암이 용해되어 형성되는 카르스트 지형이며 일월문, 비선굴, 가셋골굴, 영밑굴 등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진기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석병산이라는 이름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 지어진 것이다. 북으로는 두리봉[1033m], 남으로는 생계령과 자병산[972m]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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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1951년 말부터 대대적인 남한 내 빨치산들에 대한 토벌로 남한 내에서 유격활동을 하는 세력들이 많이 약화되었다. 1952년부터 남한의 빨치산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은 금강정치학원 출신들을 비롯한 무장부대들을 대거 내려 보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52년 중반 이후에는 남한 내 대부분의 무장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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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석탄을 채굴하는 광산. 석탄광이란 석탄을 경제적으로 채굴, 선별한 후 상품으로 시장에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석탄 이전의 에너지원은 산림이었다. 석탄이 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면서 노천탄광으로부터 지하탄광으로 채탄 작업이 확대되었다. 공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였기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많은 위험과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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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사취, 사주 등이 만의 입구를 막아 바다와 분리되어 형성된 호수. 강릉 지역의 석호는 동부 저지대의 화강암 분포지에 형성되어 있다. 신생대 제4기의 후기 즉,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된 시기에 들어설 당시, 동부 저지대의 화강암 분포지는 전체적으로 지면의 평탄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면이 전체적으로 평탄하면서도 곡지와 분수계가 매우 완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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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석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 석회석광이란 시멘트의 원료가 되는 석회석이 매장되어 있어 채굴할 수 있는 광산을 말한다. 강릉시 옥계면에 위치하고 있는 한라시멘트는 1978년에 설립되었다. IMF위기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 후 2000년에 라파즈와 결합 한라라파즈시멘트로 다시 출발하였다. 기업전용 무역항인 옥계항을 보유하고 있는 한라라파즈시멘트는 강릉의 석회석광을 통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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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중에서 주권자를 대신해서 국가의 일, 국회의 일, 자치 단체의 일을 수행할 공직자를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된 원칙 하에서 선출하는 민주적 방법. 선거권을 가진 사람이 공직에 임할 사람을 투표에 의하여 선정하는 정치적 행위로 여기에는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 선거, 광역 단체장 선거, 기초 단체장 선거, 광역 의회 의원 선거, 기초 의회 의원 선거가 있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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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보통 이 용어 속에는 고고학에서 다루는 석기시대, 청동기시대로 생각되고 있으나, 현존하고 해독이 가능한 문헌사료가 나타나는 시대는 지역에 따라 다르고 또 그 시대의 문화 사회 경제의 발전단계도 각양각색이니만큼, 이 용어의 개념은 상당히 막연하게 쓰이고 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유적을 선사유적, 발견된 유물을 선사유물이라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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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던 모든 형태의 살림 유적. 인간활동의 대부분은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집이란 비, 바람, 맹수로부터 보호해 주며 인간생활의 근간이 되는 곳이다. 따라서 집터〔住居址〕란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후 그들이 생활하며 남긴 구조물이나 유물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유적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주거양식의 대표적인 기와집이 등장하는 시기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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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서 유천동에 이르는 도로. 유천 택지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들이 묵을 숙소를 짓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선수촌로라고 이름하였다. 유천 택지에 택지를 조성하면서 택지 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만들어졌다. 유천 택지와 교 1동 솔올 지구를 연결한다. 길이 1,426m, 폭 12~40m의 2~7차선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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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평창면, 도암면 횡계리 삼정평 사이에 있는 고개. 옛날 대관령에 길이 나기 전 영동 지역으로 가기 위해 나그네들은 선자령으로 넘나들었다. 선자령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고 놀다 하늘로 올라간 데서 선자령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선자령은 백두대간을 이루는 영동과 영서의 분수계 중 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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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음력 1월 1일에 지내는 명절. 설, 설 명절이라 부르고 한자로는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 한다. 설날은 나이를 뜻하는 우리의 고어 ‘살’에서 나왔다는 학설, ‘설다’·‘낯설다’ 등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학설, 새로 솟아난다는 뜻과 마디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 ‘살(sal)'에서 기원했다는 학설 등 여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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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설이나 눈사태로 인해서 식물이나 도로, 건물 따위가 피해를 입는 현상. 기상청에서는 24시간 신적설이 5㎝ 이상 예상될 때 ‘대설주의보’를 발령하고, 24시간 신적설이 20㎝ 이상 예상될 때, 다만 산지는 24시간 신적설이 30㎝ 이상 예상될 때 ‘대설경보’를 발령한다.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서사면의 산악지대와 울릉도 등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의 산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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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정한 구조를 지닌 꾸며낸 이야기. 설화는 크게 신화, 전설, 민담[옛날이야기] 등으로 나뉜다. 설화는 전승자의 태도, 시간과 장소, 증거물, 주인공 및 그 행위, 전승 범위에 따라 다르게 구별된다. 신화는 진실하고 신성하다고 믿으며, 전설은 실제로 있었다고 주장하나, 민담은 꾸며낸 이야기다. 신화는 태초의 신성 장소를 언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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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쪽의 유산동과 신석동 사이를 흐르는 하천. 섬석천은 구정면과 왕산면의 경계가 되는 칠성대[953.6m]를 최고봉으로 하는 일련의 산줄기로부터 북사면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의 물들이 경사급변점에 설치된 칠성저수지와 동막저수지에 저장되고, 이 저수지로부터 흘러나온 물들이 구정면 장현저수지의 물과 합하여 동해로 흘러나가는 하천이다. 칠성저수지와 동막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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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중앙동의 법정동. 성남동(城南洞)의 옛 이름은 ‘남문밖’이며, 강릉읍성 남문 밖에 있다는 뜻에서 ‘성남동’이 유래되었다. 원래 강릉군 남이리면 지역으로 1914년 수문리(水門里), 금학전동리(錦鶴前洞里), 남문외리(南門外里)의 일부를 합하여 욱정(旭町)이라 하고 군내면에 편입하였다가 1946년 일본식 이름을 바꿀 때 성남동이라 했다. 19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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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중앙동에 속한 법정동. 강릉시의 중심부에 있으며, 대부분 주거 지역이나 상업 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강릉시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지역 중의 하나이며 교통의 요충지이다. 성내동의 ‘성내(城內)’는 강릉의 옛 읍성 안을 말한다. 여기서 읍성 안이란 강릉대도호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인 칠사당[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7호]이 중심이었던 성 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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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교회 의식이 행하여지는 건물. 한국천주교는 정조 8년(1784년) 이승훈이 중국 북경에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그람몽(Grammont)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와 이벽과 권일신에게 세례를 준 때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조선 사회는 유학 그 중에서도 주자학이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전반에 뿌리를 내린 시기였기 때문에 유학과는 근본적인 면에서 서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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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에서 포남동에 이르는 도로. 성덕포남로는 강릉시 포남동과 입암 공단 지역을 잇는 강릉 남부 지역의 중추 연결 도로이다. 2008년 포남교가 6차선으로 확장되면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포남교의 개통으로 남대천 남쪽 입암 공단 지역의 물류 수송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교통 편리성이 증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포남동 지역의 만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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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면(面). 강릉시의 중서부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구정면, 서쪽으로는 평창군 도암면, 남쪽으로는 왕산면, 북쪽으로는 사천면과 접해 있다. 고속 도로와 국도가 통과하고 대관령이 있는 강릉시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보현산성이 있어서 ‘성산’이라 하였다. 성산면은 1894년 행정 구역으로 획정되었으며, 1895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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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강릉에 거주 해 온 성씨와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를 통해 그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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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에서 사천면 사기막리에 이르는 도로. 성연로는 성산면과 사천면 사이를 잇는 지방도 415호선에 속한다. 성산면의 구산리, 어흘리, 보광리, 사천면 사기막리의 2개 면 4개 리 산간 지역을 지나간다. 도로가 통과하는 지역의 행정 구역인 성산면과 연곡면의 머리글자를 따서 성연로라고 이름하였다. 성연로는 지방도 415호선의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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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유산동에 있는 복지 시설. 불의의 사고 및 다양한 사유로 남편을 잃고 홀로된 여성 또는 미혼모로서 만 18세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저소득 무주택 모자 가정으로 하여금 3년 동안 입주하여 자립의 의지를 키워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1989년 1월에 강릉 성은모자원으로 설립되었다. 1993년 9월에 강릉 중앙 교회에서 설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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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집의 건물과 가족을 보호하는 신(神). 성주신은 성조신(成造神), 상량신(上樑神)이라고도 부르는데 인간에게 최초로 집짓는 법을 가르쳐 주어 가내평안을 주관하는 가신으로 좌정했다고 한다. 1849년에 편찬된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민가에서는 음력 10월을 상월이라 하여 무당을 청해서 성조신을 받드는데 떡과 과일을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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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세금을 매기고 거두어들이는 행정 사무. 조세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회질서 유지, 국민복리 증진, 사회·경제 등의 제반 정책의 목적 실현을 위해 필요한 재정 수요를 국민에게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강제적으로 부과·징수하는 금전 또는 재물을 의미한다. 국세는 국가에서 거두어들이며 지방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거두어들인다. 국세는 통관 절차를 거치는 물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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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本貫)은 진주(晉州). 자(字)는 망여(望汝), 호는 월주(月洲). 부(父)는 소동명(蘇東鳴), 조부(祖父)는 소억선(蘇億善), 증조부(曾祖父)는 소건(蘇建), 장인은 권식(權植)이다. 1652년(효종 3) 진사가 되고,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장원, 전적을 거쳐 1663년 정언·지평이 되었다. 직언 때문에 권신의 비위에 거슬려 외직으로 전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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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화재의 예방·진압 등의 활동을 통하여 주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하는 활동. 강릉 지역에서는 미군정령 제66호 및 강원도 소방위원회의 결정에 의거하여 1946년 12월 15일 소방서를 설치하여 지역 소방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1950년 5월 27일에는 대통령령 제361호 ‘시·도 소방서의 명칭 위치 및 관할구역에 관한 건’으로 2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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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민간에 전하여 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 속담은 민중 속에서 공감을 얻어 생성된 관용적 표현으로, 지혜와 슬기를 담아 보편적 의미를 강조하며, 일정한 기능을 갖는 간결한 말이다. 우리의 사상을 단적으로, 또 전체적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구전문학의 한 분야다. 가장 간결하고 압축된 언어를 통하여 형상적으로 표현하는 언어생활과 밀접한 사회적 소산물로 생활철학이 반영되며 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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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서 지변동에 이르는 도로. 솔올로는 교동 택지 지역을 남북 방향으로 중앙을 가로지르며 중심축 기능을 수행하는 도로이다. 2001년 준공된 교동 택지 지역의 명칭을 ‘솔올 마을’, 즉 ‘소나무로 둘러싸인 마을’로 명명한 데서 붙여진 도로명이다 솔올로는 홍제동, 교동, 지변동, 유천동 일원에 걸쳐 1997년 3월 24일부터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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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 청솔 공원 내에 있는 시립 화장 시설. 솔향하늘길 화장장은 점차 늘어나는 화장 수요에 적극 대처하고 인근 지역에 원정 화장을 해야 했던 강릉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청솔 공원 내에 건립된 시설로, 2013년 9월 9일 공사를 시작하여 2015년 7월 1일부터 운영을 시작하였다. 솔향하늘길 화장장이 운영됨에 따라 청솔 공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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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를 배향하기 위해 강릉 사족들이 세운 서원. 송담서원은 1624년(인조 2)에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왕현 왼편 아래쪽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630년(인조 8)에 완공되었다. 이때 강릉 유생 최언침(崔彦琛) 등이 청액(請額)을 상소하였으나 인정받지 못하였다. 1659년(효종 10)에 강릉 유생 김속(金涑) 등이 재차 청액을 상소하여 이해 3월에 사액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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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방내리에 있는 사찰. 방현사지(坊縣寺址)에서 서북 방향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1937년 나월화상(蘿月和尙) 이사홍(李思弘)에 의해 창건되었다.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나월화상이 방현사지 내에 삼층석탑을 보고 현재 송라사 위치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던 중 꿈 속에서 백발노장 스님이 현몽하여 “삼층탑 부근 밭 가운데 부처님이 묻혀 있으니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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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들이 무리를 이루어 자라는 군락. 소나무는 구과목 소나무과 소나무속의 상록성 침엽수로 2-5개의 바늘같은 잎이 달린다. 북반구에 널리 분포하며, 소나무속은 100종에 달하고 아시아에는 25종이 있다. 이러한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분포면적을 갖고 있으며 지리산·태백산·치악산 등의 산에는 해발고도 1000-1100m까지 자라며, 백두산에서는 900m까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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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역에서 자라는 송이과의 버섯. 송이버섯은 송이과에 속하며 강릉 지역에서는 주로 9월 하순에서 10월 중순경에 자란다. 20~60년생의 살아 있는 적송림 주변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은 소나무의 정기를 받아 독이 없으며 맛이 달고 향이 좋아 버섯 중의 으뜸이다. 강릉 지역에서 송이버섯이 많이 산출되는 곳으로 사천 사기막, 성산, 옥계 등지이다. 송이버섯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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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을 편으로 썰어 소금, 참기름으로 양념하여 구운 음식. 송이버섯은 송이과에 속하며 강릉 지역에서는 10월 중순경에 출하된다. 송이버섯은 20~60년 된 살아 있는 적송림에서 생기는 것으로 소나무의 정기를 받아 독이 없으며 맛이 달고 향이 좋아 버섯 중의 으뜸이다. 송이버섯이 최초로 등장한 문헌은 『삼국사기(三國史記)』로, 704년(선덕여왕 3) 진상품으로 올렸다는 기록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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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을 넣고 지은 밥. 송이버섯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북한, 중국 대륙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상북도가 전국 수확량의 약 65%, 강원도가 약 27%를 차지하고 있으며, 강원도 양양·인제·삼척·강릉·고성과 경상북도 울진·영덕·봉화 지역에서 주로 생산된다. 색상이 자연스럽고 광택이 있는 것으로 갓이 둥글며 갓 모양으로 피어나지 않은 것이 좋다. 또한 향미가 양호하며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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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위치하고 있는 해변. 길이 700m, 면적 2만8천여㎡의 백사장과 주변의 송림이 유명한 해변이며, 이들 소나무로 인해 임진왜란 때에 강릉이 왜군들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고려 충숙왕의 부마 최문한(崔文漢)이 송도에서 강릉으로 올 때, 소나무 8그루를 가져와 이곳에 심고 팔송정이라 하였다. 그 후 마을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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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북쪽은 초당동, 서쪽은 포남동, 남쪽은 성덕동, 동쪽은 동해와 접하고 있으며, 법정동인 송정동과 견소동을 관할하고 있는 행정동이다. 고려 말 충숙왕의 부마 최문한(崔文漢)과 부인 선덕 공주가 송도에서 강릉으로 올 때, 여덟 그루의 소나무를 가지고 와서 이곳에 심어 푸른 숲을 이뤘다 하여 팔송정(八松亭)이라 하였다가, 후에 ‘팔’자를 없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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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제526군은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1951년 1월에 조직된 부대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을 재건하기 위하여 남파되었다.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비정규전 활동을 하였는데, 예하에 2개의 연락소와 6개의 지대를 두어 남한 각 지역에 1개 지대씩을 침투시켰으며 지역별로 유격활동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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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있는 법정리. 왕산면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동쪽으로는 정선군 임계면 임계리, 서쪽으로는 대기리, 남쪽으로는 고단리, 북쪽으로는 목계리와 접해 있다. 송현리의 지명 유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조선 태조 때 송경(松京)을 생각하며 강릉의 서남쪽을 송현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송현리는 본래 구정면 지역으로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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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미역쌈은 다시마과에 속하는 쇠미역을 데쳐서 초고추장에 싸서 먹는 음식. 강릉 지역의 동해안 바닷가에서 채취한 쇠미역은 다시마과에 속하는 1년생의 온대성 해조류이며 옛날부터 중요시되어 왔던 알칼리성 식품이다. 강릉 지역의 동해안에서 채취하는 미역의 종류로는 미역, 쇠미역사촌 그리고 깊은 곳에서 서식하는 야키사리 구멍쇠미역이 있다. 쇠미역이라 불리는 쇠미역사촌은 한류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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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2동에 있는 마을. 수리골은 강릉종합경기장에서 북쪽에 있는 경포호 쪽으로 가는 곳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수리골에 큰 나무가 많이 있어 숲이 우거졌었는데 사람들이 나무를 다 베어 내고 논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논들이 수렁이 져서 일하러 논에 들어가면 무릎까지 차서 일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하여 ‘수렁이 진 골’이라는 뜻에서 수렁골이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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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자수(刺繡)를 놓은 보자기. 강릉 지방 특유의 문양이 새겨진 민보(民褓)를 말하며 강릉수보(江陵繡褓)라고도 한다. 수보의 겉감은 면직물이고 안감은 명주를 많이 썼다. 이것이 견직물과 견사로 제작된 여타 자수품과 다른 점이다. 수보의 문양으로는 나무, 새 무늬가 가장 많고 여기에 곁들여 학, 봉황, 공작 등의 서조(瑞鳥)와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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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은유를 써서 어떤 대상을 언어로 정의하고 이를 알아맞히는 놀이. 수수께끼는 짧은 은유의 언어 표현인 점은 속담과 유사하지만 우주와 자연과 인간에 관한 원초적인 물음을 포함하고 있어 속담에 비하여 더 근원적인 언술형태로 볼 수 있다. 수수께끼는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쌍방이 참여하여 주고받는 놀이의 하나이다. 묻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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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일대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1951년 7월 7일부터 시작되자 노동당은 남한 지역에서 제2전선 역할을 수행하던 빨치산 유격대 체제를 지구당 체제로 개편할 것을 지시했다. 강원도 지역의 제2지구로 설정되어 있던 빨치산들은 남한의 지속적인 토벌로 인해 그 세력들이 많이 약화된 상태였다. 이에 북한은 1952년부터 남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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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예언·신유 등 성령의 은사를 핵심 교리로 주장하는 개신교 교파. 순복음교가 강릉에 발을 내딛은 것은 1975년 강릉시 노암동 양지목욕탕 지하실에 자리 잡은 강릉 중앙순복음교회였다. 이후 강릉 지역에는 11개의 순복음교회가 세워졌다. 교세가 부흥되지 않아 유명무실하다가 1984년 강릉 중앙순복음교회를 이어받아 김용덕 목사의 인도로 10여 가정이 순복음 영동교회로 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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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강릉부 북쪽의 사화면(沙火面)[지금의 사천면]에 있었던 제방. 제언이란 바닷물이나 강물을 막아서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 일부를 가로질러 막은 돌이나 흙으로 쌓은 둑을 말한다. 조선 시대의 토목 건설 공사는 대부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담수하거나 수재 예방을 위한 제방을 쌓는 일이나 염전에 바닷물을 가두기 위하여 둑을 쌓는 일이다. 그 밖에도 영동 지역은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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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의 덕고개에서 발원하여 강동면의 상시동리와 하시동리를 지나 풍호(楓湖)로 흐르는 하천. 시동은 원래 사동이라 칭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1639년(인조 17)에 진사에 올랐던 박진해라는 선비가 원래 살았던 강동면 안인동의 바다 쪽에서 보다 내륙에 위치한 사동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마을이름을 시동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고 한다. 이는 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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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여러 가지 세시 풍속을 행하는 달인 음력 시월. 음력 10월은 ‘좋은 달’, ‘으뜸 달’이라는 뜻으로 상(上)달이라 부르며, 강릉의 가정에서는 집안의 여러 신에게 고사를 올린다. 상달은 수리달과 같은 의미로 ‘상’은 높다는 뜻과 신(神)의 의미를 지닌다. 고대 한민족은 5월과 10월 농공시필기(農功始畢期)에 천신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상달의 고사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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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장소. 시장은 재화,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로 여기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광의의 개념으로는 금융시장, 석유시장 등 세계 무역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여기서는 시장 개념의 원론적 서술이 아니라 강릉 지역의 재래시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장의 1차적 기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 거래를 하는 행위에 있다. 즉 팔사람[상인]과 살사람[고객]의 흥정으로 상행위가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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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2리 청학동에 있는 너래반석. 식당암은 소금강사 앞 냇가에 있는 너래반석으로 100여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데 율곡이 쓴 「청학동 유산록」에는 ‘식당암을 비선암(秘仙岩)이라 고치고, 이 일대를 천유동(天遊洞)이라 하고, 바위 바로 아래에 있는 못을 경담이라 하고 이곳 전체를 청학동 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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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지역 내에 분포하는 식물의 종류. Yim과 Kira에 의한 한반도 온도대에 따른 구분에 의하면 강릉은 난온대 낙엽 활엽수림대[북부]에 속한다. 이·임[1978]이 식물의 과(科), 속(屬)의 각 분류군의 분류역을 비교·검토하여 구획한 한반도의 식물구계구분에 의하면 중부아귀에 속한다. 강릉시는 강원도의 태백산맥 동쪽, 영동의 중앙에서 동서로 약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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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음식, 의례음식을 아우르는 음식 문화의 총칭. 강릉 지방은 지리적으로 태백산맥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어 산촌·어촌·농촌의 다양한 촌락구조를 이루고 있다. 산촌과 농촌은 예전부터 평야가 적고 산지가 많아 쌀농사보다는 메밀 같은 밭곡식을 주로 생산하였으며, 산악이나 고원지대에서는 감자, 옥수수, 산채, 도토리 등을 많이 채취하였다. 이와 같은 것들은 예전에는 구황식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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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2월 3일에 결성된 항일단체인 신간회의 강릉 지역 지회. 1926년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정우회에서 비타협적인 민족주의와 통일전선을 구축하자는 제안을 발표함으로써 국내의 민족해방통일전선이 구체화되었다. 그 결과 1927년 12월 국내 민족유일당운동의 좌우합작 모임으로서 신간회가 창립되었으며, 강릉을 비롯하여 각 지방에 지회가 설립되었다. 신간회는 1927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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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월. 자는 용석(用錫), 아호는 명호(冥湖). 신윤형(辛尹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신보상(辛輔商)이고, 아버지는 부제학 신응시(辛應時)로, 이이(李珥)의 문인이다. 어머니는 정기(丁琦)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진사가 되고, 1584년 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예문관 등에서 관직 생활을 한 뒤 1591년 병조 좌랑으로 진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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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영월. 아버지는 홍문관박사(弘文館博士)를 지낸 신응명(辛應命)이다. 당종(堂從)인 아호공(丫湖公) 신경진(辛慶晋)이 강릉에 부임해 올 때 같이 따라와 거주하였다. 일찍이 사마시에 올랐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산수를 찾아 유람하며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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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0월 26일 신대령 부근에서 벌어진 무장공비토벌전투. 남한 내 빨치산들에 대한 지속적인 토벌로 인해 유격활동을 하는 세력들이 많이 약화되자, 1952년부터 북한은 남한의 빨치산을 지원하기 위해 무장부대들을 대거 투입하였다. 그러나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대부분의 무장투쟁 세력은 주로 산악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강릉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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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남쪽을 흐르는 신리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조선시대 강릉 지방의 계곡이나 하천의 다리는 대부분 징검다리였으며, 비교적 사람의 왕래가 많고 하천에 흐르는 물이 많은 곳에는 교량이 있었다. 신리교는 강릉부 북쪽 50리 지점에 있었으며, 1929년에는 철교로 개설하였다. 신리교는 강릉에서 주문진을 잇는 7번국도에 위치한 중요한 교량이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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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남쪽을 가로지르는 하천. 신리천은 강릉시 주문진읍과 강릉시 연곡면의 경계가 되는 철갑령[1012.6m] 능선을 분수계로 하여 그 서쪽은 부연천이 양양 남대천의 상류가 되고, 동쪽으로 신리천의 최상류를 이룬다. 여기서 흘러나온 이 하천은 거의 직선으로 동해로 흐른다. 신리천의 분수계가 되는 주요한 산줄기는 철갑령으로부터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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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 삼거리에서 삼교리에 이르는 도로. 신리천로는 신리천을 따라 길게 동서 방향으로 연결된 도로이다. 주문진읍 장성리, 교항리, 장덕리, 삼교리 등 4개 마을을 지난다. 도로가 주문진읍 삼교리 철갑령 기슭에서 발원하여 장성리 해변 바다에 연결된 신리천을 따라 형성되어 신리천로라고 이름하였다. 신리천을 따라 주문진읍 교항리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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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계흠(季欽), 호는 송정(松亭). 고려 때의 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증조는 문희공(文僖公) 신개(申槩), 할아버지는 신자승(申自繩), 아버지는 신숙권(申叔權),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부인은 이사온(李思溫)의 딸 용인이씨이다. 아들이 없고 딸만 다섯을 두었는데 첫째는 장인우(張仁友)의 부인, 둘째는 이원수(李元秀)의 부인인 신사임당(申師任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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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또는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시사에 관한 뉴스를 비롯한 정보·지식·오락·광고 등을 전달하는 정기 간행물. 통상 신문사라 불리는 전문기업이 일간 또는 주간으로 뉴스 보도를 주로 하여 발행하는 일반지를 가리킨다. 발행형태에 따라 일간지·격일간지·주간지·순간지(旬刊紙)·월간지로 구분된다. 현재 강릉을 포함한 강원도 지역에서 발행되었거나 발행되고 있는 신문 중에 격일간지로는 『동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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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릉 출신의 여류 예술가 신사임당을 추모하는 다례 의식. 강릉에서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을 추모하는 다례제로는 먼저 매년 강원도가 주최하는 신사임당상 시상식 날 동포 다도회 주관으로 강릉 오죽헌(烏竹軒) 신사임당 상 앞에서 열리는 신사임당 헌다례 및 들차회가 있다. 2000년에는 1999년 조직된 율곡 학회 부설 여성 단체 사임당 21에서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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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유천동에 있는 신사임당의 동상. 신사임당은 1504년 음력 10월 29일, 강릉 북평촌에서 평산신씨 신명화 공의 다섯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모든 여성의 사표로 덕과 학문, 예능을 고루 갖춘 여류문인이자 화가, 서예가로 알려져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974년 10월 26일 강원도 주관으로 동상을 건립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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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학문과 효성, 덕행을 겸비한 강원도 출신 여성에게 수여되는 상. 학문과 효성, 덕행을 겸비하여 한국 여성의 표상이 되는 신사임당의 얼을 높이 기리고, 이를 후손들에게 널리 선양하고자 ‘신사임당상’을 제정하였으며, 어진 인품과 부덕을 갖춘 훌륭한 어머니로서 지역 사회 발전과 향토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하여 모든 여성의 귀감이 된 자에게 수여하고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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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약 기원전 1만년 전부터 1천년까지의 석기시대의 최종 단계. 신석기시대에는 식량을 채집하고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 단계에서 더 나아가 간석기의 사용으로 농경·수렵·벌채용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의 의존에서 벗어나 자연을 이용 개발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였다. 이는 정착생활을 가능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문명형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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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무형 문화재 제13호 강릉 단오제 굿 부문 예능 보유자. 삼척에서 출생하였지만 강릉으로 이사와 살면서 강릉 단오굿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세습무로 일가를 이루어 현재 남동생 신동해(申東海)[악사], 아들 김명익[악사]·김명광[악사]·김명대[악사], 며느리 빈순애(賓順愛)[세습무], 외손주 박현수, 외조카 김장길 등이 대를 이어 단오굿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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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쪽 강남동에 속한 법정동. 신석동은 동쪽으로는 운산동, 서쪽으로는 박월동, 북쪽으로는 모산봉 기슭의 유산동에 접하고 있다. 섬석천 중류에 넓은 저평지를 배후지로 하여 발달한 마을이다. 신석동은 원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납이 든 돌이 많이 나서 ‘납돌’이라 하는데 이를 한자로 고쳐 ‘신석’이라 한다. 신석동은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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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평산. 주부(主簿) 신성하(辛聖河)의 현손이다. 아버지가 병이 나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며칠을 더 살도록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장끼가 묘막에 날아들고 황작(黃雀)이 보금자리를 만드는 기이한 일이 있었다. 또 산불이 났을 때 묘소 주위를 돌며 울부짖으니 불길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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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영월. 호는 북천(北川). 무과(武科)에 올라 훈련원(訓練院) 주부(主簿)와 의주진관(義州鎭管) 옥강만호(玉江萬戶)를 역임하였다. 일찍이 무과에 올랐으나 벼슬에 나갈 뜻이 없었다. 그리고는 재산을 모아 갑부가 되었다. 1688년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문인(門人)들과 더불어 호해정(湖海亭)에서 강론할 때 김창흡에게 별도로 집 한 채를 지어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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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지극한 효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으며, 남편 신세린(辛世麟)이 죽자 다락에서 떨어져 같이 죽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집안사람들이 구해 주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소상(小祥)을 맞아 또 죽으려고 했지만 구조되어 죽지 못했다. 평생 동안 세수를 하지 않고 머리를 빗지 않았으며, 날마다 피죽을 조금씩 먹을 뿐이었다. 봄가을로 남편의 새 옷을 지어 놓고 불살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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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법정리(里). 서쪽은 유등리, 동쪽은 송림리·석교리, 북쪽은 행정리, 남쪽은 사천면 사기막리에 접하고 있다. 옛날에는 마을이 없는 허허벌판이었으나 근래에 개간하여 논밭을 일구어 사람들이 살면서 새롭게 성한 모습으로 일어선다는 뜻에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강릉군 연곡면에 속하게 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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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신왕리에 있는 저수지. 신왕저수지는 신왕리의 뒤편 골짜기 입구에 있는 소규모 저수지로,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연곡천 일대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신왕리 골짜기의 계류를 막아 건설하였다. 신왕저수지는 1955년 9월 8일 착공하여 1961년 12월 30일 준공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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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신왕리를 흐르는 하천. 소황병산 북쪽에서 발원하여 새왕이에서 연곡천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흘러 연곡천에 합류하는 신왕천은 크게는 오대산국립공원의 일부 지역이 포함되어 있다. 백두대간 중 연곡천의 최상류 지점인 노인봉[1338m]에서 남쪽으로 산줄기가 내려와 소황병산을 이루고 그 산줄기가 다시 남동남향으로 이어져 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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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영산(靈山). 호는 무절(武節). 판개성부사 신부(辛富)의 아들이다. 신유정(辛有定)은 음보(蔭補)로 산원(散員)이 되었고 용맹이 뛰어났다. 1386년(우왕 12)에 정용호군(精勇護軍)이 되어 족형인 충청도도원수 이승원의 휘하에서 남해의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1397년(태조 6)에 이산진 첨절제사가 되었고, 1400년(정종 2)에 왕세자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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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국권수호에 앞장 선 의병. 1907년 김용상(金龍商)의 휘하에 들어가 인제군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1908년 3월에는 김용상으로부터 의병 모집 임무를 부여받고 횡성군 일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17일 경성 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유형(流刑) 7년을 언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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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를 기준으로 할 때, 1900년대를 전후로 만들어진 신흥종교. 