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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부천 지역이 중앙정부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어 행정지배를 받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였다. 940년(태조 23) 지방의 명호를 고칠 때 수주(樹州)로 개명된 후 995년(성종 14) 지방관이 처음으로 부임한 부천 지역은 정치적·군사적 중요도에 따라 안남도호부·계양도호부·길주목·부평부 등 읍호의 승강이 반복되었다. 계양도호부 시기에 인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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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 지역 역사. 936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940년(태조 23) 전국에 있는 지방 군현의 지명을 바꿨다. 이때 부천의 지명도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에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이때 수주에도 단련사(團練使)라는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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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몽고(蒙古)의 침입 후인 1308년(충렬왕 34) 충렬왕은 경기도 부천 지역이 포함된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를 길주목(吉州牧)으로, 즉 부(府)에서 목(牧)으로 승격시켰다. 충렬왕은 원종의 큰아들로 원(元)에 볼모로 갔다가 돌아온 후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볼모 시절 매사냥을 배웠던 충렬왕은 즉위하자 응방(鷹坊)을 설치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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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경기도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1895년 6월 18일 갑오개혁 때 단행된 지방 행정제도에 따라 484년간 유지되어온 팔도제를 폐지하여 23부로 개편하고, 종래의 부(府)·목(牧)·군(郡)·현(縣)을 일률적으로 군(郡)으로 폐합하였다. 즉 전국을 23부로 나누고 337개의 군(郡)을 부(府)에 예속시킨 것이다. 23부에는 관찰사를, 군에는 군수를 두어 감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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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조선 초기 부천 지역은 고려의 관제를 그대로 답습하여 읍호의 승강 없이 부평부(富平府)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1413년(태종 13) 전국을 경기·충청·경상·전라·황해·강원·함길·평안의 팔도로 나누고, 그 밑에 부(府)·목(牧)·군(郡)·현(縣)을 두는 팔도제(八道制)가 완성되었다. 팔도에는 각각 관찰사를 두고 그 밑의 각 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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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1310년(충선왕 2) 길주목을 폐지하면서 부(府)로 강등하고 지명도 ‘부평(富平)’으로 바꾸어 ‘부평부’가 되었다. ‘부평’이라는 이름은 이때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읍호의 승강이 있었으나, 부평이란 명칭은 바뀌지 않고 명실공히 부천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어 왔다. 고을의 등급이 목에서 부로 강등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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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부평에서 경기도 부천 지역을 거쳐 서울특별시 영등포까지 펼쳐진 평야. 넓은 황무지를 개척하여 곡창지로 만들었는데, 그 농지가 넓어 수확이 많이 나는 풍요로운 평야라는 뜻이다. 즉 한강 하류 지역의 어느 특정한 곳에 주현 규모의 중심지가 자리를 잡았고, 이 중심지가 관할하는 땅이 넓고 평평하게 펼쳐쳐 있다 하여 부평평야라 부르게 되었다. 부평평야는 북쪽에서부터 한강 수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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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의 지방제도는 940년(태조 23) 지방의 명호를 고친 이후 성종 대에는 12목을 설치하였고, 현종 대에 4도호부 8목을 거쳐, 5도 양계로 고착되었다. 안남도호부는 현종 대에 설치되었던 4도호부(후에 5도호부로 바뀜) 중의 하나이다. 안남도호부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전주를 안남도호부로 삼은 것에서 기인한다. 안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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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경기도 부천시의 역사. 부천시는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에 인접해 있다. 동쪽과 북쪽은 서울특별시 강서구·양천구·구로구와 닿고, 남쪽은 경기도 시흥시·광명시와 경계하며, 서남쪽은 인천광역시 계양구·부평구 및 남동구와 접한다. 한강 하류에 인접하여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 이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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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행하는 민속놀이. 부천 지역에서는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에 걸쳐 연날리기를 하였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즐겼던 놀이이다. 연날리기는 놀이 이외에도 묵은해의 액운을 날려 보내고 새로운 해의 복을 비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연에 그해의 액(厄)을 없애 버린다는 뜻으로 정월 보름날 액·송액(送厄)·액송(厄送)이란 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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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경기도 부천 지역에 출몰하여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한 일본 해적집단. 고려시대에 왜구는 일본의 이키[壹岐]·쓰시마[對馬]·기타큐슈[北九州]·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등을 근거지로 삼고 있었다. 왜구는 충정왕·공민왕·우왕에 이르는 40여 년간 100~500척의 선단으로 활동 무대를 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의 연안까지 넓혔으며, 때로는 황해도와 평안도에서도 노략질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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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한의 소국.