현재 한국에서 1900년대를 전후로 만들어진 종교로는 천도교, 원불교, 증산도, 대순진리회, 성덕도 등이 있다. 이들 종교는 모두 민족종교임을 내세우고 있는데, 대부분의 종교 교리는 유불선 및 기독교의 이념마저도 흡수·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1. 천도교(天道敎) 천도교는 1860년 4월 5일 조선 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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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있는 법정리. ‘심곡(深谷)’은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한글로는 ‘짚일’이라고 하는데 깊은 골짜기라는 뜻의 깊일이 짚일로 변했다. 또한 ‘짚일’을 ‘지필(紙筆)’이란 한자어로 사용하여 종이와 붓이라는 뜻으로 마을의 형상이 종이를 땅바닥에 깔아 놓은 듯 평평하고, 그 옆에 붓이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심곡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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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에 있는 항구. 본래 마을 모양이 종이를 바닥에 깔아 놓은 듯이 평평하면서 그 옆에 붓이 놓여 있는 형국이라 하여 이전에는 지필(紙筆)로 불리었다. 그러나 1916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심곡이라 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에 위치해 있다. 마을이 다른 마을과 멀리 떨어진 오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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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강원도 강릉시에서 주로 활동한 서예가. 1888년 12월 7일 강원도 동해시 북평동 단곡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으나 강릉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자는 시택(時澤), 호는 계남(桂南)이다. 고려 말 예의판서,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심동로(沈東老)의 18대손이며, 명주군왕의 후손인 강릉 김병익의 외손이다. 어려서 백부인 심진하 아래에서 수학했고, 15세부터 20세까지 5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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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 소돌마을 바닷가인 죽도를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는 공원. 아들바위는 죽도바위라고도 하며, 쥬라기 시대인 일억 오천만년 전에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지상에 솟은 바위이다. 죽도바위는 코끼리처럼 생겼다하여 코끼리바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여 소원바위라고도 하며, 자식을 원하는 사람이 기도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어 아들바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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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리에 있는 마을. 옛날 연곡천 변에 해당화, 찔레 등 가시덩굴이 많이 자라서 ‘초시(草柴)’라고 이름 하였고, 위치에 따라 윗초시와 아랫초시로 나눈다. 아랫초시는 소나무가 천변 근처에 많이 있고 하천에 맑은 물과 모래가 있어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휴가지로 찾아오는 곳이다. 특히 영동고속도로의 연곡천 교량 밑은 더위와 비를 피하는 피서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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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술과 관련된 산업전반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 정보기술산업이란 정보를 가공하고 처리하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생활의 편리함을 주는 모든 산업을 통칭한다. 강릉 지역에서 정보산업은 대학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릉대학교에 처음으로 1988년에 전자계산학과가 신설되었고, 1990년에는 반도체공학과가 신설되었다. 오늘날 대학원의 석·박사 과정을 갖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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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거주하는 안동권씨의 종친회. 숭조이념의 확립, 애족사상의 고취, 후학계도의 기여, 사회윤리의 배양을 종시(宗是)로 세워 종족간의 친목과 화합을 목적으로 한다. 강릉 입향 시조의 제의 봉사, 족보편찬, 족인들의 화합모색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연건평 400여 평의 대종회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회장 1인, 부회장 2인, 감사 2인, 운영위원 2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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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송정동 남대천 하구의 바다와 연접해 있는 어촌. 안목마을은 원래 견조(見潮)라고 했다. 그런데 안목마을 앞의 견조봉(堅造峰)에 올라가 남대천에서 흘러온 물이 바다로 빠지는 것을 보면 물살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여 견소(見召)가 되었다. 『대동여지도』에는 ‘견조’로 표시되어 있다. 견조봉은 원래 육지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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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해안에 있는 법정리. 안인진리는 마을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안인에 있는 진(津)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여기서 진이란 바다와 접한 항구를 지칭한다. 그러므로 안인진은 바닷가에 입지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안인진리는 군선강 하구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앞엔 봉화를 올리던 해령산이 있다. 해령산 중턱에 해령사와 해랑당이 있고 동쪽 밑 바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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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있는 항구. ‘안인(安仁)’은 조선시대 관청의 일을 하던 강릉시내 칠사당(七事堂)을 중심으로 해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안(安)’은 편안함을 ‘인(仁)’은 방위상 동쪽을 의미하여 ‘안인(安仁)’은 ‘강릉 동쪽의 편안한 곳’이란 뜻이 된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은 승용차로 강릉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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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위치한 해변. 1976년 7월 1일에 개장되었다. 해빈의 길이 800m, 폭 25m, 면적 13,000㎡으로 모래 질은 양호하며 수질은 청결하다. 기반 시설과 편의 시설은 피서객의 이용에 매우 미흡하며 인근의 등명 해변의 개발로 지명도가 다소 떨어지는 지역이다. 안인해변은 다른 동해안의 해변과는 달리 백사장의 규모가 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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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화재 예방·진압 등의 소방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최 일선에 설치된 소방 행정 기관. 소방 파출소는 소방 행정에 대한 국민들의 수요의 증대와 함께 발전해 왔다. 강릉 지역에서도 지역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에너지원도 화재발생 위험이 높은 전기, 가스, 석유 등으로 다양해지고, 화재도 다양화·대형화됨에 따라 보다 적극적인 소방 행정의 전개가 절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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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字)는 사청(嗣淸), 호는 쌍청당(雙淸堂), 시호는 문간(文簡). 아버지는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낸 안축이다. 1325년(충숙왕 12)에 태어났으며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1382년(우왕 8)에 관직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 이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나 2년 뒤인 1394년(태조 3)에 세상을 떠났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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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시호는 문정(文貞). 할아버지는 안희서(安希償), 아버지는 안석(安碩)이며, 어머니는 검교 군기감 안성기(安成器)의 딸이다. 고향인 순흥의 죽계(竹溪)[지금의 풍기]에서 세력기반을 가지고 중앙에 진출한 신흥유학자층의 한 사람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사록(全州司錄)·사헌규정(司憲糾正)·단양부주부(丹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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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에 있는 법정동. 쟁골[제궁동]에서 하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왼쪽으로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높이 날던 기러기가 날개를 편 채 평평한 모래톱으로 내려앉은 모습]으로 생긴 안고개라는 마을이 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안현동은 원래 강릉군 하남면 지역으로 1914년 안현리라 하여 정동면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 정동면이 경포면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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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서 안현동에 이르는 도로. 안현로는 강릉 외곽 지역에서 차량들이 복잡한 강릉 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경포와 사천 지역으로 갈 수 있게 개설한 도로이다. 안현로 건설로 시 외곽으로부터 경포, 사천 지역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향상되었다. 안현동을 이용하는 도로라는 뜻에서 안현로라 이름하였다. 안현동은 쟁골[제궁동]에서 하천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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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의 방골에서 발원하여 산대월리의 지재를 지나 사근진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하천. 안현천(雁峴川)은 사천면에서 발원하여 안현동(雁峴洞)의 안고개를 지나 경포호로 흐르던 하천이었고 안현이라는 이름은 안현동의 지명을 따서 붙인 것이다. 그리고 ‘안현동(雁峴洞)’은 그 마을에 평사낙안(平沙落雁)으로 생긴 ‘안(雁)고개(峴)’가 있다고 하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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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기반암이 단단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해안. 산지와 구릉지에서는 기반암 풍화층 밑에 단단한 기반암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지 또는 구릉지가 해안에 인접해 있는 경우, 파랑(파도) 에너지가 산지 또는 구릉지를 침식하면 기반암 풍화층이 제거되고 그 밑에 있던 단단한 기반암이 해안에 드러나게 된다. 강릉 지방의 암석해안에는 암석 절벽, 암석 평탄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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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강릉에서 설립되었던 문학단체. 1979년 개인과 개인이 심장이 닿는 공간에 시적 위치를 설정하면서 체험의 공유를 믿는 당시 젊은 시인군으로 장병훈, 이종린, 신승근, 박남철, 박기동, 박용재 등이 결성한 문학단체이다. 참신한 동인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자체적으로 무크지 『관동별곡(關東別曲)』을 발간하여 문학계의 시선을 끌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강릉시 금학동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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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또는 한약사가 의약을 조제하거나 판매하는 곳.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으며, 약국을 개설하려는 사람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개설 등록을 하여야 한다. 약국과 약국이 아닌 의약품 판매업체와의 차이는 조제의 여부뿐만 아니라, 취급되고 있는 약의 종류에도 큰 차이가 있다. 약국이 아닌 의약품 판매업체에서는 전문지식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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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임당동에 있었던 약국서낭신을 모신 신당. 강릉단오제 때 화개를 앞세우고 대성황사를 출발하여 약국성황, 소성황을 거쳐 시장, 전세청, 대동청, 사창청에서 굿을 하고 화개는 여성황에 신간(神竿)은 대성황사에 봉안한다고 하였다. 약국서낭신은 강릉의 북쪽으로 연결되는 도로의 노신적(路神的) 성격을 지닌 서낭이라 할 수 있다. 약국(藥局)이라는 명칭은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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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찹쌀에 약수물과 인삼, 밤, 대추, 은행, 콩, 등을 넣어 지은 밥.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쌀을 중심으로 밥을 지었으나 쌀뿐만이 아니라 잡곡류, 두류, 견과류, 채소류, 어패류, 수조육류 등을 혼합하여 다양한 밥을 짓기도 하였다. 찹쌀은 깨끗이 씻어 30분 정도 불렸다가 체에 건져 물기를 뺀다. 인삼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큼직큼직하게 어슷어슷 썰고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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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에 대추·밤·잣 등을 섞어 찐 다음 기름·꿀·간장으로 버무려 만든 음식. 정월 보름에 먹는 명절음식의 일종이다. 요즘은 회갑·혼례 등의 큰 잔치에 만들어 먹기도 한다. 약식은 꿀이 들어갔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조선 후기 정약용이 쓴 『아언각비(雅言覺非)』에는 ‘우리나라에서는 꿀을 흔히 약(藥)이라 한다. 따라서, 밀주(蜜酒)를 약주(藥酒), 밀반(蜜飯)을 약반(藥飯),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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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본관은 청주.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해(滄海)·해객(海客). 주부인 양희수(楊希洙)의 아들이다. 조선 중기에 문명을 떨쳤던 양사준(楊士俊)이 형, 양사기(楊士奇)가 아우이다. 1546년(명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현감(三登縣監)·평창군수(平昌郡守)·강릉부사(江陵府使)·함흥부윤(咸興府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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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에 있는 마을. 양짓말은 옥계면의 바닷가와 인접한 곳에 위치해 있다. 양짓말 바로 남쪽에 낙풍천이 흘러 옥계 중심지를 흐르는 주수천과 합류하여 동해로 유입한다. 그 하천 하구에 옥계항이 자리 잡고 있다. 낙풍천은 두리봉에서 북동쪽으로 갈라져 옥계면, 강동면, 왕산면의 경계가 되는 만덕봉을 지나 북동쪽으로 이어져, 만기봉과 덕우리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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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고려가 이성계에 의해 멸망하자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최문한, 김충한, 이장밀, 김경 등이 이곳에 와 고려 우왕의 위패를 모신 어단을 쌓아 놓고 고려 사직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은 불사이군의 선비 정신이 나타난 곳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는 설과, ‘고기를 잡는 큰 못의 모습’처럼 되어 있는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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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섬석천의 지류 중 하나. 어단천(於丹川)의 ‘어단’은 마을이름인 어단리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단리는 고려 말 강릉주현의 제유인 벼슬아치들이 낙향하여 인근인 금광리에 은거하면서 이곳에 제단을 만들고 임금을 향해 망제를 올렸다하여 ‘어단리(於丹里)’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단천은 길이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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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육에 식염을 가해 다진 다음, 설탕·녹말 등의 조미료를 넣고 반죽을 만들어 찌거나 구워서 단백질을 가열 응고시킨 식품. 어묵은 일본에서 처음 만든 식품인데, 일본말로 가마보코라 한다. 한국의 요리책 가운데 1740년경 중인 계급인 역관 이표(李杓)가 쓴 것으로 『수문사설(搜問事設)』에 처음 어묵이 등장하는데, 일본말인 가마보코에서 그대로 가마보곶(可麻甫串)이라 표기하였다. 기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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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예를 다해 부모를 섬겼으며, 시부모를 봉양하는데도 예를 다하였다. 또한 남편 어사충(魚史忠)에게는 순종하고 정숙하였다. 남편이 병이 나자 하늘에 기원하였으나 끝내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큰 아이에게는 밥을 먹이고 젖먹이를 재운 후 남편을 따라 죽었다. 어사충 처 김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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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잡거나 기르는 것을 업으로 하는 수산업의 한 형태. 판매하여 수익을 남길 목적으로 수산동식물을 포획·채취하는 어로활동으로 수산업의 한 형태이다. 강릉에서의 어업은 내수면어업과 해면어업으로 나뉜다. 내수면어업은 다시 내수면 어로어업과 내수면 양식어업으로 나뉘는데, 내수면 어로어업은 주로 저수지·하천·호수에서 활동이 벌어진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치어방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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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증승정원주서 어사상(魚史商)의 아들이며, 경종의 장인인 어유구(魚有龜)의 재종제이다.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를 거쳐 171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17년부터 정언·수찬·지평 등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경종 즉위 후에 지평·헌납·장령·사간 등 양사의 벼슬에 있을 때 노론·소론의 분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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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인 어유룡(魚有龍)[1678~1764]의 공적을 기리는 선정비. 어유룡(魚有龍)은 조선조 문신으로 자는 경우(景雨), 본관은 함종(咸從), 1710년 진사에 입격하였고, 171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30년부터 1732년까지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냈다. 1732년 강원도 관찰사로 승진하여 교체되었다. 어유룡(魚有龍)이 강릉대도호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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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집이 가난하여 광릉(廣陵)에서 강릉도호부 봉평(蓬坪)으로 이사를 왔다. 이씨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고, 남편 어주현(魚周顯)이 죽자 시집 올 때 가지고 온 옷을 팔아 장례를 치렀다. 또 시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얼마 안 되는 토지를 팔아서 시아버지를 광릉에 있는 선영(先塋)에다 모셨다. 그 후부터 빗질과 세수도 하지 않았으며 26년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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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나 강, 호수 등의 가에서 어업이나 양식업 등 수산업을 주요 생산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촌락. 강릉 지방은 64.5km에 이르는 긴 해안에 접해 있고,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연안으로부터 2~4㎞까지는 수심이 40~50m정도이다. 전반적으로 대륙붕이 빈약하여 주로 회유성 어류자원을 중심으로 한 어선어업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그러면서도 동해안의 다른 지역과 비슷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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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업협동조합법에 의하여 설립되는 어촌의 기본조직인 계(契). 어촌계는 수산업협동조합법에 의하여 설립되는 어촌의 민주적 소조직으로서 수산업협동조합의 계통조직 가운데 하나이다. 구성원은 지구별 수산업협동조합의 조합원이며 원칙적으로 어촌자연부락을 단위로 조직하도록 되어 있는 단체이다. 어촌계는 법인 또는 비법인으로 설립할 수 있으며 설립을 위해서는 구역 안에 거주하는 지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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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세워진 강릉읍성의 남문. 신선을 의미하는 어풍지객(馭風之客)이라는 말에서 ‘어풍’을 따서 명명한 것으로 보이며 ‘어풍’은 바람이 많은 강릉 지역에서 바람의 힘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강원도 강릉시 경강로 2007[남문동 164-1번지]에 있는 강릉의료원 앞 삼거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관동읍지(關東邑誌)』에 의하면 남문인 어풍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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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나 글로써 의사를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 또는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언론은 방송·신문·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한다. 이들 언론매체를 행정상으로 분류하면 공연시설·신문사·기타로 나뉜다. 공연시설에는 TV방송·케이블 TV방송·라디오방송이 속하고, 신문사에는 일간신문·특수주간신문·기타간행물이 속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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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효도가 극진하여 어버이가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셨을 때 예를 다하였다. 백발이 되도록 경학(經學)을 공부했으나 과거에는 한 번도 급제하지 못했다. 이 사실이 나라에 알려져 특별히 선원전참봉(璿源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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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강릉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함양. 자는 여효(汝孝). 1648년(인조 26)에 생원이 되었다. 1649년(인조 27)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에 임명되었다. 후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거쳐 재령군수(載寧郡守)·강릉부사(江陵府使)·철원부사(鐵原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669년(현종 10)에 강릉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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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여성의 복리 증진과 건강, 행복한 생활, 그리고 여성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단체.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가정과 노동, 사회, 정치 등 많은 면에서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로서 대우받아 왔다. 전통적 남녀 차별주의와 가부장제적 유풍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 스스로가 자신들을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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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호는 몽양(夢陽).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하였다. 고향에서 한문을 수학한 후 1900년 배재학당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흥화학교(興化學校)로 전학했으며, 1902년 관립우체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에 평양장로교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일본 군호를 안 쓴다는 이유로 강릉으로 퇴거 명령을 받았다. 1913년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南京) 진링대학(金陵大學)에 입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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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강원도 강릉시의 역사. 강릉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선사 유적지를 통해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선사 유적지는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송림리, 사천면 가둔리·판교리, 강동면 안인리·하시동리, 강릉시 토성지와 지변동·교동·안현동, 옥계면 금진리 등 대부분 바닷가 호수변이나 하천 유역의 낮은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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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로(驛路)에 세워 통신, 숙박, 교통 기능을 담당하던 곳. 역은 역관(驛館),역참(驛站),우역(郵驛)등 다양하게 불리며 중국의 역전제도(驛傳制度)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역원제도가 실시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이다. 조선시대 역의 명칭은 참(站 ),관(館), 합배(合排)등으로 불렸는데 세조 3년에 역승을 혁파하고 찰방으로 대치하다가 15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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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녹색농촌 체험마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농촌 및 산촌 마을 중 가장 대표적이고 특색이 있는 마을은 삼산리의 부연동마을과 신왕리의 녹색 농촌체험마을이다. 신왕리라는 이름은 마을이 없던 옛날, 허허 벌판이던 곳에 논밭을 일구어 사람들이 살면서 새롭게 왕성한 모습으로 일어선다는 뜻에서 지어졌다. 주민들에게는 새왕이라는 지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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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릉 일대에서 북한군과 국군 제8사단 간에 벌어진 전투. 강릉 일대에서 1950년 6월 25부터 28일까지 방어와 해안선 경계 임무를 수행하던 국군 제8사단이 양양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던 북한군 제5사단에 맞서 4일 동안 치른 방어전투이다. 북한군은 전쟁 전부터 오대산을 통하여 공비들을 계속 남파하였다. 남파된 공비들이 오대산, 태백산 일대에서 준동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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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면. 연곡면(連谷面)은 백두 대간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에 골이 계속 이어져서 생긴 이름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연곡현은 부[강릉] 북쪽 30리에 있다. 본래 고구려 지산현이며 양곡이라고도 한다. 신라 경덕왕 때 명주 속현으로 만들었고, 고려 현종 때 지금 명칭으로 고쳐 그대로 예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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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에서 열렸던 정기시장(定期市場). 연곡장(連谷場)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부터 연곡면 동덕리의 장터거리[현 동덕1리의 연곡주유소와 동방냉동 인근지역]에서 3일과 8일에 열렸던 5일장을 말한다. 조선 후기였던 당시 강릉 지방에는 강릉장[2일, 7일]을 비롯하여 연곡장[3일. 8일], 옥계장[4일. 9일], 주문진장[1일, 6일], 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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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을 가로지르는 하천. 연곡천은 오대산국립공원의 일부를 상류 지역으로 하여 서에서 동으로 흘러 동해로 유입된다. 연곡천은 크게는 백두대간의 동사면을 흐르는 하천이다. 최상류 지역은 강릉시 연곡면과 평창군 진부면의 경계가 되는 진고개이다. 연곡천의 분수계는 진고개를 기점으로 하여 북쪽으로 동대산[1433.5m]에서 북으로 약간 나아가 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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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는 해변 연곡해변은 길이 700m, 면적 56,000㎡의 맑고 깨끗한 동해 백사장을 간직하고 있으며 연곡천이 흐르고 있는 해변이다. 특히 울창한 솔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야영지로 최적지이다. 소금강과 진고개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연곡천과 만나는 해변이다. 연곡해변 일대는 예로부터 함경도와 경상도를 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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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종합 예술. 강릉 지역에서의 연극 활동은 1970년대부터 나타났다. 1970년 초에 연극 활동은 연 1회 정도의 부정기적인 공연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강릉 출신의 대학생 연합 서클 ‘근우회’의 공연이 그것이었다. 1972년 6월 관동 대학교에 근무하던 희곡 작가 김정개의 지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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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본에 따라 동작과 대사를 통하여 표현하는 연극을 목적으로 한 두 사람 이상의 모임. 강릉 지역에서의 연극 활동은 1970년대부터 나타났다. 1970년 초에 연극 활동은 연 1회 정도의 부정기적인 공연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강릉 출신의 대학생 연합써클 근우회의 공연이 그것이었다. 1972년 6월 관동대학교에 근무하던 희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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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에 찰밥과 엿기름을 넣고 삭힌 식혜. 연엽주(蓮葉酒)는 강릉 지방의 향토음식의 하나이다. 연엽주라고 하지만 술은 아니며, 식혜에 가까운 음료이다. 강릉 지방의 일부 양반 가문에서 담아 마셨다. 찹쌀밥을 되게 짓고, 연잎은 밑둥의 줄기를 2~3㎝ 남기고 잘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엿기름가루는 물에 타서 맑게 걸러 앙금을 가라앉히고 웃물만 따라 놓는다. 따라 놓은 엿기름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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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에서 주문진읍 주문리에 이르는 도로. 연주로는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를 출발하여 주문진 서부 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이다. 이 도로를 이용하면 좁고 복잡한 주문진 구시가지 중심부를 통하지 않고 바로 향호리 방면으로 갈 수 있다. 도로가 지나가는 행정 구역명인 연곡면과 주문진의 머리글자를 따서 연주로라고 이름 붙였다.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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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영동지역의 고려시대 이름. 995년(성종 14) 지방행정구역을 10도로 나눌 때 함경도와 춘주(春州)·화주(和州)·명주(溟州) 등을 합하여 삭방도(朔方道)를 설치하였다. 1178년(명종 8)에 삭방도를 폐지하고, 함경도와 강릉 일대의 해안지방을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 춘천·철원 일대의 영서지방을 동주도(東州道)라고 개칭하였다. 1263년(원종 4)에 연해명주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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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문학단체. 강릉오죽문학회에서 활동하던 민경대, 이광식, 홍승자, 박소희 등이 결성한 문학단체이다. 장르 구분 없이 문학인이 함께 모이는 문학 활동은 시 창작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 아래 시 장르에 한정하여 매월 작품을 정해 토론하기로 하고 기성 문인을 비롯하여 일반인과 대학생까지 아우르는 문학단체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주로 카페에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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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불어내리는 고온 건조한 바람. 습한 대기가 산을 넘어 반대쪽으로 불면 고온이면서 메마른 바람으로 변한다. 이와 같이 산을 넘어 불어내리는 고온건조한 바람을 푄(Föhn)풍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지중해 쪽의 습한 대기가 알프스를 넘어 독일과 스위스를 지나갈 때 잘 나타난다. 원래는 알프스 지방의 골짜기에 불어내리는 바람만을 가리켰으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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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염재근(廉在根)의 정확한 생몰년은 파악할 수 없다. 1930년대 항일학생운동을 하였다. 1932년 강릉농업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 강릉농업학교 독서회(讀書會) 활동으로 퇴학당하였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는 1930년에 처음 결성되었으며 일본인 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운동을 펼치다가 주동 학생들이 퇴학당하면서 소강상태를 맞았다.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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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남동구를 기점으로 강원도 강릉시를 종점으로 하여 동서를 잇는 총연장 234.4㎞의 고속 도로. 1971년 수도권과 강원도를 잇는 고속도로로 개통하였다. 영동고속도로 1단계 공사인 신갈-새말 간 104㎞ 구간은 1971년 3월 24일에 착공하여 같은 해 12월 1일에 개통하였다. 잔여 구간인 새말-강릉 간 97㎞ 구간과 동해-강릉 간 30㎞ 구간은 1974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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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을 동서로 관통해 동해안을 연결하는 산업철도 해방 이전의 동해선은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680㎞의 원산까지 직결하는 노반공사가 거의 이루어졌다. 이 중 북쪽으로는 안변~양양 간 192.6㎞의 동해북부선이 1937년 12월 1일 개통되어 철도 영업이 개시되었다. 그리하여 강릉에서 서울까지 기차를 이용할 경우 양양까지 도로 교통을 이용한 다음 양양에서 철도를 이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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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시조 문학 동호인들이 결성한 문학회. 고려 말기에 형성된 우리 고유의 정형시라 할 수 있으며, 그 시형은 3장(章) 6구(句) 45자(字) 안팎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고전시가는 시조에 와서야 모든 사회계층이 공동으로 즐기는 시가가 되었다. 이러한 시조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이후 비로소 쓰였는데 영조 때의 시인 신광수(申光洙)가 쓴 『관서악부(關西樂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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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교동에 있었던 사립여자중학교. 1964년 11월 21일 박기혁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1964년 11월 21일 설립되어 1988년 2월 28일 폐교되었다. 폐교되기 전까지 총 21회의 졸업식을 통해 7,1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 기간의 학적부는 강일여자고등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교화(校花)는 매화이고, 교목(校木)은 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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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맡은 신. 영등신은 풍신(風神) 또는 영등할머니, 영둥신, 영동신이라고도 부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2월조에는 “영남지방 풍속에 집집마다 영등신(靈登神)을 맞아 제사 지낸다. 신이 무당에게 내리면 무당은 동네를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이 달 초하루부터 사람을 꺼려 만나지 않는데 15일 혹은 20일까지 간다.”고 하였다. 영등신은 대체로 음력 2월 1일 내려왔다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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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단오제에서 성황신을 제단으로 모셔갈 때 지내는 의례. 강릉 단오제 때 홍제동에 있는 여국사 서낭당에 모신 대관령국사서낭신위와 대관령국사여서낭신위를 강릉 단오제가 열리는 제단으로 모셔가기 전에 여국사 서낭당에서 지내는 제례이다. 강릉 단오제 보존회 및 무격(기능 보유자 및 기능 이수자)이 주관하는 행사로 음력 5월 3일 오후 6시에 시작된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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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의 계승의 일환으로 한시(漢詩) 짓기 모임 즉 시회를 운영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 한시는 한문으로 지어진 시를 말하며, 오언절구나 칠언절구 등의 형식과 평측(平仄)·압운(押韻) 등의 규칙을 따라 지어진다. 우리나라에서 한시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를 전후하여 근대 민족주의 사조가 형성되기 시작한 무렵부터였다. 영주음사는 영주(瀛洲) 지방 즉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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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속한 법정리. 영진리(領津里)의 ‘영진’이라는 명칭은 ‘바다에서 나는 어물을 거두어들인다’ 또는 ‘바다를 거느린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영진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마산, 연꼴안이, 홍찔목이, 새말 등이 있다. 마산은 영진 1리 1반의 소지명으로 옛날 동덕역(冬德驛)에서 쓰던 역말이 죽으면 마산에다 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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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 있는 지방 어항. 영진마을은 연어가 회기하고 향 좋은 은어가 많이 잡히는 연곡천 하류 북쪽에 있는 곳으로 ‘바다를 거느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금강과 진고개 준령에서 흐르는 연곡천의 하류북쪽에 있다. 교통은 승용차로 강릉 인터체인지에서 속초 방향, 7번국도, 사천, 연곡의 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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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와 관계된 영화 작품, 영화 제작, 영화 단체, 영상 단체, 영화관, 영화 박물관 현황. 유구한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한 강릉시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사극 영화와 현대 영화의 촬영 배경지로 각광을 받아왔다. 사극 영화의 대표적인 촬영지로는 강릉 선교장(船橋莊), 허균·허난설헌 생가, 경포대, 강릉 오죽헌(烏竹軒) 등이 있다. 그리고 산과 바다를 비롯한 수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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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있었던 초기국가. 1915년에 ‘예국토성지(濊國土城址)’라고도 불리는 강릉토성지(江陵土城址)가 발굴조사되었는데, 총연장 2,800m, 누(壘)는 0.5~12m이다. 이곳에서 빗살무늬토기편과 민무늬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예국토성지’는 조선시대에 폐기되었다고 기록되었는데, 예국의 소군장(小君長)인 후(侯)가 거처하는 성읍(城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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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통해 그림·모양·빛깔·소리·글·표정·인형 등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 예로부터 강릉 지방은 예술이 있는 지방이라는 뜻의 ‘예향(藝鄕)’이라 불러왔을 만큼 예술이 발달한 지역으로 평가된다. 예술은 개략적으로 미술, 음악, 문학, 연극, 서예, 무용 등 6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 미술 분야에는 조각, 회화, 건축, 조형 등이 포함되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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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활동을 통해 그림·모양·빛깔·소리·글·표정·인형 등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총칭으로 세분하여 화가, 조각가, 공예가, 음악가, 시인, 소설가, 수필가, 사진가, 무용가, 국악인, 연극인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예향(藝鄕)’이라 불린 강릉 지방에는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이 찾았고, 그들이 남긴 작품도 많다. 시인묵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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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산성우리에 있는 마을. 오리동(梧里洞)이라는 명칭은 옛날 이 일대가 늪이었고 그 부근에 오리나무가 많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화비령에서 내려온 산 능선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넓은 들이 있으며 마을 가운데로 오리천이 흐른다. 오리동으로 흐르는 내를 따라 안을 들어가면 절골이 있고, 아래로 내려가면 7번 국도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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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에 있는 법정리. ‘오봉(五峯)’은 마을 뒤에 5개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어 생긴 이름이다. 1914년 오봉리가 강릉군 성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그 후 1917년 면제 개혁 때 상구정면이 왕산면으로 개칭되면서 오봉리의 일부 지역이 왕산면으로 병합되었다. 1955년 9월 1일에는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됨에 따라 명주군에 편입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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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서원에서 제향하는 의례. 공자(孔子)·주자(朱子)·송시열(宋時烈) 그리고 함헌(咸軒) 등을 제향한다. 매년 음력 9월 초정(初丁)에 강릉 지역 유림들에 의해 시행된다. 오봉서원에는 공자(孔子), 주자(朱子) 송시열(宋時烈)을 모신 집성사와 칠봉(七峰) 함헌(咸軒)을 모신 칠봉사(七峰祠)가 함께 있으며, 각각의 사당에는 배향인물의 위패가 모셔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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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최명익(崔命翼) 등 정묘생(丁卯生) 동갑계원이 지은 정자. 이 정자는 조선조 강릉부의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던 객사(客舍)의 재목과 기와를 옮겨 지은 것이다. 당시 일제는 식민지교육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객사 터에 강릉공립보통학교를 설립하였으며, 이를 위해 객사의 건물을 해체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갑계원들이 객사의 재목과 기와를 일부 매입하여 오성정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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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총선거를 저지하기 위하여 강릉 지역에서 좌익세력들이 벌인 각종 습격, 방화, 요인암살 등의 활동. 해방 후 한반도에 통일국가를 수립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은 미·소 공동위원회의 결렬로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게 되고, 유엔은 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하여 한반도에서 선거를 통하여 조속히 통일된 정부를 수립토록 결의한다. 그러나 소련은 유엔의 제안에 대해 반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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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해안 지역에서 잡히는 두족류 십완목(十腕目) 연체동물. 오징어의 몸은 원추형으로 길이는 30~40㎝ 가량이고 적갈색에 작은 반점이 많으며, 몸빛은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하나 대체적으로 암갈색이고 죽은 것은 희게 된다. 오징어류는 머리와 몸통, 다리의 세 부분으로 나누며 형태는 낙지와 비슷하다. 머리는 다리와 몸통 사이에 있고 좌우 양쪽에 큰 눈이 있다.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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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오거리에서 교동 강릉역 육거리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지나가는 옥천동의 옛 속명을 옥거리, 옥가라 부른 데서 옥가로라고 이름하였다. ‘옥가’란 금옥상쟁(金玉相爭)이란 말에서 금옥가(金玉街)라 하였다가 ‘금(金)’ 자를 빼고 옥가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길이 723m, 폭 25m의 4차선 도로이다. 옥가로는 옥천 오거리에서 율곡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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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남면치 고개에서 현내리 동해 대로에 이르는 도로. 옥계로는 옥계 지역에서 영서 지역을 넘어오고 넘어가는 관문 도로이다. 옥계로가 시작되는 남면치 고개는 높이 400여m로 국도 42호선과 연결되어 있다. 남면치 고개에서 구불구불하고 급하게 경사진 도로를 내려가서 옥계 초등학교 남양 분교[폐교]를 거쳐 현내리에서 동해 대로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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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속한 면. 1782년(정조 6)에 강릉현 우계면이라 칭한 후 줄곧 우계면으로 불리다 1914년 ‘옥천우계(玉泉羽溪)’의 의미로 강릉군 옥계면(玉溪面)으로 개칭되었다. 옥계면은 옛 예국의 땅으로서 한사군 때 임둔 땅이었고,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 현재의 묵호 지역을 포함하여 하슬라주 우곡현에 속하였다. 397년(신라 내물왕 42)에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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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에 있는 항구. ‘옥계(玉谿)’는 옥천우계(玉泉羽谿)의 의미로 고구려시대에는 우곡현(羽谷縣) 또는 옥천현(玉泉縣)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후로는 우계현(羽谿縣)으로, 그리고 1782년(정조 6) 이후로는 우계면(羽谿面)으로 각각 불리어 오다가 1914년부터 옥계면(玉谿面)으로 되었다. 주로 시멘트를 운송하는 항구로 198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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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서 옥수수에 팥과 강낭콩을 등을 넣어 끓여 만든 음식. 옥수수는 화본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강한 식물이며 성장 기간이 짧다. 안데스산맥 일대가 원산지로 알려졌으며 콜럼버스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후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7세기에 도입되었다. 적응력이 좋아 쌀, 밀,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는 세계 3대 곡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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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주원료로 하여 만든 술.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는 옥촉서소주(玉蜀黍燒酒)라고 하여 ‘중국 사람이 온갖 술을 옥수수로 만드니, 소주와 배갈을 다 이것으로 한다.’고 하였는데, 강릉에서 담그는 옥수수술은 소주가 아니라 막걸리로 보인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법은 잘 알 수가 없다. 강릉 지방은 감자·강냉이·메밀·도토리 등으로 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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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옥천(玉川)’이라는 이름은 옥천동 남쪽에서 수문리 쪽으로 흐르는 남대천 물이 구슬처럼 깨끗하고 맑아서 생긴 이름이다. 옥천동의 속명인 ‘옥거리’란 이름은 금과 구슬이 서로 다툰다는 금옥상쟁(金玉相爭)이란 말에서 금옥가라 하다가 ‘금’ 자를 빼고 ‘옥가’라 하다가 후에 순수한 우리말인 ‘옥거리’로 바뀐 것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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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남대천 수문에서 교동 강릉 대로에 이르는 도로. 옥천로가 지나는 옥천동 지역은 공공 기관, 금융·보험 업체 및 의료 기관이 밀집된 강릉시의 전통적 상업 중심 지역이다. 도로가 통과하는 지역이 옥천동이어서 옥천로라고 이름하였다. 길이 764m, 폭 12m의 4차선 도로이다. 옥천로는 남대천 수문-동부 시장-강릉 대로를 연결하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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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5거리로 강릉의 중심 도로. 옥천5거리는 이곳에서 다섯 지역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옥천5거리는 7번 국도가 강릉 시내로 지나가는 도로로서,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5거리가 생겼다. 옥천5거리에서 동쪽으로 가면 강릉여자고등학교가 있고, 서쪽으로 가면 강릉 시내 중심지가 있다. 남쪽으로 가면 남대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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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 덕고개에서 발원하여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 강동면 상시동리, 강동면 하시동리로 흐르는 하천. 와천(瓦川)은 옛날 구정면 덕현리에 가마터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구운 기와를 이 하천(와천)을 통해 배로 운반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와천은 예전에는 풍호로 흘렀으나 지금은 곧바로 바다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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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금평로에서 강동면 상시동리 상시동 교차로에 이르는 도로. 와천로는 구정면 금광리·덕현리, 강동면 상시동리 등 3개 리의 야산과 전답 지대를 지나간다. 옛날 구정면 덕현리에 가마터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구운 기와를 마을 앞으로 흐르는 와천(瓦川)을 통해 배로 운반하였다고 하여 와천로라고 이름 붙였다. 구정면에서 구정면과 강동면을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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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명은 김장명(金長命). 명주장군(溟州將軍)·지명주군주사(知溟州軍州事)인 김순식(金順式)의 아들이며, 형은 왕수원(王守元)이다. 신라 말기에 명주장군 김순식은 강릉 지역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던 대표적인 호족이었다. 처음 궁예와 결합했던 김순식은 태조 왕건이 즉위한 후, 쉽사리 태조 왕건에게 귀부(歸附)하지 않고 정세를 관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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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초명(初名)은 여주(汝舟), 본성(本姓)은 김씨.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후손으로 왕씨는 사성(賜姓)이다. 충렬왕(忠烈王)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충숙왕(忠肅王) 초에 규정(糾正)을 지냈다. 1321년(충숙왕 8) 좌사보(左司補)로 있을 때, 임금의 총애를 받던 이인길(李仁吉)의 장인 최득화(崔得和)를 수주(隨州)의 수령으로 임명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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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고단리에서 왕산리에 이르는 도로. 왕산로는 왕산면 고단리에서 닭목령을 거쳐 왕산리 사이를 잇는 약 27㎞의 긴 도로이다. 왕산면 고단리·대기리·왕산리 산간 지역을 지나며, 백두대간의 준령을 넘는 도로로 급경사 커브길이 많다. 도로가 속한 행정 구역인 왕산면을 지나는 도로라고 하여 왕산로라 이름 붙였다. 지방도 415호선과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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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관령 산정 동남쪽으로 우뚝 솟은 제왕산이 있어 왕성한 산줄기가 뻗어 있다는 뜻에서 왕산리라 했다. 원래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1916년에 곰자리[熊宿洞], 쑥밭버덩[蓬田坪], 입내골[立來谷], 제리니[紫蓮洞], 장재벌[長者坪], 큰골[大谷]과 성산면 오봉리 일부를 병합하여 왕산리라 하여 상구정면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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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속해 있는 면(面). 고려 우왕(禑王)이 왕산면 왕산촌[현 왕산리]에 유배되어 갇혀 있었다 하여 ‘제왕산(帝王山)’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후에 ‘왕산’이 되었다. 원래 왕산면은 강릉군 구정면 지역으로 1914년 면 폐합에 따라 늘목재와 새재를 중심으로 상, 하 2개면으로 나눠 위쪽을 상구정면이라 하여 도마, 목계, 송현, 고단, 대기, 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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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고단리에 위치한 왕산면사무소의 출장소. 왕산면은 지역 특성상 삽당령을 기점으로 영상 지역과 영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면적이 강릉시에서 가장 큰 지역에 속하며 출장소 설립 당시 교통편 또한 좋지 않고 면소재지인 영하 지역에 면사무소가 위치하고 있어 영상 지역 주민들의 불편함 해소와 면 자체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1955년 1월 1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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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 맹떼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강릉저수지에 유입되는 하천. 왕산천(旺山川)의 왕산은 마을이름인 ‘왕산리’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며, 그 왕산리의 유래는 대관령 산정 동남쪽으로 우뚝 솟은 제왕산의 왕성한 산줄기가 마을(왕산리)로 뻗어있다는 뜻에서 왕산리(旺山里)로 불리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왕산천은 왕산면 왕산리 맹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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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호족. 본관은 강릉. 본래의 성(姓)은 김씨(金氏)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의 6세손이며, 진골 출신인 김선희(金善希)의 아들이다. 태조 왕건의 14비(妃) 대명주원부인(大溟州院夫人)이 왕예(王乂)의 딸이다. 명주군왕 김주원이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하고 강릉으로 퇴거한 이래, 그의 후손들은 강릉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일대에 강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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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현종(顯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기거사인(起居舍人)을 지냈고, 이어 우승선 급사중(右承宣 給事中)을 거쳐 지주사예빈경(知奏事禮賓卿)을 지냈다. 1044년(정종 10)에 동북로 병마사참지정사(東北路 兵馬使參知政事) 김영기(金令起)와 함께 장주(長州)·정주(定州) 및 원흥진(元興鎭)에 성을 쌓았다. 1049년(문종 3)에 수사공 상주국(守司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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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입암동에 있는 마을. 왜지는 예전에 마을에 오얏(자두)나무가 많이 있어서 생긴 이름으로 ‘오얏’이란 말이 ‘오야지’, ‘외지’로 변해 왜지로 되었다. 예전 봄철에 오얏꽃이 피면 온 동네가 희게 보였다고 한다. 왜지는 마을이 동네와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있어서 외진골 이라고도 한다. 왜지는 강릉중앙고등학교 뒤 방축에 있는 넓은 들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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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에 위치한 조계종 소속의 사찰. 옛날 이 마을에 못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하는 ‘용연(龍淵)’의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때 창건했다는 설과 1650년 조선 인조 때에 도승 옥잠(玉岑)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설, 그리고 현종 11년(1670)을 전후하여 왕장(王藏) 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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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의 용연사에 있는 부도군. 옛날 이 마을에 못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이 ‘용연(龍淵)’의 전설에서 비롯되어 용연사(龍淵寺)라고 하였는데, 이곳에 있는 부도군이다. 강릉시 사천면 중앙서로 961[사기막리 821번지] 용연동(龍淵洞)에 있는 용연사 왼편 뒤 100m 지점에 있다. 석종형의 부도 8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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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지역에서 벌어진 남로당 유격대원 토벌전투.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에서 각종 만행을 저지른 남로당 강원도당 조직원들을 강릉경찰서 부대원들이 1948년 5월 29일 대궁산성에서 4명을 체포하고 도주한 일당들을 용연사에서 급습하여 물리친 전투이다. 남로당의 무장투쟁전술은 1948년 2·7구국투쟁과 5·10선거 반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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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입암동 입암로 삼거리에서 교동 강릉 기차역에 이르는 도로. 용지로는 강릉시의 강남 지역인 성덕동·입암동과 강북의 옥천동·교동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월드컵교가 개통되면서부터 활성화되었다. 연못가에 매어 두었던 말이 연못에 뛰어들어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강원도 기념물 제3호인 용지(龍池)를 지나므로 용지로라고 이름 붙였다. 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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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에 있었던 산성. 우계산성은 주수천(珠樹川) 하류의 충적지 쪽으로 돌출한 구릉의 말단부에 축조되었다. 성적은 남서쪽을 정점으로 하여 북동쪽의 완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축성 시기는 신라시대로 추정되고 있는데 그것은 옥계면 일대가 본래 고구려 우곡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우계현으로 개칭된 사실에서 이 성을 당시 현의 기능과 관련된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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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 이름.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중국식으로 행정체계를 갖추고 전국을 9주(州)로 정비하였다. 9주는 원 신라 지역에 3개 주, 옛 고구려 지역에 3개 주, 옛 백제 지역에 각각 3개 주씩을 두었다. 그리고 9주의 군현 명칭은 경덕왕 때에 이르러 한화정책(漢化政策)의 일환으로 향음(鄕音) 표기하던 것을 한자식 표기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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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말 설립된 자생 우익 단체. 1945년 말 외부의 지원이나 어떤 연계 조직도 없는 자생 단체로 김삼[김흥기]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다. 미군정의 재판 시 우익 인사의 형량을 경미하게 하거나 무죄 석방을 돕는 활동을 하였다. 강릉의 남쪽에는 우국동지회 삼척지회가 있었고 북쪽에는 우국동지회 현남지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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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창립된 강릉의 문학 동인회. 우림문학동인회는 1988년 4월 28일 한국방송통신대학 재학생인 권경숙, 김복자, 김선영(金善泳), 류동희(柳東熙), 윤정희, 엄명자, 원대익(元大翼), 이복재(李福在), 전부용, 최선회(崔善會), 최원규 등이 임당동 소재 한국방송통신대학 강릉학습관 1층 강의실에 모여 창립하였다. 한국방송통신대학 강릉 지역 재학생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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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설립되었던 근대식 사립학교. 우양학교(遇陽學校)는 1900년대 초 팽배했던 민족주의 교육사조의 추세에 부응하여 설립되었다. 우양학교는 동진학교(東進學校)와 자매관계에 있었으며 교육과 운영에 있어서 동진학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우양학교의 교과과정은 동진학교와 비슷하였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초급 과정으로서 비교적 낮은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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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업무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소속기기관인 우정사업본부 산하의 행정기관. 강릉에서 우체국은 1895년 5월 26일 농공상부 분과규정 칙령 127호, 125호로 우체사관제를 공포하고 우체사설치를 공고한 후 1895년 6월 1일 칙령 제125호로 강릉우체사를 제정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1896년 7월 23일 칙령 32호로 전보사 관제를 제정할 때 2등사로 강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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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남동에 있는 법정동. 운산동(雲山洞)은 구름 속에 신선의 자리가 있는 운중 선좌형(雲中仙座形)의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운산동은 원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1916년 10월 1일에 내신석을 합쳐 강동면 운산리라 하였다. 1955년 9월 1일 명주군에 속하였다가 1989년 10월 1일에 명주군 강동면 운산리에서 강릉시 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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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에 속한 법정동. 조선 중종 때 강원 관찰사를 지낸 어촌 심언광(沈彦光)이 지은 해운정(海雲亭)이 있어 운정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운정동은 원래 강릉군 정동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에 조산리를 없애고 선교리를 병합하여 운정리라 하였다. 1938년 4월 1일 정동면이 경포면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 9월 1일 경포면이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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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송암리 미리재에서 발원하여 즈므와 운정동을 지나 경포호로 흐르는 하천. 운정천은 죽헌동 뒤로 흘러 뒷내라고도 한다. 운정천은 하류에 경포호가 있다. 여기서 유입되는 물이 경포호에 저류되었다가 강문교 수로를 따라 바다로 빠져나간다. 운정천의 중상류에서 운반된 토사들이 경포호에 퇴적되어 경포호의 규모가 축소되고 깊이가 낮아지는 원인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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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마을. 울길[雲谷]은 중국 남송의 학자인 주자의 고향인 자양운곡(紫陽雲谷)과 비슷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울길 앞으로는 포남동의 넓은 들이 펼쳐지고, 마을 뒤로는 소동산에서 내려온 산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울길은 소동산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 언덕 양지바른 곳에 있어 포남동의 넓은 들을 내려다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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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터미널 오거리에서 교동 경포로에 이르는 도로. 원대로가 지나는 교동 택지 지구는 내부 교통망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외부 교통망 접근성이 매우 양호한 지역이다. 원대로는 교통 택지 지역을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 도로이며 강릉 고속버스 터미널과 강릉 대로와 직접 연결된다. 원대로는 옛날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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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3리에 있는 마을. 원뚜루[院坪]는 예전에 마을에 나그네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인 원(院)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원뚜루는 석병산과 만덕봉에서 내려온 산 능선이 감싸고, 원뚜루 가운데로는 산계천이 흐르고 있다. 원뚜루 앞으로 흐르는 산계천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학림동이 되고, 산계천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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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서 1971년부터 활동한 원불교의 교당. 원불교가 강릉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원기 56년이었다. 당시 홍제동에서 신도들 몇몇이 모여 춘천교당의 교무를 모셔와 1달에 1번 법회를 열었다. 당시 인근 종교단체와의 마찰로 인하여 한동안 초청법회가 중단되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신도들의 정성으로 3년 후 원기 59년에 다시 시작하면서 속초교당의 교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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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정치가. 1935년에 평양의전(平壤醫專)을 졸업하고 1956년에 신흥대학 정경학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1948년 제 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출마하여 전체 득표율 42.7%로 강릉 갑구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62년 한국유네스코 의전협회장, 1990년 대한민국 헌정회 운영위원, 1990년 민족문화통일회 이사, 1993년 제헌동지회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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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입암동 강릉 중앙 고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학동 성덕로에 이르는 도로. 월대산로는 입암동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부터 있던 도로이다. 성덕 포남로와 성덕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남항진 방면의 주통행로였다. 아파트 밀집 지역에 위치해 있어 평소에도 차량 통행이 많다. 월대산은 조선 시대 강릉 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칠사당(七事堂)]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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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강원도 강릉시 월천동에서 일어난 공비 생포 전투. 1952년 11월 24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의 큰골에 출현한 북한군 제526군 소속 941부대 제2지원대 공비 9명이 옥계지서 및 강릉경찰서 병력과 교전 후 도주하였는데, 그 중 1명이 월천동 독립 가옥에 은신 중인 것을 생포하였다. 북한군 제526군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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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인(蓮花夫人)과 무월랑(無月郞)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연못 구지(舊址)에 있는 누각.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강릉에서 벼슬을 하던 무월랑은 연화(蓮花)라는 아가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무월랑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연화 아가씨를 보고 말하기를 “만일 그대와 전생에 인연이 있다면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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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2리의 옛 지명. 구라미 또는 굴암(窟巖)이라고 하며, 여기서 다시 상구라미 또는 사이구라미 등으로 나누어 부른다. 마을 뒤 연곡면 동덕리 쪽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내(구라미천)를 막게 되자 그 산줄기 밑으로 난 굴을 통해 물이 흘러나온다 하여 ‘굴안이’라고 부르게 된 어원 유래가 있다. ‘구라미’는 ‘굴암’이라는 한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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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송림2리 5반의 옛 지명. 옛날 연곡천변에 해당화, 찔레 등 가시덩굴이 많이 자라서 초시(草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소금강 청학동 골짜기와 진고개에서 분수계가 되어 내려오는 하천이 만나 연곡천을 이루어 동해로 유출된다. 연곡천이 7번국도와 마주치는 곳에서 상류(서쪽)쪽으로 천변도를 따라 올라간 곳에 위치한다. 위치에 따라 윗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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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유교 관련 문화유산의 총칭. 강릉의 종교사에서 유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강릉향교의 건립 때부터이다. 1313년(충선왕 5)에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김승인(金承印)에 의하여 화부산(花浮山) 기슭에 강릉향교가 세워졌다고 한다. 물론 그 보다 앞서 200여 년 전에도 이미 향교가 있었다고는 하나 문헌상으로 자세한 고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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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소재한 유교관련 유적과 유물의 총칭. 강릉향교(江陵鄕校)를 중심으로 한 유교의 보급은 강릉 지역 유림과 유교사상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에 따라 강릉에서는 일찍부터 많은 향현들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많은 유교 건축물들이 건립되었다. 즉 향현들의 큰 가르침을 잊지 않고 그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리고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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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소재한 유교관련 단체와 기관의 총칭. 전근대 사회에서 유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을 비롯한 성현을 제향하고 기념하는 성소(聖所)로서 대성전(大成殿)과 같은 사우(祠宇)를 서울의 성균관 및 지방의 향교에 설치하고 종교 의례를 거행하였으며, 선현을 추모하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한 터전으로서 서원을 세워 집단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교의 존재 양상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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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고려 밀직사(密直使) 유계조(柳繼祖)의 아들이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고려 우왕 때 문과에 급제, 전의부령(典儀副令)을 거쳐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가 되었다. 1392년 이조전서(吏曹典書)로 있을 때, 조선왕조 개국에 협력한 공으로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고 이듬해 중추원 부사가 되어 강릉도관찰출척사를 겸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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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유산동 유산교 교차로에서 청량 교차로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지나는 행정 구역명인 유산동의 이름을 붙여 유산로라고 하였다. 유산로는 1999년 강릉시 유산로 60에 강릉 농산물 도매 시장이 개장하면서 개통하였다. 처음에는 율곡로·동해 대로와 연결되었지만, 2007년 12월 남강릉 나들목이 생기고, 2009년 12월 칠성로가 개통되면서 이 도로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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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유학(幼學) 유운흡(柳雲翕)이고 어머니는 겸사복(兼司僕) 한덕룡(韓德龍)의 딸이다. 유원명(柳遠鳴)은 1789년(정조 13)에 진사(進士)에 올랐고, 1794년(정조 18)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22년(순조 22)에 강릉에 부임되어 왔다가 1824년에 관직을 사퇴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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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승지 유태명(柳泰明)의 손자이며, 유무(柳懋)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한중희(韓重熙)의 딸이다. 1756년(영조 32) 생원이 되고 현감을 지낸 뒤, 176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65년에 정언(正言)·사서(司書)·수찬·교리를 역임하고 1775년(영조 51) 집의(執義)로서 영남어사(嶺南御史)가 되었다. 1776년 왕세손의 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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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시집 온 지 3년 만에 남편 유진구(兪鎭九)가 병이 났다. 백방으로 약을 썼으나 남편이 끝내 세상을 떠나자 상제(喪祭)와 거상(居喪)에 예를 다하였다. 거상 기간에는 머리를 빗거나 세수를 하지 않아 얼굴에 검정을 칠한 것 같았으며, 아침저녁으로 성묘하며 피눈물을 흘릴 정도로 슬퍼하였다. 하루는 산불이 남편의 묘에까지 번지려 하였는데, 하늘에 기도하니 잠시 후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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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에 속한 법정동. 유천동(楡川洞)은 위촌천[죽헌천 상류]이 흘러가는 냇가에 느릅나무가 많이 있어서 마을 이름을 느릅내라고 하고 한자로 ‘유천(楡川)’이라고 한다. 유천동은 크게 윗느릅내와 아랫느릅내로 나뉘고 영당말, 잿말, 딴봉말, 죽일, 큰골, 정자골, 감나무골 등이 있다. 유천동은 지변동 등과 같은 행정동에 속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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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사간원 정언을 지낸 유성삼(柳星三)의 아들이다. 1681년(숙종 7) 알성시(謁聖試)에서 병과 3인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1690년 사헌부지평에 올랐고, 같은 해에 부제학 이담명(李聃命)에 의하여 홍문록(弘文錄)에 이름이 올랐다. 이듬해에 홍문관교리가 되었고, 이후 수찬·교리·장령·부교리 등을 거쳐 참의에 이르렀다. 17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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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인 유헌장(柳憲章)의 공적을 기리는 선정비. 유헌장(柳憲章)은 1707년 강릉대도호부사로 부임하여 1712년 임기가 만료되어 교체되었다. 재임기간 동안 객사와 관방들을 중수하였으며 향교 대성전 석전제 때 사용하는 돗자리를 새로 만들었다. 굶주린 부민들의 구휼을 위해 자비곡(自備穀) 400석을 내 놓았으며, 후손이 없는 효자정문에 비를 새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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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강릉 부사를 지낸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유성룡(柳成龍)의 8대손으로 도정(都正) 유심춘(柳尋春)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의수(李宜秀)의 딸이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858년(철종 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호군(副護軍)·이조참판·공조판서를 지냈으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남인계 인사 중용책에 따라 1866년 우의정에 이르렀다. 이해 주청사(奏請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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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기르는 일에 관련된 모든 의례. 출산 후부터 이루어지는 수유, 첫 외출, 작명, 백일, 돌 등을 육아의례라 할 수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백일과 돌을 들 수 있다. 육아와 관련된 의례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다. 생명을 존귀하게 여겼던 조상들이 갓 태어난 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정성과 신념으로써 보살피고 축원해 온 것이 육아의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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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옥진(尹玉珍)이며 어머니는 민윤(閔昀)의 딸이다. 1536년(중종 31) 친시 문과에서 을과로 급제하고, 2년 뒤 탁영시(擢英試)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6년(명종 1) 장령에 이어 교리(校理)·사간(司諫)·사성·검상·사인·동부승지·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나 진복창(陳復昌)의 탄핵을 받아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어머니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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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낙풍 사거리에서 죽헌동 죽헌 교차로에 이르는 도로. 율곡로는 강릉시의 관문 도로로 강릉시의 남쪽 경계인 옥계면에서 강동면을 거쳐 강릉 시내 죽헌동에 이르는 구간 거리 약 32㎞의 긴 도로이다. 낙풍 사거리에서 정동진역까지는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으나 거기서부터 시내까지의 구간은 교통량이 많다. 여름철, 휴가철에는 구간에 따라 교통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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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충노(忠奴). 최빈현(崔斌鉉)의 종으로 상전이 대를 이을 자손이 없이 죽자 3년 동안 상식(上食)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올렸다. 또 상전의 4대에 걸친 제사를 받들고 산소의 성묘를 죽을 때까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을득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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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고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음악 관련 활동. 중국의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고대 한반도의 예(濊)에서는 10월에 무천(舞天)이라는 제천의식을 거행하면서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고 밤낮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기록은 고구려의 동맹(東盟)이나 부여의 영고(迎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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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외의 기호성 음료의 총칭. 보통은 여름에 마시는 찬 음료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깊은 계곡의 맑은 물과 샘물이 감천수(甘泉水)였으므로 약수라 하여 음료로 사용하였다. 또한 그러한 약수에 약재, 열매, 꽃, 잎, 과일 등을 달이거나 꿀에 재워 시원한 음료로 만들어 마셨다. 강릉 지방에는 연잎주, 책면, 앵두화채가 대표적인 음청류이다. 연잎주는 식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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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지역에서 벌어진 북한군 유격대원 토벌전투. 제526군은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이며, 한국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가 월북하였거나 한국전쟁 당시 와해된 남한 좌익분자들로 구성되었다. 제526군은 한국전쟁으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남파되어,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고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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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위급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군(民軍). 한말 영국 기자인 매캔지(Frederic Arthur Mckenzie)의 「Korea’s Fright For Freedom」에서는 의병을 ‘Righteous Army(정의의 군대)’라고 하였다. 독립운동가인 박은식(朴殷植) 선생은 의병을 “義兵者 民軍也 國家有急 直以義起 不待朝令徵之發 以從軍敵愾者也(의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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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승려. 우리나라 화엄종의 개조(開祖). 속성(俗姓)은 김씨(金氏), 아버지는 김한신(金韓信)이다. 644년(선덕여왕 13), 19세 때 경주 황복사(皇福寺)에서 승려가 되었다. 661년(문무왕 1) 해로(海路)로 당나라에 가서 지엄(智儼)의 문하에서 화엄종을 연구하고 671년에 귀국했다. 676년(문무왕 16) 왕명에 따라 부석사(浮石寺)를 짓고 화엄종을 강론, 해동(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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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근대 일반 복식. 남성의 일반 복식은 상의와 하의로 구분되며 상의는 겉옷(周衣: 두루마기), 겹옷, 저고리[襦衣]와 하의로 바지가 기본이다. 상의의 길이는 몸통을 다 감싸는 것이 보통이고 통수(筒袖: 소매 폭이 좁다. 그 이유는 양반과 달리 일을 하여야 했으므로 소매통이 넓으면 거추장스럽다)이다. 바지의 윗부분은 요대(腰帶:허리띠)를 매고 바지 자락은 버선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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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우계(羽溪). 할아버지는 우계[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출신 이지방(李之芳), 아버지는 참판 이광식(李光軾)이며, 어머니는 이세응(李世應)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에 생원시를 거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명종 연간에 정언을 비롯한 삼사(三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이언적(李彦迪)을 탄핵하는 등, 윤원형(尹元衡)을 좇아 사림파(士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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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영해(寧海), 조선 전기의 효자 이양무(李陽茂)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의 병이 위급해지자 칼로 살을 베려고 하였다. 집안사람들이 칼을 빼앗아 감추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그 피를 어머니에게 흘려 넣어 어머니가 열흘을 더 살게 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따라 죽었다. 숙종 때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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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어느 날 밤, 남편 이돌만(李乭萬)이 집에 없는 틈을 타 이웃 남자가 침입해 욕보이려 하였다. 죽기를 무릅쓰고 반항하다가 칼에 찔려 죽었다. 이돌만의 처 이조이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이조이(李召史)의 효열이 알려져 정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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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있는 강릉중앙감리교회의 초대 목사. 강릉 지방에 개신교로서 가장 먼저 들어온 교파는 미 남감리교회였다. 1902년 당시 신자였던 이동식(李東湜)과 남감리회 소속 의료 선교사인 하디(R.A.Hardie) 선교사에 의해 강릉시 명주동의 명국성(明國聖) 소유였던 초가 8칸짜리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강릉에서 감리교회가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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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시어머니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죽만 먹었으며, 남편 이면기(李冕箕)의 병이 심했을 때 지극정성으로 하늘과 땅에 기도를 올렸다. 끝내 남편이 죽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자신도 따라 죽을 것을 맹세하였다. 늙은 시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겉으로는 슬픔을 참으며 남몰래 홀로 울다가 잠자리로 돌아와 태연히 목숨을 끊었다. 이면기의 처 심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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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릉보통학교를 중퇴하였다. 