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의 한조(韓條)에는 삼한(三韓)의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은 그 중 마한 54개 소국 중 하나로, 역사학자 이병도는 우휴모탁국이 부천[부평]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즉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부천 지역은 고구려 때에는 주부토군(主夫吐郡), 통일신라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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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수주 수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동현(同玄).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의 고손이며, 검교소부소감을 지낸 윤집형(尹執衡)의 아들이다. 후손인 부평부사 윤명선(尹明善)이 윤관(尹瓘)이 수주수령을 지낸 것을 확인하고 부천 지역에 낙향하였으며, 이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습유, 보궐을 거쳐 1095년(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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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초명은 원재(元載). 후손인 윤승해(尹承解)의 묘지명에서 윤징고(尹徵古)가 윤봉의 후손으로 자신의 조상 중 한 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윤징고의 아들이 윤희단(尹希旦)이다. 윤징고는 성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목종 때 감찰어사가 되었고, 현종이 즉위한 뒤 시어사가 되고, 1013년(현종 4) 국사수찬관을 겸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1016년 중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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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수주(樹州). 아버지는 문하시중 이정공(李靖恭)이며, 동생 역시 문하시중에 오른 이위(李瑋)이다. 처는 문하시중을 지낸 경주김씨 김경용(金景庸)의 딸이며, 처남은 평장사(平章事) 김인규(金仁揆)이다. 이숙(李璹)[?~1131]은 아버지 이정공(李靖恭)의 후광에 힘입어 숙종 때 낭장이 되고, 예종·인종 두 임금을 섬기면서 벼슬이 올라 참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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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수주(樹州). 자는 직청(直淸). 개국공신 이희목(李希穆)의 후손으로, 시중 이정공(李靖恭)의 아들이다. 참지정사(參知政事) 이숙(李璹)의 동생으로, 인종의 비(妃)이자 임원후(任元厚)의 딸인 공예태후(恭睿太后)의 외할아버지이다. 이위는 문과에 급제하고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을 거쳐, 1087년(선종 4) 상서병부원외랑(尙書兵部員外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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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부천 지역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수주(樹州).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워 삼한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관계(官階)가 삼중대광에 이르렀던 이희목(李希穆)의 후손이다. 이정공의 아들로는 예종(睿宗) 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이숙(李璹)과 인종(仁宗) 대 문하시중을 역임한 이위(李瑋)가 있다. 문과에 급제한 뒤, 1059년(문종 13) 지남원부사 시예부원외랑(知南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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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천의 옛 지역인 수주(樹州)의 호족이자 부평이씨의 시조. 본관은 부평(富平). 『부평이씨대동보(富平李氏大同譜)』에 의하면 부평이씨의 시조는 이희목(李希穆)이고, 그 후손으로는 문종(文宗) 대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이정공(李靖恭)이 있다. 이정공의 아들로는 예종(睿宗)대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이숙(李璹)과 인종(仁宗)대 문하시중을 역임한 이위(李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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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갑오개혁 때 설치되어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부천 지역이 포함된 지방 행정구역.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 6월 18일 단행된 지방 행정제도는 484년간 유지되어온 전국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로 개편하는 내용이었다. 즉 전국을 23부로 나누고, 337개의 군(郡)을 부(府)에 예속시킨 것이다. 23부에는 관찰사를, 군에는 군수를 두어 감독하게 하였고, 군수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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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경기도 부천시 역사. 부천은 일제강점기에 부평과 인천 지역의 일부를 병합하여 만든 고을이다. 따라서 부천의 조선시대사는 곧 부평사이다. 현재의 부천 지역은 조선시대 부평 영역의 동쪽과 남쪽 지역이었다. 주화곶(注火串)·상오정(上梧亭)·하오정(下梧亭)·석천(石川)·옥산(玉山) 등 5개 면이 이에 해당된다. 1413년(태종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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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전반까지 경기도 부천 지역의 역사. 삼국의 통일 후 부천 지역은 통일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어 그 지배를 받았다. 후삼국시대에는 고려 개창 세력의 중심지였던 개성과 가까이 위치하여 고려 개국의 중심이 되는 호족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신라는 통일 후 경덕왕(景德王) 대에 신라의 제도와 관직 등을 중국식으로 고치는 한화정책(漢化政策)을 단행하였다. 757년(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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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 지역에서 밀가루나 수수가루 등의 잡곡 가루에 늙은 호박과 팥을 넣어 쑨 죽. 풀떼기는 죽의 일종이나 죽보다는 걸쭉한 편이었다. 쌀이 귀한 시절 쌀 대용으로 주식 또는 새참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다. 끓을 때 풀떡풀떡 끓어 넘친다고 하여 풀떼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며, 풀처럼 쑨 죽이라고 하여 풀떼기라 했다고도 한다. 늙은 호박의 껍데기를 벗겨 솥에다 푹 익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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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경기도 부천에 근거하면서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 세력. 통일신라 말기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에서는 호족이라는 새로운 사회 세력이 독자적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호족은 지방으로 낙향한 귀족 세력, 지방의 토착 세력인 촌주, 지방의 군사 세력 등으로 스스로 장군(將軍)이나 성주(城主)를 자처하면서 지방 사회를 통치...