1919년 강릉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알려져 퇴학을 당한 이후, 신문기자로서 활동하였다. 1927년 강릉철필단(江陵鐵筆團) 단장을 맡았고, 강릉 신문·잡지 기자로 조직된 보도단(報道團) 단장과 영동기자단 단장을 지냈다. 1919년 4월 1일 강릉보통학교 재학 중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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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영해. 이당(李堂)과 형제로서 조선 전기의 효자 이양무(李良茂)의 후손이다.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한겨울에 꽁꽁 언 얼음을 깨고 목욕재계한 후 밤낮으로 7일 동안 울면서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열흘 남짓 되어 따라 죽었다. 부모를 극진히 섬기는 효심에서 나온 이같은 행위에 대해 모두들 슬퍼하였다고 한다 . 숙종 때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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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지방 향리였던 이병화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이병화유혜불망비(李秉華遺惠不忘碑)는 대관령 옛길 등산로 입구에서 2㎞ 정도 올라간 곳에 자그마한 무덤과 함께 위치한다. 한겨울 대관령 험난한 고갯길에 변변한 쉼터가 없어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이들이 생기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비를 내어 주막을 운영하도록 했던 이병화의 은혜를 기리는 비석이다. 조선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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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후(李垕)이다. 1827년(순조 27) 생원에 합격하였으며,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과 청안현감(淸安縣監), 통천군수(通川郡守)를 지냈다. 1859년(철종 10)에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방해정(放海亭)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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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지증왕 이래 법흥왕·진흥왕 대까지 활약한 대표적인 장군이며, 신라 왕실의 중신이다. 일명 태종(苔宗). 내물왕의 4대손이다. 505년(지증왕 6) 신라에서는 군현제가 실시되어 최초로 실직주(悉直州)[지금의 삼척]가 설치되었는데, 이때 이사부는 실직의 군주(軍主)가 되었다. 그리고 512년(지증왕 13)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지금의 강릉]의 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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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 아버지는 이오(李璈)이고 어머니는 채흥후(蔡興後)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과거에 올라 벼슬이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1645년(인조 23) 8월, 강백년(姜栢年)이 강릉부사로 있을 때 전 직장(直長) 김충각(金忠慤)과 함께 건의하여 향현사를 세워 최치운(崔致雲)·최응현(崔應賢)·박수량(朴遂良)·박공달(朴公達)·최수성(崔壽峸)·최운우(崔雲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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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영해. 자는 성시(聖始), 호는 눌재(訥齋). 아버지는 이장밀(李長密)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호장(戶長) 최하(崔河)의 딸이다. 강릉 호가리(虎街里)[지금의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서 태어났다. 학문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여 고을 사람들이 백원당(百原堂)이라 불렀다. 일찍이 경사(經史)를 널리 섭렵하여 학문이 깊었고 문장도 뛰어났으나 가훈(家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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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화가. 본관은 덕수. 초명은 이위(李瑋), 자는 계헌(季獻), 호는 옥산(玉山). 아버지는 증 좌찬성(贈左贊成)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형으로 이선(李璿)·이번(李璠)·이이(李珥)가 있다.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의 딸과 혼인하였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시에 입격하여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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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2일에 강릉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전개하였던 만세시위 이후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이윤식은 시위 추진 본부를 자기 소유의 상점으로 옮기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시위준비를 주도하였다. 또한 1928년에 설립된 강릉공립농업학교의 개교를 위해 최재린(崔在麟)·박기동(朴基東)·조규대(曺圭大)·이한봉(李漢鳳) 등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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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미상이며 성은 김씨(金氏)이다. 남편은 이은진(李殷震)이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되었으나 시부모를 효성을 다해 모셨다. 어느 날 저녁 사나운 도적이 침입하자 시부모가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김씨는 도적을 향해 큰소리로 꾸짖고 시부모를 감싸 보호하며 안정시킨 뒤 조용히 숨을 거뒀다. 이은진(李殷震) 처 김씨에 대한 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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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우계이씨(羽溪李氏)의 시조 이양식(李陽植)의 후손이며, 밀직원사(密直院事) 이사성(李思誠)의 아들이다. 고려 말에 여러 도(道)의 원수(元帥)를 역임하였으며, 공양왕(恭讓王) 때에는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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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아명은 현룡(見龍),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 이원수(李元秀)이며, 어머니는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형으로 이선(李璿)과 이번(李璠)이 있고, 아우는 옥산 이우(李瑀)이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北坪村) 오죽헌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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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1486년(성종 17)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1516년(중종 11)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1522년(중종 17)에 울진군수를 지냈으며, 이후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지냈다. 이전손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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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미상이다. 아버지는 이응명(李應命)이며, 효자 이지헌(李之憲)의 아우이다.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자 사흘간 성복(成服)을 마친 후에 형과 함께 창칼을 들고 호랑이를 찾아 나서서 결국 호랑이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효행이 관부에 알려져 호역(戶役)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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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이지방(李之芳)은 1496년(연산군 2)에 무사 장정(張珽)·이원종(李元宗) 등과 함께 서정장수(西征將帥)에 임명되었다. 후에 종성·회령의 부사, 의주목사 등을 지내고, 1516년(중종 11)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이듬해 왕비 윤씨(尹氏)의 책봉에 대한 주청사가 명나라에 파견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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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으로, 감역 이진원(李進源)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조철명(趙哲命)의 딸이다. 1774년(영조 50)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에 들어갔다. 이조좌랑·장령·이조참의·대사성·승지를 거쳤다. 1790년에 강릉현감으로 부임하였으며 이어 대사간·대사헌과 외직으로 안동부사를 거쳤다. 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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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미상. 형은 이후(李垕)이고, 효자로 정려(旌閭)를 받은 이당(李堂)이 아우이다. 형 이후와 함께 문장에 뛰어나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만년에는 음풍농월로 세월을 보냈는데, 일찍이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 “임영(臨瀛)에서 시율에 능한 사람은 오직 이학 한 사람뿐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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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27년 12월 3일에 결성된 신간회 강릉지회의 부회장을 맡았고, 1930년 11월 9일 신간회 중앙집행위원회가 열렸을 때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강릉 지역 중등교육기관의 설립을 위해 노력하여 1928년 7월 1일 영동 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강릉공립농업학교가 개교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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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효령대군(孝寧大君)의 후손으로 군수 이봉구(李鳳九)의 아들이다. 1844년(헌종 10) 생원에 입격하여 1883년(고종 20)에 음사(蔭仕)로 순창원(順昌園) 수봉관(守奉官)이 되었다. 1887년에 공조좌랑으로 옮기고, 1894년에 도정(都正)으로 승진하여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 1894년 9월 26일에 강릉부사에 임명되었고, 10월 22일에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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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미상. 효자로 정려(旌閭)를 받은 이당(李堂)과 이학(李壆)의 형이다. 동생 이학과 함께 문장에 뛰어나 일찍부터 세상에 이름이 났다. 또한 과거시험의 폐단을 지적하고 스스로 앞장서서 바로잡을 것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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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집단. 인구는 인간 집단의 계수로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구획된 일정한 지역 내에 있는 주민의 총체를 의미한다. 지리, 인종, 종교, 국적, 자연, 사회 등 경험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집단을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세계 인구, 한국 인구, 여자 인구, 불교 인구, 노동 인구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또한 인구는 어떤 특정 시간에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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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 속에서 자연과 인간과 역사의 관련성을 토대로 인간이 만든 문물 등에 관련된 일 등을 설명하는 분야. 인문지리학의 연구 분야는 여러 기초과학[인문과학, 사회과학]의 다른 많은 학문 분야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인문 현상 중에서 무엇을 그 연구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경제지리학, 교통지리학, 관광지리학, 도시지리학, 문화지리학, 사회지리학, 역사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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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남로당의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 비밀 지하선거 활동. 1945년 5월 10일 남한의 총선거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남로당의 지하인민유격활동은 더욱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 남로당은 최고인민위원회 대의원을 지하선거로 비밀리 선출하려다 발각되었다. 지하로 스며든 남로당은 세포원을 확대하고 불온 삐라를 살포하며, 좌익 지하 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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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물.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는 김광헌의 큰 아들 김열의 아호 임경당(臨鏡堂)과 관련된 문화재가 두 곳 있다. 강릉에서 가까운 금산리 445번지에 있는 것이 하임경당(下臨鏡堂)인데 대개 임경당이라 부르고, 마을 위쪽에 있는 것을 하임경당과 구분하여 상임경당(上臨鏡堂)이라 하는데 진사댁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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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군선교 삼거리에서 임곡리 재밑골에 이르는 도로. 임곡로는 임곡천을 따라 형성된 농·산촌 도로이다. 안인진리, 모전리, 임곡리 등 3개 리를 통과한다. 도로의 끝은 등산로와 연결된다. 임곡리를 지나는 도로라고 하여 임곡로라고 이름 붙였다. 임곡은 원래 숲이 많아 숲실이라고 하였으며 1916년 대수원, 밤나무쟁이, 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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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속한 법정리. 임곡리는 강릉 함씨, 신안 주씨, 한양 조씨들이 개척하였다. 임곡리(林谷里)는 옛날 마을에 숲이 우거져 생긴 이름인데 예전에는 숲실, 또는 임곡이라 했다. 임곡리에는 선침형(旋針形)의 명당자리가 있는데, 옛날 도선이 길 옆에서 자다가 일어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숲실이라고 하니 선침형의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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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임곡리 덕우리재에서 발원한 물이 임곡리를 지나 안인진리에서 군선강과 만나는 하천. 임곡천은 강동면의 주요 하천인 군선강과 하류에서 합류하여 안인을 지나 동해로 들어간다. 군선강이나 임곡천 모두 산간 협곡을 통과하여 감입곡류 하면서 남서방향에서 북동 방향으로 흘러드는 공통점이 있다. 임곡천은 백두대간의 한 줄기인 두리봉[103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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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중앙동에 속한 법정동. 임당동(林塘洞)은 조선시대 강릉읍성 동북쪽 일부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읍성의 북문과 문루인 운금루, 그리고 누정 앞에 연못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임당성당 부근에 해당되며, 문루와 연못 그리고 숲이 우거져 있던 마을이라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임당동은 1914년에 전임당리·후임당리·북성내리와 남일리면의 금학전동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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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음사(蔭仕)로 예부주사(禮部主事)에 제수되었다가, 의종(毅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명주유수(溟州留守)와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냈다. 그 뒤 추밀원승선(樞密院承宣)·참지정사(參知政事)·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등을 거쳐 수사공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守司空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명주(溟州)에 나와 다스릴 때, 하천을 준설하고 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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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어머니의 병환이 위중하자 밤낮으로 자기를 대신 앓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고, 변을 맛보며 치료하였다.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약에 섞어 드려 여러 번 회생시켰다.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贈職)되었고, 호역(戶役)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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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남부로 삼거리에서 교동 이명 고개 교차로에 이르는 도로. 임영로는 강릉시의 서쪽에서 강남과 강북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남부로 삼거리에서 객사문 사거리까지는 2~4차선이며, 객사문 사거리에서 이명 고개 교차로까지는 2차선이다. 도로가 지나가는 지역이 주택과 상가 밀집 지역으로 항상 차량과 사람 통행이 많다. 임영로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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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강릉 지역의 사족들과 강원도 관찰사, 강릉부사가 함께 한 친목 모임. 강릉 지역을 순행하였던 관찰사나 강릉부사가 이 지역 사족과 족척관계임을 명분으로 함께 자리하였던 모임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5차례의 ‘임영족회’가 개최되었다. 1615년(광해군 7)에 강원관찰사 여우길이 강릉 지역을 순행하던 중 이 지역 사족 55명과 족회를 가졌고, 1670년(현종 1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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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덕동에 속한 법정동. 입암동(笠岩洞)은 마을에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1914년 남일리면의 수문리를 병합하여 입암리라 하여 덕방면에 편입되었다가, 1920년 11월에 성덕면에 편입되었고, 1955년 9월 1일에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동쪽은 두산동, 월호평동, 서쪽은 노암동, 남쪽은 월호평동, 신석동, 북쪽은 남대천과 접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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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청량동 기차 건널목에서 입암동 입암 6주공 오거리에 이르는 도로. 입암로는 1,622m의 비교적 짧은 도로이다. 입암로의 개설로 용지로 및 성덕포남로와 강릉의 중심관문 도로인 율곡로와의 접근성이 향상되었다. 입암동을 지나가는 도로라고 하여 입암로라 이름 붙였다. 입암동이란 이름은 마을에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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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중 가장 먼저 드는 절기. 양력으로는 2월 4일 경이며,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든다. 입춘의 ‘입(立)’은 ‘시(始)’와 같은 의미로 봄이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관아에서 토우(土牛)를 만들어 가농작(假農作)을 하는 입춘제를 지냈다. 강릉 향토지인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에 의하면 “고을 풍속으로 매년 동지에 오곡 씨앗을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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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와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사이에 있는 산. 석병산에서 내려온 산으로 산이 온통 돌에 둘러싸여 있다. 산의 이름은 돌의 색깔이 불그레하여 주위가 늘 붉게 보이는 데서 생겨났다. 자병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산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반대편의 서쪽 사면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보이고 있다. 자병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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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천변지리(天變地異)로 인하여 발생하는 막대한 인명·재산 등의 피해. 천재지변이라고도 한다. 자연재해는 기상·지변(地變)·생물 등에 급격히 나타난 자연 현상으로 인하여 입는 재난인데, 인간들에 의해 일어나는 인재(人災)와 크게 구별된다. 보통 기상 현상에 의하여 발생하는 기상 재해가 가장 대표적인 재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후 지역에 따라 그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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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 지형, 기후, 토양, 식생 등 여러 자연 현상이 공간적으로 상호 관련된 종합적 양상. 현재 존재하고 있는 강릉 지역의 자연 현상 중에서, 암석의 분포가 가장 먼저 결정되었다. 강릉 지역 북서단에 분포하는 편마암은 선캠브리아기부터 존재했던 암석이다. 고생대에는 강릉 지역 남부에서 퇴적이 장기간 진행되었다. 강릉 지역 남부가 고생대 전기에는 얕은 바다였고 고생대 후기에는 육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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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훼손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하여 산림법에 의거하여 입산 통제 구역으로 지정 고시한 지역. 자연 휴식년제는 자연 생태계의 파괴를 막고 오염을 치유하기 위하여 오염 사태가 심각하거나 황폐화가 우려되는 국·공립 공원 및 유원지 등을 지정하여 각각 3년 동안 출입을 통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와 별도로 자연휴식지는 자연 및 산림 생태계가 훼손된 관계로 자연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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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활동한 고승. 본관은 경주(慶州), 성은 김씨, 속명은 선종랑(善宗郞)이며 신라 진골출신으로 신라 17관등 중 제3위에 해당하는 소판(蘇判)의 관직에 있었던 무림(茂林)의 아들이다. 자장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깊이 닦았으며 어버이를 여윈 뒤 세속의 번거로움을 피하여 처자를 버리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 고골관(枯骨觀)을 닦았다. 선덕왕 5년(636년) 당나라로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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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제호(題號) 아래 각종 원고를 수집,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편집·간행하는 정기 간행물. 잡지는 여러 기사를 일정한 편집 방침 아래 모아서 구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삽화·사진·만화 등을 곁들인다. 영어로 잡지라는 의미의 매거진(magazine)은 원래 창고를 뜻하는 말인데, ‘지식의 창고’라는 의미에서 잡지를 지칭하게 되었다. 잡지는 여러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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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2리에서 특화사업으로 진행시킨 과수(복숭아)를 중심으로 한 마을. 장덕리는 복사꽃 축제와 허수아비 축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농촌 체험이 준비된 곳이다. 복사꽃 축제가 열리는 봄이면 동네 곳곳에 복사꽃이 활짝 피어 진분홍 빛으로 물든 마을을 보면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장덕리 과수마을에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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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의 교황권을 부정하고 교회의 운영을 장로들의 합의제로 하는 개신교 교파. 장로교회가 강릉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945년 9월의 일이다. 1945년 9월 금학동 92번지에 있던 강릉금정교회가 강릉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게 되자 1944년 7월 폐교된 대화정 교회의 교인 가운데 이학원, 박병수 등 장로교인들은 1945년 9월 19일 강릉읍 임당동 133번지 이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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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 동해 대로 교차로에서 해안로에 이르는 도로. 장성로는 동해 대로[국도 7호선]에서 해안로를 연결하는 771m의 짧은 도로이다. 이 도로 개설로 동해 대로와 항구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 접근성이 많이 향상되었다. 교항리 시외버스 터미널 일대에 옛날 주민과 나그네를 보호해 주는 장승이 있어서 생긴 이름인 장승거리, 장성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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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낸 장취정(張就正)의 손자이다. 명종(明宗) 때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이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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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는 토성. 장안성은 강동초등학교의 북쪽 구릉(70m)에 발달된 소곡지를 둘러쌓은 것으로 전면에는 군선강 하류의 충적지가 발달되어 있다. 명주성(溟州城)과 같이 석축부 위에 얇은 토층이 덮여 있다. 성벽의 높이는 3m, 상·하부의 폭은 각각 2m, 5m이며 성주는 약 600m이다. 남벽 중앙부의 절단된 부분에는 문의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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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남편은 장진문(張振文)이며, 장철견(張哲堅)의 아들이다. 나이 겨우 20세에 남편을 잃고 홀몸이 되었다. 과부가 된 후에는 문을 닫고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치아를 드러내고 웃지 않았다. 아침과 저녁으로 남편의 신주(神主)에 음식을 올렸다. 정려(旌閭)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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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그의 손자인 장취정(張就正)은 인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문종(文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추밀원학사(樞密院學士)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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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그의 아들 장칭제(張稱悌)는 희종(熙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은청광록(銀靑光祿)에 승계되었다. 명종(明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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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의 병이 위독하자 밤낮으로 약을 달이는 것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남편이 죽자 3년 동안 머리에 빗질도 하지 않았다. 시부모 섬기기를 한결같이 하여 아침과 저녁으로 문안인사를 거르지 않았고 끝까지 효성을 다하였다. 정려(旌閭)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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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장충순(張忠順)의 아들이다. 고려 희종(熙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 문관의 정2품, 혹은 정3품의 품계)에 승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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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에 고추장 또는 된장을 양념으로 넣어 끓인 강원도의 향토 음식. 기존의 칼국수에 고추장과 된장으로 칼칼하게 맛을 낸 요리로 강원도의 향토 음식이다. 멸치 육수에 각종 장을 넣어 간을 맞추기 때문에 국물 맛이 시원하고 구수한 것이 특징이다. 지역에 따라 홍합과 같은 해산물을 넣기도 하고 간 고기를 첨가하기도 한다. 장칼국수의 주재료인 된장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말린 뒤 발효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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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고려 신종(神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황주목사(黃州牧使)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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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장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장현동 고인돌 유적은 장현저수지의 서변 구릉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1977년 9월경에 마을 주민 최봉학[당시 70세]이 유물을 채집하여 신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77년 11월에 백홍기가 고인돌의 구조와 유물을 조사하였다. 조사 당시 유구는 지하에 묻혀 있었고 남단이 파여져 내부 구조가 확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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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 장현저수지(長峴貯水地)는 장현동에 있는 저수지로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 있는데 저수지 주위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장현저수지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늘목재[구정면 구정리와 왕산면 도마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밑에서 흘러 구정리와 여찬리를 지나 온 물이다. 이 물은 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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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생활 형태로 삶이 바뀌면서 재래시장은 점차 그 거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기호와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재래시장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지역민들의 삶과 함께 해왔다. 재래시장 속에서 강릉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재래시장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삶의 터전으로, 지역 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배어나는 곳이다. 삶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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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字)는 낙숙(樂叔). 조산대부(朝散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전성명(全性命)의 아들이며 외조부는 권송(權悚)이다. 1517년(중종 12)에 별시문과(別試文科)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승정원 주서(注書)에 발탁되었다. 1531년(중종 26) 울진군수를 지냈으며, 개성판윤(開城判尹)·함흥판관(咸興判官)·강동현령(江東縣令)·평산부사(平山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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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현상의 주체가 되는 전하(電荷)나 전기에너지. 물체에 전기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 곧 전자의 이동으로 생기는 에너지의 한 형태를 말한다. 전기는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현대에서의 전기는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과학적인 접근보다는 생활 활용적인 측면에서의 관심으로 많이 바뀌었다. 좀 더 편리한 전기의 이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기가 갖고 있는 속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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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을 주재료로 하여 쑨 죽. 전복을 솔로 문질러 깨끗이 씻고 껍데기 중간의 납작한 쪽에 찬칼을 넣어 살을 떼어 낸다. 전복의 내장은 터지지 않게 따로 떼어 내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얇게 저며 썰어 놓는다. 쌀은 3~4시간 전에 씻어 물에 담가 둔다. 물에 불린 쌀에 전복의 내장을 넣고 푸르스름한 색깔이 날 때까지 주물러 준다. 전복살은 잘게 썰어 참기름을 두른 냄비에서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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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정선(旌善). 자(字)는 원경(元卿). 통덕랑(通德郞) 전계현(全繼賢)의 아들이다.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1528년(중종 23)에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로 있을 때는 서장관(書狀官)으로 두 차례나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금으로 주조한 향로를 선물로 하사받았다. 그 후 풍천(豊川)·정선(旌善)·원주(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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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나이 39세에 남편이 죽자 3년 동안 죽만 먹고 지냈다. 겨울과 여름이면 남편의 옷을 손수지어 무덤 앞에서 태웠으며, 평생을 상중(喪中)에 있는 것 같이 지냈다. 남편 생전에 많은 돈을 남에게 빌려 주었는데, 그 채권을 모두 거두어 불살라 버렸다. 그 뒤에는 살림이 가난하였으나 성품과 행실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지체는 낮았으나 정절(貞節)이 뛰어났으므로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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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를 제향하는 전충사에서 올리는 제례. 영동 지역에 거주하는 포은 정몽주의 후손들이 매년 음력 4월 상정일(上丁日)에 강릉시 저동에 있는 전충사에서 올리는 제례이다. 포은 정몽주는 고려말 충신으로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다. 제관으로는 강릉시장, 문중대표 등이 참석한다. 1934년 후손 정기용(鄭起鎔)이 개성 숭양서원(崧陽書院)에서 정몽주의 진영(眞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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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자는 경임(景任), 호는 우복(愚伏)·하거(荷渠)·승성자(乘成子)·석중도인(石衆道人). 조선 중기 여러 관직을 겸한 행정가이며 중앙과 지방행정에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였다. 정치관은 충효사상을 바탕으로 덕치주의와 왕도정치를 지향하였다. 상주에 도남서원을 세우는 등 예학에 깊은 조예를 가졌으며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만언소를 올려 사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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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강릉. 남편은 정곤(鄭鵾)이다. 집에 불이나 시어머니가 불길 속에서 미처 나오지 못하자 불길을 무릅쓰고 뛰어 들어가 시어머니를 껴안고 나오다 함께 죽었다. 관에서 정려(旌閭)를 내렸다. 정려각(旌閭閣)은 강릉시 옥계면 성촌(城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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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된 각 정당들의 정치활동. 정당은 일반적으로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의 획득·유지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견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한 정치적 단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정당은 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결성된 정치적 단체이기 때문에 사회적·경제적·학술적 및 종교적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목적으로 결성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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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영일(迎日)정씨(鄭氏)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어버이의 병이 심해지자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다섯 달 동안 기도를 올렸다. 기도가 효험이 있어 천수를 누리다가 돌아가셨다. 어버이가 돌아가신 후에는 죽만 먹었으며, 상복을 벗지 않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묘를 하였다. 집에 있을 때에는 새벽마다 사당에 배알하였으며, 늙어서도 조금도 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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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대도호부의 면 이름.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방리조(坊里條)에 의하면, 정동면(丁洞面)은 유천리(楡川里)·사전리(沙田里)·조산리(助山里)의 3개 리로 구성되었다. 인구현황을 보면, 유천리는 호수 69호, 인구수 271명(남 137명, 여 134명), 사전리는 호수 77호, 인구수 280명(남 136명, 여 144명), 조산리는 호수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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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1리에 있는 해변. 길이가 250m이고, 1만3천㎡의 백사장이 있는 일반 해변이다. 모래사장 옆으로 돌아가면 포구가 있고 바위와 절벽을 끼고 있다. 수영과 낚시 및 싱싱한 해산물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인근 관광지로는 오대산 국립 공원, 소금강, 오죽헌, 경포대, 보현사, 옥계 동굴, 동명낙가사, 송담 서원 등이 있다. 정동진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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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속한 법정리. 정동진리는 정동 쪽에 있는 마을로 바다에서 올라오는 태양을 가장 먼저 보고 태양의 정기를 제일 먼저 받는다고 한다. 정동진(正東津)은 하지(夏至) 때 한양에 있는 궁궐[광화문]에서 보면 정동 쪽에 있어서 해가 뜨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또한 원래 군사 주둔지로서 서울에서 정동쪽, 정확히는 광화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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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있는 영동선 기차역. 정동진역은 전국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철길과 해변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천혜의 명승지이다. 정동진리에 있는 기차역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정동진은 경복궁 광화문(光化門)에서 볼 때 정(正)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위도상으로는 서울의 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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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2리에 있는 항구. 마을 한 가운데 고성산이 있어서 고성동이라고 했다가 이후 ‘궁궐이 있는 한양에서 정동쪽에 있는 바닷가’라는 뜻에서 ‘정동진’이라 하였다고 한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2리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은 승용차로 강릉인터체인지에서 (구)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7번국도 ‘안인’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여, 정동진 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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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산성우리 피래산에서 발원하여 정동진리에서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 정동천(正東川)은 강동면의 군선강, 임곡천과 같이 흐르는 방향이 남서에서 북동을 향하고 있다, 소규모 하천으로서 유역면적이 좁다. 정동천은 피래산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동사면과 피래산에서 정 동쪽을 향하여 509m의 산봉우리, 그리고 더 동쪽의 7번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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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에서 내곡동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지나는 지역이 정등골[정동골]이라 정등로라고 이름하였다. 길이 1,755m, 폭 8m의 2차선 도로이다. 정등로는 제비 2리 사거리에서 내곡동 구정 프라자 약국 삼거리에 이르는 길이다. 회산, 제비리 지역에서 내곡동, 구정 방면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도로 인근의 농민들과 지역 주민이 주로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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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경서(景瑞). 시조는 정습명(鄭襲明)으로 5대손인 정귀종(鄭貴宗) 대에서부터 삼척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를 지낸 정두형(鄭斗亨)이고 어머니는 김세정(金世貞)의 딸인 김씨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609년(광해군 1)에 세상을 떠났다. 천성이 순수하고 기질이 온화하였다. 1568년(선조 1)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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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인인 정란(鄭鸞)의 경력과 인품을 기록한 묘지(墓誌). 정란은 1568년(선조 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부친은 정두형(鄭斗亨)으로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를 지냈다. 강원도 강릉시 저동 전충사(全忠祠)에 있다. 개자판(蓋磁板)은 가로 15.2㎝, 세로 21.8㎝, 두께 3.3㎝이며, 저자판(底磁板)은 가로 14㎝ ,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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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출신의 의사이자 초대 참의원. 동경대 문리대 법학과를 수료하였다. 1960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초대 참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강원도의사협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명주의원을 개원하여 의료사업을 펼쳤으며, 동포문학회 및 다도회를 만들어 지방문학의 발달에 이바지했다. 『한국인구문제와 대책』과 수필집 『경포호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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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원도 강릉시 정동면 난곡리에서 거주하며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7일에 만세운동을 벌이기 위하여 태극기 5백여 매를 미리 만들어 준비하던 중, 4월 6일 밤 경찰의 습격을 받았다. 그러나 다시 다음날 아침부터 태극기 약 1백여 매를 만들어 장터(현 강릉시 중앙로터리 광장)에 뿌리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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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영일(迎日).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부모님이 병이 들자 변을 맛보며 치료하는 등 지극 정성을 다하였다. 어느 날 새벽에 물을 긷다가 물고기가 함께 올라와 잡아다 드렸더니 부모님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라고 하였다. 예조에서 표창을 내렸고, 호역(戶役)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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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 원대 고개 삼거리에서 하슬라로에 이르는 도로. 정원로는 교동 택지 내 구역 간 연결 도로의 하나이다. 택지 구역 내 직사각형 도로망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야산 녹지대와 인접하여 있다. 교동 택지 개발 지구 중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위치한 길이라고 정원로라 이름하였다. 정원로는 홍제동, 교동, 지변동, 유천동 일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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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정월 대보름날 달을 보며 복(福)을 비는 풍속. 달을 바라본다고 하여 망월(望月)이라 한다. 동쪽에서 뜬다고 하여 영월(迎月)이라고도 하며, 우리말로 달보기, 달맞이, 망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영월(迎月)이라 한다. 먼저 달을 보는 사람이 길하다. 그리고 달빛으로 점을 친다.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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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영일(迎日).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부모님의 병환이 위독할 때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드리기도 하는 등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다. 상(喪)을 당하여서는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예를 다하여 참배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그의 아름다운 행실을 찬양하였으며, 부영(府營)에서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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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영일(迎日).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반드시 가져다 부모에게 드렸고, 병환이 있을 때에는 밤낮으로 간호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죽을 먹으며 시묘살이를 하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관에서 효행을 표창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증직(贈職)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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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미상. 효자로 이름 높았던 정종현(鄭宗玹)이 형이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9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상막(喪幕)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지켰으며 따뜻한 방에 거처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형과 함께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묘소 옆에 평소 어머니가 즐겨 드셨던 고사리가 나자 이를 캐어 아침과 저녁으로 올렸다. 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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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아우인 정종수(鄭宗琇)와 함께 두 형제가 모두 효성이 뛰어나 어려서부터 어버이의 뜻에 어긋남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는 14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생과 함께 상막(喪幕)을 지켰으며 따뜻한 방에 거처하지 않았다.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에는 형제가 함께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형제의 효행이 알려져 부영(府營)에서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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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는 행위, 즉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 정치에 대한 개념은 시대와 장소, 학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된다. 20세기 전반까지 정치에 대한 개념은 주로 국가나 사회 집단과 관련하여 규정되었다. 즉, ‘국가의 작용이나 활동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치로 보는 국가 현상설과 ‘사회 집단 일반의 현상’이라고 보는 집단 현상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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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를 만들어 차는 아이들 놀이 넉넉한 공간이 확보되는 운동장, 공터, 놀이터에서 한다. 제기를 만드는 방법은 예전의 엽전이나 동전 같은 것을 종이나 헝겊 혹은 비닐로 싼 후 그것을 가위로 길게 잘라내어 만든다. 여러 갈래로 잘게 나누는 것은 공기의 저항을 적게 만들어야 발로 찼을 때 위로 쉽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본래 제기는 겨울놀이의 일종이었다. 주로 정초에 놀았던 것이지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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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신이나 조상을 받드는 제사 의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제례는 선조에 대한 의례로서 예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보편적인 제례는 차례(茶禮), 기제(忌祭), 시제(時祭)로 나눈다. 시제에는 묘소에 가서 지내는 묘사(墓祀)가 있으며 차례는 성묘(省墓)의 형태로 나타난다. 제례가 있을 때에는 무엇보다 제수를 정결하고도 정성껏 장만해야 하므로 옷차림과 몸을 깨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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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제례 때 차리는 음식. 강릉 지방은 아직까지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하여 제례풍속이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있다. 제례는 크게 나누어 차례(茶禮), 기제(忌祭), 시제(時祭)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유교식 예법에 따른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역적 차이 없이 대개 공통적인 날에 지낸다. 그렇지만 제사를 모실 때 차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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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와 왕산면 왕산리 사이에 있는 산. 제왕산(帝王山)은 대관령과 능경봉을 잇는 선 중앙 지점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의 하나로 대관령 동쪽 낙맥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제왕산은 산세가 완만하며 참나무 숲과 낙엽송이 우거진 수풀이 곳곳에 있다.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성산면 경계에는 선자령이 있고, 북쪽으로 영동고속도로를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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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의 해발 840.6m의 제왕산 정상에 있는 고대 석축 산성. 제왕산성(帝王山城)은 고려말 우왕(禑王)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피난을 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으나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우왕은 왕씨가 아닌 신돈(辛旽)의 아들 신우(辛隅)로 몰리어 쫓기는 신세였으며 강릉으로 옮긴 후 한 달도 못되어 공양왕(恭讓王)이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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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금학동에 있는 의료 기관. ‘제중(濟衆)’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대중을 질병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며, 대중과 동고동락하면서 밝은 사회를 구현하는 것도 또한 목적이다.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었던 ‘강달주 한약방’을 인수하여 심성수(沈聖洙)가 제중 한의원을 설립하였다. 1959년 7월 20일에 설립한 이래 1961년에는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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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재림과 안식일 엄수를 주장하는 그리스도 교파. 1911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와 관계가 있는 종교 모임이 강릉에 처음 결성되었다. 당시 감리교회의 전신이었던 기도처 출신의 김도영이 안식교회 잡지인 『시조』를 통해 이 교파의 교리를 접하고 가정안교를 시작함으로써 출발하였다. 당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 사람들은 이상희, 명국성, 이태이, 최해정, 김원재 등이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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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송정동에 있는 넓은 들. 젠주(前州, 全州)는 송정동의 동쪽 앞(남대천 하구 북쪽)에 넓은 들이 있어서 앞뜨루(前州)라 하는데, 이를 전주(全州)로 바꿔 썼다. 남대천 하구에 있는 봉을 전주봉(全州峰)이라 하는데, 일설에는 이 봉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떠내려 왔다고 하여 생긴 지명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염전이 있어서 ‘젠주 염전되듯’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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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병산동에 있는 마을. 조강(槽杠)골은 병산동에 있는 고을로, 예전에 조강다리 부근에 살던 사람이 조강골로 와서 살면서 생긴 이름이다. 조강다리는 옥천동 수문리와 물 건너 남쪽 입암동 사이에 있던 통나무 다리이다. 조강다리는 월대산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산줄기에 있는데, 조강골 북쪽에는 남대천이 있다. 조강골에서 동쪽으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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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27년에 신간회 강릉지회 상무간사를 맡았다. 1927년 8월 15일에 강릉유학생연합친목회에서 주최하여 강릉공회당(江陵公會堂)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학생운동의 사명’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고, 강원청년연맹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1927년 10월 5일 신간회 강릉지회 설치 추진위원으로 활동하여 같은 해 12월 3일 창립총회에서 상무간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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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에 거주하며 1919년 강릉 지역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2일 강릉 장날에 최선재(崔善在)·최선근(崔善根)·김진숙(金振淑)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배포하고 장날에 모인 시위군중 수백 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또한 4월 7일에 다시 만세운동을 계획하여 이날 아침부터 12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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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주수리의 주수천 하류 염전터 옆에 있는 조그마한 봉우리. 조산은 봉우리가 마치 사람들이 도와서 만들어 놓은 것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봉우리 이름이 지역의 이름이 되었다. 조산은 바다 옆이어서 모래사장이 있고, 주수천 하구와 주수의 넓은 들을 끼고 있다. 조산의 동쪽은 바다이고, 서쪽은 주수리 새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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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 지역의 장수 인물. 사마시에 올랐으며, 성품(性稟)이 온화하고 기품이 있어 화려함을 따르지 않았다. 매화와 대나무를 즐기며 거문고와 책으로 여가를 보냈다. 94세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으며, 3대에 걸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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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창녕. 충정공 조계상(曺繼商)의 후손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겨 고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살이를 할 때에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순진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조순진의 효행이 나라에 알려져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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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학자. 본관은 풍양(豊壤). 풍양군(豊壤君) 조신혁(趙臣赫)의 후손이다. 조시달(趙時達)은 일찍이 경학(經學)과 『사기(史記)』를 익혔다. 『예서(禮書)』를 두루 보고 『사례촬요(四禮撮要)』를 저술하여 관혼상제(冠婚喪祭)에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였다. 조시달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가례(家禮)에 대하여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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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승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조신(調信)의 꿈」을 통하여 애욕(愛欲)의 무상함을 깨친 일화를 남기고 있다. 경주의 세달사(世達寺)에 속하였던 명주(溟州)[강릉] 장원(莊園)의 지장(知莊:장원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던 조신(調信)은 군수인 김흔(金昕)의 딸을 본 뒤 매혹되어 낙산사(洛山寺) 대비관음상 앞에서 그 사랑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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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설립된 아동문학 단체. 1960년 10월 10일 30여 명의 회원이 참가하여 발족시킨 강원도 내의 대표적인 아동문학회이다. 이 모임은 문학 동호인의 순수한 만남을 목적으로 동호인과의 유대 강화, 지방 문학 인구의 저변 확대, 지방 문단과 중앙 문단의 유대 강화를 설립 취지로 하고 있다. 이 단체에는 회장이라는 직책이 따로 없고, 대표 1명이 모든 회무를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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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어버이를 섬길 때 정성을 다했다. 아버지가 목에 종기가 나서 고생하자 흑질백장(黑質白章)이라는 뱀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백방으로 구했으나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손수 숲속 바위틈을 찾아다니며 큰 뱀이나 구렁이가 흑질백장과 비슷하면 무조건 잡아다 아버지에게 드렸다. 이와 같은 일을 4~5년 동안 계속하였다. 조영기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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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을 관할하는 가신(家神). 조왕신을 화신(火神) 또는 부뚜막신, 조왕할머니라고도 하는데 집안신앙 중에서 주부들이 가내의 평안을 기원하는 모성애적 신앙이다. 요즘에는 가옥구조나 신앙자유의 변화로 가정에서는 차츰 사라져 가는 신격이다. 아궁이나 부뚜막에서 기원한 형태에 대해서는 『삼국지(三國志)』「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변진조에 언급이 있고, 고구려의 수혈신을 불신으로 해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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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평장사 조맹(趙孟)의 31대손이다. 조운흘(趙云仡)은 이인복(李仁復)의 문인이며, 1357년(공민왕 6)에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었다. 합문사인(閤門舍人)을 거쳐서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에 오르고, 1390년(공양왕 2)에는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다. 1392년 조선 개국 후에 강릉부사로 제수되었으나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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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1리에 있는 지역. 조울뜰[照月坪]은 산계리 중심마을로 마을 뒤에 우뚝 솟은 조울병[照月峰] 꼭대기에 돌들이 깎아 세운 듯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서녘으로 넘어가는 달이 산계천 남북에 걸쳐 있는 넓은 들에 비추면 달빛이 석벽에 반사되어 은빛처럼 반짝거려 생긴 이름이다. 조울뜰로 반사되는 달빛이 아름다워 반암8경 가운데 하나인 ‘봉루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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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인. 진사 호인(好仁)의 아들로 용맹하였고 의기가 남달리 뛰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병자호란 때 선전관으로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인조를 호위하였다. 1637년(인조 15) 정월 적진을 염탐하기 위하여 강화도(江華島)에 들어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인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특별히 말과 좋은 옷을 하사하였다. 또 적의 동태를 파악하라는 명을 받고 적진으로 가던 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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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의 후손으로 조근(曺瑾)의 아들이다. 1681년(숙종 7)에 문과에 올라 벼슬이 현감(縣監)에 이르렀다. 조징한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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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충정공(忠貞公) 조계상(曺繼商)의 증손이다. 음서(蔭敍)로 벼슬이 전생직장(典牲直長)에 이르렀다. 조철(曺哲)은 임진왜란 때에 벼슬을 버리고 경포에 숨어 살았다. 옥산(玉山) 이우(李瑀)와 헤어지면서 시를 짓기를 “석잔 술에 헤어지는 노래 한 곡조, 그대를 보내고 경포 가로 돌아가네. 이별의 정한을 알 리가 없어, 술잔을 거듭 잡고 나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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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금구현령 조헌주(曺憲周)의 아들이다. 1711년(숙종 3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22년(경종 2) 장릉참봉(章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36년(영조 12)에 정시문과에 장원하였다. 이후 동몽교관(童蒙敎官)·공조좌랑·의령현령 등을 거쳐 1739년에 승지, 1741년에 대사간을 지냈다. 1742년(영조 18)에 강릉부사로 왔다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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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조정벽(趙廷璧)의 아들이다. 1792년(정조 1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조항존(趙恒存)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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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초당마을과 송정마을에서 음력 2월 초엿새 좀상날 억지다리뺏기를 하던 민속놀이. 강릉에서는 음력 2월 초엿새를 좀상날 또는 좀생이날이라 한다. 좀생이는 묘성(昴星)을 말한다. 이날 초저녁(6~7시 사이)에 달이 떠오르면 달과 좀생이와의 거리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것이다. 좀생이가 달에 가까이 따라가면 그해는 흉년이고 좀생이가 달에서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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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절대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고 신앙하여 선악을 권계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 백두대간 동쪽에 위치한 영동지방 대부분이 그렇듯이 강릉 역시도 산악과 해안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강릉에는 일찍부터 산악과 바다를 신성하게 여기고 숭배하는 종교적 관념이나 종교 의례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나는 오악(五岳)과 삼산(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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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3리에 있는 마을. 종량동(種糧洞)은 마을에 불이 난 다음 다른 식물들은 자라지 않았는데, 기장과 조만 저절로 자라서 그것으로 양식을 했고, 또 양식의 종자가 되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종량동은 종량산 낙맥에 있는데 대기3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 댓말의 경계지역에 있고, 대기 2리 배나들이에서 흘러온 송천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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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1리에 있는 마을. 좌망두[坐望洞]는 마을의 생김새가 마치 토끼가 앉아서 동쪽에서 떠오른 달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좌망두는 자망두라고도 하는데 스스로 앞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마을이란 뜻으로, 좌망두와 자망두의 발음이 비슷하여 생긴 이름이다. 좌망두는 새재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줄기와 칠봉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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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 주문 파출소 앞에서 향호리 동해 대로에 이르는 도로. 주문 북로는 주문로와 더불어 주문진 시가지의 중심부를 지나는 도로의 일부이다. 시가지의 북쪽 야산 구릉 지대 주택가를 통과하여 동해 대로에 이른다. 주문진의 북쪽을 지나는 길이라고 하여 주문 북로라 이름하였다. 주문로와 더불어 광복 후 주문진 시가지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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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 버스 종합 터미널 앞에서 주문리 주문 북로에 이르는 도로. 주문로는 주문진 시가지의 중심부를 지나는 도로이다. 원래는 좁은 2차선 도로였지만 꾸준한 도시 정비 사업을 통해 도로와 주차장 등 가로 환경이 많이 정비, 확충되었다. 도로가 주문진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여 주문로라고 이름 붙였다. 광복 후 주문진 시가지가 형성된 때부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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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마을. ‘주문(注文)’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에 봉수가 설치된 주문산 봉수에서 유래하였다. 주문리는 원래 강릉군 신리면 지역으로 ‘주문을’이라 하다가, 나루터가 있으므로 주문진이라 하였다. 1916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거물이, 방꼴, 봉꾸미, 오릿나루, 약물골, 용소동, 소돌을 합하여 주문리라 하였다. 그 후 항구가 생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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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있는 산. 강원 지방에 형성된 산지의 지맥들은 서부 산지로부터 동해안으로 가면서 고도가 점차 낮아져 구릉지로 변하며, 이 지맥들의 동해안에 인접한 구릉들은 과거에 남북을 잇는 봉수에 이용되었다. 주문진읍의 향호리에 있는 주문산(注文山)도 사천진리의 사화산(沙火山) 등과 함께 봉수에 이용되었던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구릉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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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교항리에 있는, 농어촌 지역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조성한 공업 단지.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병합된 명주군이 1980년대 후반에 주문진읍에 조성한 농공단지이다. 농공단지는 농촌 지역에 기업을 입주시켜 농촌의 잠재 노동력을 활용함으로써 기업은 고임금의 부담을 덜고, 농가는 농외소득을 올린다는 취지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이 같은 농공단지는 조성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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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항구 외측에 위치한 등대. 주문진 등대는 조선 시대에 주문산 봉수가 있던 곳으로, 바다로 돌출되어 있어서 어로 활동을 하던 선박들이 불빛을 식별하기가 용이한 지점이다. 과거 주문산 봉수가 있을 때에는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국가의 위기 상황을 전달했던 통신 기능이, 지금은 산업 활동에 이용되는, 기능의 변모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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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지역에 침투한 무장간첩 토벌 사건. 1969년 3월 주문진에 침투한 공비들이 공작을 마치고 주문진 앞 해상에서 도주하려는 것을 예비군과 군경이 사격하여 보트를 침몰시키고 공비 모두를 익사 또는 사살하였다. 1960년대 말경에는 북한 내 지도부가 무장 게릴라세력을 대량 남파한 시기이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1968년 1월에 31명의 무장 게릴라가 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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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지역에서 벌어진 북한군 무장공비토벌전투. 제526군은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이며, 부대원들은 한국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가 월북하였거나 한국전쟁 당시 와해된 남한 좌익분자들로 구성되었다. 이 부대는 한국전쟁으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남파되어, 남한 전 지역에서 유격대를 조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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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남북한군이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복룡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1953년 휴전 후에도 비록 약화되기는 했지만 빨치산들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빨치산 부대들은 장기적인 활동을 고려하여 사상 무장을 강화하고 부대를 소규모로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1953년 9월에 지구당은 소규모로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시기에 빨치산은 주로 지리산 지구, 덕유산 지구, 회문산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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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강릉의 향토지인 『임영지(臨瀛志)』에는 주문진 나루에 살았던 여성 옥도가 절개를 지킨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옥도는 용모가 아름다웠으나 나이 20세에 일찍이 남편을 잃었다. 부모가 그를 불쌍히 여겨 다른 곳으로 재혼을 시키려 하였으나 죽기를 무릅쓰고 이를 거절하였다. 머리를 삭발하고 얼굴에는 먹칠을 하는 등 스스로 추하게 보이도록 하였다. 머리가 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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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이완이(李完伊)의 처인 주문진 해녀 섬이는 나이 겨우 열일곱 살에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었다. 그 부모가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려 했으나 몰래 혼자서 머리를 깎고 7일간을 먹지 않아 거의 죽게 되었다. 부모가 불쌍하게 여겨 개가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고 겨우 살아났다. 유복녀가 한 명이 있었는데 이 딸이 시집을 간 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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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있는 해변. 주문진 해변은 조차가 작고 해안선이 비교적 단조로우며 여러 하천들이 토사를 많이 운반하여 발달된 사빈으로 형성되었다. 주변에는 수령 10년쯤 되는 낮고 울창한 송림이 펼쳐져 있으며, 천혜의 관광 조건으로 인하여 매년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이 찾는다. 1984년 7월 6일 관광지로 지정받고 1985년 4월 1일 조성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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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에 있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1910년 쿠퍼 목사와 유안나 전도사에 의해 장성리 성도 가정에서 기도처로 예배를 시작하였다. 1930년에 교회 건물 20평을 신축한 이래 1947년에 고수택 씨가 대지를 기증하였고, 1964년에 현 위치 항구로 43[주문리 351]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2000년 11월 6일에 현재의 건물을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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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상설시장. 조선시대의 상거래는 5일마다 시행되는 5일장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당시 주문진시장은 강릉시 신리면 주문진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1일과 6일이 장날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주문진역 지역 상권에는 강릉시 중심지와 비슷한 추세로 일본인이 341[3.8%]명이나 거주하였다. 그들의 주요 업종은 잡화점[강상(江上)·도마리·궁기(宮崎)·아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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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에 있는 미래창조과학부 소속의 기관.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 지역의 우편·금융·보험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주문진우체국은 1906년 4월 1일 주문진 우편 취급소로 설치되었다. 1913년 1월 1일부터 통화 업무를 개시하였으며, 1932년 1월 1일부터 전화 교환 업무를 실시하였다.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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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읍. 원래 강릉군 신리면 지역으로 ‘주문(注文)’이라 하다가, 나루터가 있으므로 ‘주문진(注文津)’이라 하였다. 주문진읍은 고구려 때에는 지산현(支山縣)이었으며 일명 양곡이라 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이르러 지산이라 하며 명주의 속영으로 하였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지방 관제의 개정에 의해 연곡면에 소속되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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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에 있는 항구. 주문진항은 옥계항과 더불어 강릉 지역에서 항만청이 관리하는 항구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시설 대부분이 어항으로 운영되고 있는 무역항이 아닌 연안항으로서 항만청의 위임을 받아 주문진읍에서 대신 관리하고 있다. 주문진은 원래 강릉군 연곡면에 속해있었는데 항구가 생기면서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져 새말(新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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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강릉 지역에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부터였다. 이를 증명하는 많은 선사시대 유적들이 지금도 출토되고 있다. 강릉은 영동 지방의 문물의 중심지로서 다른 곳에 비해 상류가옥이 많은 편이다. 이런 전통가옥들이 지금도 꽤 여러 개가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다. 근·현대로 내려오면서 현대적 건축양식인 아파트, 단독주택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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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속한 법정리. 숲이 우거지고 구슬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주수천 하류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주수’라는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주수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주막거리, 숲거리, 새터, 조산 등이 있다. 주막거리는 철길 서쪽 일대로 소나무가 숲을 이루었고 주막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숲거리는 제재소 옆의 성황당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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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서 동해에 이르는 하천. 주수천(珠樹川)은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의 생계령과 절골, 황지미골에서 발원한 물이 학림(鶴林)에서 만나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빠져나가는 하천이다. 하류의 천남리 일대에서는 북류하는 남양천을 합류하고, 본동의 가평들 일대에서는 동류하는 낙풍천을 합류한다. 백두대간에서 강릉시 남서단에 위치하는 능선부는 북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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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자동차 따위에 기름을 넣는 곳. 시가나 도로변에 위치하여 특별한 장치를 설비하여 자동차에 휘발유·경유 등의 기름을 넣어주는 곳을 지칭한다. 주유소에 대한 특별한 언급 자료는 없으나, 자동차와 관련지어 미루어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강릉 지역에 버스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1년 3월 28일 현 강원 여객의 전신인 내선 여객 자동차 주식회사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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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견소동에 있는 봉우리. 죽도봉(竹島峰)은 남대천 하류인 송정동 내의 견소동 아래 끝부분에 있는 높은 봉우리로서 일명 ‘견조봉(堅造峰)’ 또는 ‘젠주봉’이라고도 한다. 죽도봉은 옛날 이 봉우리에 대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마을사람들은 ‘젠주봉(峰)’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는 원래 전라북도 도청소재지인 전주에 있던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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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삼교리에 있는 마을. 죽절골[竹寺洞]은 주문진읍 삼교리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이곳에 죽정사란 절이 있어서 죽정사라 하다가 죽절골로 변하였다. 죽절골은 철갑령에서 내려온 산줄기와 삼형제봉에서 내려온 산줄기에 둘러싸여 있다. 죽절골은 세거리와 살괘 사이에 있는 계곡 안쪽에 있는 마을로 골로 계속 들어가면 양양군 현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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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에 속한 법정동. 죽헌동은 강릉시 북쪽 오죽헌이 있는 마을로 검은 대나무인 오죽(烏竹)이 많이 자라고 있어 생긴 이름이다. 죽헌동에 있는 오죽헌은 원래 조선의 개국 공신인 최치운[1390~1440]의 집이다. 최치운은 아들 최응현[1428~1507]에게, 최응현은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었다. 이사온은 외동딸의 사위인 신명화에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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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저수지. 죽헌동을 흐르는 운정천의 상류를 막아 조성하였다. 죽헌저수지에서 흘러나온 물은 경포호로 유입되는데, 경포호 주변의 넓은 들판에 조성된 농업용수로 주로 이용된다. 죽헌저수지는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약 7년여에 걸쳐 관개 개선을 위하여 조성되었다.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인 곤신봉에서 동쪽으로 강릉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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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작은 하천. 준용하천은 하천의 관리 주체에 따른 구분이다. 하천법에서는 하천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국가하천’, 시도지사가 관리하는 ‘지방1급하천’, 위 하천에 준하여 시도지사가 관리하는 ‘지방2급하천’으로 분류하고 있다. 강릉의 준용하천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작은 하천을 말한다. 강릉시 관내를 통과하는 하천은 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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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9월 9일. 음력 9월 9일은 9자가 겹치는 좋은 날로 중구 또는 중양이라 부르며, 고려시대부터 명절로 삼고 있다. 강릉에서는 국화절이라 하여 국화를 따서 찹쌀떡과 국화전을 만들어 먹거나 단풍구경을 가는데, 음력 3월 3일과 대칭되는 가을 명절로 인식한다. 중구는 9자가 겹쳤다는 뜻이고 중양은 양의 숫자인 9가 겹쳐서 길상을 의미한다. 중구는 등고(登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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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문동에 있는 노동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하는 국가 기관. 경제 및 사회 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인력 개발과 노동자 근로 조건의 기준, 직업 안정, 직업 훈련, 실업 대책, 고용 보험, 산업 재해 보상 보험, 복리 후생, 노사 안정 등 노동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74년 10월 2일에 노동청 강릉지방사무소로 개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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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중앙동은 강릉시의 중심부에 있는 지역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1983년에 남문동과 성남동이 중앙동으로 통합되었다가 다시 1998년 중앙동이 임당동과 합쳐져 중앙동으로 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시 승격 당시 남문동, 성남동, 임당동으로 나누어졌다. 그 후 1983년 10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남문동과 성남동을 통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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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 사천 육교 교차로에서 사천진리 사거리에 이르는 도로. 중앙동로는 사천천을 따라 사천면의 석교리, 판교리, 미노리, 방동리, 사천진리 등 5개 리의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사천의 동쪽 중앙에 위치하는 도로여서 중앙동로라고 이름 붙였다. 사천면 판교리 평야 지대를 따라 사천진리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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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석교리 사천 육교 교차로에서 사기막리 용연사에 이르는 길. 중앙서로는 사천천을 따라 사천면의 석교리, 노동리, 덕실리, 송암리, 사기막리 등 5개 리의 중심부를 지나는 도로이다. 도로변에 여러 공공 기관과 전국에 널리 알려진 과즐 마을이 위치하여 평소에도 차량 통행이 많다. 도로가 사천의 서쪽 중앙에 위치하여 중앙서로라고 이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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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남동에 있는 강릉시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1980년에 상설시장으로 개설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재개발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실제로는 강릉의 생성과 때를 같이 한다. 지금의 중앙시장 건물은 1956년에 설립된 공설시장 건물들을 철거하고 현대식으로 지은 것이다. 건물 구조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되어 있다. 지하 1층에는 수산물직판장이, 1층에는 제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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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있는 마을. 즈무[助山]는 대전동 태장봉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경포의 중심지인 날밀이나 뒷뜨루 지역에서 보면 이곳이 해가 지는 서쪽이 된다. ‘해가 저무는 서쪽 마을’이란 뜻인 ‘저무 마을’로 부르다가 나중에 ‘저무’가 ‘즈무’로 되었다. 즈무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줄기가 이어져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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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증산도의 도장. 증산교(甑山敎)는 1901년 강일순(姜一淳)이 전주 모악산 밑에서 창도한 자생 한국 신종교이다. 강일순의 호가 증산이었으므로 흔히 증산교라고 부른다. 강증산의 사후에 형성되기 시작한 증산계의 종단들은 일제시대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분파되었다. 현재 증산교는 자생 신종교 가운데 가장 분파가 많은 종교로서, 이 분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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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혼례 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보내는 음식. 떡, 과일, 어물, 산자 등의 음식을 장만하여 신부 집에 보내는 풍습이다. 신부 집에서 신랑 집에 음식을 보내는 ‘이바지’와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음식을 보내는 ‘지랄구미’는 혼인을 한 두 집안이 음식을 서로 바꾸어 먹음으로써 한 가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지랄구미’는 길을 알려준다는 뜻으로, 사돈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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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주민이 정치·행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지역 현안을 결정·운영하는 제반 활동. 1948년 7월 유사 이래 최초의 민주헌법인 ‘제헌헌법’을 제정 공포하게 되고, 이 헌법 제8장은 지방자치조항으로서 지방의회의 구성을 통한 지방자치제도의 채택을 밝혔다. 이에 따라 1949년 7월 4일 지방자치법을 처음 제정·공포하였으나 한국전쟁 등의 사정으로 인하여 19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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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에 속한 법정동. 연못 앞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의 지전리(池前里)와 연못 뒤의 마을이라는 의미의 지후리(池後里)를 합치면서 연못 옆이라는 의미의 지변리가 되었다. 지전리와 지후리를 합쳐져 지변리가 되었다. 후에 리가 동으로 바뀌면서 지변동이 되었다. 1914년 지변리가 되었고 정동면에 편입되었으며, 1938년에는 정동면이 경포면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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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기반을 이루는 암석의 상태. 강릉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은 편마암이다. 편마암은 기존의 암석이 지각변동 시에 강한 압력과 그에 수반된 열을 받아 변성된 암석이다. 강릉 지역의 편마암은 선캠브리아기부터 존재했던 암석이다. 강릉 지역에서 편마암 다음으로 오래된 암석은 고생대 퇴적암류이다. 강릉 지역의 고생대 퇴적암류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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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지역에 나타나는 땅의 형태 강릉 지역의 현재 지형은 태백산지의 지반 융기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태백산지의 지반 융기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은 동해의 지반 침강이 진행된 시기와 일치한다. 태백산지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융기하기 시작할 당시, 강릉 지역은 전체적으로 평탄한 지형이었고 기반암이 화학적 풍화작용을 매우 깊이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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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4리에 있는 고개. 진고개(泥峴)는 비만 오면 땅이 질어지는 이 고개의 특성이 지명이 되었다. 또 고개가 길어서 긴 고개라 하다가 방언의 구개음화(ㄱ→ㅈ)로 진고개가 되었다. 진고개는 연곡면 삼산4리 솔내와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사이에 있는 높은 고개(1,072m)로 백두대간 줄기인 동대산과 노인봉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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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서 영진리 동해 대로에 이르는 도로. 진고개로는 강릉시 연곡면과 평창군 진부면을 연결하는 국도 6호선의 일부 도로이다. 백두대간 준령의 해발 700m 이상의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로 심한 굴곡과 급커브 구간이 많다. 진고개는 비만 오면 땅이 질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기도 하고, 또 고개가 길어서 긴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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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출신의 법학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학부(法學部)를 졸업하였다. 보성전문대학의 교수를 거쳐 서울대 교수와 서울대 법과대학장을 지냈으며, 고시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민법총론』[1949]과 『물권법』[1950]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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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4월 모심기와 김매기를 할 때 일손을 모으기 위하여 구성하는 두레. 봄이 되면 모를 심고 세 번의 김을 매기 위하여 일꾼들이 필요한데 이때 구성되는 것이 ‘질짜기’이다. 질레짜기라고도 하는데 ‘질’이라는 명사에 ‘짜다’(구성하다)가 합성된 용어로 두레 인원을 구성하는 행위이다. ‘질’은 ‘김매다’의 ‘김’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한자어 질(秩)나 책을 세는 단위인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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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개신교 초대 교역자. 1923년 3월에 강릉시 용광동 28번지 박신동(朴信東)의 집에서 조선 야소교 강릉성결교회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초대 교역자는 평남 용강 태생의 차진학(車鎭學)으로 직분은 전도사였다. 당시 초창기 신자들로는 서순명, 최원주, 김인열, 이부대 등과 다수의 학생들이 있었다. 개신교 교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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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임곡리에 있는 마을. 찬샘말[寒泉洞]은 이 마을에 있는 샘물이 다른 지역의 샘물보다 유달리 차서 생긴 이름이다. 찬샘말에 있는 샘물은 겨울에는 얼지 않고 김이 날 정도로 미지근하고, 여름엔 물 속에 손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차다고 한다. 옛날 다른 마을들은 수량이 풍부하여 집집마다 우물이 있어서 동네에 공동우물이 없었지만, 찬샘말은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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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사립 소리·과학 특화 박물관. 참소리 축음기·에디슨 과학박물관은 1877년 에디슨이 발명한 최초의 축음기인 틴호일을 비롯한 최근의 오디오 시스템까지 오디오 1백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과 세계 최대의 에디슨 과학박물관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전문 특화 박물관이다. 참소리 축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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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지역에 있었던 노동야학회이자 비밀결사조직 단체. 초당의숙 출신들과 지역인사로 구성되었던 단체이다. 근면, 협동, 권선제악(勸善除惡)의 기풍을 진작시키는 동시에 야학회를 통한 신문화 보급과 항일교육을 목적으로 하였다. 초당의숙이 폐교된 이후 여운형이 떠나가자 이 학교출신 학생들과 지역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다. 신문화 보급과 항일교육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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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견소동 동해 상사 앞 삼거리에서 안현동 인공 폭포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 강릉 해변을 따라 개설된 창해로는 평일에는 통행량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해수욕철과 각종 축제철, 공휴일이 되면 차량이 많이 붐빈다. 창해로는 강릉의 푸른 바다 동해를 따라 형성된 도로라는 뜻에서 붙여진 도로명이다. 강릉의 안목, 송정, 강문, 경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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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여름에 오미자물이나 꿀물에 녹말국수를 띄워 먹는 화채. 화채는 전통 음료의 하나로 신맛이 나는 오미자물이나 단맛이 나는 꿀물로 만든다. 오미자물에 띄우는 것은 각종 꽃, 과일 등 시지 않은 재료를 이용하며 꿀물에 띄우는 것은 달지 않은 재료를 이용한다. 삶은 보리를 띄운 보리수단이라는 화채도 있다. 책면의 재료는 녹말, 꿀, 잣이다. 녹말은 물에 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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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속한 법정리.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1916년 사잇말, 경방말, 동산미, 신영골을 합쳐 현내리의 주수천 남쪽이 되는 지역이라 천남리(川南里)라 했다고 한다. 1955년 9월 1일 강릉군에서 명주군으로 소속이 바뀌었고,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천남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동살미, 경방말,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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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설립한 천주교 관련 기관 및 단체. 강릉 지역에는 천주교의 이념과 정신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천주교 관련 기관 및 단체가 다양하다. 1. 교육 기관 소화유치원 : 설립목적은 천주교의 교육이념에 입각하여 교육기본법에 의해 유아를 교육하고 심신의 발달과 모든 기능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모하며 유아로 하여금 참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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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옛 지명. 강릉 지방은 본래 예(濊)의 옛 땅이었다는 이른바 ‘강릉예국설(江陵濊國說)’에 대한 최초의 사료(史料)는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한 『삼국사기(三國史記)』[권35, 잡지 제4, 지리2]의 기록이다. 강릉만을 국한하여 예국으로 인식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B.C. 1세기경에서 A.D. 3세기경의 강릉 지역에는 거수(渠帥)를 지배자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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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청간사에서 김시습의 충절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행하는 다례. 김시습의 시호가 청간(淸簡)인 데서 청간사라고 명명하였다. 1769년 4월에 종중에서 목조 3칸 건물을 짓고 다례를 시작하였다. 1769년부터 다례를 행해오다가 한국전쟁으로 잠시 멈추었다. 1954년 이후 매 삭망일에 분향하며 능향일(陵享日)에 다례를 봉행하여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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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덕동에 속한 법정동. ‘청량동’이란 명칭은 청량미가 잘 자라는 청량들이 있어 생겨난 이름이다. 청량동의 옛 이름은 ‘청양이’이다. 1955년 9월 1일 강릉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성덕면에 속해 있던 청량동은 두산, 입암, 학동, 병산, 남항진 마을과 함께 합병하여 입암동이 되었다. 1965년에는 입암동 관할이던 법정동인 입암동, 청량동은 행정동을 입암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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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성황교에서 청파 버스 종점에 이르는 도로. 청파로는 마을의 하천을 따라 형성된 농어촌 도로이다. 도로의 끝은 등산로와 연결되어 있다. 구정면 청파동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하여 청파로라고 이름 붙였다. 청파동은 1960년대 초 청송 심씨(靑松沈氏) 한 분이 자비로 개간한 후 사람들에게 경작하게 하여 마을을 이룬 곳으로,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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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리에 있는 산. 청학산(靑鶴山)은 학이 날개를 펴는 형상이라 하여 청학산이라 불렸다. 청학산은 율곡 선생이 「청학산기(靑鶴山記)」를 지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율곡 선생이 청학산에 입산 수도하면서 그 모습이 금강산과 흡사하다 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 이름하였다. 해발 1470m인 황병산을 주봉으로 해서 서쪽의 노인봉[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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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심신을 단련하고 여가 및 운동 능력을 기르기 위해 실시하는 제반 활동. 스포츠라는 용어와 흔히 혼동되어 쓰이나 스포츠는 운동 경기 즉 경쟁이 따르는 운동에 한정한다는 점에서 체육과 구별된다. 강릉 지역에 근대 체육의 보급은 1895년 2월 교육 입국 조서에 의하여 1896년 9월 17일 공립 학교인 강릉 소학교가 개교한 때부터 시작된다.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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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 있는 감리교회. 강릉시 초당원길 38-4[초당동 98-6번지]에 위치한 감리교회로, 1990년에 세워졌다. 교역자는 1명이며 남신도 30명, 여신도 40명으로 모두 70명의 신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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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조선 시대 광해군 때에 초당 허엽은 당파 싸움에 휘말려 화를 입을 때 산수가 수려하고 풍경이 좋은 현 안초당 연화지 자리인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193번길 1-16[초당동 475-3] 지역에 기거하였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유명한 여류 시인 허난설헌과 최초의 한글 소설을 쓴 허균이 태어났다. 마을이 번성하자 허엽 선생의 호를 붙여 초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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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7월 강릉시 초당동에서 발생한 좌우익 충돌 사건. 몽양 여운형이 주문진 교향리에서 동생 여운홍과 함께 학교를 세워 학생을 가르치고 있던 중, 취영정 계원인 초당 최용집이 여운형을 초당으로 모셔와 초당영어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2년 동안[1908~1910] 그의 민족의식 앙양, 영어, 창가, 체력 단련 등의 가르침은 초당리 주민들의 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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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강원도 강릉시 초당리에 설립된 근대식 야학교. 국민계몽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강릉의 유지 최돈철(崔燉徹)이 설립을 주도하였으며, 몽양(夢陽) 여운형이 교사로 초빙되어 영어와 근대 교과목을 지도하였다. 교과목은 국어, 한문, 일어, 지리, 역사, 산수, 영어, 체육이었으나, 영어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은 서구지향적인 개화 인물들의 영향과 미래지향적으로 교육시키고자 하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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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허난설헌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초당마을은 초당두부로도 유명하다. 태백준령이 뻗어내려 동해와 맞닿은 해변 소나무 숲속에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하는 마을이 있으니 이곳이 초당이다. 초당마을은 ‘초당의 밥 짓는 연기(草堂炊煙, 초당취연)’가 경포8경에 들 정도로 풍광이 빼어나며 유서 깊고 살기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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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내 강릉교육대학에 설치되었던 임시 초등교원양성소. 강원도 내 부족한 교원의 보충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부족한 초등 교원의 양성을 위하여 강원도 교육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1969년 3월 28일 강릉교육대학 부설 기관으로 인가되었다. 1971년 12월 21일 약 3년간 존속하고 폐소되었다. 강원도 내 준교사 중에서 공개 선발하여 18주간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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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주민이 거주하는 일정 규모의 집단. 인간이 생활하기 위하여 지표공간을 점거해서 거주하는 집단을 취락(聚落)이라고 한다. 취락의 규모가 큰 것을 도시(urban settlement)라 하고, 작은 것을 촌락(rural settlement)이라고 한다. 도시와 촌락을 나누는 인구의 기준도 국가마다 다르다. 국제적 기준은 2,000명이다. 한국은 이 수치의 10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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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향리(鄕吏)인 최광봉(崔光鳳)의 딸이다. 남편은 향리 이양면(李樑面)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었다. 정선(旌善)의 향리 이양면에게 시집을 갔으나 혼례를 올린 지 닷새 만에 남편이 병으로 죽었다. 염습할 옷을 손수 짓고 남편을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반 년 동안 시부모님을 정성을 다하여 모시다가, 어느 날 남편 무덤에 가서 종일 울다가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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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최대나(崔大奈)는 곽길(郭吉)·함신(咸信)·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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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목릉(穆陵)[선조의 능] 참봉을 지낸 남편 최맹인(崔孟仁)이 죽자 40여 년 동안 머리를 빗지 않고 세수도 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슬피 울기를 초상 때처럼 하였다. 최맹인 처 심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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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강릉에 정착한 강릉 최씨의 문한계의 시조. 본관은 강릉. 호는 충재(忠齋). 고려 제27대 충숙왕(忠肅王)의 부마(駙馬)이며, 강릉최씨 문한계의 시조이다. 최문한(崔文漢)은 기상이 웅위(雄偉)하고 일처리가 명쾌해서 삼도(三道)의 안렴사(按廉使)를 지내면서 많은 공적을 남겼다. 고려 말 국운이 다하자 고려의 유신들과 함께 두문동(杜門洞)[경기도 개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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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의 향리(鄕吏). 본관은 강릉. 향리로서 90세를 살아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를 받았다. 최성복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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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주부(主簿) 김곤(金坤)이다. 남편은 최세창(崔世昌)이다. 남편이 죽자 따라 죽을 결심을 하여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관에다 넣고 손가락의 피를 내어 관에다 물들이고 같이 묻히겠다는 뜻을 표시하였다. 상중에는 세수도 빗질도 하지 않았고 치아가 보이도록 웃지도 않았다. 아침과 저녁으로 음식을 마련하여 묘에 가서 10여 년을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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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있는 최세창(崔世昌)의 부인 강릉김씨의 열행(烈行)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旌閭). 강릉최씨(江陵崔氏) 최세창의 처 강릉김씨는 효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겼으며, 남편에게 지극히 순종하였다. 남편이 죽자 며칠 동안 남편의 시신을 껴안고 자신도 따라 죽을 결심을 하여 치마 한 폭을 찢고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관에다 넣고 손가락의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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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종의(宗誼).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고, 수헌공(睡軒公) 최응현(崔應賢)의 맏아들이다. 셋째 아들인 최세절(崔世節)은 호조판서를 지냈다. 성종(成宗) 때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하여 진사에 올랐다. 음직(蔭職)으로 울진현령(蔚珍縣令)과 금구현령(金溝縣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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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최세충(崔世忠)의 생애와 행적 등을 기록한 비. 최세충은 사마시에 합격하고 익찬주부(翊贊主簿),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등의 관직을 지냈다. 강원도 강릉시 대전동 조산 강릉최씨 선영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는 원광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개자판(蓋磁板)은 가로 26.5㎝, 세로 37㎝, 두께 2.3㎝이고, 저자판(底磁板)은 가로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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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고,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의 아들이다. 부인은 철원최씨(鐵原崔氏)로서 승지(承旨) 최철관(崔哲寬)의 딸이다. 아들인 원정(猿亭) 최수성(崔壽峸)은 강릉 12향현(鄕賢) 중의 한 사람으로 향현사(鄕賢祠)에 제향되었다. 울진현령(蔚珍縣令)을 지낸 최세충(崔世忠)이 형이며, 호조판서를 지낸 최세절(崔世節)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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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강릉 12향현 중 한 사람이다. 최입지(崔立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敎授) 최여남(崔汝南)이고, 어머니는 정선전씨 생원 전무(全務)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1472년(성종 3)에 진잠현감(鎭岑縣監)으로 부임하였으나 병을 얻어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1466년(세조 12) 세조가 병을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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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가진(可鎭), 호는 원정(猿亭)·북해거사(北海居士)·경포산인(鏡浦山人).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이다.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증조는 최치운(崔致雲), 조부는 최응현(崔應賢), 아버지는 생원 최세효(崔世孝)이고, 어머니는 철원최씨 승지 최철관(崔哲寬)의 딸이다.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에게서 수학(受學)하였다. 조광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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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이조참판을 지낸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이다. 평소에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며 치료를 하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죽만 먹으며 3년상을 지냈다. 최수정(崔受禎)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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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호는 학구(鶴衢). 목사(牧使) 최경지(崔景智)의 5대손이며 참봉(參奉)인 최계원(崔季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감 최홍(崔泓)이고 아버지는 훈도 최여림(崔汝霖)이다. 부사(府使)인 변효동(邊孝同)의 딸인 원주변씨(原州邊氏)와 혼인하였다. 1507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8년에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출사는 하지 않고 경학에 심취하여 인의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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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인 최숙남(崔叔男)의 묘비. 1644년에 현손인 최진후(崔鎭厚)가 세웠으나 쪼개어져서 1694년에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 이후 마모가 심해져 1884년(고종 21)에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월호평동에 있다. 비신의 높이는 141㎝, 두께는 15㎝, 너비는 51.5㎝이다. 비제는 ‘성균생원학구최공묘갈명병서(成均生員鶴衢崔公墓碣銘幷序)’이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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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孝婦). 본관은 미상이고, 성(姓)은 김씨(金氏)이며 남편의 이름은 최시부(崔始溥)이다. 병이 들어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80세의 할머니를 위해 9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하였다. 또한 이가 빠져 음식을 먹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젖을 짜서 미음에 섞어서 먹이기도 하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어 7개월을 더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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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미상이며 성(姓)은 박씨(朴氏)이다. 남편의 이름은 최신규(崔信珪)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시부모를 섬겼으며, 남편 최신규가 죽자 12년 동안 변변치 못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추우나 더우나 매일 한결같이 성묘를 하였다. 최신규 처 박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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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 자(字)는 정여(正汝).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으로 강성군(江成君) 최세건(崔世楗)의 12세손이다. 정성을 다해 어버이를 섬겼으며,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넣어드리는 등 효성이 지극하였다. 최심하(崔心河)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지극한 효성으로 중학교관(中學敎官)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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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시호는 문충(文忠). 최입지(崔立之)의 아들이다. 최안소(崔安沼)는 충숙왕 때 경상도존무사(慶尙道存撫使)에 임명되었고, 1347년(충목왕 3)에 통정대부 안동판관(安東判官)에 임명되었다. 벼슬이 삼중대광 문하시중 동중서평장사 예부사(三重大匡門下侍中同中書平章事禮部事)에 올라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졌고, 공민왕 때에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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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최입지(崔立之)이며 형은 최안소(崔安沼), 동생은 최안언(崔安漹)이다. 1326년(충숙왕 3)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고 1328년에 문과(文科)에 올라 정선군수를 지내고 한림학사(翰林學士)·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밀직제학(密直提學)을 거쳐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전리(典吏)·예조(禮曹)·이조전서(吏曹典書)에 올랐다. 1361년(공민왕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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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경열(景說).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漣)의 5대손이고 고조는 좌찬성(左贊成)인 최이(崔迤)이며, 목사 최경지(崔景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최계원(崔季元)이고 아버지는 문장령 최홍(崔泓)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현감인 김정(金精)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두루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실학(實學)에 뜻을 두고 성명(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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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인 최여림(崔汝霖)의 묘비. 최여림은 어릴 때부터 두루 경사(經史)를 섭렵하고 실학(實學)에 뜻을 두고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경포 부근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최여림이 죽은 후 380여 년이 지나 최여림의 생졸이력(生卒履歷)을 상세히 밝히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유산동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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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초명(初名)은 최의집(崔義集), 자는 일신(日新), 호는 누곡(樓谷). 호조참판을 지낸 최구담(崔具曋)의 아들이다. 1639년(인조 17) 생원시에 입격하고, 1651년(효종 2) 식년시 병과로 급제하여 통예정랑(通禮正郞)에 제수되었다. 후에 보안(保安)과 고산(高山)의 찰방(察訪)을 거쳐 예천·안산·정선·안성·양양의 수령을 지냈다. 벼슬이 동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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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미상. 남편은 최우일(崔宇一)이다. 남편이 병으로 죽자 슬퍼하는 기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위로하였다. 장례를 치른 후 시부모의 묘소에 가서 절을 올려 하직인사를 하고, 친정에 돌아가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말로 부모님을 위로하였다. 그런 뒤 유서를 써서 서랍 속에 넣어두고 음독자살을 하였다. 어사(御使) 조홍진(趙弘鎭)의 장계(狀啓)로 호역(戶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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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미상. 남편은 최운광(崔雲廣)이다. 나이 30이 채 못 되어 남편이 죽자 매우 슬퍼하였으나 시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또한 남편의 제삿날이 되면 가난한 살림에도 제물(祭物)을 깨끗하고 풍성하게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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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대중(大中), 호는 내한(內翰). 고성군수를 지낸 최자점(崔自霑)의 증손이며, 최해(崔瀣)의 아들이다. 부인은 권화(權和)의 딸로서 효행이 뛰어났다.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입격하고, 1570년(선조 3) 식년시 을과에 급제하였으며 감찰(監察)을 지냈다. 『내한유고(內翰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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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부. 본관은 안동. 권화(權和)의 딸이다. 남편은 최운부(崔雲溥)[1548~1575]이다. 남편을 따라 서울에 가 있을 때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기도를 올린 뒤 손가락을 끊어 종에게 주어 급히 강릉으로 가도록 하였으나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상(喪)을 당하여서는 머리를 빗지 않고 소금을 먹지 않았다. 밤낮으로 울며 직접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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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 자는 성중(盛中), 호는 사가당(四佳堂)·지곡(芝谷). 강릉최씨 문한계(文漢系)의 후손으로, 조부는 이조판서를 지낸 강성군(江城君) 최세건(崔世楗)이고, 부는 사재감 부정(副正) 최옥(崔沃)[1511~1572]이다. 형으로 최운흘과 최운준이 있고, 아우는 최운집이다. 아버지가 병환이 있을 때에는 변을 맛보며 보살폈고, 상(喪)을 당하여서는 예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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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최운우(崔雲遇)는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강릉.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 최담(崔澹)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晋州姜氏) 참봉 강준지(姜俊智)의 딸이다. 진사 최호(崔浩)에게 입양되었다. 김광진(金光軫)에게서 수학한 최운우는 1552년(명종 7) 생원에 급제하였고,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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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3살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병환으로 거의 죽게 되자 손가락을 씹어 그 피를 넣어드리니 하룻밤을 지나 소생하였다. 그 후 아버지의 병간호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았으며, 약을 구하러 다니다 하루는 어두운 밤길에 호랑이 꼬리를 밟고 지나갔으나 호랑이에게 물리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아버지가 꿩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꿩이 저절로 날아들어 오기도 하였다. 조정에서 정려(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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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호는 동강(東崗).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이 손자이다. 99세를 살아서 기애(耆艾: 장수한 사람)에 속하였다. 영월군수와 정선군수를 지냈으며 중정대부(中正大夫)에 봉해졌다. 벼슬은 삼사(三司)의 좌윤(左尹)에 이르렀다. 조선 초에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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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 할아버지는 강릉최씨의 시조인 최입지(崔立之)이고 아버지는 최안소(崔安沼)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합격하였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으며 조선개국공신이다. 1392년(태조 1) 경상도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로 있을 당시 왜구에게 사로잡혔다가 몰래 도망쳐 나온 명나라 사람 이순 등을 구해 주었다. 후에 참찬문하부사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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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아버지가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약에다 섞어 올리자 병이 나았다. 1508년(중종 3)에 정려(旌閭)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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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릉 출신의 문신. 본관은 강릉.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최치운(崔致雲)이고, 어머니는 강릉함씨 현령(縣令) 함화(咸華)의 딸이다. 1448년(세종 3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4년(단종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저작·박사·전적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고, 1462년(세조 8) 강원도사(江原都事)가 되었다. 그 뒤 고성·영월 두 고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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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삼척. 남편은 최의규(崔義圭)이다. 남편이 이질에 걸려 한 달이 넘도록 앓다가 죽었다. 시신을 끌어안고 같이 누워서 먹지도 않고 웃지도 않았다. 시신을 염(殮)하여 관(棺)에 넣고 벽에다가 혈서로 “남편이 굶주려가며 지은 농사를 내 어찌 혼자 먹으며, 남편이 수고롭게 지은 집에서 내 어찌 혼자 살겠는가” 라고 쓰고는 남편을 따라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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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유명(惟明), 호는 희경(僖景), 초명(初名)은 최원(崔遠).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璉)의 아들이다. 처음 벼슬로 도평의사사지인(都評議使司知印)을 지냈고, 1390년(공양왕 2)에는 사헌집의(司憲執義)가 되었다. 조선 개국 후 중추원우부승지를 거쳐 좌승지가 되었다. 1394년(태조 3)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승진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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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에 강릉 지역 협동조직체인 창동회와 야학회의 교사로 활동하던 최이집은 1919년 4월 최돈옥, 최진규(崔晋圭), 최선재(崔善在), 조대현(曺大鉉), 최선근(崔善根), 김진숙(金振淑), 정식화(鄭軾和), 최선호(崔善浩) 등과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여 1919년 4월 4일 전개된 만세운동에 주도자로서 참여하였다. 최이집을 비롯하여 창동회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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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 송성담(宋性潭)의 문인으로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조선 건국 후 한성부 북부령(北部令)과 창원부사(昌原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시대 관직은 알 수 없으나, 조선 개국과 함께 조선왕조에 참여하여 1394년(태조 4) 한성부 북부영을 역임하였다. 당시 한성부 중부령(中部令) 김염(金濂)과 함께 조선 건국 후 새 도읍지인 한양(漢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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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찬보(粲甫).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의 후손으로 최하적(崔夏績)의 아들이다. 1729년(영조 5)에 식년시 병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함경도판관에 이르렀다. 벼슬을 지낸 후 조급하거나 서두르는 일이 없이 분수를 지키며 살았다. 거처하는 곳에 집을 지어 ‘양한재(養閑齋)’라 이름 하였다. 소나무와 대나무·매화·국화를 매우 사랑하여 군자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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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양필(良弼). 호는 성묵당(誠默堂). 시조 최흔봉(崔欣奉)의 12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최군보(崔君甫), 아버지는 최릉(崔陵)이다. 강릉최씨 평장공파(平章公派)의 시조이다. 장남인 최안소(崔安沼)는 평장사(平章事) 강릉군, 차남인 최안빈(崔安瀕)은 전리판서(典理判書) 예성군(芮城君), 삼남(三男) 최안언(崔安彦)은 예의판서(禮儀判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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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최문한(崔文漢)의 증손이며 직장(直長) 최윤행(崔允行)의 아들이다. 1465년(세조 11)에 진사와 생원 양시에 합격하였다. 1472년(성종 3)에 문과에 올라 사간원 정언으로 있었으나 간신들의 비위에 거슬려 고성군수로 나갔다. 이 때 강원도 감사 박원종(朴元宗)이 간신들이 사주를 받아 최자점을 파직시키기 위해 최자점의 재산을 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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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예도가 밝았으며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남편 최종학(崔鍾鶴)의 병이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반나절을 더 살게 하였다. 최종학 처 김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마을에서 단자를 부영(府營)에 올려 포상을 받았고 요역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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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세계(世系)는 알려져 있지 않다. 손자 대에 이르러 연안차씨와 인척관계를 이루면서 집안이 성하기 시작하였으며, 증손자 대부터 많은 관료를 배출하였다. 고려시대의 활동사항은 알 수 없으나 1392년(태조 1) 조선 왕조 창업과 더불어 실시된 문과 과거시험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성균관 대사성(大司成)까지 올랐으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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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28세 때 남편 최찬구(崔燦九)가 죽자 슬픔이 지나쳐 여러 번 기절을 하였다. 심씨는 대상(大祥)과 그 다음 달에 지내는 담제(禫祭)를 마치고는 음식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최찬구 처 심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사림에서 아름다운 행실을 찬양하였으며, 『속수삼강록(續修三綱錄)』에 최찬구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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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 강릉최씨 충무공파의 시조인 경흥 부원군(慶興府院君) 최필달(崔必達)의 16세손으로 최한주(崔漢柱)의 동생 제학공(提學公) 최개(崔愷)의 증손이다. 최천유의 두 아들인 최점(崔店)과 최암(崔庵)이 1423년(세종 5) 진사시에 합격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후 많은 자손들이 조선시대의 관리로 등용되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문재(文才)가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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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아버지 최운상(崔雲祥)의 병이 위급할 때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흘려 넣어 병을 낫게 하였다. 최충남(崔忠男)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최충남의 효행을 조정에서 듣고 1559년(명종 14)에 정려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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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강릉(江陵). 최필달(崔必達)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생원 최안린(崔安麟)이고, 어머니는 정선전씨 낭장(郞將) 전인구(全仁具)의 딸이다. 최치운은 1408년(태종 8) 19세 때 생원시에 급제하였고, 1417년(태종 17) 27세 때 문과에 급제한 후 승정원 정자(承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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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 최택후(崔宅垕)의 병이 위급하자 이씨는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남편의 입에 흘려 넣었다. 남편은 다시 소생했지만 오래지 않아 죽었다. 이씨는 남편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대성통곡을 하다 기절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약을 써서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3년 동안 눈물로 지내면서 상을 마쳤다. 그 후 옷단장을 하지 않고 나물밥을 먹으며 14년 동안 문밖출입을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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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강릉최씨 필달계의 시조로서 고려 태조의 창업을 도와 918년(태조 1)에 삼중대광 삼한벽상 찬화공신(三重大匡三韓壁上贊化功臣)에 책록되었다. 영첨의 좌정승(領僉議左政丞)을 지낸 뒤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에 봉해졌다. 최필달은 고려 건국시 교육과 도의의 선양에 크게 공헌한 문무를 겸한 학자로서 해동부자(海東夫子)라 일컬어졌다.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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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최필숭(崔必崇)의 아버지는 최옥연(崔玉淵)이다. 1480년(성종 11)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486년 문과에 올라 벼슬이 충청도사(忠淸都事)에 이르렀다. 최필숭은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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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강릉.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 최필달(崔必達)의 13세손이며, 최열(崔烈)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대중대부(大重大夫)로 종정경(宗正卿)과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다. 원(元) 태조가 일본을 정벌할 때 공을 세워 명주군(溟州君)에 봉해졌다. 원나라와 고려가 함께 일본을 정벌할 때 종군(從軍)하였다. 바다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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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시어머니와 남편을 정성껏 섬겼으며, 시어머니 상을 당해서는 매일같이 슬퍼하며 예를 다해 장례를 치렀다. 남편의 병이 위독하자 손수 약을 지었으며, 밤에는 촛불을 켠 채 부채를 부치며 간호를 하였다. 남편이 죽자 초종(初終)을 치른 후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했지만 자손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후로 평생 머리에 빗질과 세수를 하지 않았으며, 90세가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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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도시로서 강릉이 지니는 축구열기와 지역성. 월드컵 이후 전 국민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크게 높아졌다. 100년 전 초당학교의 체육수업으로 시작한 강릉 축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욱 큰 관심과 사랑과 받으며 열기를 띠고 있다. 강릉 지역의 축구사랑은 지역정체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세요? - 강릉의 축구 사랑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인의 축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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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임영로 219-10에 있는 보호 관찰 및 지도·원호를 위해 설립된 국가 기관. 죄를 범한 자 등의 재범 방지를 위하여 보호 관찰, 사회봉사·수강 및 갱생 보호 등 체계적인 사회 내 처우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지도·원호를 함으로써 건전한 사회 복귀를 촉진하고, 효율적인 범죄 예방 활동을 전개하여 개인 및 공공의 복지 증진과 아울러 사회를 보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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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 있는 범죄 수사 및 사법 경찰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 기관. 1907년 12월 26일에 경성지방재판소 강릉구 재판소로 설치되었다. 1909년 11월에 경성지방재판소 춘천지부 강릉구 재판소로 되었으며, 1910년 6월 4일에는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 검사분국이 되었다. 이후 1945년 11월 1일에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으로 개칭되었다.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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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 있는 하급 사법 기관. 1907년 12월 26일에 경성지방재판소 강릉구 재판소가 설립되었다. 1909년 11월 1일에는 통감부 재판소 설치법에 의거, 경성지방재판소 강릉구 재판소가 경성지방재판소 춘천지부 강릉구 재판소로 되었다가, 1910년 6월 4일에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원으로 개칭되었다. 이에 따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원은 1945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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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의례. 출산의례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질병이나 외부환경으로부터 태아와 임산부, 나아가 신생아와 산모를 보호하기 위해 행해지던 의례다. 넓은 의미에서는 기자속, 산전속, 산후속, 육아속 등도 출산의례라 할 수 있다. 1. 기자속 자식을 얻기 위해 행하는 민속의례이다. 기자행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치성기자와 특정사물이나 음식물에 의지하는 주술기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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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판매·배포의 목적으로 간행된 책·신문·잡지·소책자 등의 인쇄물. 여기서 출판은 인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출판물의 복제가 대부분 인쇄에 의하여 행해진다는 점에서 출판물을 인쇄미디어라 하고, 인쇄문화는 출판문화와 같은 뜻이라 할 수 있다. 최종 인쇄매체에 따라 종이를 이용한 출판에서 제작 공정을 전산화하는 것을 종이책 전자출판(paper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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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의 총칭. 1. 충신 강릉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강릉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를 위하여 헌신한 열두 명을 강릉향현사에 모셔놓고 그 뜻을 기리고 공로를 추모하고 있다.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을 비롯하여 눌재(訥齋) 이성무(李成茂),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 춘헌(春軒) 최수(崔洙),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 사휴당(四休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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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고종 30)에 취영계(聚瀛契) 계원들의 모임장소로 건립된 정자.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취영정(聚瀛亭)은 1893년(고종 30년)에 건립되었다. 건립주체 18명이 취영계원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계회를 열면서 시사(詩社)를 개최하거나 계원 상호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정자는 방과 마루 각 1칸이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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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간을 관장하는 가신(家神). 측신은 뒷간을 담당한 신으로 칙신, 주당, 측귀(廁鬼), 변소각시, 뒷간귀신이라고도 한다. 별다른 신의 형태는 없는데 다만 여성신으로 변소에 살고 있다고 믿는 정도다. 일반 가정에서는 측신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데 그것은 악취가 나는 곳에 있으므로 신경질적이며 사납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측신에게는 평소 제를 지내지 않으나 새로 변소를 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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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지역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지방 자치 단체의 행정 작용. 치안은 경찰과는 그 역사적 내용에서 다른 용어이다. 전통시대에는 오늘날 경찰의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으나 경찰이란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 따라서 치안은 근대 이후에야 등장하는 경찰보다 광범위한 개념으로, 전통시대의 포도청, 일제강점기의 경무청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1389년 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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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구산교에서 회산동 회산로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 칠봉로는 성산면 산북리 지역과 구정면 제비리 지역을 연결하는 농·산촌 도로이다. 산간의 구릉 지역을 따라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도로가 지나는 구정면 제비리와 성산면 산북리 사이에 있는 칠봉산의 이름을 반영하여 칠봉로라고 이름하였다. 칠봉산의 산줄기에 봉우리 7개가 있고 산의 정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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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제비리 칠봉산 산정에 위치한 고대 산성. 칠봉산성에 대해서는 역대 지리지나 향토지에는 기록들이 보이지 않으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와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 그 기록이 보이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릉의 서쪽 약 2리, 구산리 남쪽 약 1㎞의 칠봉산에 있는 석성으로 주회 약 850간(間)이고, 대부분 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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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명주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축물. 조선 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지방에서 수령의 집무처를 칠사당(七事堂)이라 명명하였다. 칠사란 빈민과 노약자를 구호하는 존심인서(存心仁恕), 비용 절약에 관한 행기염근(行己廉謹), 명령의 준행과 전파 상황을 보는 봉행조령(奉行條令), 제언과 식목을 관리하고 농사를 장려하는 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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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7일로 하늘의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날. 칠석은 양(陽)을 뜻하는 7자가 겹치는 날로, 저녁 하늘의 별자리를 보는 명절이다. 낮에는 옷과 고서를 햇볕에 말리고 칠성맞이굿도 한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은하수를 사이에 놓고 부부 별자리가 만나지 못하다가 까치가 다리를 놓아 그리던 정회를 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다리를 오작교라 하는데 까치들이 돌을 머리로 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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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에서 노암동에 이르는 도로. 칠성로는 강릉시 구정면의 어단리·금광리·학산리와 박월동·유산동의 평야 지대를 통과하여 노암동 강원 영동 병무 지청에 이르는 도로이다. 이 도로는 구정면 어단리 남강릉 나들목과 동해 대로 간 약 4.9㎞ 구간이 4차선으로 개통되면서 기존의 도로와 연결되었다. 이 도로 개설로 강릉 도심 지역 교통량 분산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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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어단리와 왕산면 목계리·도마리 사이에 있는 953m의 산. 어단리의 주봉으로 산꼭대기에 있는 7개의 바위가 칠성(七星)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봉이 화채로 보이는데 이곳에 불을 제어하는 기능이 없어서 강릉에 불이 자주 난다고 전해지고 있다. 강릉에서 35번국도를 따라 정선 방향으로 가다보면 강릉시 왕산면과 정선군 임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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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사용했던 이부자리와 베개. 우리 조상들은 식사는 아무데서나 하더라도 잠은 가려서 자라고 했을 정도로 침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던 것이었다. 더구나 침구는 어느 일정한 문화 수준에 도달해야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야이다. 예부터 딸을 시집보낼 때 금침 12채를 계절별로 구분해서 장만했고 회갑(回甲), 칠순(七旬), 팔순(八旬) 때도 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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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적인 신앙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시행하는 기독교 신파의 한 교파. 기독교 한국침례회 관동지방회 소속 침례교회가 강릉에 들어온 것은 초당동 공회당 앞에서 노방 전도대회를 개최한 1953년 2월 14일이었다. 강릉시 초당동 297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초당 침례교회가 그 효시이다. 초당 침례교회는 그동안 현직 목사 10명, 여전도사 2명,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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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TV 및 라디오 공중파 방송 등 언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영 방송사인 한국 방송 공사의 강릉 지역 방송국. KBS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 방송으로서 공정한 보도와 공익적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민족 문화를 창달하며 국가적 비전 제시와 국민 통합을 위해 설립되었다. 중부 동해 연안 지방은 길게 뻗어 있는 지역으로서 방송 전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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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1월 24일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의 큰골 지역에서 벌어진 공비토벌전투. 북한 제526군은 1951년 1월 대남 무장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하여 창설한 부대이다. 부대원들은 한국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가 월북하였거나 한국전쟁 당시 와해된 남한 좌익분자들로 구성되었다. 북한 제526군은 한국전쟁으로 와해된 남로당과 그 산하조직의 재건을 위하여 남파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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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집터를 지켜주는 가신(家神). 터주신은 지신, 토지신, 터주대감 등으로 불리며, 한 가정의 땅을 관장하는 신이다. 터주신에게는 명절 때나 안택 등을 할 때 따로 상을 차려 위한다. 함부로 땅을 파헤치거나 하면 “동티가 난다.”고 하는데 이는 동토(動土)로서 터주가 노하는 것으로 믿는다. 강릉시 홍제동, 강릉시 유천동,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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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 강릉은 토성들의 재지적 기반이 강했던 지역이다. 토성은 대체로 고려시대의 향리출신으로서 여말선초에는 신흥사대부를 성장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조선 초기 강릉 지방 성씨에 대해 “토성이 여섯이니 김(金)·최(崔)·박(朴)·곽(郭)·함(咸)·왕(王)이요, 사성(賜姓)이 하나이니 옥(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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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주민 센터 앞에서 옥천동 율곡로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옛날 강릉 읍성의 토성이 있던 곳을 지난다고 하여 토성로라고 이름 붙였다. 토성로는 과거 강릉 읍성 지역이던 임당동, 용강동, 홍제동 일대의 구시가지 주택 밀집 지역을 따라 오래전에 개설되고 정비 확충된 도로이다. 길이 1,974m, 폭 12m의 2차선 도로이다. 토성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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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면에 퇴적되어 있는 물질. 토양은 토양 물질 일부가 위로 또는 아래로 이동함으로써 토양층이 형성되어 있는 부분을 말한다. 강릉의 경우, 토양층이 형성되어 있는 토양은 산록 완사면 또는 구릉지 완사면 등 매우 한정된 지대에만 분포해 있다. 따라서 강릉 지역에서는 토양의 의미를 넓게 확대하여서 ‘땅의 가장 윗부분을 이루면서 식물이 자랄 수 있는 부드러운 물질’로 정의하는 것이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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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있는 공원. 통일공원은 안인항과 등명 해변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4,200평의 터에 들어선 304평의 통일 안보 전시관과 4,000평의 공간에 설치된 함정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6년 9월 18일 무장간첩이 잠수함을 타고 안인진에 잠입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무장간첩들은 결국 소탕되었지만,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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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행정리. 임진왜란 때 군량을 헌납한 공으로 동지중추의 벼슬을 한 권신이 퇴곡장을 짓고 살았고, 권신의 후손 퇴곡공 권칭이 강릉 옥가[옥천동]의 노남[옥천 초등학교 일대]에서 벼슬을 하다가 그만두고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하여 권신의 호를 따서 ‘퇴곡’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로는 마을에 안동 권씨가 들어오기 전에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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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있는 강원 지역의 파인세라믹 신소재 산업 기반을 조성,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된 기관.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지하자원 등이 풍부해 신소재 산업으로서 파인세라믹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에 강원도에서는 1998년부터 춘천권, 원주권, 강릉권 등 삼각 테크노벨리 전략이 추진되어 왔고, 그 중 강릉권은 해양 생물·신소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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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행정리. 판교리의 옛 이름은 너다리이다. ‘너다리’는 판교리 마을 앞으로 조그마한 내가 흘렀는데 사람들이 그 내를 그냥 건널 수가 없어서 냇가에 널빤지를 올려놓고 다리를 만들어 건넜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1916년 이설당리와 조부동을 합하여 판교리가 되었다. 1955년 9월 1일 법률 369호에 의거하여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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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이용해 돌리며 노는 놀이도구. 팔랑개비는 바람개비라고도 부르는데, 지역에 따라 풍차, 팽돌이, 뺑돌이, 도드래라고도 부른다. 종이나 비닐을 만(卍)자 형으로 접어 수수깡이나 작은 나무젓가락 같은 데에 끼워 만든다. 이것을 들고 앞으로 달리면 바람의 영향으로 앞에 끼운 만자형 종이가 선풍기 날개처럼 돌아간다. 이 놀이는 아이들이 주로 하는 놀이로 남자아이나 여자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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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7일 강릉 국방경비대에서 일어난 무장폭동을 군경이 진압한 작전. 1948년 4월 7일 강릉 국방경비대 8연대 3대대의 이상사 외 5명이 좌익계열의 군인들을 선동하여 1948년 4월 7일 밤 11시를 기해 강릉 시내에서 폭동을 기도한 것을 축출하며 이들을 추격하여 진압하고 체포하였다. 1946년 1월 미군정 당국은 장래 주한미군점령군의 감축 및 철수에 대비한 토착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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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에서 고도가 낮고 평탄한 지면이 넓게 펼쳐진 땅. 강릉 지역의 평야는 구릉지에 의해 작은 규모의 평야로 분리되어 있다. 강릉 지역의 서편에 백두대간 능선(태백산지 분수계 능선)이 위치하고, 강릉 지역의 동쪽은 동해에 면하고 있다. 따라서 강릉 지역에서 고도가 낮은 지대는 동부이고, 강릉 지역의 평야도 고도가 낮은 동부에 분포한다. 강릉 지역의 동해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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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취락을 배경으로 하천과 강릉 지방의 동해 바다가 만나는 곳. 동해안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형성된 포구(浦口)는 교통수단과 물산 유통의 요충지이다. 포구는 바다로 통하는 출입구로서 포구 주위에는 마을 내지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강릉 동해안 지역 포구의 지리적 특성은 서쪽에서 동해로 흐르는 하천이 동해 바다와 맞닿은 곳에 발달하였다. 강릉의 군선강, 남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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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행정동. 경포호 남쪽에 있다 하여 포남동이라 하였다. 또, 옛 지역명인 ‘보람이’를 한자화한 음이기도 하다. 즉, ‘남쪽을 보다[見南]’라고 하여 남쪽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보람이를 한자화하여 ‘포남(浦南)’이라고 한 것이다. 본래 강릉군 북일리면 지역으로 1914년 운곡리(雲谷里), 대창리(大昌里)와 수문리(水門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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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속하는 행정동. 경포 남쪽에 있다 하여 포남동이라 하였다. 또한 이 동네 옛 이름인 ‘보람이’를 한자화 하여 ‘포남(浦南)’이라고 하기도 한다. 보람이는 ‘보다(見)+남(南)’라는 말로 ‘남쪽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본래 강릉군 북일리면 지역으로 1914년 운곡리(雲谷里), 대청리(大昌里)와 수문리(水門里) 일부를 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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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교량. 1988년에 가설되었다. 길이 185m, 폭 11m, 경간장 30.5m, 설계하중 18db, 빔종류 PC형으로 이루어진 교량이다. 강릉 시내와 옛 강릉공항을 잇는 핵심 교량이다. 또한 입암동 지역의 중소기업공단을 드나드는 차량은 대부분 포남교를 이용하고 있다. 1987년 준공됐지만 교통량이 급증, 2003년부터 재가설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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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호 남쪽에 있는 법정동. 경포 남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포남(浦南)’이라고 하나, 포남동의 옛 이름이 보람이로 ‘포남’은 ‘보람이’를 한자화한 음이다. 포남동은 원래 강릉군 북일리면 지역으로 1914년에 운곡리(雲谷里), 대창리(大昌里)와 남일리면의 수문리(水門里) 일부를 합하여 군내면에 편입하였다가, 1955년 9월 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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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남동 일대를 구획, 정리한 사업. 강릉시가 도시적인 토지이용을 더욱 계획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포남동 일대를 대상으로 구획정리와 택지조성을 벌인 사업이다. 1975년 영동고속국도가 개통된 후 강릉시는 도시를 정비하고 늘어날 택지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농업용 토지이용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던 포남동 일대를 구획정리하고 택지를 조성코자 하였다. 1980년에 착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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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주거유적. 포남동 유적은 학술적으로 정식 발굴 조사된 유적이 아니고 관동대학의 학감(學監)으로 있던 리빙스턴이 1963년 여름 자기 집 앞마당에서 정원 작업 중 발견하여 유물을 채집한 것을 1964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이난영이 현지를 답사하여 조사 보고했던 유적이다. 발굴이 학술적인 조사절차로 진행되었던 것도 아니고 이미 파괴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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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대천에 설치되어 있는 보(洑) 중의 하나. 강릉시에서는 남대천 치수 기능의 확대와 시민 휴식 공간의 극대화 및 하천의 수질보전을 위해 1991년부터 남대천 정화 사업을 추진해 왔다. 포남보는 남대천 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기존 3개소의 보 개량과 더불어 1993년에 신설되었다. 포남교 하류에 신설된 포남보는 가동 부분의 재료가 고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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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상설 재래시장. 조선시대에는 상설시장의 형성은 상상할 수 없었고, 한일합방 이후 일제에 의한 근대적 상거래가 형성되면서 상설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상설시장은 주거지와 가까워 교통이 편리한 곳에 주로 형성되었다. 주요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로터리라든지 간선도로와 내부 순환도로가 마주치는 곳에 으레 시장이 자리를 잡았다. 포남시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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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낙풍 사거리에서 북동리 새마을 11교에 이르는 도로. 여름에는 풍동로를 통해 마을 펜션, 계곡을 찾는 외부 방문객이 많다. 도로 종점 부근 서남쪽에 백두 대간 석병산이 있고 북쪽으로 산을 넘으면 강동면 임곡리가 나온다. 도로가 지나가는 낙풍리와 북동리의 머리글자를 따서 풍동로라고 이름 붙였다. 옥계면 낙풍리 평야 지대를 통과하여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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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태풍, 푄 등의 강풍에 의한 재해와 홍수 등 물에 의한 입은 재해. 기상청에서는 12시간 동안의 강우량이 80㎜ 이상 예상될 때 ‘호우주의보’를 발령하고, 150㎜ 이상 예상될 때 ‘호우경보’를 발령한다. 또한 태풍으로 인하여 강풍·풍랑·호우현상 등이 ‘호우주의보’ 기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될 때 ‘태풍주의보’를 발령하고, 태풍으로 인하여 풍속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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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3리에 있는 호수. 풍호(楓湖)는 호수 주위에 단풍나무가 많이 우거져서 생긴 이름이다. 경포호, 향호, 뒷개, 순개와 더불어 강릉의 5호 가운데 하나이다. 풍호의 원래 둘레는 상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풍호는 구정면 덕현리 덕고개에서 흐르는 와천이 강동면 상시동리를 거쳐 흘러들어 와 형성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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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詩湖) 박원동(朴元東)이 시주(詩酒)로 소요하던 정자. 풍호(楓湖)는 경호(鏡湖)와 함께 명승지로 널리 알려진 석호이다. 1605년 강릉대도호부사로 부임하였던 정경세(鄭經世)는 연꽃이 만발한 풍호의 자연경관을 경호와 비교하며 “넓고 아득하기는 하늘과 같고 밝고 시원스럽기는 선경(仙境)과 같아서 사람들이 그 절승(絶勝)에 놀라네.”라는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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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石碑). 강원도 강릉시 명륜로 29[교2동 233]에 위치한 향교 앞 100m지점, 강릉명륜고등학교(江陵明倫高等學校) 후문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이 곳 주위는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1610년에 세운 이래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받침돌 위에 높이 115㎝, 너비 40㎝, 두께 10.5㎝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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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명주(溟州)[현재의 강릉]는 본시 고구려의 하서량(河西良)인데, 후에 신라에 속하였다.”라고 하여 이 지역이 고구려의 지명으로 하서량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이 지역은 한(漢) 무제(武帝)가 고조선을 소멸시킨 후에는 임둔(臨屯)에, 그리고 그 후에는 동부도위(東部都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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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동북쪽 국경지대인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하서변수당은 통일신라시대 변경을 지키던 삼변수당(三邊守幢)의 하나이다. 삼변수당은 690년(신문왕 10)에 한산변(漢山邊)[지금의 廣州 지방]·우수변(牛首邊)[지금의 春川 지방]·하서변(河西邊)[지금의 강릉 지방]의 세 곳에 설치하였다. 하서변수당은 신라의 동북쪽 국경지대인 하서주(河西州) 관내 요새지에 설치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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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삼국통일 직후에 완성된 9주(九州)의 하나로 지금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지방에 해당된다. 주치(州治)는 지금의 강릉(江陵)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지방행정제도를 9주·5소경(小京)으로 새롭게 편성하였다. 전국을 9주로 나누고, 주 아래에는 군(郡)·현(縣)을 두었으며, 주에는 총관(摠管 : 후에 都督으로 개칭), 군에는 군수(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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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설치하였던 신라시대의 군부대. 활을 쏘는 부대로 한산주궁척(漢山州弓尺)과 더불어 이른바 이궁(二弓)의 하나이다. 한산주궁척은 경기도 광주(廣州) 지방에 두었고, 하서주궁척은 598년(진평왕 20)에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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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에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만보당(萬步幢)은 통일신라시대 구주(九州)에 조직적으로 배치된 부대로, 주마다 각기 두 개씩 있었다. 하서주만보당(河西州萬步幢)은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되었다. 만보당은 각기 금(衿)의 빛깔이 달랐는데, 사벌주(沙伐州)는 청황(靑黃)·청자(靑紫), 삽량주(歃良州)는 적청(赤靑)·적백(赤白), 청주(菁州)는 적황(赤黃)·적록(赤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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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하서주에 설치된 군부대. 신라시대 지방의 다섯 고을에 설치한 오주서(五州誓)의 하나로, 672년(문무왕 12) 하서주[지금의 강원도 강릉]에 설치되었다. 오주서는 청주서(菁州誓)[지금의 진주], 완산주서(完山州誓)[지금의 전주], 한산주서(漢山州誓)[지금의 廣州], 우수주서(牛首州誓)[지금의 춘천], 하서주서(河西州誓)[지금의 강릉]의 다섯 부대를 가리킨다. 이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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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터미널 오거리에서 지변동 경포로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 하슬라로는 교통 택지 지역을 남북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도로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강릉 시외버스 터미널, 강릉 대로와 직접 연결된다. 하슬라로가 지나는 교동 택지 지역은 내·외부 교통망이 체계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신라 시대 강릉 지역을 하슬라주(何瑟羅州)라 하였는데, 이 지명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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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지방행정구역. 하슬라(何瑟羅)[지금의 강릉]에 설치한 주(州)의 이름이다. 하슬라주는 신라의 동북지방의 군사중심지이며 북방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삼국시대 신라는 고구려·백제·가야를 상대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州)의 설치와 폐지가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하슬라가 언제 신라에 속하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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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일정한 유로를 가지는 강이나 내. 하천은 그 유로가 형성되어 있으며, 비가 오지 않는 기간에도 물이 흐르는 것이 보통이다. 강릉 지역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들은 서로 별개의 하천이므로, 강릉 지역에는 독립적인 하천이 많이 존재한다. 강릉 지역의 서편에는 백두대간 능선이 위치하고 있다. 강릉 지역의 하천은 대부분 동해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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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명주동 남대천에 있는 보(洑). 하평보(下坪洑)는 하평들에 물을 대기 위해 남대천[홍제동 경방 앞]에 보를 만든 데서 유래되었다. 남대천 하구 북쪽에 있는 하평들이 남대천 하구의 강바닥보다 높아서 남대천의 물을 끌어다 쓰지 못하기 때문에 남대천 상류 내곡교 아래에 만든 보이다. 1994년에 하평보 개량 공사를 하였다. 원래 하평들로 흐르는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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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2리 재궁마을 북쪽 골짜기에 있는 바위. 학바위는 굴산사지마을 뒷산 기슭에 있다. 범일의 어머니가 범일을 낳고 버렸던 곳으로 학들이 날아와 날개로 갓난아기인 범일을 감싸주고 재워주며, 붉은 열매를 먹이면서 범일을 지켜준 곳이라 전한다. 석천과 학바위에 얽힌 「범일국사 탄생설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조당집과 『임영지(臨瀛志)』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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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서 봇물을 더 끌어대려고 다투는 장면을 재연한 민속놀이. 천수답이 많은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서 가뭄이 들 때 벌어진 논물로 인한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민속놀이로 재연한 것이다.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는 전형적인 농촌으로 천수답이 많고 관개시설이 부족하여 가뭄이 들면 논물대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따라서 가뭄이 심할 경우 봇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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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 마을에서 농요와 농악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전통적인 농사법과 과정을 놀이로 풀어서 보여주는 민속놀이. 요즘과 같이 관개 시설과 농사 기계가 없던 시절 천수답에 논농사를 지을 때 모심기부터 타작 때까지의 한 해 농사 과정을 보여주는 민속놀이로서, 우리 민족의 농경 생활사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다. 학산 농사풀이는 일곱 마당으로 나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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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법정리. 강릉시 구정면에 속한 7개 법정리[여찬리, 학산리, 금광리, 어단리, 덕현리, 구정리, 제비리] 가운데 하나로 학산 1리, 학산 2리, 학산 3리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뒤에 있는 학바위 때문에 학산(鶴山)이라 했고, 또 굴산사가 있어 굴산(掘山)이라 불린다. 1896년 강릉군 구정면 학산리로 지정된 후, 195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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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대표명절인 음력 8월 15일. 한가위는 한민족 고유의 보름명절로서 설, 한식, 단오, 동지와 함께 민속명절로 이어지고 있다. 정월대보름과 함께 팔월한가위는 우리 민족의 2대 명절이며 보름주기의 세시명절로 민족상징의 달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전승된다. 강릉 지역은 옛날부터 5개의 달이 뜬다고 전하는 경포대와 달이 정면으로 뜬다는 이름의 월대산[월정산] 달맞이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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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법률 상담 기관. 생활이 어렵고 법을 몰라서 사회의 그늘에서 곤란을 겪는 시민들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 및 화해 조정, 법률 계몽 사업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 사업, 성폭력 피해자 상담 및 가정 폭력 예방 사업과 가정 폭력 피해자와 행위자 상담 등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 조성에 이바지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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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한국국악협회 가입되어 있는 강릉 지역 국악인들의 공연문화 활성화를 위해 조직된 단체. 강릉 지방의 국악 발전과 문화유산의 보호·육성 및 회원 상호 친목과 복리 증진을 도모하고 민족 문화 예술 정립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3년 3월 김진백이 향토 전통 농요, 시조, 민요의 전승, 보급을 위하여 한국국악협회 강릉지부를 결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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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지적 측량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 기관. 지적법에 의한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 보호와 지적 측량 기술의 개발, 지적 제도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첨단 장비 및 기술과 지식 경영을 통하여 시민의 소중한 재산권 보호로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1962년 1월 1일에 내무부 산하 강원출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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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강릉의 무용 애호가들이 만든 활동 단체. 강릉 지방 무용 예술의 발전 향상을 기하고 강릉의 예술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었다. 강릉 지방은 196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무용 전승과 현대 무용의 개발에 뜻을 둔 무용가 선순자를 중심으로 무용 활동이 전개되었다. 1976년 제자 및 관련 여교사들을 주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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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진보적 예술인 단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의 강릉 지역 지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은 1987년 이후 사회 전반에 확산된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민족 문학을 지향하는 문인들과 미술·영화·연극·음악 등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이다. 약칭 민예총 강릉지부라고 부른다. 남북 문화 교류 추진, 문화 예술 진흥비 확보, 예술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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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노암동에 있는 한국연극협회 산하 강릉 지부. 강릉 지방 연극 예술의 창달·발전을 기하는 동시에 연극인 상호간의 친목과 복리 증진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강릉 지방의 연극 활동은 전문 극단의 시조격인 극단 소리에 참여하고 있던 캐스트들이 중심이 되었다. 1980년 5월 손종대, 권순인에 의해 강릉연극협회가 창립되었고,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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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내동에 있는, 통화 신용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한국은행의 강릉 지역 본부. 효율적인 통화 신용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68년 3월에 한국은행 강릉주재사무소로 개설하였다. 1974년 12월 2일에 한국은행 강릉출장소로 변경되었다가 1976년 12월에 한국은행 강릉지점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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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한배후(韓配厚)의 아들로, 한배연(韓配淵)에게 입양되었다. 어머니는 유익기(兪益基)의 딸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하다가 벼슬길로 나아가 1740년(영조 16)에 정선군수를 거쳐 정랑에 올랐다. 1754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60세의 나이로 보덕이 되었고, 이어 지평·정언·헌납·장령을 역임하였다. 17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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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 위치한 차 유적지의 정자. 『동국여지승람』에 한송정을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했고 소나무가 울창하다. 정자 곁에 차샘(茶泉), 돌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가 있는데 곧 술랑선인(述郞仙人)들이 놀던 곳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일명 녹두정(綠豆亭)이라고도 불렀다. 한송정이 언제 지어졌는지 또 언제 없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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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후 105일째 드는 24절기의 하나. 조선시대부터 설, 단오, 추석과 함께 사명일(四名日)에 속하였다. 한식날은 조상의 산소에 가서 ‘한식차례’를 올리는 날로 절기상 음력 2월에 들기도 하고 3월에 들기도 한다. 한식(寒食)은 ‘찬밥 먹는 날’이라고 하는데, ‘한식’이라는 용어는 불의 사용을 금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부터 한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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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강릉. 일명은 영(瑛), 자(字)는 덕유(德有), 호는 운초(雲樵)·벽당(碧堂)이다. 1826년(순조 2)에 태어났다. 조선 후기에 활동한 화가로서 산수화를 특히 잘 그렸다. 1887년(고종 24)에 그린 설경(雪景)의 산수화인 「설중방매도(雪中訪梅圖)」가 있다. 「설중방매도(雪中訪梅圖)」는 암향소영(暗香疎影)의 의취(意趣)가 깃든 가작(佳作: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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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윤물(潤物). 호는 난계(蘭溪). 시호는 정평(定平). 검교중추원학사(檢校中樞院學士) 함승경(咸承慶)의 아들이다. 1385년(우왕 11) 2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좌정언(左正言)을 지냈다. 1389년(공양왕 즉위년) 우헌납(右獻納)이 되었으나 탄핵을 받고 지춘주사(知春州事)에 좌천되었다가 뒤에 형조정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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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미상. 남편은 함상현(咸商鉉)이다. 시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남편에게 아내의 도리를 다하여 섬겼다. 시집간 지 10년이 채 못 되어 남편이 병이 나자 정성껏 치료하였으며, 매일 밤 목욕재계하고 정화수를 떠 놓고 자신이 대신 앓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남편이 죽자 시신을 거두어 놓고 밖으로 나가 약을 먹고 죽었다. 군(郡)에서 그릇에 표를 새겨 포상을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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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강릉. 화원으로 교수를 지낸 함제건(咸悌健)의 아들이며, 역시 화원으로 교수를 지낸 김구성(金九成)의 사위이고, 김두량(金斗樑)의 외삼촌이며, 함도홍(咸道弘)의 아버지이다. 1733년(영조 9) 박동보(朴東普)·양기성(梁箕星)과 함께 '영조어진도사(英祖御眞圖寫)'에 참여하였으며, 1744년 이성린(李聖麟) 등과 함께 「장조헌경후가례반차도 (莊祖獻敬后嘉禮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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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자진(子眞), 호는 시은(市隱), 시호는 문익(文翼). 고려 태조 공신 양후공(襄厚公) 함규(咸規)의 6세손으로 공부상서(工部尙書) 함유일(咸有一)의 아들이다. 최충(崔冲)이 설립한 문헌공도(文憲公徒) 출신으로 1123년(인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병부시랑(兵部侍郞)을 거쳐 양양익령현(襄陽翼領縣)을 지냈고 상식직장동정(尙食直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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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무신. 본관은 강릉. 형조판서를 지낸 동원군(東原君) 함부림(咸傅霖)[1360~1410]의 현손(玄孫)이다. 별시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감찰과 낭천현감(狼川縣監)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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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金周元)의 가신(家臣)·문객(門客).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주원이 패배하고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때 함신은 최대나(崔大奈)·곽길(郭吉)·박영(朴榮) 등과 함께 왕궁으로 들어가 거사(擧事)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김주원이 허락하지 않아 실패하였다. 김주원이 명주(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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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효성이 뛰어나 하늘이 낸 사람이라 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에 변을 맛보아 가면서 병세를 살폈고, 위중해지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드려 소생시켰다. 어머니가 산꿩을 먹고 싶다고 하자 이튿날 새벽 뜰 안에 있는 살구나무에 꿩이 날아들어 활로 쏘아 잡았다. 사람들이 효성이 지극한 탓에 꿩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숙종 때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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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문명(文命), 호는 송담(松潭).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함부림(咸傅霖)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이어 고부군수·군기시부정·나주목사를 거쳐, 1451년(문종 1)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에 올랐다. 1453년(단종 1)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1457년(세조 3)에는 공주목사·함길도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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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미상. 남편은 함윤근(咸潤根)이다. 남편이 과거를 보러가다 중도에서 병을 얻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 주니 깨어나 며칠을 더 살았다. 남편이 죽자 같이 죽기를 결심하였으나 시아버지가 간곡히 만류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남편의 상을 마친 후 지성으로 시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삼강록(三綱錄)』에 그 효행이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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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입지(立之). 교리(校理) 함승필(咸承弼)의 손자이며, 강릉함씨 예판공파의 파조(派祖)인 예조판서 함부실(咸傅實)의 아들이다. 아우는 함자명이다. 1419년(세종 1)에 율학(律學)으로 잡과(雜科)에 급제하여 사직(司直)에 제수되었다. 그 후 동부령(東部令)에 이어 문화현령(文化縣令)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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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字)는 석정(石挺). 공부상서(工部尙書)를 지낸 문익공(文翼公) 함순(咸淳)의 5세손이다. 아들 함승우(咸承祐)는 보문각 학사(寶文閣學士)를 지냈다. 문과에 급제하여 승봉랑 전법좌랑(承奉郞典法佐郞)을 거쳐 벽상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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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 함윤근(咸允根)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자 제단을 쌓고 자기가 대신 앓겠다고 빌었다. 의원이 뱀탕이 효험이 있다고 하자 수천 마리를 잡아다 약을 지어 드렸다. 아버지가 붕어회를 먹고 싶어 하여 웅덩이를 파니 본래 붕어가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몇 마리의 붕어를 얻을 수 있어 이것을 잡아다 드렸다. 아버지의 상(喪)을 당해서는 3년간 시묘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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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1423년(세종 5)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426년(세종 8)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이르렀다. 함한(咸漢)에 대한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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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 바닷가에 배를 댈 수 있도록 시설해 놓은 곳. 항구는 해안에서 각종 배를 정박시키고 운항과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을 수 있는 시설들이 갖추어진 곳을 말한다. 보통 도시를 포함한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정박지만을 의미하여 도시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해안에는 어항이나 수산항 외에도 상항(商港), 무역항 등이 있으며, 군사적인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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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 동해 대로 삼거리에서 주문진항 입구 사거리에 이르는 도로. 항구로는 동해 대로[국도 7호선]에서 주문진항까지 연결되는 600여m의 짧은 도로이다. 이 도로 개설로 항구 지역과 동해 대로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서북쪽 지역의 신시가지 개발이 탄력을 얻게 되었다. 주문진 항구와 연결되는 도로라 하여 항구로라고 이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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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있는 봉우리. 『강릉부지(江陵府誌)』 「산천조」에 의하면 산위에 해령사(海靈祠)가 있어 여기서 어부들이 기도를 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었다고 하여 ‘해령산(海靈山)’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해령산 옆으로는 강동면 언별리 단경골에서 발원하여 동북쪽 모전리를 지나 안인리 관마을 앞에서 임곡천과 합류하여 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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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직후 발생한 강릉 지역에서의 좌, 우익 간의 이념 갈등. -사상이 낳은 정치적 혼란- 해방 직후 강릉 지역 좌우익의 갈등-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왔으나 강릉 지역의 일본군은 계속 무장한 채로 주둔하고 있었다. 2주일이 지나도록 미군은 오지 않았고, 하루 바삐 일본군을 몰아내려는 의지가 강했던 시민들은 38선 이북 양양에 이미 주둔해 있던 소련군에게 일본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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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바닷물에서 해수욕과 관광을 할 수 있는 자연적 조건과 설비가 갖추어진 바닷가. 해안 공기는 인구의 밀집 지대보다도 산소나 오존의 함유량이 많다. 공기 중에 세균이나 먼지가 적기 때문에 일광욕으로 자외선도 풍부하게 얻을 수가 있다. 목욕을 함으로써 피부에 자극을 주어 튼튼하게 하며, 체내의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건강을 향상시키게 된다. 바닷물에는 염분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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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해안가에 있으면서 현재의 해수면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평탄한 지형. 해안단구면의 평탄한 지형은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에서 형성된 것이다. 즉, 해안가에 해수면과 비슷한 높이에서 평탄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이후 지반이 융기함에 따라 평탄한 지형이 현재의 해수면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하게 되었다. 강릉 지역 해안단구의 해석에 있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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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해안을 따라 발달한 지방도. 강릉 지역의 해안도로는 남단의 옥계면 도직리에서 시작하여 북단의 주문진읍 소돌리에서 끝난다. 대략 45㎞쯤 되는데, 80%의 구간이 완료되어 있다. 나머지 구간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으로 되어 있다. 강릉 지역의 해안도로는 주변의 지형에 따라 바닷가의 사주나 들판을 달리기도 하고, 해안 절벽이나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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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견소동 안목 사거리에서 주문진읍 향호리 주문 북로에 이르는 도로. 해안로는 강릉 해안을 따라 들판과, 솔밭, 해안 절벽 지대를 지나는 도로이다. 해안로는 평일에는 통행량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해수욕 철이나 각종 축제 철, 공휴일이 되면 차량이 많이 붐빈다. 강릉의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라는 뜻에서 해안로라고 이름 붙였다.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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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해양 생물자원을 활용하는 산업. 해양의 다양한 생물자원을 대상으로 생물 공학적으로 조작하거나 첨단 기술로 분석, 가공하여 부가 가치가 높은 물질을 창출하는 산업이다. 강원도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지식 기반 사회에 부합하는 산업을 찾으면서 고급 정보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IT, BT, ET, NT, CT, ST 등에서 특히 BT(Bio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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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조 문신인 어촌 심언광의 별당에 걸려 있는 시문 현판. 해운정에는 명나라 사신인 공용경(龔用卿),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 박광우(朴光佑), 김창흡(金昌翕) 권숙(權潚), 심순택(沈舜澤), 이헌위(李憲瑋), 한정유(韓廷維), 윤봉구(尹鳳九), 채지홍(蔡之洪), 이민서(李敏叙), 일완(日暖) 낙중(樂仲), 조경망(趙景望), 김진상(金鎭商), 송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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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 분배와 관련된 정부의 제반활동과 상호작용. 강릉시는 예로부터 예맥족이 살던 곳으로, 기원전 129년에는 위만조선에 복속되어 있었다. 기원전 128년에는 예맥의 군장인 남려가 한나라에 귀속, 창해군의 일부가 되었다.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는 고구려 세력에 합쳐져서 하서랑 또는 하슬라라고 불렸다.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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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행정 기관 권한이 미치는 일정 구역. 강릉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해안 한가운데 위치하여 오랫동안 영동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선사 시대부터 영동의 중심지로서 경상북도 동해안의 울진·평해와 평창군 봉평면·용평면·진부면·대관령면, 정선군 임계면 등의 광역 생활권의 행정·군사 중심지였다. 좁지만 남북으로 길게 들을 이루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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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행정리에 설립된 공소. 행정공소는 신도 수가 적어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 예절이 행해진다.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 성사가 집행된다. 1928년 3월 김문교[요한]가 양평군 용문에서, 조병태 일가가 강릉군 구정면 금광리에서 이주하여 옹기촌을 열면서 이들의 전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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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속한 법정리. 강릉시 연곡면을 구성하고 있는 9개 법정리[방내리, 영진리, 동덕리, 송림리, 행정리, 신왕리, 유등리, 삼산리, 퇴곡리] 가운데 하나다. 마을에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치 정자처럼 버티고 서서 나그네들에게 좋은 휴식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는 데서 ‘행정’이라 하였다. 은행나무가 있는 행정 마을에 가두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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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음식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자재로 지역 고유의 전통적인 조리법을 사용하여 지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먹는 지역 대표 음식. 지역 향토 음식은 그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고 재배되는 식품을 바탕으로 지역의 고유한 전통적인 조리법을 바탕으로 예로부터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고 있는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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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사당. 향현사는 강릉 지방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사람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여 귀감을 삼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행하는 곳으로, 최치운(崔致雲) 등 6인을 배향하고 있다. 강릉 향현사 건립은 이 지역 오봉서원이나 송담서원의 경우와 같이 향교를 중심으로 한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관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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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있는 석호(潟湖). 고려 충선왕[1309년] 때에는 고을 수령들이 향도집단과 함께 태백산지의 동해사면을 흐르는 하곡의 계류와 동해안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고 미륵보살이 다시 태어날 때 이 침향으로 공양을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매향(埋香)의 풍습이 있었다. 향호의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시인 안숭검(安崇儉)의 『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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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속한 법정리. 향호리는 7번 국도를 따라 주민리를 지나면 있는 마을이다. 향호리는 동해 바다와 석호인 향호, 그리고 서쪽으로는 향호저수지가 있는 마을로 태백산맥에서 동쪽으로 뻗은 구릉 사이사이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옛날에 향골에 있던 천년 묵은 향나무를 호수 아래에 묻었는데, 나라에 경사스런 일이 있으면 침향(沈香)에서 빛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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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향호리에 있는 저수지. 동해안에 곳곳에 산재해 있는 석호(潟湖)의 한 종류인 향호 인근에 위치하여 향호저수지라 이름 하였고, 관개 개선과 지목 변경을 목적으로 축조되었다. 한국 농어촌 공사 강원 지역 본부 강릉 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향호저수지는 1983년 6월 25일 착공하여 1987년 6월 30일 준공하였다. 둑 쌓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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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학산(鶴山)·백월거사(白月居士). 아버지는 삼척부사를 지낸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로서 예조판서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형으로 허성(許筬)이 있고, 동복형제로 허봉(許篈)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21세인 1589년(선조 22)에 생원시에 입격하고, 15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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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의 아들이고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의 형이며, 허난설헌(許蘭說軒)의 오빠이다. 1568년(선조 1)에 생원이 되고, 1583년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0년 전적(典籍)으로서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이 되어 정사 황윤길(黃允吉), 부사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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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의 승려. 후삼국시대 명주(溟州)의 호족인 김순식(金順式)의 아버지이다. 아들 김순식은 나중에 성(姓)을 하사받아 왕순식이 되었다. 922년(태조 5) 개경의 내원(內院)의 승려로 있으면서 명주 호족인 아들 김순식을 귀부(歸附)토록 하라는 왕건의 명을 받고 강릉으로 내려와 아들을 귀순하도록 설득하였다. 이에 김순식이 장남 김수원(金守元)을 보내 귀부 의사를 밝히자 왕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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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낙풍리 낙풍 사거리에서 강동면 정동진리 정동진역 앞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 헌화로는 농어촌 관광 도로이기 때문에 통행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해수욕 철과 봄가을 관광 철이 되면 차량 통행량이 많이 증가한다. 헌화로(獻花路)는 신라 성덕왕(聖德王) 때 지어진 「헌화가(獻花歌)」에서 유래한 도로명이다.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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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 속한 법정리. 현내리(縣內里)는 ‘현(縣) 내(內)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원래 강릉군 우계현(羽溪縣)의 소재지였으며, 1916년에 향교말, 드릉담, 잿말, 장거리를 합쳐 현내리라 하였다. 1955년 9월 1일 강릉군에서 명주군으로 소속이 바뀌었고,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옥계의 옛 지명이 옥천현(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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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있었던 문학단체. 1980년 박수찬[당시 관동대학교 국어교육과 2년]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박남철, 박용재, 염산국, 강세환, 박명희 등이 주축이 되어 발족시켰다. 1987년까지 7, 8명의 회원을 중앙문단에 데뷔시키며, 『섬』이라는 무크지를 간행하여 새로운 대학 문화 창출을 주도하였다. 홍문표, 장윤익, 엄창섭 교수 등이 지도하였으며, 박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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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지역에서 비교적 넓게 물이 괴어 있는 곳. 강릉 지역의 호수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호수와 인위적으로 제방을 축조하여 만든 호수[저수지]가 있다. 빙하기에 지구상의 넓은 면적을 덮고 있었던 빙하가 후빙기에 들어와 점차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전 지구상의 해수면이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에, 강릉 지역의 하곡들이 바닷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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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하안(河岸)·해안(海岸)·둑을 보호해서 유수에 의한 물가선의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그 비탈면에 시설하는 사업. 하천이나 해안 그리고 둑의 경계선 부위는 유수가 많은 경우 물가선이 침식되거나 붕괴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비탈면에 보호 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큰 홍수 때에는 하안이, 큰 해일 때에는 해안이 침식되거나 붕괴되는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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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조선시대 향리직의 우두머리. 나말여초 지방의 지배층인 호족의 전신이다. 신라 말에 이들은 중앙의 상대등(上大等) 이하의 관제를 본떠 당대등(堂大等)·창정(倉正)·병정(兵正) 등의 직제를 구성했다. 고려 건국 후에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향리제도도 점차 정비하여 983년(성종 2) 당대등을 호장으로 개칭했다. 고려시대에는 지방의 토호적(土豪的) 존재로서 상당한 세력을 가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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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전통 혼례에서 입는 의복. 우리나라의 일반적 혼례복과 강릉의 혼례복이 다른 점은 강릉에서는 혼수 품목 1위가 도포라는 점이다. 도포는 원래 앞깃이 직선이고 등 뒤에 어깨선에서부터 내려와 진동선 밑에서부터 전삼 자락[양반의 뒷모습을 감추기 위한 덧자락]이 있는 포이다. 도포의 착용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기록이나 실물 등을 보면 16세기 전후에 착용되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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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혼례를 치르면서 차리는 음식. 혼례음식은 대표적인 의례 음식의 하나로, 호화롭고 화려한 것이 특징적이다. 혼례에 사용되는 음식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나, 그 대략적인 차례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즉, 사주단자를 받는 납폐(納幣) 때 벌이는 잔치와 전안례(奠雁禮) 때 차리는 초례상, 시부모님께 드리는 폐백 음식(幣帛飮食)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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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호 주변 산책로에 홍길동을 캐릭터로 하여 만든 조형물 거리. 강릉시는 이 지역 출신인 교산(蛟山) 허균(許筠)이 지은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을 강릉시의 상징 캐릭터로 사용하여 홍길동의 다양한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 관광 거리를 조성하였다. 강릉시는 경포호 주변에 홍길동을 캐릭터를 설치하여 시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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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미상이며, 아버지는 업유(業儒) 홍봉산(洪奉山)이다. 효행이 뛰어났으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죽을 먹으며 상을 치렀다. 홍순대(洪順大)에 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관청에서 홍순대의 지극한 효행을 듣고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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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강원도 강릉시 출신의 미생물학자이자 환경학자. 한국 미생물학의 기반을 마련하고 환경과학의 선구자로 활약한 강릉 출신의 과학자이다. 1927년 강원도 강릉시에서 태어났다. 1946년에 강릉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52년에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 후 1955~1958년에 걸쳐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및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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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기의 강릉 기생. 홍장은 경포호수를 배경으로 한 강원도 안찰사 박신(朴信)[1362~1444]과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시조 작가로서 시조 1수가 전한다. 강원도 안찰사로 온 박신은 강릉의 기생 홍장과 정이 두터웠는데, 임기가 차서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홍장을 찾으니 부사 조운흘(趙云仡)이 거짓으로 죽었다고 하여 매우 슬퍼하였다. 부사 조운흘은 경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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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저동 경포대 호숫가에 홍장(紅粧)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 바위. 고려 말 강원도 순찰사로 강릉에 머물러 있었던 박신(朴信)이 강릉 출신인 기생 홍장과 함께 배를 타고 사랑을 나눈 이야기가 전하며, 경포팔경 가운데 하나인 ‘홍장야우(紅粧夜雨)에 해당되는 바위다. 강릉 기생 홍장과 박신의 사랑 이야기와 관련된 바위라는 뜻의 이름이다.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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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미상. 남편은 홍재무(洪在武)이다. 남편이 병이 나자 밤낮으로 자신을 대신해서 앓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남편이 끝내 숨지자 몰래 뒤뜰에 나가 따라 죽었다. 유림에서 예조(禮曹)에 상소를 올려 정려(旌閭)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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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미상. 남편은 홍재수(洪在壽)이다. 시집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9년간이나 문둥병을 앓았는데, 밤낮으로 자신을 대신 앓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으며,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백방으로 구하여 올렸다. 시집올 때에 가지고 온 패물과 소를 팔아 남편의 약값에 썼으며, 남편이 죽을 무렵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넣어 주었다. 유림에서 부영(府營)과 어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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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 강릉시를 구성하고 있는 21개 행정동·읍 중의 하나이며, 65개 법정리·동 중의 하나이다. 14개 통 107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때 관미(官米)를 모아 두었다가 흉년기에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던 홍제원(洪劑院)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릉군 북이리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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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5월 22일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서 벌어진 간첩사살사건. 1960년대는 북한의 대남 정치공작이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특히 196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대규모의 간첩을 남파시키게 된다. 남한 내에서 포섭활동을 벌이고 있는 간첩 소탕이다. 당시 성산면 보광리 98번지가 본적인 대남 정치공작원 최춘집[당시 36세]을 비롯한 동료간첩 1개조 3명이 15통 1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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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문동 남문 사거리에서 교동 강릉 대로에 이르는 도로. 홍제로는 과거 강릉 읍성 지역이었던 남문동, 홍제동 일대 주택 밀집 지역에서 언덕을 넘어 강릉 대로와 연결되는 도로이다. 도로가 좁고 구불구불하여 차량 통행이 다소 지체되기도 한다. 도로가 행정 구역명인 홍제동을 지난다고 홍제로라 이름 붙였다. 홍제로는 남문동, 홍제동 일대 구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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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대천에 설치되어 있는 보(洑) 중의 하나. 강릉시에서는 남대천 치수기능의 확대와 시민 휴식공간의 극대화 및 하천의 수질보전을 위해 1991년부터 남대천정화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일환으로 포남보를 신설하는 것과 더불어 기존의 하평보와 두산보 및 홍제보를 개량하였다. 1993까지 두산보의 개량과 포남보의 신설이 완료되었고, 1994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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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강릉 옥계 출신으로 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활동을 하였다. 1944년 11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초모공작, 첩보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1945년 2월에는 중화지구(中華地區) 공작대원으로 활약하였다. 건국훈장(建國勳章) 애족장(愛族章)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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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 예문관대교를 지낸 홍계정(洪係貞)의 아들이다. 1534년(중종 29)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35년(중종 30)에 별시(別試)에 올랐다. 1555년(명종 10) 강릉부사로 부임하였다. 1556년 강원도관찰사 윤인서(尹仁恕)와 전 부사 함헌(咸憲), 최운우(崔雲遇) 등과 함께 오봉서원(五峰書院)을 건립하였다. 오봉서원을 건립할 때에 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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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강릉 지역 출신 미술가들이 모여 만든 미술 단체. 강릉 지역 미술가들이 자신들이 지향하는 실험적, 구상적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어 회원 상호간의 교류를 도모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또한 강릉 지역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 다른 단체의 다양한 미술가들과 활발한 교류전을 열어 강릉 지역에 새로운 현대 미술의 영역을 알림과 함께 강릉 지역 미술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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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단오제에 쓰는 깃대. 화개는 부사청(府司廳)에서 강릉 단오제 기간 중 본제가 시작되는 5월 1일에 만든다. 괫대 또는 꽃덮개라 부르기도 한다. 「관노가면극」을 연행하는 사람들은 화개를 앞세우고 다니면서 탈놀음을 했다. 강릉 단오제의 중심이 되는 신간(神竿)은 굿청에 모셔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신체(神體)의 하나로 괫대를 만들어 모시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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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정씨인 정몽주와 강릉최씨인 최수성을 모신 화동서원의 다례. 구정(邱井) 개화(開華)의 동쪽에 있다하여 화동서원(華東書院)이라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1930년에 처음 다례를 봉행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30년에서 1970년까지는 정몽주 선생만 배향했으나 1971년부터 최수성 선생도 향중사람(鄕中士林)의 합의로 합사(合祀)하였고 1972년 박정희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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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2동에 있는 산. 옛날 이 산에 꽃이 많이 피어 멀리서 보면 마치 꽃이 산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화부산(花浮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교1동 원뎅이재에서 내려온 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포남동의 바깥 뫼인 춘갑봉을 지나 초당을 거쳐 그 낙맥이 경포로 이어진다. 화부산 기슭은 강릉시내와 포남·송정의 넓은 들이 한눈에 내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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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 적십자 사거리에서 가작 다리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 화부산로는 교동 적십자 사거리에서 영동 초등학교, 강일 여자 고등학교를 지나 가작 다리 삼거리에 이르는 도로이다. 유천 지구와 지변 지구에 택지가 조성되면서 택지 지구의 교동 광장로와도 연결되었다. 강릉의 주산인 화부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로라는 뜻에서 화부산로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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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임곡리와 모전리, 산성우리 사이에 있는 큰 고개. 『동국여지승람』에 ‘강릉부 남쪽 35리에 있으며 영의 흙이 검어서 붉게 탄 것 같은 까닭에 화비령(火飛嶺)이라 했다’고 한다. 과거 영동고속도로 개통 당시 영동2터널로 관통되었던 곳으로 영동의 중부와 남부를 잇는 주요 교통로상의 고개이다. 『대동여지도』에도 강릉에서 삼척을 잇는 영동로 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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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향교에서 운영하였던 근대식 학교. 근대 지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여 나라와 고향을 지키겠다는 데 있었다. 강릉향교가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 화부산의 산명을 따서 화산학교를 설립하였다. 화산학교는 새로운 학제를 관장하던 중앙정부당국의 학부 승인을 받아 설립되었고, 향교 재산을 교비로 충당하여 운영하였다. 일제강점 다음 해인 1911년 폐교되어 양잠전습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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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황폐화 방지와 화전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 화전을 정리한 사업. 한국전쟁 이후 국토의 황폐화와 풍수해를 방지하고 산업발전의 기반으로서 산림자원 조성과 자연환경보호 그리고 화전경작민(火田耕作民)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산간오지의 화전을 정리한 사업이다. 화전은 산림에 불을 놓거나 기타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목 및 지피식생을 제거한 그 적지에 무시비 경종법에 의해 수년간 작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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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시부모를 극진히 섬겼으며 아내로서의 행실도 매우 뛰어났다. 시어머니가 죽자 몹시 슬퍼하였으며, 이 때 남편 황기윤(黃基倫)도 어머니의 상을 치르다 병을 얻어 위독해졌다. 매일 남편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었으나 남편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며느리가 되어 시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했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시아버지께서는 저를 생각하지 말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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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운정동(雲亭洞)에 있는 일제 시대의 사당. 강릉최씨 시조이며 고려의 개국공신인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 충무공(忠武公) 최필달(崔必達)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강릉 서쪽 끝에 자리 잡고 있던 황산의 이름을 따서 황산사라 하였다. 1936년 최명수(崔明洙) 등의 후손들과 진사(進士) 정채화(鄭寀和) 등 강릉 유림의 발의로서 강릉시 남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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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어 어머니를 다시 살게 하였다. 그 후 어머니는 14년을 더 살았다. 황손길(黃遜吉)에 대한 효행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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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회산동 남대천에 있는 다리. 회산교는 회산 앞으로 흐르는 회산천[남대천 상류]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회산교는 회산과 북쪽 마을인 홍제동 공제 마을을 잇기 위해 만든 다리이다. 회산교는 나무다리에서 시멘트 다리로 바뀌었다. 회산교 위쪽에는 맴소, 장림, 와뜰이 있고, 다리 아래쪽에는 양장소, 준벵이, 뇌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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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속하는 법정동. 회산동은 강릉시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회수출동백산(淮水出桐栢山)’이란 말에서 따온 지명으로, 중국 전한 때 동중서(董仲舒)가 살던 곳인 회산과 그 형태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9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자연 부락인 준방동과 회산동을 병합해 덕방면으로 편성하였다. 1914년 덕방면을 성남면과 분리하면서 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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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여전교에서 홍제동 경강로에 이르는 도로. 회산로는 국도 35호선[경강로]에서 2002년 제비리 회산 방면의 노선을 분리하여 건설된 도로이다. 이 도로는 국도 35호선과 회산 방면에서 강릉 종합 유통 단지로 용이하게 접근하기 위한 진입로로 개설된 도로로 4차선의 넓은 도로이다. 회산동을 지나는 도로라고 하여 회산로라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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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의 창시자인 주희의 영정을 모신 조선 말기의 영당. 송나라 주희(朱熹)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주희의 호(號)가 회암(晦菴)인데서 회암영당이라 명명하였다. 1887년(고종 24)에 주재식(朱載植), 주재학(朱載學) 등이 성균관과 예조에 글을 올려 연천(漣川)의 임장서원(臨漳書院)에 모셔져 있던 주부자(朱夫子) 영정(影幀)을 옮겨 사당을 짓고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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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의 영정을 모신 회암영당에서 이루어지는 다례. 회암은 주자가 강론하던 서재의 명칭이었다. 이로써 회암은 곧 주자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일명 주부자(朱夫子) 영당이라 한다. 현재의 다례는 1887년(고종 24년)부터 매년 음력 3월 상정일(上丁日)에 이루어진다. 진영(眞影)은 1748년(영조 24) 운곡서원으로부터 향인 심씨가 모셔왔으며, 심씨의 사숙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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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극진히 봉양한 사람. 효도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의 문화적인 전통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효자를 낳았다. 그들의 지극한 효심은 학자들의 문집에 담기거나 효자비(孝子碑)의 비문에 실려서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덕행(德行)의 표준이 되어 왔다. 효행의 본보기로 기록에 남아 있는 사례들 중에서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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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TV 및 라디오 공중파 방송을 서비스하는 문화 방송의 강릉 지역 방송국. MBC 강원 영동 강릉 방송국은 강원 영동 지역민을 위한 방송사로 거듭나,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시청취자의 친구가 되고, 소외받는 이웃과 지역 여성,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역 현안에 대한 심층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강릉 문화 방송과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